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세장은 투자자에게 어떻게 훌륭한 학습의 기회가 되는가

1974년 11월 1일 〈포브스〉는 “저기 저렇게 아름답고 헐벗은 여자들을 보라!”라는 제목으로 워런 버핏의 성향과, 투자 세계에서 그가 개척한 특별한 여정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실었습니다. 버핏 마니아이자 《워런 버핏 바이블 2021》 공저자 홍영표 변호사가 당시의 사회와 경제 상황을 다각도로 설명합니다. 이어지는 〈포브스〉 기사를 읽으면 약세장에서 시장을 역행하는 버핏의 용기와 철학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 버핏클럽


마크 트웨인은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운율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복되는 주기와 사건은 다소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개별 사건은 같지 않고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운율이 있을 뿐입니다.

시장은 경제적 펀더멘털을 반영해 성과를 보이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한편으로 투자자의 심리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쳐서 가격이 오르내립니다. 낙관론이 주류가 되면 가격은 영원히 오를 것이고, 자신이 자산에 얼마를 지불하든 다른 누군가가 더 비싸게 사들일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이를 ‘더 큰 바보 이론’이라 합니다. 이때 주가는 이익(펀더멘털)보다 빠르게 상승해 내재가치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높은 가격은 결국 유지되지 못합니다. 어리석음이 확인되면 주가는 다시 내재가치 수준으로 하락한 후 하향 돌파합니다. 이렇게 하락하면 더 많은 비관론을 불러와서 주가가 내재가치를 훨씬 밑돌게 됩니다. 상승 과잉은 추세 평균 이상의 수익률 기간을, 하락 과잉은 추세 평균 이하의 수익률 기간을 만듭니다.

존 템플턴은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네 단어로 “This time is different(이번에는 다르다)”를 꼽았습니다. 가격이 과잉의 정점인 최고점 또는 최저점을 향할 때 투자자들은 예외 없이 ‘이번에는 다르다’라는 논거로 자신의 투자 결정을 정당화합니다. ‘전에 없던’과 ‘이번에는 다른’은 거품과 붕괴를 반복적으로 야기합니다. 하워드 막스는 “현실 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꽤 좋다’와 ‘별로 좋지 않다’ 사이에서 변동이 심하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는 ‘완벽하다’에서 ‘절망적이다’로 인식이 자주 바뀐다. 시장에서 상황이 심각하게 과장되는 방식은 투자자 행동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경솔하게 행동할수록 우리는 더욱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워런 버핏의 말처럼 투자자는 상승장의 낙관, 하락장의 비관이 팽배하는 시기에 역행적 사고를 해야 합니다.

주식시장은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주요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시장을 지속적으로 능가한 현자들은 당시 어떻게 시장을 이해했고 행동했는지, 그들의 글과 흔적을 통해 배움과 교훈을 얻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1973~1974년 ‘블랙 베어 마켓’의 시대적 상황

니프티 피프티(Nifty-fifty)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가장 인기 있었던 대형주 50개를 가리킵니다. 제록스, IBM, 폴라로이드, 코카콜라 등 니프티 피프티 종목 상당수는 주가이익배수(PER)가 100배에 달하는 등 극단적인 밸류에이션으로 거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높은 성장성과 배당금 증가로 인해 주식을 매수했습니다. 월스트리트는 투자자들에게 니프티 피프티 주식을 “한번 결정하면” 매수해서 “절대 팔지 않는” 종목이라고 선전했습니다. 1973년 3월 모건개런티 수석 부사장이던 칼 해더웨이는 “성장주에서 더 큰 바보가 되는 사람은 주식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파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주식들이 1970년대 초의 강세장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반복적으로 학습한 것처럼(얼마 못 가서 다시 잊기는 하지만) 가치에 대한 초과 지불은 결국 평균으로 회귀합니다. 1973~1974년에 일어난 큰 폭의 약세장은 ‘블랙 베어 마켓’으로 알려졌습니다.

1960~1970년대는 인플레이션 급등과 경기 침체, 약세장이 반복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한 조치를 반복한 결과입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시기는 1973~1974년입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달러의 금 태환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자 전 세계의 주식시장이 침체했습니다. 다우지수도 침체의 희생양이 되어 1973년 1월부터 1974년 12월까지 45% 이상 폭락했습니다.

1974년에는 미국 경제가 위축되는 동시에 소비자물가지수가 두 자릿수로 증가했습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5.5%에서 13%로 인상한 데다가 중동 욤키푸르 전쟁의 대응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 금수 조치를 취하자 시장 침체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해 9월부터 12월까지, 훗날 G7이 되는 국가들의 주요 주가지수는 실질 기준으로 43% 하락했습니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가 연간 기준 역사상 두 번째로 크게 하락한 해이기도 합니다.

버크셔의 최대 낙폭(MDD) 역사

1960~1970년대를 시기별로 나누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65~1968년: 베트남 전쟁, ‘위대한 사회’ 정책 플랫폼을 향한 정부 재정 지출과 노조 조직화,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완화적 연준이 결합했습니다. 당시 투자 자산의 승자는 소형주와 기술주였습니다.

· 1969~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 종식과 임금·물가 통제 실패로 자산 가격의 변동성과 인플레이션이 급등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주식과 채권은 실질 수익률이 저조했습니다.

· 1974~1979년: 유가 급등 충격, 전력 부족, 식량 가격 충격, 임금·물가 스파이럴, 예산 압박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졌습니다.

종합하면 이 기간 브레튼우즈 체제 종말과 임금·물가 통제 실패, 오일 쇼크가 맞물리면서 인플레이션이 급등했습니다. 이는 결국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고 주식시장을 붕괴시켰습니다.

1960년부터 1982년까지 주식시장 PER이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돌아오면서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을 반복적으로 겪었습니다. S&P500 PER은 1960년 23배에서 1982년 7배로 낮아졌지만, 역설적으로 '니프티 피프티'는 시장에서 더 이상 매력적인 포트폴리오가 아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주식시장은 인플레이션 조정 기준으로 하락해서 투자자의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주식시장 1: 초고인플레이션은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귀결(출처: Strategas Research Partners)
인플레이션과 주식시장 2: 1968년에서 1982년까지 하락장 이어짐 (출처: Robert Shiller Real Price Data)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큰 인플레이션이 6차례 발생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인플레이션 현황(출처: FRED, Haver Analytics, CEA Calculations)
인플레이션과 S&P500 수익률 비교(1970~2022) (출처: Finasko.Com)

1974년과 1975년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수익률이 시장 대비 심하게 부진했습니다. 이후 인터넷 버블이 진행된 1999년에도 그런 상황을 겪었습니다.

버크셔와 S&P500의 연도별 수익률과 상대 성과(1965~2022) (출처: reddit)

1974년 11월 1일, 〈포브스〉는 “저기 저렇게 아름답고 헐벗은 여자들을 보라!”라는 제목으로 워런 버핏의 성향과, 투자 세계에서 그가 개척한 특별한 여정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고 아래의 〈포브스〉 기사를 읽는다면 약세장에서 버핏이 시장을 역행하는 용기와 철학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기 저렇게 아름답고 헐벗은 여자들을 보라!

〈포브스〉 1974년 11월 1일 게재

네바다주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에게 현재 주식시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성욕이 넘치는 남자가 하렘에 간 것처럼 지금이 바로 투자를 시작할 때입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이 말을 했을 때 다우지수는 600을 밑돌고 있었다. 우리가 버핏의 말을 찍어내기도 전에 다우지수는 역대 가장 빠른 랠리 중 하나로 15% 가까이 상승해버렸다.

버핏에게 다시 전화해서 580에서처럼 660에도 시장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앞으로 지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헐값 종목이 지천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 상황이 1950년대 초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워런 버핏은 말이 많지 않지만 말할 때는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다. 그의 타이밍 감각은 놀랍다. 5년 전인 1969년 말, 당시 39세이던 그는 주식 투자를 중단하고 자신이 운용하던 버핏 파트너십을 청산해서 고객들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파트너십은 1957년부터 1969년까지 경기가 좋건 나쁘건 평균을 초과하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운용보수 공제 전 연평균 30% 복리 수익률로 성장했다. (1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30만 달러로 불어났다.)

당시 버핏은 더 이상 게임을 계속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투자를 멈췄다. 우량주의 주가배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속칭 고고보이(go-go boy)들은 성과를 내고 있었으며, 그 목록에 있는 기업들은 너무나 인기가 많아서, 버핏이 선호하는 확실한 헐값 종목을 찾을 수 없었다.

버핏은 시장에 투자하느니 비과세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고 고객들에게 말했다. "제가 시작했을 때는 헐값 종목이 존스타운 댐 붕괴 당시의 홍수처럼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1969년에는 알투나의 어느 건물 변기에서 졸졸 새는 물과 같더군요.” 당시 그는 상당한 두려움에 빠졌다. 똑똑한 MBA 졸업생 모두가 앞다투어 투자업계로 몰려들 때, 버핏은 조용히 물러서고 있었다.

이후로 버핏은 여성 의류 매장 체인인 다이버시파이드 리테일링, 서부 주에서 구매쿠폰 스탬프 영업을 하는 블루칩스탬프, 주간지 발행 언론사인 〈오마하 선〉 등을 포함한 은행·보험 복합기업인 버크셔 해서웨이 등을 경영하는 데 전념했다. 사업은 순탄했다. 버핏이 경영하는 동안 〈오마하 선〉은 가난을 내세운 자선단체 보이즈 타운이 ‘돈벌이 기계’로 타락하게 된 비리를 폭로해서 퓰리처상을 받았다.

휘둘러, 이 멍청아!

버핏은 1928년 대공황 직전에 주식을 팔고 시장이 바닥을 친 1933년까지 시장을 떠나 낚시하며 떠돌았다는 전설의 인물과 같다. 그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주식시장은 버릇을 만드는 곳이다. 언제든 주위에 헐값 종목이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다. 1929년에도, 197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버핏은 그 버릇을 버렸다. 버핏은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낚시하러’ 다녔다. 그 주위에 머물렀다면 평범한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저는 투자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업이라고 부릅니다. 휘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타석에 들어서면 투수가 제너럴모터스를 47달러에 던집니다. US스틸은 39달러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스트라이크를 판정하지 않습니다. 기회를 잃는 것 외에는 어떤 불이익도 없습니다. 하루 종일 마음에 드는 공이 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수비수들이 잠든 틈을 타서 한 발짝 나아가 치면 됩니다.”

하지만 투자기관의 전문가들은 안타까울 지경이다. 그들은 불가능한 ‘성과’ 측정의 희생자다. 버핏은 야구에 대한 비유를 이어가며 “베이브 루스가 팬 5만 명 앞에서 타석에 들어섰고, 구단주가 ‘휘둘러, 이 멍청아!’라고 소리치는데, 투수가 일부러 볼넷을 내주려고 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다음 투구에 휘두르지 않으면 구단주가 ‘유니폼 반납해’라고 말하리란 사실을 그들도 알지요.”

버핏은 이런 압박을 피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주장한다. 냉정함을 유지하고 인내심을 가지라는 것이 버핏의 메시지다. “시장에는 어리석은 사람이 많고, 거대한 카지노판처럼 모두가 술에 취해 있습니다. 그때 당신이 펩시만 고집할 수 있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낙관론에 취해서 눈에 보이는 새로운 화젯거리를 모두 사들인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비관론에 빠져 골드바를 사들이고 또 다른 대공황을 예측하는 것이다.

지금 그렇게 낙관적이라면 무엇을 사고 있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내 주식을 선전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반응에 일반적인 조언을 부탁했더니 상식적인 조언이 돌아왔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팔리는 주식을 매수하라. 어떤 기준에서 낮은 가격인가? 순가치, 장부가치, 계속기업으로서의 비즈니스 가치 등 일반적인 기준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너무 환상에 빠지지 말고 자신이 아는 바를 고수하라.

“자신이 이해하는 비즈니스의 둘레에 원을 그린 다음 가치, 우수한 경영진, 어려운 시기에도 제한적인 위험 노출도를 기준으로 삼아 자격에 미달하는 비즈니스를 제거하세요.” 그는 첨단 기술기업이나 다국적기업이 필요 없다고 한다. “저는 그런 기업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지 주가가 올라서가 아니라 기업을 소유하고 싶어 주식을 사는 것이지요”라고 말한다.

그는 블루칩스탬프가 산호세 수도사업소의 지분 5%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수도회사는 아주 단순합니다. 신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소매업체도 마찬가지죠”라고 덧붙였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큰 프리미엄을 지불하지만 않는다면 월스트리트의 인기 주식을 사기도 한다. 그는 폴라로이드를 언급했다. “어떤 가격에서는 미래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심지어 현재에 대해서도 할인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랜드 박사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을 해낸다면 그것을 공짜로 얻는 셈이죠.”

버핏은 당신의 판단이나 조언자의 판단을 믿으라고 조언한다. 듣는 의견과 읽는 제안 전부에 일일이 흔들리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현대 증권분석의 아버지이자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의 명언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이 당신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이유로 당신이 옳거나 틀린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를 달리 표현하면, 진실은 일시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다른 데 있다.

혼자서?

하지만 시장이 결코 헐값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헐값은 무슨 소용일까? 만일 주식시장이 결코 회복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버핏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레이엄-뉴먼에서 근무할 때 상사였던 벤 그레이엄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시장은 항상 결국에는 회복한다고 하더군요. 그의 말이 맞았습니다.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투표기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울입니다. 오늘날 월스트리트에서는 ‘그래, 싸긴 하지만 더 오르지는 않을 거야’ 라고 하지요.  그런 말은 헛소리입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기업에 집착했기에 성공적인 투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조만간 시장은 비즈니스를 반영할 것입니다.” 이러한 고전적인 조언은 세월이 흘러 고고보이에 관한 뮤지컬 코미디가 만들어질 때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우리는 버핏에게 키플링의 싯구를 이용한 오래된 말놀이를 상기시켰다. “‘만약 당신 주변 모두가 당신을 탓할 때도 당신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다면...’, 어쩌면 그들이 당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버핏은 그럴 수도 있다며 자신도 세상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했다.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로 했던 일을 아랍인들은 석유로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는 다이아몬드보다 석유가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구 폭발, 자원 부족, 핵 확산이라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재앙을 예견해서 투자할 수는 없으며, 금화와 미술품 컬렉션으로는 최후의 날에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만일 세상이 정말 불타고 있다면 “네로처럼 ‘남쪽에서만 불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저는 재난에 대비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기업 이익, 시장 패닉이나 경기 침체만 걱정한다면, 현재 가격에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버핏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지금이 바로 투자해서 부자가 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