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19] 글로벌 자산배분의 중요성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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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학살과 비트겐슈타인

저명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빈 태생입니다. 1938년 3월,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습니다. 당시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에서 강의하느라 빈을 떠나 있었습니다. 셋째 누나 마르가레테는 미국 시민권자여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었고, 형 파울 또한 미국에 거주 중이어서 안전했습니다. 첫째 누나 헤르미네와 둘째 누나 헬레네는 오스트리아에 머물렀고, 유대인으로 분류되어 생존의 위협에 처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가문은 오스트리아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가문의 재산은 독일 나치에게 모조리 몰수당했습니다. 다행히도 비트겐슈타인 가문의 재산은 상당 부분 해외에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나치는 이 재산에 눈독을 들였지만 국외의 자산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 협상에 나서야만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주도한 협상 결과, 가문은 재산 일부를 양도하는 대가로 헤르미나와 헬레네의 혈통을 ‘혼혈(Mischling)’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삶이 수월해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유대인 학살로부터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글로벌 자산배분은 위기 상황에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줍니다. 그리고 한국의 주식 투자자들은 작년에 이 사실을 몸소 체험했죠.

자유무역과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두 번째 당선되었습니다. 그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전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트럼프가 두 차례에 걸쳐서 미국 행정부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깨어 있지 못한’ 미국 백인들이 ‘멍청하게도’ 특이한 사업가의 ‘가스라이팅’에 넘어간 것일까요?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느냐는 각자의 자유지만, 현실을 입맛대로 왜곡하는 버릇은 주식 투자자의 생존에는 해롭습니다.

1930년 6월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관세 중 하나를 도입한 보호무역 정책입니다. 이 법은 대공황 시기에 미국 농민과 산업계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국제 무역에, 그리고 미국 스스로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쳐 대공황을 더욱 심화했습니다.

뒤이은 1932년 선거는 미국 정치에서 ‘결정적 선거(critical election)’로 꼽히는 선거 중 하나입니다. (다른 선거로는 1828년 앤드루 잭슨 당선,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 당선, 1896년 윌리엄 맥킨리 당선, 1968년 리처드 닉슨 당선 등이 있습니다.) 보호무역을 주장했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이 선거에서 대패했고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승리했습니다.

1934년 6월, 보호무역의 폐해에서 벗어나고자 호혜통상협정법(RTAA)이 제정되었습니다. 원래 관세 결정 권한은 의회에 있었으나, 이 법안으로 대통령은 외국과의 협정을 통해 관세를 최대 50%까지 인하하거나 인상할 권한을 받았습니다. 관세는 한 국가가 자의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이지만, 타국의 보복 관세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외교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회는 입법부이고 외교는 행정부가 주도하기 때문에 관세를 타국과 원활하게 조율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는데, 이 법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협상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대체로 의회보다는 자유무역을 선호합니다. 자유무역은 양국이 효율적인 자원 생산에 집중하게 만들어서 양국의 전체적인 부를 증진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 국가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피해를 입게 됩니다. 자유무역에서 피해를 보는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은 자유무역을 반대하게 마련이고, 국가 전체의 부는 증진되니까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대체로 의원들보다는 자유무역을 선호합니다.

한편 대공황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이 종료된 후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종료 후와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1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합이라는 애매모호한 대안을 던진 다음 ‘구대륙’ 질서에서 손을 뗐는데,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브레튼우즈 체제, 나토 결성 등으로 세계 질서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쟁 후반부에 공산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의 대립이 필연적인 다음 수순으로 여겨졌고, 자유진영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을 중심으로 결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냉전 시기 자유진영의 전략은 1) 장벽을 치고 2) 우리 진영 내에서 자유무역을 통해 생산을 증대하고 3) 자유를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할 시 공동으로 대응한다 였습니다. 대공황 극복에 이어 자유무역을 계속 추진해야 할 이유가 계속 생겨났습니다.

1991년 소련의 멸망으로 냉전은 종식되었고, 이후 미국의 선택은 ‘자유무역과 민주주의의 확산’이었습니다. 서방 자유진영은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고, 이들에게 승리는 곧 ‘인류의 진보’를 의미했습니다. 자유무역과 민주주의는 인류의 발명품이고, 이 체제를 통해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악’을 극복했으니까요. 세상에는 아직도 공산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이 국가들의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맛’을 보여주면 그들도 자연스럽게 민주화가 될 것이고, 전 인류가 행복해지지 않겠냐, 라는 다소 계몽주의적인 시각이 지배하던 때가 1990년대였습니다.

그렇게 자유무역은 계속 힘을 얻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 1972년 중국, 1991년 이후 동유럽이 자유무역에 합류하면서 교역이 늘어나고 전 세계의 생산이 증진됩니다.

이 과정에서 누가 피해를 보았을까요? 미국의 노동자들입니다. 그들의 실질소득은 60년간 늘어나지 않았고 일본인, 중국인, 멕시코인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걸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이른바 ‘지식인’들이 ‘선량하고 정의로운 가치’를 내세우는 동안 그들은 생존을 위협받았고, 트럼프는 바로 이 지점을 공략했습니다. “저들이 당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 내가 돌려주겠다.” 이 주장이 사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진실이었습니다.

보호무역은 트럼프의 뜻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뜻입니다. 사실상 보호무역은 오바마 2기 때 시작되었고(‘리쇼어링’이라는 단어를 기억하십니까. ‘피벗 투 아시아’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도 보호무역 법입니다. 실제로 미·중 교역이 감소했고요.

트럼프라는 한 개인의 가스라이팅에 미국인들이 속아 넘어갔다는 관점보다는, 자유무역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인식하는 미국인이 다수 있고 그 다수 미국인의 염원이 트럼프의 입을 통해 전 세계에 표출되는 중이라는 관점이 좀 더 사실에 부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