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버크셔 주총 참관기: 1보] 60주년 잔치, 그러나 왠지 가라앉은...
버핏 인수 60주년을 맞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2025년 주주총회가 5월 3일(한국 시각) 바자회(쇼핑데이)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이어 4일에는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Q&A 세션이 4시간 동안 열립니다. 박소연 신영증권 이사가 현지에서 1보를 보내왔습니다. ― 버핏클럽
오마하에 벌써 3년째 오고 있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느낌이 남다르다. 워런 버핏이 어느덧 94세가 되었고 오랜 친구이자 평생의 동업자였던 찰리 멍거 사후 그마저도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회자되는 마당에 Q&A 세션이 6시간에서 4시간으로 축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이 더 이상 6시간이나 질의응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은가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매년 Q&A 세션 시작 전 공개했던 짧은 영상도 올해는 없다고 한다.
언젠가는 그도 떠나겠지만 사실 올해는 축하연을 크게 열어도 좋을 만큼 의미 있는 해다. 정확하게 60년 전인 1965년 5월 10일,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권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시엔 버핏이 94세가 되는 2025년까지 계속 버크셔를 현직에서 이끌면서 투자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리덴셜을 받아 목걸이를 걸고 바자회장을 들어서자 엄청나게 긴 줄이 보인다. 버크셔 해서웨이 60주년 기념 도서가 발간되어 이를 사려는 사람들이다. 온라인에서 주문할 수 없고 오직 주총 현장에서만 판다고 해서 지인에게 선물로 주려고 여러 권 집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주총장의 공기는 60주년을 축하하는 들뜬 모습이라기보단 버핏 사후 현재의 높은 주가가 과연 계속 유지될지, 이후 버크셔의 후계 구도가 어떻게 될 것인지 여러 가지 추측이 떠다니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실제로 작년 주총 이후 조용하지만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 2024년 5월 이후 버크셔는 더 이상 자사주를 매입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 상황인 2020년과 2021년에 200억 달러 이상의 자사주 매입이 이루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버핏이 더 이상 미국 경제와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승계 이슈 때문에 자사주를 사지 않는 걸까?
둘째, 최근 버크셔 해서웨이는 설립 이후 처음으로 이사의 연령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버핏은 1989년 주주서한에서 “우리는 단순히 특정 연령에 도달했다는 이유만으로 슈퍼스타를 라인업에서 배제하지 않을 것(We do not remove superstars from our lineup merely because they have attained a specified age)”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생각이 바뀐 것이다. 다만 5% 이상의 지분을 들고 있는 경우 80세 이후에도 은퇴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이 붙었는데, 이에 해당되는 사람은 버핏과 그의 자녀들뿐이다.
이에 대해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버핏이 결국 족벌주의(nepotism)로 회귀했다며 맹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경영권은 혈연이 아니라 자질에 따라 승계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버핏이 사망할 때가 되자 태도를 바꿨다고 비꼰 것이다. 버핏의 아들인 하워드 버핏은 실제로 작년에 버크셔의 비상임 회장(non-executive chairman)으로 취임했다. 하워드는 그간 경영보다는 자선 사업에 주력해왔고 투자 활동이나 경영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던 터라 더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그러나 버크셔 측 설명은 이렇다. 하워드 버핏은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며, 기업 문화와 윤리를 수호하는 상징적인 역할만 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돌아 돌아 결국 아들이냐며 실망스럽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버핏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버크셔의 문화다. 버핏은 압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본인과 달리 후계자로 지목된 그레그 에이블은 향후 많은 외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외압이 커지면 변주가 일어나고,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도 쉽게 왜곡된다. 그간 버핏이 A주의 차등의결권을 통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에 비판적 시선이 많았지만, 버핏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면서 버크셔의 실용주의적 문화와 가치투자에 대한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그래서일까. 버핏은 아들 하워드의 비상임 회장 취임에 대해 “버크셔의 가치관을 지키는 수호자(guardian of the company’s culture)”라고 표현하며 방어하고 있다. 족벌주의라는 비판도 있지만 멍거와 함께 창조해낸 버크셔의 가치관을 본인 사후에도 지켜내기 위한 방풍벽 역할을 가족에게 맡긴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만사에 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압도적 명성을 가진 버핏의 사후 버크셔가 예전 같지 않으리라는 의심은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그러나 작년 주총에서 버핏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이 잘못될 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았지만 팀 쿡은 훌륭하게 역할을 해냈다. 그가 해낸 것을 우리라고 못 할 게 뭐가 있는가.”
나도 이런저런 뒤숭숭한 분위기를 느껴서인지, 올해는 주변의 시각을 탐문해보고자 투자회사들이 개최하는 콘퍼런스를 몇 군데 등록했다. 주주총회가 열리는 CHI헬스센터 바로 건너편 힐튼호텔 2층, 가치투자로 유명한 가벨리펀드(Gabelli Funds)가 금요일 아침 8시부터 대규모 행사를 열었다. 가벨리펀드의 설립자인 마리오 가벨리(Mario Gabelli)는 1942년생으로, 워런 버핏과 함께 미국에서 가치투자자의 아이콘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유니온퍼시픽(Union Pacific), 린제이(Lindsay), 발몽인더스트리(Valmont Industries) 등 네브래스카에 위치한 철도회사와 농업 인프라회사들도 차례로 연단에 올랐다. 미·중 관세 전쟁으로 인해 미국 경제와 버크셔의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타격을 받을 것인지, 유럽과 인도 등 미국 이외 시장에서는 어떻게 포지셔닝할지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이 있었지만 미국과 버크셔에 대한 낙관주의는 그다지 식은 것 같지 않았다. 당장은 어렵지만 결국 정치적 환경은 시간이 지나가면 바뀌기 마련이며 풍부한 현금, 기업가정신 두 가지가 미국을 지켜낼 것이라는 쪽으로 콘퍼런스는 막을 내렸다.
버크셔 60주년을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여러 가지 고민이 드는 첫날이었다. 어제 공항에서 오마하로 들어오는데 택시 기사가 워런 버핏이 올해로 벌써 94세인지라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란다는 덕담을 했다. 오마하의 호텔이든 음식점이든 1년 매출의 상당 부분이 이 기간에 발생하니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버핏이 없는 주주총회는 예전 같지 않을 테니 말이다. 호텔 로비에 준비된 무료 샴페인과 스몰 뷔페가 반가우면서도 아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