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단상] ‘통찰’이 투자의 전부인 이유
시장에 난무하는 소음 속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기본에 집중하고 올바른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투자 단상’은 현직 펀드매니저가 시의적절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투자 대가들이 역경을 이겨낸 방법을 소개하고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기회도 마련하겠습니다. ― 버핏클럽
흔히들 ‘투자 아이디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주식을 매수한 이유나 근거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자를 하면 할수록 ‘아이디어’라는 단어는 가볍게 느껴집니다. 주식을 매수한 긍정적 요소, 그것도 한두 가지 요소만 가볍게 다룬 느낌이라 아쉽습니다.
투자를 신중하게 접근하는 투자자라면 아이디어보다 ‘통찰’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통찰(insight)은 투자하려는 기업이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기업의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능력이라 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정확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미래를 추구하는 것은 투자의 본질이 아닙니다. 기업을 미래의 더 나아진 상태로 이끄는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핵심에 의해 기업의 미래는 여러 모습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확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찰리 멍거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자동차 부품사 테넨코(Tennenco) 주식을 매수해서 약 5배의 수익을 거둔 적이 있습니다. 당시 GM과 포드가 휘청거리던 시기였고, 완성차 업체들과 함께 테넨코 주가도 바닥을 모르고 기어가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회생하면서 결국 테넨코도 함께 턴어라운드하게 됩니다.
멍거는 테넨코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자동차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의 관계는 일반적인 원청-납품업체 간 관계보다 밀접하다. 때문에 완성차 업체가 부품사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
테넨코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시장의 우려가 팽배했지만, 멍거는 생존 가능성을 높게 본 것입니다. 여기서는 오랜 기간 보아온 자동차 완성차-부품사 관계가 곧 ‘핵심’이었고, 멍거는 이를 통해 테넨코의 미래를 통찰했습니다. 결국 멍거의 통찰이 맞았고 테넨코의 주가는 폭발하게 됩니다. 이처럼 멍거는 시장의 공포 속에서도 본질을 꿰뚫는 통찰로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또 다른 위기의 순간이었던 코로나 시기로 넘어갑니다. 팬데믹이 막 끝날 무렵 넷플릭스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야외 활동이 불가능했던 시기, 폭발하던 가입자 증가가 끝나고 오히려 역성장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대량 매수했던 미국의 유명 매니저 빌 애크먼은, 당시 팔면 수억 달러 규모 손실임에도 불구하고 전량 손절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는 역성장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국내의 한 유명 큰손 투자자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향후 엔데믹 환경이 넷플릭스의 경쟁우위를 오히려 강화해줄 수밖에 없다고 보았고, 가입자 수 감소는 러시아 관련 일시적 이슈라는 세부 사항도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습니다. 그 투자자의 통찰이 옳았고 현재 넷플릭스 주가는 폭락 이전 대비 약 2배, 폭락 저점 대비로는 4배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이처럼 통찰은 그 기업의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핵심’에 기초해서 미래를 그려내는 당위성입니다. 기업이 어떤 모습으로 생존해서 어떤 위치로 올라갔는지의 ‘정확도’는 투자에서 본질적이지 않습니다.
한편, 통찰이 성립하려면 시장이 그 통찰을 모르거나 무시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가에 반영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미 주가에 반영된 통찰은 더 이상 통찰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통찰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업의 가치를 이끄는 ‘실질’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이클 산업이라면 왜 불황기가 끝나고 호황이 시작될 수밖에 없는지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할 것입니다. 호황기에 왜 이 기업에 이익이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결론도 확보해야 합니다. 소비재 기업이라면 왜 이 제품이 향후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있는 결론에 도달해야 합니다. 경제적 해자(moat)나 훌륭한 경영진 등 기업 가치를 성장시키는 요인들도 통찰의 중요한 부분을 이룹니다.
기업의 미래가 밝아 보여도, 주가는 충분한 안전마진을 확보한 수준이어야 합니다. 통찰이 적중할 확률이 100%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틀리더라도 큰 손실을 보지 않으려면 안전마진은 필수입니다.
깊이 있는 리서치와 사유로 얻은 통찰은 큰 금액으로 의미 있는 비중을 실을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주가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게 합니다. 내가 시장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다는 확신은, 어떤 매크로 상황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변동성도 견디게 만듭니다.
사실 투자를 오래 하다 보면 결국 수익의 팔할은 ‘버티는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깊은 통찰은 이러한 버티는 힘을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통찰은 맹목이 아닙니다. 충분한 근거로 결론을 내리되, 내재한 리스크도 감안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통찰이 틀렸을 때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대충이라도 맞는 방향을 따라야 한다’는 버핏의 코멘트는 통찰을 설명하는 핵심입니다. 모든 투자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통찰을 얻어 투자에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