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새해 잘 보내고 계신지요?
새해맞이 새 마음 새 뜻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심하다가, 투자자들의 영원한 숙제인 ‘싸다’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투자를 하면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 만 원짜리 제품을 5천 원에 샀으면 ‘싸게 샀다’고 하고, 주변 시세가 10억 원인 부동산이 9억 원에 매물로 나왔으면 ‘싸게 나왔다’고 하죠.
무언가를 싸게 사면 기분이 좋습니다. 당장 그만큼 이익을 본 느낌도 들고 (오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사백만 원에 샀으면 ‘사백만 원을 쓴 게 아니라 백만 원을 번 거야’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요.) 물건의 가치가 일부 훼손되더라도 ‘싸게 샀으니까 괜찮아’라는 여유로운 마음도 생깁니다.
한편으로는 ‘싼 데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듭니다. 싸다고 덥석 사고 봤더니 하자가 있으면 ‘싼 게 결국 그렇지 뭐’라는 생각이 듭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소위 ‘눈탱이’를 맞지 않으려면 물건을 잘 구분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교훈도 얻고요.
주식시장에서는 어떤가요? ‘싼 주식’을 사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 반대로 ‘싼 주식은 싼 이유가 있다’고도 많이 합니다. 투자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나눕니다만, ‘주식이 싸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않으면 이러한 일상적인 대화가 많은 오류를 낳습니다.
‘싸다’는 건 도대체 뭘까요? 일반적으로는 이런 뜻으로 이야기하지요.
원래 받아야 할 가격 대비 싸다
원래 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5천 원에 살 수 있다. 그럼 싼 거죠. 근데 여기서 후속으로 여러 가지 의문이 듭니다.
‘원래 만 원짜리다’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죠?
가게 진열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만 원인데 20% 할인해서 8천 원에 드립니다’ 등의 문구가 붙어 있기도 합니다. 근데 또 이런 생각도 들죠. ‘그걸 만 원 다 주고 사는 사람이 있어?’ 모두가 할인된 가격에 산다면 그건 할인된 가격이 아니라 원래 받아야 할 가격일 수도 있는 거죠.
매장의 물건 가격은 판매자가 마음대로 붙이지만 주식은 그렇지 않다고요? 주식의 가격은 매도자와 매수자의 힘겨루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 주식 이면에는 기업이 있고 기업에는 ‘가치’가 존재한다고요?
네, 좋습니다. (매장의 물건 가격 또한 매도자와 매수자의 힘겨루기가 작용하긴 합니다만 그건 넘어갑시다.)
주식에 ‘가치’라는 게 있다고 칩시다. 세상에는 주식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이 있고(물론 저도 동의합니다), 가치를 측정하는 다양한 지표와 방법론이 있습니다. PER, PBR, 배당수익률, DCF, EV/EBITDA 등등 세부 사항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가치’보다 싸게 샀다 치고, 그럼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
만 원짜리를 5천 원에 샀는데,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갑자기 시장이 “아이쿠, 죄송합니다. 어제까지 가격이 너무 쌌었네요. 이제부터 제값을 받겠습니다. 가격을 원래 값어치인 만 원으로 올려서, 어제 싸게 산 당신이 만 원에 팔고 나올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러면서 막 가격을 올려주나요?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가끔 일어날 수도 있죠. 안 일어나면 어떡하죠?
‘기다려라’는 별로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닙니다. 물론 투자자에게 ‘참을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기다림’이 만족스러운 수익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싸다’라는 내 판단이 맞았어야 합니다.
‘싸다’는 판단이 맞았다는 건 언제 어떻게 검증되는 거죠? 기다리고 났더니 주가가 올랐으면 내 판단이 맞은 건가요?
음, 뭔가 이상하죠?
싸게 샀다. 싸게 산 주식은 기다리면 결국 주가가 오른다. 왜냐하면 싸게 산 주식은 언젠가는 제값을 받기 때문이다?
이걸 우리는 ‘순환논증’이라고 부릅니다. 좀 더 쉽게는 ‘동어 반복’이라고도 합니다.
애초에 ‘원래 받아야 할 가격’이라는 게 너무나 모호합니다. 위에서 가치를 측정하는 다양한 지표와 방법론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넘어갔었는데요. 어떤 지표와 방법론을 동원하든 간에 우리가 결국 던져야 하는 핵심 질문은 이겁니다.
“그게 맞다면 지금은 왜 이 가격에 와 있는데?”
“왜 내가 산 이후에 원래 받아야 할 가격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적당히 대충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저는 그걸 ‘순진함’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몇 가지 얕은 경험으로 원칙을 일반화하고 싶은 욕구는 보편적입니다. 때때로 그렇게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위험합니다.
위 질문에는 다양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거시경제 변수에 대한 공포, 증시에 대한 불신, 단기적인 부정적 이슈, 특정 사안에 대한 오해 등등 많은 이유로 제 가격을 받지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들이 일시적이어서 시간이 지나 사라진다면, 혹은 순환적이어서 정책 변화나 심리에 따라 되돌려질 수 있다면, 혹은 현재 눈에 띄지 않던 장점이 결국 실적(과 주주환원)으로 드러난다면 그 ‘저평가’는 해소될 수 있겠지요.
이렇게 ‘현재 가격을 왜곡하는 요인’과 ‘그 요인이 해소되는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나서야 온전한 하나의 투자 아이디어가 될 수 있습니다.
어제 대비 싸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우리는 ‘싸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싸다’고 이야기하는 다른 경우들도 계속 살펴봅시다.
앞서 ‘원래 받아야 할 가격’이라는 건 상당히 모호했습니다. 그래서 말이 길어졌죠. 이건 간단합니다. 어제 만 원이었는데 오늘 9천 원이 되었으면 어제보다 싸진 거죠. 명백하잖아요? 이 물건을 사려면 어제는 만 원을 주어야 했는데 오늘은 9천 원만 주면 된다. 어제보다 싸게 살 수 있게 된 겁니다.
문제는 내일도 더 싸질 수 있다는 거죠.
어제 대비 싸게 살 수 있는 것과, 내일 이후 내가 (오늘보다) 비싸게 팔 수 있으리라는 기대치 사이에는 별반 관계가 없습니다.
어제 대비 낮아진 가격에, 혹은 5분 전 대비 낮아진 가격에 물건을(주식을) 사면 당장은 기분이 좋을 수 있겠지만, 단 10초만 지나더라도 혼란에 빠집니다. 가격이 떨어지면 ‘왜 좀 더 기다렸다가 더 싸게 사지 못했을까’라고 괴로워하게 되고, 가격이 오르면 ‘좀전보다 비싸졌으니 이내 싸지기 전에 팔아버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가격이 빠지면 역시나 괴롭고, 가격이 더 오르더라도 같은 고민을 하느라 힘듭니다.
그런데 사실 ‘어제 대비 싸졌다’라는 기준은 그렇게 나쁜 기준이 아닙니다. 앞서의 ‘원래 받아야 할 가격’이라는 개념과 함께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주식에 만약 ‘가치’라는 게 존재한다면, 가치와 가격의 ‘갭’이라는 것도 존재하겠죠.
‘얼마나 싼데?’는 또 별개의 문제이긴 합니다만,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어제 대비 오늘 주가가 하락했다면 가치와 가격의 갭은 더 커졌겠죠. 즉 나의 ‘잠재수익’은 더 커진 겁니다.
문제는 가격이 가치보다 싸다는 전제가 옳아야 한다는 겁니다. 가격이 가치보다 비싼 상태에서의 주가 하락은, 비쌌던 주가가 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통계적으로 ‘어제보다 싸진 주식’을 사는 게 ‘어제보다 비싸진 주식’을 사는 것보다는 유리합니다. 전문 용어로 ‘역모멘텀 팩터’와 ‘모멘텀 팩터’라고 하는데요. ‘모멘텀 팩터’가 초과수익을 주는 경우는 미미하지만 ‘역모멘텀 팩터’는 그보다는 높은 빈도로 초과수익을 줍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모다란의 투자 전략 바이블》 8장과 12장을 보시면 됩니다.)
경쟁 그룹 대비 싸다
진열대에서 주변에 있는 비슷한 상품보다 가격이 낮으면 ‘싸다’는 느낌을 직관적으로 쉽게 받을 수 있죠.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종 업계, 혹은 유사한 속성(기술기업, 사이클산업, 규제산업, 내수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 전환 등)을 가진 기업들을 놓고 비교했을 때 ‘프리미엄’을 적게 받고 있다면 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