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멍거 특집 4] ‘격자틀 인식 모형’ 구축하기
찰리 멍거처럼 ‘격자틀 인식 모형’을 구축해보자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 찰리 멍거는 1990년대에 행한 연설에서, 지적 결정을 내리는 실용적인 방법으로 격자틀 인식 모형을 소개했다. 격자틀 인식 모형이란 방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정리해 현실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시나리오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학교에서 개별적인 지식을 단순하게 잘 암기하던 우등생도 현실에서는 생활 바보에 불과한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격자 형태로 이론적 모형을 연결하고, 구축된 모형들에 경험을 입혀주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학문 분야를 참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유난히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적 사고법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문은 편의상 분야별로 전문화되어 발전되었다. 하지만 개별 학문으로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거꾸로 말하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러 학문의 관점을 통섭적으로 연결하고 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수요에 힘입어 융합대학원과 산타페 연구소와 같은 다학제적 연구소 등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의 특별한 추세라기보다는 편의상 분화된 개별 학문이 본래의 목적을 위해 통합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역사적으로 참신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해당 분야가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를 참고하면서 많이 등장했다. 기업 매출 경쟁을 전쟁에 비유하면서 병법에서 해법을 찾기도 한다. 동물이나 자연의 형태에서 가구나 자동차의 디자인을 찾아내기도 한다. 사회성 곤충의 생태에서 인간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이렇게 다른 분야의 이론적 모형을 참고하거나 응용하는 사고방식을 찰리 멍거는 격자틀 인식 모형이라고 불렀다고 보면 된다. “보다 객관적이고 통섭적으로 공부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이길 수 있다. 게다가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라고 찰리 멍거는 말하고 있다.
투자와 관련해 살펴보면, 교량을 무너뜨리지 않고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 중량을 표현하는 개념인 ‘안전 계수’에서, 내재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매입해 투자에 실패하는 위험을 예방하는 ‘안전 마진’의 개념이 도출되었다고 보인다. 또 물리학의 ‘균형’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정치학에서는 ‘세력 균형의 원리’가, 경제학에서는 ‘균형 가격’이, 투자론에서는 포트폴리오의 종목별 비중을 조절하는 ‘리밸런싱’의 개념이 도출되었다고 보인다.
격자틀 인식 모형을 진행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급적 다양한 학문의 이론적 모형을 이해한다. 둘째, 각 분야의 이론적 모형을 격자 형태에 차곡차곡 정리한다. 셋째, 주어진 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분야의 이론적 모형을 참고하거나 응용한다.
다양한 학문의 이론적 모형을 이해하려면 분야를 가리지 않는 광범위한 독서가 필수적이다. 제한된 시간에 모든 분야의 깊은 지식을 갖추는 것은 어렵지만, 최소한 개론 수준의 공부라도 하면 도움이 된다. 여기서 모형이란 시공을 막론하고 보편타당하다고 인정받는 일반 원리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수학의 공리와 정리, 생물학의 진화론, 물리학의 상대성 원리, 경제학의 수요 공급의 원리 등이 그런 것이다.
원시 공동체에서는 한 사람이 다양한 일을 동시에 수행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직업과 전문 분야가 존재한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이기 마련이다”라는 말처럼 인간은 자신의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 분야의 전문가라도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실수할 가능성이 있다. 다양한 분야의 모형에 비추어 보면 실수를 방지할 수 있고, 의외로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여러분의 생각이 복잡하다면 모형 간에 통섭적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즉 “모형 1은 X를 하라고 하고, 모형 2는 Y를 하라고 한다”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다소 머리가 아플지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다. 모형들끼리 경쟁하고 융합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좋은 사고법이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개념들을 살펴보면 본질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인 경우가 많다. 근원적인 생각들이 이미 있기 마련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즉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발상이란 오래된 발상을 새롭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옛것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새것을 좇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뿌리가 깊고 튼튼하고, 몸통이 우람하며, 가지가 단단한 생각의 나무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이 나무에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얻는 경험의 잎사귀, 즉 누구나 겪게 되는 각종 시나리오와 결정들, 문제와 해결 방법 등을 달아주면 된다. 자신만의 격자틀 인식 모형을 만들어가는 일은 평생에 걸친 작업이다. 중단 없이 계속하다 보면 현실을 이해하는 능력과 지속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 사랑하는 이들을 돕는 능력 등이 계속해서 향상됨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개별 학문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 모형들을 살펴보겠다. 여기서는 하나의 사례로 제시할 뿐, 전부는 아니다. 여러분 각자가 채워나가기 바란다. 개별 학문의 개론서를 참고하면 이론 모형을 수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찰리 멍거처럼 투자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래티스워크 인베스팅(Latticework Investing)에서는 격자틀 인식 모형의 절차를 다음 그림과 같이 소개한다.
의사결정을 돕는 활동을 하는 파넘 스트리트(Farnam Street)에서는 격자틀 인식 모형을 구축하는 개념들을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자신만의 격자틀 인식 모형을 구축하는 데 참고하기 바란다.
1. 배제의 법칙
선택보다 회피를 고려함으로써 더 나은 해결책을 찾는 수가 종종 있다. 배제의 법칙은 인생사 전반에서 그 효력을 발휘한다. “내가 죽을 곳이 어딘지를 알려주면 그곳만은 절대로 가지 않겠소.”
2. 확증 편향과 반증
뭔가를 원하면 그것을 믿거나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를 흔히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확인을 통해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그런데 과학적 절차들은 이와 정반대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거나 반증 가능성을 탐색하는 엄격함을 거친다.
3. 능력범위
워런 버핏은 자신이 진정으로 제대로 이해하는 분야를 능력범위라 부른다. 이를 벗어나는 것은 무지할 뿐 아니라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결정을 내릴 때는 자신의 능력범위 내에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4. 단순할수록 좋다(오컴의 면도날)
가장 단순하고 변수가 적을수록 좋다. 반증하거나 이해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맞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해법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경고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모든 이론은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합리성을 상실할 만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5. 자신의 어리석음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핸런의 면도날)
세상의 나쁜 사건은 나쁜 사람의 나쁜 행동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기 쉽다.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의 탓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어리석어서 생긴 결과인 경우가 많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극단적인 피해망상과 이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6. 2차 효과
2차 효과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데도 불구하고 간과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효과가 또 다른 효과를 낳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가두행진을 까치발로 구경하는 경우가 2차 효과의 좋은 사례다. 한 사람이 까치발을 하면 모두가 덩달아 까치발을 해서 처음에 까치발을 한 효과가 없어진다. 그러나 발바닥으로 서서 편안하게 구경하는 대신 이제는 모두가 까치발로 서서 구경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7. 모형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교하게 지도를 제작해도 실제 지형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와 비교할 때 모형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단순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8. 사고 실험
사고 실험이란 실제로 불가능한 것을 머릿속에서 논리적으로 수행하는 실험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밝히기 위해 자신이 빛에 올라타 여행하는 상상을 했던 것처럼, 직관과 논리를 이용해 보이지 않는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9. 미스터 마켓
벤저민 그레이엄은 주식시장을 어느 날은 유쾌했다가 다른 날엔 우울해하는 조울증에 걸린 친구로 비유했다. 투자자는 그가 우울할 때 싸게 매수하고, 그가 유쾌할 때 비싸게 매도하면 된다. 이는 미스터 마켓이 늘 평정심을 가진다고 믿는 효율적 시장 가설과 대비되는 태도다.
10. 확률론적 사고방식
인간의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정론적이기보다는 확률론적인 결과가 지배하는 곳이다.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떤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교통사고의 가능성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는 게 좋은 예다.
11. 기본 상태
캘리포니아대학교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은 “과학하는 마음은 닫혀 있지 않다. 다만 양심적인 불침번이 잘 지키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입증의 부담은 반박하는 쪽에 있다는 뜻이다. 기회비용 및 시간과 노력의 제약을 감안하면 기본 상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열역학 법칙과 자연선택의 법칙, 보상에 따른 편향 등이 예라고 할 수 있다.
1. 순열과 조합
수학의 순열과 조합을 통해 우리는 세상사의 실용적인 확률, 이를테면 일이나 사물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생각할지와 같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2. 대수학의 등식
대수학이 등장하면서, 서로 달라 보이는 것들이 실은 같을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또한 추상적으로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 수학 기호를 조작함으로써 양쪽이 일치하거나 불일치함을 보일 수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인류는 실로 엄청난 공학적, 기술적 능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대수학의 기초만 알아도 여러 가지 중요한 결과들을 이해할 수 있다.
3. 무작위성
비록 인간의 뇌가 이해하느라 애를 먹지만 세상의 대부분은 무작위적이며 비연속적이고 비순서적인 일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무작위성에 ‘속아서’, 우연히 일어난 일과 우리의 통제 밖의 일 사이에 인과관계를 부여한다. 이런 식으로 행운에 속는 효과, 즉 잘못된 패턴을 찾아내는 실수를 수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건들이 실제보다 더 예측 가능하다고 믿으며 그에 따라 행동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4. 확률 과정
독립변수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지만 확률 과정을 통해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매일의 주가를 맞힐 수는 없지만 장기간의 주가 분포를 통해 확률을 추산할 수는 있다. 주식시장이 하루에 10% 등락할 가능성보다 1% 등락할 가능성이 큰 것은 분명하다.
5. 복리
복리란 원금에 이자가 붙으면서 그 이자에 이자가 붙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선형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 과정이다. 생각과 인간관계도 그럴 수 있다. 물질적 세계에서는 제약을 받지만 비물질적인 세계에서는 더 자유롭게 복리로 불어날 수 있다. 복리는 돈의 시간 가치와 연관되어 있는데 이는 모든 현대 금융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6. 0의 곱셈
어떤 수에 영을 곱하면 아무리 큰 수라도 영이 된다. 이는 수학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시스템에서는 한 부분의 실패가 나머지 전부의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다. ‘0’을 극복하는 것이 다른 부분을 키우려는 노력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7. 물갈이
회원을 관리하는 서비스회사와 보험회사 들은 물갈이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다. 매년 일정 수의 고객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고객들로 교체해야 한다. ‘붉은 여왕 효과’에서 볼 수 있듯이,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 뒤처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갈이는 많은 사업과 인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일정량이 주기적으로 빠져나가고, 새롭게 더하기 전에 교체해야 한다.
8. 대수의 법칙
표본이 많아질수록 실제의 값과 기댓값의 차이가 줄어든다. 예를 들어 무작위로 500명을 뽑아 평균 신장을 구하는 것이, 무작위로 5명을 뽑아 구할 때보다 실제 평균 신장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 반대로 표본이 적다면 마땅히 의구심을 갖고 살펴봐야 한다는 소수의 법칙도 있다.
9. 정규분포
중앙에 의미 있는 평균이 위치하고,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표준편차가 나타나는 종형 분포를 말한다. 그런데 주식시장과 같은 인간 사회에서는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10. 파워 법칙
파워 법칙에서는 하나의 변수가 다른 변수와 선형 관계를 맺지 않고 지수 관계를 맺는다. 리히터 규모에 따르면 강도 8의 지진은 강도 7보다 10배 더 파괴적이고, 강도 9는 8보다 10배 더 파괴적이다. 평균적인 지진이란 있을 수 없다.
11. 두꺼운 꼬리
정규분포에 비해 꼬리가 두꺼운 경우가 있다. 극단적 사건들이 일어날 확률이 실제로 훨씬 높다는 얘기다. 두꺼운 꼬리가 음(-)의 영역에 있다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 반대로 양(+)의 영역에 있다면 수익성이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인간 사회의 많은 부분은 정규분포보다 두꺼운 꼬리를 지녔다고 한다.
12. 베이지안 업데이팅
새로운 정보가 더해지면 이와 관련된 기존 확률 모두에 점증해 반영하는 것을 베이지안 업데이팅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기존 확률과 새로운 정보를 결합해 최상의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직관을 따르는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13. 평균 회귀
정규분포를 따르는 시스템에서는 평균에서 이탈하는 것이 길어지면 소위 대수의 법칙, 즉 관측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평균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알고 보면 평균으로 회귀하는 것뿐인데도, 아픈 사람이 자연스럽게 회복하는 것이 약초 치료를 시작한 무렵과 겹친다고 해서, 또는 형편없는 운동 팀이 연승 행진을 한다고 해서 속는 경우가 종종 있다. 통계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과 인과관계를 헷갈리면 안 된다.
14. 자릿수
대부분의 경우 정량적 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 은하계와 이웃 은하계 사이의 거리가 정확하게 몇 킬로미터인지 따질 필요 없이 몇 자릿수인가가 중요하다. 즉, 1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가, 아니면 10억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가의 문제다. 이 사고방식은 지나치게 정확성을 추구하는 습관을 고쳐줄 수 있다.
1. 규모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규모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규모를 늘리거나 줄이면 시스템의 속성이나 행동 양식이 바뀐다. 복잡계를 연구할 때는 대상이 되는 시스템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예측할 때 항상 규모를 대략이라도 계량화해야 한다. 자릿수만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2. 수확 체감의 법칙
현실 세계에서 어떤 결과들은 증가분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가난한 가족이 좋은 사례다. 돈을 충분히 주면 가난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일정량을 넘어서면 형편이 별로 더 나아지지 않는다. 수확 체감의 법칙이 부정적인 영향을 줄 때도 있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많은 돈이 가난한 가족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그렇다.
3. 파레토 법칙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는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땅의 80%를 소유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의 이름을 딴 파레토 법칙은 어떤 현상의 작은 부분이 불균형하게도 큰 효과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 법칙은 정규분포와 차별되는 파워 법칙을 따르는 통계 분포이며, 부의 쏠림부터 도시의 인구 분포, 인간의 습관까지 다양한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4. 피드백 고리와 항상성
모든 복잡계는 양의 피드백 혹은 음의 피드백을 피할 수 없다. A가 B를 야기하면 다시 B가 A나 C에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이때 고리가 계속해서 역동성을 보이면 보다 높은 차원의 효과를 초래한다. 항상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에서 A에 변화가 일어나면 이와 반대되는 변화가 B에서 일어나 시스템 전체의 균형을 잡는다. 사람의 체온이나 조직 문화의 행태를 예로 들 수 있다. 자동 피드백 고리는 외부의 힘에 의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정적인 환경을 유지한다. 고삐 풀린 피드백 고리는 어떤 반응의 결과가 자신의 촉매가 되는 경우(자체 촉매 작용)를 일컫는다.
5. 카오스 역학(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같이 카오스 역학의 지배를 받는 세계에서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피드백 고리가 발생하는 탓에, 초기 조건이 미세하게 달라져도 아래 방향으로 막대한 효과를 낳게 된다. 다른 말로 나비 효과라고 불린다. 이는 (며칠 후의 날씨와 같은) 물리적 시스템과 (장기에 걸친 인간 집단의 행태와 같은) 사회적 시스템의 일부분은 근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6. 선호적 연결(누적 이익)
선호적 연결은 현재 가장 앞선 자가 뒤처진 자들에 비해 더 많은 보상을 받음으로써 선도자로서의 입지가 다져지거나 더 공고해질 때 발생한다.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가 선호적 연결의 좋은 예다. 예를 들어 차순위 시장보다 10배 많은 판매자와 구매자를 가진 시장이라면 선호적 연결의 역학을 갖기 쉽다.
7. 부상
높은 차원의 행동 양식은 낮은 차원의 요소들 간 상호 작용 속에서 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는 종종 단순한 더하기 형태의 선형적이 아니라 비선형적이거나 기하급수적이다. 이렇게 부상하는 행위는 구성 요소들을 연구하는 것으로는 예측할 수 없다는 중요한 속성을 지닌다.
8. 기약성(旣約性)
거의 모든 시스템에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정량적 속성들, 즉 복잡성, 최솟값, 시간, 기간 등이 있다. 이 정량적 수준 이하에서는 기대하는 결과가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아기가 태어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여러 여성을 임신시킬 수 없고, 제대로 만들어진 자동차를 단 하나의 부품으로 줄일 수도 없다. 결과물은 특정 값 이하로는 줄일 수 없다.
9. 공유지의 비극
경제학자이자 생태학자인 개럿 하딘이 주장한 ‘공유지의 비극’은 시스템 안에서 어떤 자원을 보살피는 개인의 책임이 전무한 채 모두가 공유하는 자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갈되는 경향이 있음을 일컫는다. 비극의 원천에는 보상의 원리가 자리한다. 사람들이 협력하지 않는 한 각 개인은 자기만 기회를 놓칠세라, 자신이 발생시키는 비용보다 더 많은 효용을 자원으로부터 끌어내고, 결국 자원은 고갈된다.
10. 그레셤의 법칙
영국 왕실의 재정가였던 토머스 그레셤의 이름을 딴 이 법칙은 진짜 화폐는 퇴장해 비축되고 대신 위조화폐가 사용되기 때문에 위조화폐가 진짜 화폐를 밀어내게 된다고 말한다. 유사한 현상을 인간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 윤리 체계가 무너지면 나쁜 행동이 좋은 행동을 밀어내고, 경제 체계가 무너지면 나쁜 경제 행위가 좋은 경제 행위를 밀어내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그레셤의 법칙에 따른 결과를 막으려면 규제와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11. 알고리즘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알고리즘은 원하는 결과물을 낳는 자동화된 규칙들의 모임 또는 일련의 단계나 행동을 유도하는 일종의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종종 조건문 형태로 서술된다. 알고리즘은 컴퓨터 분야에서 활용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생명체의 속성이기도 하다. 인간의 DNA가 사람을 만들기 위한 알고리즘을 갖고 있는 게 좋은 예다.
12. 프래질 - 강건함 - 안티프래질
나심 탈렙의 책 《안티프래질(Antifragile)》로 유명해진 이 생각은 점증하는 부정적 변동성에 대한 시스템의 반응을 각각 프래질(fragility, 깨지기 쉬움), 강건함(robustness), 안티프래질(antifragility, 깨지기 쉬운 성질의 반대이자, 오히려 그러한 성질을 이용해 더 강해지는 성질)로 설명한다. 프래질은 부정적 변동성이 늘어날수록 안 좋은 결과가 불균형적으로 더 커지는 시스템이나 대상을 말한다. 커피 잔을 높이 1.8미터에서 떨어뜨리면 산산조각 나지만, 높이 0.3미터에서 떨어뜨리면 피해가 6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깨지지도 않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강건함은 부정적 변동성 증가에 영향받지 않는, 즉 중립성을 띠는 것을 말하고, 안티프래질은 부정적 변동성이 늘어나면 오히려 혜택을 입는 경우를 말한다. 높이 0.3미터에서 떨어뜨릴 때보다 1.8미터에서 떨어뜨릴 때 오히려 더 강해지는 커피 잔이라면 안티프래질하다고 할 수 있다.
13. 백업 시스템과 중복성
공학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백업, 다시 말해 예비 시스템이다. 유능한 공학자라면 시스템을 이루는 각 부분을 완벽하게 신뢰하지는 않는다. 시스템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공학자는 중복성 혹은 여분을 둔다. 견고한 시스템을 위한 이 원칙이 없다면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시스템은 언젠가 결함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14. 안전 마진
비슷한 생각으로 공학에서는 모든 계산에 안전 마진, 즉 오류의 여지를 두는 걸 습관처럼 여긴다. 4톤의 무게를 버틸 수 있도록 지어진 다리 위로 4.5톤짜리 버스를 모는 일은 누가 봐도 현명치 못하다. 현대에 지어진 다리들이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리적인 공학의 세계가 아닌 일상적인 세계에서도 다리를 설계할 때처럼 오류의 여지를 둠으로써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5. 임계값
어떤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불연속적으로 도약하려고 할 때 시스템이 임계값에 도달했다고 한다. 단계가 바뀌기 직전 마지막 단위의 한계효용은 이전의 모든 단위보다 현격하게 높은 값을 갖는다. 특정 온도에 이르면 액체에서 기체로 바뀌는 물을 예로 들 수 있다. 임계질량이란 그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질량을 말하며 핵반응에서 자주 언급된다.
16. 네트워크 효과
네트워크는 마디 혹은 옹이라고 할 수 있는 노드가 더해질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이것이 바로 네트워크 효과다. 전력 시스템과 전화 시스템을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전기가 딱 한 집에만 들어온다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엄청난 가치를 소유하게 된다. 하지만 전화가 딱 한 집에만 있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전화가 있는 집이 늘어나야 전화 네트워크가 가치를 얻는다. 네트워크 효과는 오늘날 세계에 널리 퍼져 있고,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낸다.
17. 블랙 스완
나심 탈렙에 의해 유명해진 블랙 스완은 일어나기에 앞서 관찰자가 볼 수 없는, 드물지만 매우 중대한 사건을 말한다. 인식론을 적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식이다. 하얀 백조만 목격했다고 해서 검은 백조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명제의 역은 참이 아니다. 검은 백조를 단 한 마리만 보아도 세상에는 검은 백조가 있다고 선언할 수 있다. 블랙 스완 같은 사건은 필연적으로 관찰자가 예측할 수 없다. 탈렙이 즐겨 말하듯이, 추수감사절은 칠면조를 잡는 정육점 주인이 아니라 칠면조에게 블랙 스완 사건이다. 따라서 이런 사건은 예측 방법론이 아니라 프래질 - 강건함 - 안티프래질 틀로 다루어야 한다.
18. 늘릴 수 없다면 줄여라
많은 시스템에서 개선이란 잘해야 좋은 요소를 더하는 게 아니라 나쁜 요소를 덜어내는 일일 때가 왕왕 있다. 이는 오늘날 의료업계에 자리 잡고 있는 신조, 즉 “첫째, 해를 끼치지 말라”와 같다. 비슷하게 아이들 한 무리가 못되게 군다면, 선동하는 아이를 무리에서 떼어놓는 것이 무리 전체를 벌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때가 많다.
19. 린디 효과
린디 효과(Lindy effect)란 부패하지 않는 대상이나 생각의 기대수명을 현재의 수명과 결부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생각이나 대상이 ○○년 지속되었다면 앞으로의 기대수명 역시 (평균적으로) ○○년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90세 노인이 95세까지 살았다고 해서 기대수명에 5년을 더하지는 않겠지만, 부패하지 않는 대상은 지속적으로 살아남음으로써 기대수명을 늘려간다. 고전이 대표적인 예다. 인류가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500년 동안 읽어왔다면 앞으로 500년 동안도 그러할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20. 재규격화 집단
재규격화(renormalization) 또는 환치 계산법으로도 불리는 이 기술은 물리적 시스템과 사회 시스템을 다른 척도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물리학에서 나온 복잡한 개념인 재규격화 집단을 사회 시스템에 적용하면, 추종자가 점점 더 늘어남에 따라 소수의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불균형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21. 용수철 부하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특정 방향으로 쏠려 있다면 그 시스템은 용수철 부하(spring-loading)가 걸려 있다고 한다.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서 시스템과 관계에 좋은 방향으로 용수철 부하가 걸려 있으면 나쁜 일에서 보호해줄 수 있으므로 중요하다. 반대의 경우는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22. 복잡 적응계
일반적인 복잡계(complex system)과 구분되는 복잡 적응계(complex adaptive systems)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변모할 수 있다. 복잡 적응계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복잡계와 복잡 적응계의 차이는 일기예보와 주식시장 전망을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날씨는 유명한 일기예보관의 의견에 따라 변하지 않지만 주식시장은 그럴 수 있다. 따라서 복잡 적응계는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