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은퇴에 부쳐
워런 버핏이 5월 4일(한국 시각) 버크셔 해서웨이 2025년 주주총회에서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버핏은 그레그 에이블을 차기 최고경영자로 추천했으며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그의 추천을 지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버크셔 경영 60년(1965~2025년)을 마무리하는 버핏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담은 ‘버핏 광팬’ 홍영표 변호사의 글입니다. ― 버핏클럽
사람은 매 순간의 선택들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그 선택이 진정으로 옳았는지는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드러납니다. 워런 버핏은 이 단순하지만 깊은 진실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증명해온 인물입니다. 그는 단지 부를 축적한 성공한 투자자를 넘어 자신의 선택을 끊임없이 시간 앞에 세우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단련해온 불세출의 존재입니다.
버핏의 여정에서 두 개의 선택은 특히 상징적입니다. 하나는 1965년 34세의 젊은 투자자가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방직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한 사건입니다. 또 하나는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25년 94세의 현자가 버크셔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순간입니다. 시간이라는 가장 냉정한 심판을 통과해 그 진정한 의미가 증명된 결정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 버크셔 해서웨이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사양길에 접어든 방직회사였습니다. 1948년 11개의 공장과 1만 1,000명의 직원을 거느렸던 회사는 버핏이 경영권을 장악할 무렵에는 단 2개의 공장과 2,300명의 직원만 남은 채 쇠락하고 있었습니다. 방직 산업이 구조적 쇠퇴를 겪고 있었고 회사는 연이어 공장을 폐쇄하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버핏은 1962년부터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조심스럽게 매입했습니다. 당시 그의 판단은 단순했습니다. 시장 가격이 회사의 내재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주가는 7.6달러에 불과했으며 이는 대규모 손실을 반영한 극심한 할인 가격이었습니다. 버핏은 회사가 공장을 폐쇄할 때마다 생기는 수익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패턴을 간파했고 이를 활용해 작은 차익을 실현하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결정적 전환점은 감정적인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964년 약 7%의 지분을 보유한 버핏은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시버리 스탠턴에게 주당 11.5달러에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스탠턴은 버핏의 기대를 무시하고 주당 11.375달러라는, 불과 8분의 1달러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 사소한 가격 차이에 격분한 버핏은 합의를 거부하고 오히려 공격적으로 버크셔 주식을 추가 매입해 결국 1965년 5월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훗날 버핏은 이 결정을 자신의 ‘처음 25년의 가장 큰 실수’로 꼽았습니다. 그는 “사소한 가격 차이 때문에 어린애처럼 행동했고 결과적으로 끔찍한 사업에 자본의 25% 이상을 투자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고 회고했습니다. 방직 사업이 유망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지 ‘가격이 싸 보였기 때문에’ 매수에 나섰다는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버핏의 투자철학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처럼 단 한두 모금의 가치만 남은 회사를 아주 싼 가격에 사들이는 ‘담배꽁초 투자’ 방식의 한계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초기에는 이런 방식이 수익을 가져다주지만 사업의 본질적 질이 낮으면 그 어떤 가격 이점도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체득했습니다. “좋은 기수가 부러진 다리의 경주마를 타고는 이길 수 없다”는 깨달음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찰리 멍거의 영향과 맞물려 버핏이 투자철학을 근본적으로 진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싼 회사가 아니라 경제적 해자를 가진 훌륭한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인수해 오래 동행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훌륭한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이, 평범한 회사를 아주 싸게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그의 명언은 바로 이 과정을 집약한 표현입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인수는 결과적으로 현 버크셔 제국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비록 방직 부문은 계속 자본을 소모했지만 버크셔라는 법적 실체를 소유함으로써 버핏은 소규모라도 창출되는 현금흐름을 통제할 수 있었고 이를 보험업이라는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1967년 내셔널 인뎀너티 인수는 그 첫걸음이었고 이후 보험업은 버크셔의 핵심 성장 동력이 되었습니다.
버핏의 방식은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르침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지만 경험을 통해 그 철학을 끊임없이 다듬고 확장했습니다. 그는 사업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장기적으로 유리한 전망을 가져야 하며, 정직하고 유능한 경영진이 있어야 하고, 개인 소유주의 기준에서도 매력적인 가격이어야 한다는 네 가지 투자 기준을 세웠습니다.
시장에 대한 태도 역시 일관되었습니다. 그는 시장을 단기적으로는 ‘인기 투표기’, 장기적으로는 ‘가치 측정기’라고 보았습니다. 시장의 조울증적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고 사업 본질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인내할 줄 아는 기질이, 높은 지능보다 투자 성공에 더 중요하다고 그는 일찍이 깨달았습니다.
버핏은 실수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버크셔 인수, 덱스터슈즈 투자, US에어 투자 등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음에도 실행하지 못한 ‘부작위의 실수’를 더 뼈아프게 여겼습니다. 그의 지적 정직성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025년 94세가 된 버핏은 5월 4일 주주총회에서 버크셔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후계자로 준비시켜온 그레그 에이블을 차기 최고경영자로 추천했습니다.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그의 추천을 지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버핏은 물러난 이후에도 회사에 남아 조언자 역할을 할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그는 자신의 버크셔 지분을 단 한 주도 팔지 않고 점진적으로 모두 기부할 것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승계 절차를 넘어 버크셔의 가치와 문화가 흔들림 없이 이어질 것임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였습니다.
2025년 주주총회에서 버핏은 또한 무역 전쟁에 대한 비판, 시장 변동성에 대한 초연함,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 재정 적자에 대한 엄중한 경고, 그리고 기록적인 현금 보유 전략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그는 “무역은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고 “최근 30~45일간의 시장 움직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심지어 버크셔 주가가 50% 하락하는 상황도 “환상적인 기회”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담대함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에 대한 그의 신뢰는 여전히 굳건했습니다. 그는 “오늘 다시 태어난다면 미국에서 태어날 수 있을 때까지 자궁 안에서 협상할 것”이라고 재치 있게 표현하며 미국 시스템의 장기적 저력을 신뢰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미국의 재정 적자가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고 경고하면서 조만간 세금 인상이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닥칠 수 있음을 경계했습니다.
버핏의 여정은 단순히 부의 축적이나 투자 성공의 기록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선택하고, 시간 속에서 그 결과를 검증하며, 실수마저 배움으로 전환해온 기록입니다. 버핏은 선택의 순간마다 원칙을 지키고 시간이라는 냉혹한 심판대 앞에서 담담히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유산은 단순히 버크셔라는 기업의 가치나 수익률에 있지 않습니다. 시간이 증명한 선택, 실패를 인정하는 겸손함, 시장 소음에 흔들리지 않는 이성, 기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 그리고 무엇보다 일관된 원칙의 힘에 있습니다.
버핏이라는 한 사람이 시간 앞에서 증명해낸 삶을 깊이 존경합니다. 무수히 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원칙을 지키고 세상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은 그의 인내력과 진실성에 머리를 숙입니다.
제가 그에게 배운 것은 단지 투자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이 변하고, 유행이 바뀌고, 눈앞의 유혹이 끊이지 않아도 원칙을 지키며 올곧게 살아가는 길이야말로 가장 깊은 의미의 성공이라는 사실입니다.
워런 버핏의 삶은 세월을 넘어 확고한 이정표로 서 있습니다. 선택과 책임, 그리고 시간을 통한 검증이라는 진실을 뚜렷이 증명해낸 그는 이 시대를 넘어 영원히 기억될 하나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의 삶과 철학이 남긴 무게에 깊은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