[찰리 멍거 특집 3]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지혜 재고(再考)
오늘 하는 강연은 2년 전 USC 경영대학원에서 한 강연의 속편입니다. 여러분은 내 USC 강연록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그 내용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했던 말 중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극히 분명한 사실입니다. 만일 버핏이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졸업 후 새로 배운 것이 전혀 없다면 버크셔는 현재 모습의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컬럼비아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에게 배운 내용만으로도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가 계속 배우지 않았다면 버크셔 해서웨이 같은 기업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어떻게 얻나요? 여러분은 세계의 최상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사용하나요? 나는 대부분 사람이 사용하는 시스템보다 (똑똑한 사람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특정 시스템이 훨씬 낫다고 오래전부터 믿었습니다. USC 경영대학원에서도 말했지만 여러분 머릿속에는 격자틀 인식 모형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직접 경험과 (독서 등으로 얻은) 간접 경험을 이 강력한 격자틀 모형 위에 배열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시스템에 의해서 경험이 점차 잘 맞물리면서 인식력이 강화될 것입니다.
오늘 강연과 관련해서 여러분은 잭 웰치의 최근 GE 주주 서한과 워런 버핏의 최근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서한도 받았을 것입니다. 잭 웰치는 공학 박사입니다. 워런도 원하면 어느 분야에서든 박사 학위를 딸 수 있었습니다. 두 신사 모두 타고난 선생입니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매우 학문적입니다. 그동안 GE가 이룬 성과를 보십시오. 그동안 버크셔 해서웨이가 이룬 성과도 보십시오.
경계를 초월하는 다학제적 접근
워런에게는 무척 존경하는 스승 겸 멘토 벤저민 그레이엄이 있었습니다. 그레이엄은 매우 학구적이어서 컬럼비아대를 졸업할 때 3개 학과에서 박사 과정 초청과 함께 강의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 3개 학과는 문학, 그리스 라틴 고전, 수학이었습니다. 그레이엄은 매우 학구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처럼 집중력이 뛰어난 천재 스타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학자처럼 보였습니다. 인품도 훌륭했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죽을 때는 부자였습니다. 항상 아낌없이 나누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는 컬럼비아대에서 30년 동안 가르쳤고, 투자 분야 최고의 교과서도 저술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학계에서 많이 배울 수 있으며 최고의 학문은 정말로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즉 다양한 학문에서 주된 모형을 가져와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학문 사이의 경계를 무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은 학문 사이의 경계를 고수하려고 합니다. 관료적인 거대 기업도 그렇습니다. 물론 학계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말은 학계의 태도가 형편없이 잘못되어 기능을 상실했다는 말뿐입니다. 기업에서 최악의 기능 장애는 여러 부서가 업무를 쪼개어 차지하고 영역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경계를 초월하는 사고방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모든 학문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학문에서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만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콘트랙트 브리지(contract bridge)라는 카드 게임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콘트랙트 브리지에서 ‘선언자’가 되어 게임을 노련하게 이끌고 싶다고 가정합시다. 여러분은 입찰을 통해서 계약을 해야 합니다. 보유한 카드 중 끗수 높은 카드와 으뜸 패의 수를 세어보면 확실한 승수(勝數)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트릭 한두 개가 부족하면 어떤 방법으로 채워야 할까요?
표준 기법은 6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롱 수트 이스태블리시먼트(long suit establishment), 피네스(finesses), 스로인 플레이(throw-in plays), 크로스러프(crossruffs), 스퀴즈(squeezes), 기타 다양한 속임수를 동원해서 방어자의 실수를 유도하는 방법입니다. 모형의 수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아는 기법이 한두 개뿐이라면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이들 기법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게임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미리 수를 읽어보기도 하고 지나간 수를 돌아보기도 해야 합니다.
훌륭한 선언자는 ‘어떻게 하면 승수를 채울 수 있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무슨 잘못 때문에 패배했지?’라고 돌아보기도 합니다. 두 가지 사고법 모두 유용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필요한 모형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미래를 내다보기도 하고 과거를 돌아보기도 해야 합니다. 브리지 게임에서 통하는 방식이 인생에서도 통합니다.
콘트랙트 브리지가 여러분 세대에 인기를 잃은 것은 비극입니다. 이 게임에 대해서는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현명합니다. 현재 중국은 초등학교에서 브리지를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중국이 자본주의를 도입해서 성공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브리지 게임을 할 줄 모르는 미국인이 브리지 게임을 잘하는 다른 사람과 경쟁한다면 약점 하나를 더 떠안고 경쟁하는 셈입니다.
미국 학계는 학문 사이의 경계를 고수하는 구조여서 그동안 잘못 가르쳤으므로 여러분은 불리한 처지입니다. 내가 해법을 제시하겠습니다. 나는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 시절 빨간 암탉(little red hen)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그러면 내가 직접 하겠어’라고 빨간 암탉이 말했습니다”입니다. 미국 교수가 (자신의 모형만 많이 사용하고 다른 학문의 주요 모형은 사용하지 않아서) 다학제적 기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교수가 속수무책이라고 해서 여러분도 속수무책일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더 강력한 모형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올바른 사고방식을 갖추면 됩니다. 다학제적 기법을 통해서 세상을 더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여러분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을 앞서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돈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내 경험으로 입증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사례 하나가 허쉬(Hershey) 이야기입니다. 허쉬는 1800년대 펜실베이니아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오래된 석재 그라인더를 사용해서 코코아 버터를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특유의 향을 얻게 되었습니다. 카카오 씨 겉껍질 일부가 초콜릿에 남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이 특이한 향을 좋아했습니다. 허쉬는 캐나다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특유의 매력적인 향이 바뀌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존 석재 그라인더를 복제했습니다. 이렇게 특유의 향을 복제하는 데 5년이 걸렸습니다. 아시다시피 향은 매우 미묘해서 다루기 어렵습니다.
인터내셔널 플레이버스 앤드 프래그런시즈(International Flavors and Fragrances)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 특허권이나 저작권 없이 사업을 하면서도 영원무궁토록 사용료를 받는 유일한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면도 크림 등 주요 제품의 맛이나 향 개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면도 크림의 향기는 제품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맛과 향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 기술 책임자인 내 친구 네이선 미어볼드(Nathan Myhrvold) 박사가 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학에 통달한 물리학 박사입니다. 생물이 만들어내는 신경 기관은 미분 방정식을 무의식적으로 신속하게 풀 수 있는데 주변 사람은 모두 평범한 확률과 숫자 계산조차 전혀 하지 못하는 것에 그는 놀랐습니다. 나는 그가 놀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은 이른바 적합도 지형(fitness landscape)에 의해서 창을 던지고 달리면서 코너를 도는 법도 배웠습니다. 미어볼드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기 훨씬 전에 말이지요. 그러므로 그가 그렇게 놀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차이가 매우 극단적이어서 그에게는 이상해 보였겠지요.
아무튼 인류는 숫자 감각이 형편없어서 이에 대처하려고 시스템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른바 그래프입니다. 기묘하게도 그래프는 중세에 등장했습니다. 내가 알기로 중세 시대에 수도사가 발명해낸 것 중 유일하게 값진 지적 자산이었습니다. 그래프로 표현하면 숫자가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체내의 원시 신경 시스템을 이용해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밸류 라인(Value Line) 그래프는 매우 유용합니다.
여러분에게 배포한 그래프는 로그 모눈종이 위에 그려져 있습니다. 로그 모눈종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모형의 하나인) 복리를 나타내는 기초 수학입니다. 그래서 그래프가 그런 형태인 것입니다. 로그 모눈종이에 그린 그래프에서 한 자료점(data point)을 통과하는 직선을 그리면 복리 효과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그래프는 놀라울 정도로 유용합니다. 나는 버크셔의 시스템이 훨씬 낫다고 믿기 때문에 밸류 라인 예측 자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밸류 라인 그래프와 데이터는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놀라운 제품입니다.
‘카네이션(Carnation)’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유업회사가 카네이션 상표를 사려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상표는 ‘카네이션 피시(Carnation Fish)’라는 어류를 파는 수산업자가 사용 중이었습니다. 유업회사가 “25만 달러를 지불하겠소”라고 제안하자 수산업자는 “40만 달러를 주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4년 후 유업회사가 “100만 달러 내겠소”라고 하자 수산업자는 “200만 달러 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협상만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아직도 이 유업회사가 상표를 샀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유업회사 관계자가 수산업자에게 가서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우리 품질관리 검사원을 당신 생선 공장에 보내서 품질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비용은 모두 우리가 부담하겠습니다.” 수산업자는 능글맞게 웃으며 곧바로 허락했습니다. 그는 공짜로 공장 품질관리를 받았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상표 보유자는 상표를 보호하려는 동기가 엄청나게 강했습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카네이션 제조 회사는 남의 제품까지 보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동기와 결과는 문명사회에 매우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도 매우 근본적인 미시경제적 사유로 상표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본 모형도 없고 모형을 다룰 인식 기법도 없으면 그래프만 들여다보면서 허송세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허송세월할 필요가 없습니다. 100가지 모형과 몇 가지 인식 기법을 배워 사용하면 됩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이 방법의 장점은 사람들 대부분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육을 잘못 받았기 때문이지요. 나는 여러분이 잘못된 교육 탓에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심리학 모형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에 필요한 기본 개념 몇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지금까지 다루었던 것보다 더 극단적이고 특이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잘 사용해야 하는데도 잘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심리학 모형입니다.
최근 나는 교훈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홍콩에 갔다가 집으로 막 돌아온 시점이었습니다. 홍콩 유명 학교의 교장이던 친구가 내게 책을 주었는데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가 쓴 《언어본능(The Language Instinct)》이었습니다. 핑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미론 학자인 MIT 언어연구소(Linguistics Institute)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그늘에 가렸다가 뒤늦게 주목받은 의미론 교수입니다.
핑커는 인간의 언어 능력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게놈(genome) 깊숙이 저장된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침팬지 등 다른 동물의 게놈에는 언어 능력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들어 있지 않습니다. 언어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재능입니다. 그는 이 사실을 훌륭하게 입증합니다. 물론 촘스키도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언어 능력 대부분이 인간의 게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무지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요. 언어 능력을 개선하려면 교육을 받으면서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애초에 유전자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촘스키는 인간의 언어 능력이 게놈에 저장되어 있다는 주장이 아직 확실치 않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핑커는 말했습니다. “아직 확실치 않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됩니다! 언어 능력도 다른 모든 능력과 똑같은 방식으로 게놈에 저장되었습니다. 다윈의 자연 선택을 통해서 말이지요.” 핑커의 말이 확실히 옳습니다. 우유부단한 촘스키의 태도는 다소 멍청해 보입니다.
촘스키 같은 천재가 왜 이렇게 명백한 오판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매우 확실해 보입니다. 촘스키는 열정적인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천재였지만 극단적인 평등주의 좌파였습니다. 그 관점을 인정하면 그는 자신의 좌파 사상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사상적 편향이 그의 판단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하나 더 얻게 됩니다. 사상이 촘스키 같은 천재도 바보로 만들 정도라면, 여러분과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강력한 사상은 사람의 인식을 극단적으로 왜곡합니다. 그리스 관광객에게 총을 난사하면서 “알라가 역사하신다!”라고 외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생각해보십시오. 사상은 인식을 끔찍하게 왜곡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강력한 사상을 많이 받아들여 표현하고 다니면 그의 두뇌는 매우 나쁜 형태로 굳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인식이 전반적으로 왜곡됩니다.
워런 버핏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워런은 아버지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실제로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워런의 아버지는 매우 강한 우파 사상가여서 당연히 다른 우파 사상가들과 어울렸습니다. 어린 시절 이런 모습을 본 워런은 사상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사상을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사상을 멀리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인식을 정확하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똑같은 교훈을 다른 방식으로 얻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사상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태도가 옳다고 판단했으므로 아버지를 모방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도넌(Robert Dornan) 같은 우파나 네이더(Ralph Nader) 같은 좌파는 확실히 바보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맹렬한 사상이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맹렬한 사상은 대개 설득되지 않고 주입되므로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양한 학문에서 다양한 모형을 가져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지만, 강력한 사상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정확성, 근면, 객관성을 지지하는 사상이라면 수용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최저 임금 인상이나 인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사상을 수용하면 여러분은 바보가 됩니다. 세상은 매우 복잡한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인생은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저 임금을 인상하거나 인하하면 문명사회가 개선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사상으로 그런 주제에 대해 철저하게 확신하면 그 사람의 사고 능력은 엉망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상 탓에 인식이 왜곡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핑커를 언급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저서 《언어본능》에서 “나는 심리학 교과서들을 읽어보았는데 형편없었다. 체계도 엉망이고 내용도 잘못되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질이 핑커에게 훨씬 못 미칩니다. 사실 나는 심리학 과목을 수강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도 심리학 교과서에 대해 똑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훌륭한 내용도 일부 있지만 매우 엉망인 내용도 있다고 말이죠.
심리적 거부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데모스테네스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원하는 바를 믿기도 한다.” 그가 옳았습니다. 내가 잘 아는 친구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명석한 스타 풋볼 선수였는데 타고 가던 항공기가 대양에서 사라져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아내는 아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가끔 이성을 잃으면 바라는 바를 믿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단계에서 나타나며 심리적 거부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심리적 거부에 의한 인식 오류가 현실 곳곳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심리학 교과서에서는 심리적 거부를 충분히 다루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교수가 가르치는 방식으로만 심리학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 물론 교수가 가르치는 내용은 모두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교수가 가르치지 않는 내용도 많이 배워야 합니다. 교수가 잘못 가르치는 내용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심리학은 패러데이 이후의, 그러나 맥스웰 이전의 전자기학(electromagnetism)과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발견이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통합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통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통합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며,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심리학 교과서를 펴고 색인에서 ‘질투’를 찾아보십시오. 십계명에도 질투가 1~3회 나옵니다. 모세는 질투에 관해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옛날 양 떼를 키우던 유대인도 질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심리학 교수만 질투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두꺼운 심리학 교과서에 ‘질투’가 안 나온다고요? 심리적 거부나 인센티브에 의한 편향도 안 나온다고요?
심리학 교과서는 여러 요소의 결합도 충분히 다루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같은 방향으로 작용할 때 나타나는 롤라팔루자 효과에 유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가장 널리 공개된 심리학 실험은 밀그램(Stanley Milgram) 실험입니다. 이 실험에서 피험자는 무고한 사람에게 전기 고문을 하라고 요청받습니다. 여기서 피험자 대부분이 요청에 따라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게 됩니다. 밀그램 실험이 진행된 시점은 히틀러가 루터교도, 가톨릭교도 등에게 불경스러운 행위를 하도록 강요한 직후였습니다. 밀그램은 명백히 잘못된 일을 지성인이 하도록 조종할 때 권위가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려고 했습니다. 권위가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컸습니다. 그는 지성인도 많은 잘못을 저지르도록 조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오래전부터 심리학 교과서에 실려, 권위를 이용하면 사람이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첫 판단 편향(first-conclusion bias)에 불과할 뿐, 정확한 설명이 아닙니다. 권위는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사실은 여러 심리 요소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작용해서 이른바 롤라팔루자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이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스탠퍼드대 등에서 발간한 심리학 교과서를 보면 설명의 약 3분의 2는 정확해졌습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이 정도입니다.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과서조차 밀그램 실험 결과의 핵심 요인을 여전히 놓치고 있습니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그런 잘못을 저지를까요? 내가 말하는 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심리학 주요 모형을 모두 가져와서 만든 체크리스트로 결과를 확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종사는 체크리스트를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이륙합니다. 브리지 게임에서도 트릭 두 개가 부족하면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방법을 찾아낸 다음에야 게임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심리학 교수는 자신이 매우 똑똑해서 체크리스트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정도로 똑똑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똑똑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체크리스트로 확인해보면 밀그램 실험과 관련된 심리 요소는 3개가 아니라 6개 이상이라는 것을 심리학 교수도 실감할 것입니다. 체크리스트로 확인해보기만 하면 자신이 빠트린 요소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요 모형을 가져와서 체계적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계속해서 실수를 되풀이할 것입니다.
심리학 교수가 심리적 거부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윤리적 문제로 실험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정신 장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실험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 실험을 할 때 피험자가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 미리 알려주어서는 안 되므로 명백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실험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교수 대부분의 반응은 ‘내가 실험으로 입증할 수 없다면 그런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지’입니다. 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윤리적 문제 탓에 정확한 실험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런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증거를 확보하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파블로프는 개를 고문하면서 생애 마지막 10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분석해서 책으로 발표했습니다. 따라서 개가 고통받을 때 발생하는 정신 장애(및 치료법)에 관해 방대한 데이터가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심리학 개론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파블로프가 개를 고문한 사실을 심리학 교수가 싫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스키너(B. F. Skinner)가 동물의 행태에 기초해 인간의 행태를 분석한 방식이 인기가 없어서일지도 모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심리학 교과서는 고통이 정신 장애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합니다.
누군가 “그런 영향을 모른다고 뭐가 달라지나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향과 관련된 모형은 필요합니다. 게다가 관련된 모형이 20개라면 20개 모두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10개만으로는 부족하며 20개를 모두 가져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른바 ‘오판의 심리학’에서 주요 모형을 모두 가져와 머릿속에 넣어두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4~5개 요인이 같은 방향으로 작용할 때 이런 체크리스트가 더 필요합니다. 이때 흔히 롤라팔루자 효과가 나타나므로 그 영향으로 여러분은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롤라팔루자 효과에 주의해야 합니다. 올바른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주요 모형을 가져와서 체크리스트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롤라팔루자 효과를 불러오는 결합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옛날 심리학을 현명하게 이용한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쿡 선장(James Cook, 1728~1779, 영국의 탐험가, 항해사, 지도 제작자) 시대에는 장기간 항해하는 동안 괴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괴혈병에 걸리면 흔히 잇몸에서 출혈이 발생했고 상태가 악화해 사망했습니다. 원시적인 범선에서 수많은 선원이 괴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상황은 지옥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괴혈병에 관심이 많았지만 발병 원인이 비타민 C 부족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학제적 기법을 알고 있었던 쿡 선장은 네덜란드 배가 영국 배보다 괴혈병 사망자가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배는 도대체 뭐가 다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네덜란드 배는 모두 사워크라우트(sauerkraut,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싣고 다녔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위험한 장기 항해를 떠날 때는 사워크라우트를 실어야겠어. 유용할지 몰라.’ 다행히 그가 실은 사워크라우트에는 비타민 C가 조금 들어 있었습니다.
쿡 선장은 괴혈병에 대비해서 사워크라우트를 실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장기 항해를 떠난다고 생각하면 괴혈병을 두려워하는 선원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두가 보는 곳에서 고급 선원이 사워크라우트를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보통 선원에게는 사워크라우트를 주지 않았습니다. 상당 기간 후 그는 말했습니다. “이제 보통 선원에게도 1주일에 하루 사워크라우트를 먹게 하게.” 이제 모두가 사워크라우트를 먹게 되었습니다. 쿡 선장은 사람의 심리를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기법을 이용한 덕분에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수많은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대부분 매우 단순합니다. 노력할 의지만 있으면, 내가 여러분에게 권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보상은 정말 엄청나게 큽니다. 보상에 관심이 없고, 고통을 피하고 싶지 않으며,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하는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면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에는 심리와 함께 도덕적 문제도 깊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절도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만일 절도가 매우 쉽고 절도를 해도 잡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세상 사람 대다수가 절도를 할 것입니다. 일단 사람들이 절도를 시작하면 곧 일관성 편향이 작동해 절도가 습관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절도하기 쉬운 방식으로 회사가 운영된다면 그 회사 종업원의 도덕성도 손상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회사는 절도하기 매우 어려운 방식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인센티브 편향 때문에 종업원이 절도를 합리화하게 됩니다. 종업원이 절도를 합리화하게 되면 이제 인센티브 편향은 물론 사회적 증거도 작동하며, 〈형사 서피코(Serpico, 뉴욕 경찰의 조직적인 부패에 맞서 싸우다가 고립되고 마는 강직한 경찰을 그린 영화)〉 효과까지 나타납니다. 부패 행위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이들은 내부 고발자를 위협하는 집단이 됩니다. 이렇게 도덕적 문제를 무시해 비리가 서서히 확산하도록 방치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여러 심리 요인이 해로운 방향으로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문제는 법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스탠퍼드 법학대학원 졸업생이 입법부에 들어가서 훌륭한 의도로 어떤 법을 통과시켰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법을 이용해서 쉽게 비리를 저지른다면 이보다 더 나쁜 상황도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거꾸로 생각해봅시다. 누군가 ‘우리 문명사회를 망가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고민 중이라면,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입법부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쉽게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법을 통과시키면 됩니다. 그 효과는 완벽할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산업재해 보상 보험 제도를 살펴봅시다. 종업원은 스트레스 때문에 실제로 고통을 받습니다. 그래서 종업원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보상한다고 가정합시다. 이는 훌륭한 제도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엄청난 부정행위를 막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한번 부정행위에 대해서 보상해주면 부정직한 변호사, 의사, 노조 등이 가담해서 책략을 꾸미게 됩니다. 그러면 온갖 비리가 난무하기 시작하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악화합니다. 문명사회에 기여하려고 시작한 일이 결국은 엄청난 피해만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쉽게 비리가 발생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 보상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내 고객 하나는 텍사스 국경 근처 공장에서 산업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이익률이 낮아서 힘든 사업이었습니다. 게다가 산업재해 보상 보험 사기가 엄청나게 많아서 그가 지불하는 보험료가 두 배로 상승해 급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두 자릿수에 이르렀습니다. 그 제품은 생산 과정이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았습니다.
승부사 기질이 있는 나는 떠오르는 생각대로 고객에게 조언했습니다. 고객은 내 조언대로 노조에 부탁했습니다. “보험 사기를 중단해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사기가 많으면 제품 생산 자금조차 대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그 시점에는 모두가 사기에 가담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추가 소득을 얻고 있었습니다. 유명 변호사, 의사, 척추 교정 지압사 모두 기회만 있으면 사기에 가담했으므로 아무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제는 그러면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페르시아 전령 증후군(Persian messenger syndrome)’에 의해서 화를 입을 위험이 있었습니다. 노조 대표조차 사람들에게 보험 사기를 중단하라고 말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고객은 텍사스 공장을 유타 모르몬교도(Mormon) 지역으로 옮겼습니다. 모르몬교도는 보험 사기를 치지 않았습니다. 급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두 자릿수였던 산업재해 보상 보험료가 2%로 떨어졌습니다. 비리가 서서히 확산하도록 방치하면 비극이 발생합니다. 비리는 초기에 막아야 합니다. 한동안 방치하고 나면 비리를 막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기본 심리 요인을 이용할 때 각별히 유의해야 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용량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심리 요인 이용 기법을 써서 사람을 함부로 조종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누군가를 조종하려고 상한선을 무시하고 이 기법을 이용하다가 발각되면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노사 관계에서 이런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사례가 발생하면 윤리적 문제는 물론 다른 현실적인 문제도 발생하며 때로는 큰 사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질의응답
Q. 당신은 투자를 결정할 때 심리학을 어떻게 이용하나요? 코카콜라처럼 모두가 좋아하는 제품을 찾는 정도에 그치지는 않겠지요? 오늘 당신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생각하는 똑똑한 사람이 이미 세상에 많을 것입니다. 당신이 훌륭한 기업을 탐색할 때 이들은 찾아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나요?
USC 경영대학원에서도 말했지만 투자는 쉽지 않습니다. 훌륭한 기업을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런 기업은 주가가 매우 높아서 어느 주식을 사야 가장 유리한지 판단하기가 매우 까다로우니까요. 버핏과 나는 그 해법을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시장에 대해 불가지론자가 될 때가 98%랍니다. 포드 대비 GM의 주가가 적정 수준일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통계적 우위를 안겨주는 통찰을 얻으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그런 통찰을 심리학에서 얻을 때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 얻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얻는 통찰은 1년에 한두 개에 불과합니다. 모든 투자 대안을 자동으로 판단하는 시스템 같은 것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 시스템은 그런 방식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주로 판단하기 쉬운 투자 기회를 찾습니다. 그동안 거듭 말했지만 2미터짜리 장애물 대신 30센티미터짜리 장애물을 찾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쉬운 문제를 풀어서 성공했습니다.
Q. 통계 분석을 바탕으로 통찰을 얻나요?
우리는 유리한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할 때 투자를 결정합니다. 그런 통찰 중 일부는 통계 성격을 띱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얻는 통찰은 몇 개에 불과합니다. 단지 가능성이 큰 정도라면 쓸모가 없습니다. 확실히 인정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정할 정도로 가격에 오류가 있는 투자 기회여야 합니다. 그런 기회는 자주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주 발생할 필요도 없습니다. 큰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잡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런 기회가 몇 번이나 필요할까요? 예컨대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금까지 결정한 10대 투자를 생각해보십시오. 10대 투자 외에 평생 아무 일을 안 했더라도 우리는 큰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항상 모든 주제에 대해 완벽한 투자 판단을 내려주는 시스템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런 시스템이 있다면 오히려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나는 단지 시장을 면밀하게 조사해서 가끔 좋은 기회를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줄 뿐입니다. 이 방법으로 주식을 선정한다면 똑똑한 사람 다수와 경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방법을 쓰더라도 발견하는 기회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다행히 소수로도 충분합니다.
Q. 당신은 종업원이 일관성 편향에서 벗어나 실수를 인정하게 하는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했나요? 올해 초 인텔에서 온 강사는 펜티엄칩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말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일이 지금까지 해온 잘못을 깨닫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조직 구조가 복잡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
인텔 같은 기업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팀 단위로 난제를 해결해야 하므로 밀착형 문화가 조성됩니다. 반면 버크셔의 기업 문화는 전혀 다릅니다. 버크셔는 지주 회사입니다. 우리는 본사에서 하는 자본 배분을 제외하고 모든 권한을 자회사에 위임했습니다. 우리는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을 자회사 대표로 선정해서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우리가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이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슨 일이든 현실을 직시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현실 직시에는 과거에 내린 판단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버크셔는 인텔과 전혀 다릅니다. 앤디 그로브(인텔 CEO)가 하는 일을 워런이나 나도 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리는 그 분야의 전문 역량이 없습니다. 결함만 많습니다. 인텔에서는 내가 멍청하고 독선적인 사람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얼간이 취급을 당하겠지요.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라면 워런과 나 모두 매우 잘합니다.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계속 실패하니까요.
Q. 당신이나 버크셔나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하위 기술(low-tech) 기업 경영도 첨단 기술 기업 경영 못지않게 어렵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습니다.
둘 다 어렵습니다. 어느 분야든 부자 되기가 쉽겠습니까? 경쟁이 치열한 이 세상에서 모두가 쉽게 부자 되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래서 둘 다 어렵습니다. 우리가 첨단 기술 분야를 꺼리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위 기술 분야도 매우 어렵습니다. 식당을 열어서 성공해보십시오.
Q. 당신은 첨단 기술 분야에 특별한 적성이 필요해서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둘 다 어렵기는 마찬가지 아닌가요?
하위 기술 분야의 장점은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첨단 기술 분야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해하는 분야를 다루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유리한 분야 대신 불리한 분야에서 경쟁할 이유가 있나요? 여러분 모두 자신이 어느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장점을 이용해야 합니다. 재능이 없는 분야에서 성공하려고 노력하면 경력은 엉망이 됩니다. 내가 장담합니다. 차라리 복권을 사거나 다른 분야에서 행운을 기대하는 편이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