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24] 누가 이 판의 호구인가?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도박판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르겠다면 당신이 호구다.”
주식시장에는 수많은 격언이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제가 자주 되새기는 격언 중 하나입니다. 실력이 부족하고 운이 없는 사람은 비정하게 나가떨어지는 곳이 주식시장입니다. 지금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중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좋은 안테나가 됩니다.
그러나 이 ‘실력’이라는 것은 좀처럼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최근 몇 개월간 수익률이 좋다고 해서 실력이 좋다고 평가하기 어렵고, 반대로 최근 몇 개월간 수익률이 나쁘다 하여 실력이 없다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실력을 평가하려면 어떤 원칙에 입각하여 어떤 정보와 의도를 가지고 플레이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겠지요.
오늘은 평소의 글과 달리 실전적인 팁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현재 이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 중 누가 호구인지, 혹시 그 호구가 내가 아닐지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장기 보유를 한다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주식을 누가 가지고 있든 결국 기업이 훌륭하게 가치를 성장시키다 보면 가격도 대체로 그에 걸맞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단기적으로 주가가 크게 흔들리면, 하필 내가 매수할 때마다 고점을 찍고 급락해버린다면 과연 이 주식이 좋은 주식인지 마음이 흔들리고, 장기간 보유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더라도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공매도 잔고
먼저 ‘공매도 잔고’입니다. 현재 이 주식에 공매도 포지션을 잡고 있는 수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겁니다. (공매도 잔고를 찾기 어렵다면 대차잔고를 보아도 무방합니다. 대차물량은 대체로 공매도로 나오니까요.) 앞서 3월 글 ‘공매도의 무서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공매도는 결국 공매도를 하는 자가 불리한 게임입니다. (제목은 ‘공매도가 등장해서 무섭다’는 뉘앙스였지만 사실은 공매도를 ‘하는’ 게 무섭다는 뜻이라는 거, 글을 제대로 읽은 분이라면 파악하셨을 겁니다.)
같은 실력인 두 투자자가 어떤 주식에 대해서 한 명은 롱포지션을 잡고 한 명은 숏포지션을 잡았다면, 확률적으로 롱포지션인 투자자가 이깁니다. 내가 롱을 잡고 있는 주식에 공매도 잔고가 많아졌다는 건, ‘나에게 패배할 예정인 투자자가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실질적으로 이는 다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1) 주가가 고평가되었을 가능성을 낮춰줍니다. 주가가 고평가될수록 비싸다고 판단해서 공매도를 잡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에(단지 비싸다는 이유로 공매도 포지션을 잡으면 안 된다고 전 글에서 말씀드렸지만, 모든 투자자가 버핏클럽을 읽는 건 아니니까요. 하하.) 주가 상승에 제약을 겁니다. 그리고 공매도 잔고가 쌓일수록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하면서 겁먹는 투자자가 많아지기 때문에, 매수 의향이 있는 투자자도 매수를 꺼리게 됩니다. 덕분에 공매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롱포지션 투자자라면 (공매도가 없었을 경우 대비)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은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습니다.
(2) 주가 급락 시 하락을 일부 방어해줍니다. 공매도 포지션인 사람은 단기에 승부를 내야 하고, 이길 수 있는 빈도도 낮으며, 이긴다 하더라도 낼 수 있는 이익의 폭이 제한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가가 급락할 때에는 ‘감사합니다’ 하며 숏커버(환매수)에 나섭니다. 만약 좀 더 하락하리라고 전망해서 숏커버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 다른 공매도 투자자가 숏커버를 하면서 주가가 세게 반등하는 걸 멍하니 지켜만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급하게 숏커버에 나서게 되고, 그걸 알기 때문에 다른 투자자도 급하게 숏커버에 나섭니다. 공매도가 재개되고 나서 예민한 분들은 눈치채셨을 겁니다. 작년 이맘때였다면 꽤 급락했을 법한 주식이 (공매도 잔고가 많은 경우) 급락이 어느 정도에서 그치고 상당히 빠르게 반등한 사례가 많아졌다는 걸요.
(3) 주가 상승 시 상승 폭을 높여줍니다. 공매도에서 돈을 벌 기회는 희귀하지만 잃을 기회는 많습니다. 그리고 잃을 때의 폭도 매우 크죠. 많은 운용사에는 ‘손절매 규정’이 있고, 손실 폭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을 때 기계적으로 포지션을 끊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가가 20% 상승해서 (공매도 투자자는 20% 손실) 손절 라인을 터치했다면 숏커버에 나서야 하고 이러한 숏커버는 급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20% 상승하던 주식이 30% 상승으로 마감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숏커버였는지는 그날의 공매도 잔고가 전날 대비 줄었는지를 보면 됩니다. (물론 그날 장 종료 전에 다시 공매도 포지션을 잡았다면 잔고에 변화는 없겠지만요.)
이렇듯 내 주식에 공매도 잔고가 많아졌다는 건 세 가지 ‘보너스’를 안겨줍니다. 내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주식을 살 가능성을 줄여주고, 주가 급락 시 하락 폭을 줄여주고, 주가 급등 시 상승 폭을 높여줍니다. 비록 실력이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리고 아마도 공매도 투자자는 나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투자자가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나는 편안하게 주식을 보유할 수 있습니다.
공매도 거래량
한편 공매도 거래량이 늘어나는 건 사안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합니다. 만약 주가가 급등하는 도중에 공매도 거래량이 늘어났다면, 특히 밸류에이션이 상당히 비싼 상황에서 공매도 거래량이 늘어났다면 이는 ‘비싸다는 이유로 공매도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전 글에서 말씀드렸듯 공매도 투자는 단지 ‘이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뿐만 아니라, 다른 주식과의 페어를 잡는 등 다양한 이유로 포지션을 잡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가 상승에 따른 공매도 수량 증가는 자연스럽습니다. 특별히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이 주식에 들어온다고 즉각 가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주가 변동이나 밸류에이션 수준에서 공매도를 잡을 이유가 딱히 보이지 않는데 공매도 거래가 늘어나고 있다면 아무래도 조심해야겠죠.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주식에 숏포지션을 늘려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신용잔고율과 신용공여율
공매도의 반대편에는 공매수가 있습니다. 공매수가 뭐냐고요? 공매도는 주식이 없는데 주식을 빌려서 파는 행위죠. 공매수는 뭘까요? 돈이 없는데 돈을 빌려서 주식을 사는 거겠죠. 네, 신용 매수를 말합니다. 시장에서는 신용잔고율(전체 주식에서 신용거래 잔고 비율)과 신용공여율(하루 거래량에서 신용거래 비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용으로 주식을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빚을 내서 주식을 산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이 주식의 상승 가능성에 확신을 가진 사람이겠죠. 이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정말 단기간에 주가 상승이 가능한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과, 어설프게 누군가로부터 이 주식이 좋다는 말 ‘주워듣고’ 조급하게 매수에 나선 사람(그중에서도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서 신용을 쓰는 사람)일 겁니다. 후자는 아마도 전자로부터 건너 건너 ‘이 주식이 괜찮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겠죠.
어느 쪽이든 간에 평범한 투자자인 나에게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나보다 더 많은 무언가를 아는 사람, 나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중에서도 레버리지를 쓰고 매매가 빠른 사람)이 이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물론 단기간의 상승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점쳐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나쁜 일이 벌어졌을 때 매우 높은 확률로 이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팔고 나갈 겁니다. 주가는 급락하겠죠. 특히나 전자의 (나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후자의 (어설프고 조급한) 사람이 함께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면, 전자의 사람들이 팔고 나갈 때 후자의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고 함께 매도하면서 매도세를 더 확산시킬 겁니다.
내가 아무리 건전한 마인드로 기업을 분석하고 ‘펀더멘털은 괜찮아’라고 보유하고 있더라도, 멀쩡한 주식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순식간에 반토막이 나버린다면 ‘멘털’을 부여잡기 힘듭니다. 펀더멘털이 멀쩡한 건 그나마 나은 상황이고요. 이 사람들이 팔고 나간 후에 실제로 (주가 하락을 정당화할 수 있을) 실적 악화 혹은 그에 준하는 펀더멘털 악화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느낄까요? “아… 내가 당했구나”가 되겠죠.
신용으로 주식을 산 사람들은 신용으로 주식을 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여유롭지 않습니다. 시간을 끌수록 이자 비용을 내면서 불리한 게임이 되기 때문에, 나쁜 뉴스가 있다면 당연히 빠르게 팔고 나가야 하고, 좋은 이슈가 있더라도 그게 공개되었을 때 주식을 팔고 나가야 합니다. ‘셀 온 더 뉴스’가 이런 거죠. 특히 더 괴로운 건, 공매도자들이 주가를 하락시킬 수 있는 폭보다 공매수자들이 주가를 상승시킬 수 있는 폭이 더 크다는 겁니다. 하락의 최대 폭은 100%이고 상승의 최대 폭은 무한대라는 기본적인 비대칭성을 함께 고려해보면, 나쁜 뉴스가 퍼져나가서 주가가 하락하는 폭보다 좋은 뉴스가 퍼져나가서 주가가 상승하는 폭이 훨씬 큽니다.
내가 어떤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시장에 좋은 뉴스가 가득하고 신용 잔고가 매우 높다면, 이건 상당히 큰 리스크를 걸고 매수에 임해야 합니다.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이 주식을 많이 들고 있다는 것이고, 내가 아무리 이 주식을 좋게 본들 그 판단의 출처는 이들이 퍼트린 정보일 수 있으며, 이들은 나쁜 일이 있을 때 나보다 더 빠르게 팔고 나갈 것입니다. 이게 바로 ‘내가 호구’인 상황입니다.
신용공여율도 비슷합니다. 그날그날의 변화니까 신용 잔고의 미분값일 텐데요. 신용공여율이 늘어났다는 건 이 주식에 관심을 가지는 ‘고수’가 많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만약 신용 잔고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신용공여율이 늘어나면서 신용 잔고가 쌓여가고 있다면 이건 꽤 괜찮습니다. ‘훌륭한 고수들’께서 이 주식에 하나씩 발을 들이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주가가 슬금슬금 오르다가 급등하고, 신용공여율이 꽤 위험한 수준(3% 넘어가면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이 되고, 시장에 거의 매일같이 이 주식에 대한 새로운 업데이트가 있으면, 바짝 긴장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바로 그 순간에 뛰어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파티는 마지막이 가장 화려하니까요. 하지만 모두가 한 번에 출구로 나갈 수는 없으니, 소지품을 챙겨두고 출구가 어딘지 확인하는 정도의 일은 해두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신용 매수자가 많다는 건 잠재 매도자가 많다는 겁니다. 그만큼 좋게 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이 들어와서 내가 ‘호구’가 될 가능성도 높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공매도자가 많다는 건 잠재 매수자가 많다는 겁니다. 내가 기업에 대해서, 가치평가에 대해서 적절히 ‘해야 할 일’을 수행했다면, 편안하게 변화를 즐기면 됩니다. 나에게 ‘호구’가 되어줄 사람이 많다는 뜻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