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22] 바텀업 투자자가 거시경제를 보는 세 가지 관점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오늘은 매크로(거시경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으로 매일 시장이 급등락을 반복합니다. 생각해보면 그 이전이라고 해서 거시경제에 큰 이벤트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연준의 금리 인상·인하, 양적완화, 테이퍼링, 영국의 EU 탈퇴 등등 많은 이슈가 있었습니다. 한국만 하더라도 중국과의 갈등 - 한한령, 일본과의 갈등 - 화이트리스트 등재, 계엄령, 탄핵 등 수많은 국내외 이벤트를 겪어왔습니다.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시장은 출렁거리고, 공포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느니, 혹은 글로벌 경제가 불안정하니 안전자산으로 도망가야 한다느니, 오히려 수혜주를 발굴해야 한다느니 등등, 어떤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이 일견 게으르고 무책임해 보여 섣불리 행동에 나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런 행동 방식을 경계하면서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시경제, 매크로, 그거 다 노이즈일 뿐이다. 우리는 좋은 기업에 집중해서 기업의 가격이 ‘제 가치’를 반영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라는 주장 말이지요. 개별 기업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투자를 ‘바텀업(bottom-up)’ 투자라고 하는데, 바텀업 투자자들 중에서 이렇게 거시경제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이 시장에서는 ‘움직이는 것’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도움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후자의 가르침은 많은 경우에 유용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거시적인 이슈들을 노이즈로만 치부하고 무시하는 게 정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워런 버핏조차 거시경제의 과도한 움직임에는 간간이 코멘트를 내고는 합니다. 특히 최근의 관세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하셨지요. (버핏은 의외로 매크로에 대한 통찰을 보여줄 때가 적지 않게 있습니다. 과거 글 ‘워런 버핏은 ‘시장 예측의 대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우리가 거시경제를 보아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탑다운(top-down) 관점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은 거시경제를 보는 게 일상이고,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오늘의 이야기는 바텀업 투자자들에게 매크로는 어떤 의미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바텀업 투자자에게 거시경제를 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성과 측정
아무리 개별 기업에 집중해서 투자한다 한들, 그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은 거시경제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바텀업 투자자는 기업의 분기 실적을 확인하고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평가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 하더라도 지금 좋은 기업이 앞으로도 영원히 좋은 기업일 수는 없죠. 내가 매력적으로 느꼈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예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새로운 단점이 보이는지 등은 늘상 새로이 확인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업의 성과를 측정할 때 거시경제와 관련지어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거시경제 환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기업의 실적을 평가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화장품회사가 이번에 분기 실적이 잘 나왔는데, 그게 단지 미국의 수입 규제가 발효될 것에 대비하여 선주문이 들어갔기 때문이라면 회사가 잘해서 잘한 거라고 볼 수는 없겠죠. 오프라인 테마파크 사업을 하는데 전염병이 창궐하여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면, 그로 인해 실적이 박살났다 해도 이 회사가 대단히 경영을 잘못했다고 판단하는 것 또한 매우 위험하죠.
저평가된 이유 확인
바텀업 기반의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내재가치 대비 싼 주식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내재가치 대비 가격이 싸게 형성되어 있다고 판단하는 건 굉장히 미묘하고 섬세한 작업입니다. (정교한 계산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훌륭한 내재가치를 가진 기업은 웬만하면 시장에서 그 훌륭함을 알고 있습니다. 즉 가격이 적정하거나 비싸게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 가격에 내가 ‘좋은 회사네’하고 사봤자, 확률적으로 내가 얻을 수익률은 높지 않습니다. ‘좋은 회사와 좋은 주식은 다르다’라는 격언이 여기서 나오는 거죠.
가격이 ‘저평가되어 있다’라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리서치의 깊이나 정보의 우위를 경쟁력으로 삼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방법도 많습니다. 그중 하나로 거시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을 들 수 있습니다.
거시경제에는 수시로 공포심을 부추기는 이벤트가 등장합니다. 금리 인상, 경기 침체 우려, 물리적인 전쟁, 무역 전쟁, 자연재해, 금융위기 등 여러 이벤트가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그렇다고 볼 수 없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이러한 이벤트에 과민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당 거시경제 이벤트에 대해서 시장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믿고 갈’ 기업들이 있지요. 거시경제의 충격을 견뎌내는 것은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입니다. 사업은 사실 언제나 힘듭니다. 매크로 변수가 비우호적일 때도 힘들지만 그 외에도 산업 내의 경쟁이나 기술 변화, 조직 내부 문제 등으로 사업은 언제나 힘듭니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거시경제 이벤트가 터졌을 때 종종 회사가 아예 끝장난 것처럼 주식을 팔아버리기도 합니다. 내가 매크로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매크로를 이겨낼 역량이 있고 과거에 그랬던 사례가 다수 있는 기업이라면 매크로 이벤트는 좋은 기업을 제대로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과거 글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명백하게 잘못된 시장의 판단
그렇게 하나둘 매크로를 공부하다 보면 가끔 신기한 일이 생깁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시장이 명백하게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2년의 연준 금리 인상은 경기 침체가 아닌 경기 안정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시장은 이로 인해 경제가 망가진다며 난리가 났었죠. 그리고 2024년, 그렇게나 기다리던 금리 인하를 단행하니까 시장은 다시금 ‘금리 인하를 해야 할 정도로 경기가 안 좋은가 보다! 이제는 진짜로 경기 침체가 온다!’라며 또 주식을 팔아댔지요. 두 번 모두 투자자에게는 좋은 매수 기회였습니다.
시장 전반에 대한 판단에 더해서 거시경제 흐름을 특정 섹터 아이디어로 연결지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에서 물러서고자 하는 움직임은 자명하죠. 이 틈을 타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유럽은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오랜만의 전면전, 재래식 전쟁이 일어나다 보니, 재래식 무기에 집중하던 한국의 방산기업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방산주들은 그 이전부터 해외에서 조금씩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전쟁을 계기로 크게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 현상을 단지 ‘전쟁 수혜주’로 인식한 투자자들은 우크라이나 종전 소식이 들릴 때마다 주식을 팔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에서 물러나는 움직임은 꽤나 되돌리기 어려운 움직임입니다. 최근의 관세 전쟁을 겪으며 유럽 국가들은 소위 ‘자력갱생’의 필요성을 느끼며 재무장에 나섰습니다. 이제는 군비 지출 증가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하나의 이슈에 연동되는 이벤트가 아니게 된 것이지요. 이를 방증하듯 방산기업들의 수주는 날이 갈수록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에서 이런 식의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도 있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지고요. 여러 국가 사이에서 한국, 그리고 한국의 특정 산업들이 가지는 위상은 다이내믹하게 변하고, 그중에서 앞으로 수년 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산업군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순수한 바텀업 방식으로 좋은 기업을 찾는 시도도 좋지만, 이렇듯 탑다운 관점에서 파악한 거시환경 변화를 바탕으로 ‘좋은 기업’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순수한 바텀업 접근일 때보다 내 투자 아이디어를 시장에서 인정하고 반응해주는 시간이 더 단축될 수 있고, 시장의 반응이 더 극렬할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더 짧은 기간에 더 많은 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세 가지 요소 때문에 저는 바텀업 투자자도 매크로 이슈를 트래킹하는 게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매크로 이슈들을 바라볼 때 주로 어떤 관점으로 보는 게 유익한지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