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의 가치투자는 안전마진을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앎은 한계가 있고 미래는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안전마진이라는 가치투자 철학의 핵심이다. 안전마진의 철학을 받아들일 때 분산 투자와 장기 투자는 필연적인 결론이다. 안전마진의 철학은 우리에게 똑똑함보다는 겸손함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2012년 7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담긴 앨범이 출시되었다. 앨범 출시 2개월 만에 ‘강남스타일’은 3억 건에 가까운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당신이 출시에 앞서 이 곡을 들었다면 세계적인 히트곡이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까? 싸이 본인은 알 수 있었을까? 실제 싸이는 그해 모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강남스타일’ 열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2012년 7월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다시 시작된 2012년 7월, ‘강남스타일’은 또다시 세계적인 히트곡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결과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실험을 해본 과학자들이 있다.
세상은 복잡계,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복잡계 연구자인 던컨 와츠(Duncan Watts)와 매튜 살가닉(Matthew Salganik)은 뮤직랩이라는 온라인 음악 사이트를 만들고 참가자 1만 4,000명을 모집했다.1 사이트에 들어온 참가자들은 노래 48곡을 자유롭게 들은 다음 평점을 매기고 원할 경우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참가자 중 2,800명은 I그룹으로, 나머지 참가자들은 1,400명씩 S그룹 8개(S1, S2, … S8)로 각각 배정했다. I그룹 참가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곡을 선택했는지 볼 수 없게 했고, 각자 독립적으로 음악을 들은 다음 마음에 드는 곡을 선택하게 했다. 반면 8개의 S그룹에 배정된 참가자들은 앞사람들이 어떤 곡을 좋아하고 다운로드했는지 볼 수 있게 했다. 실험 결과 S그룹에서 히트한 곡은 I그룹에서 히트한 곡보다 훨씬 더 큰 인기를 누렸다. 즉, 불평등이 커졌다. 나아가 S그룹 8개는 저마다 히트곡이 달랐다. 즉, 어떤 곡이 히트할지는 예측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록다운(Lockdown)’이란 곡은 S1그룹에서는 1위였는데, S2그룹에서는 26위였고, S7그룹에서는 40위로 밀려났다. 이 실험은 2012년 7월로 시간을 되돌렸을 때, 새롭게 시작된 세상에서 ‘강남스타일’이 또다시 세계적 히트곡이 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뮤직랩 환경은 현실 세계의 축소판인데, 현실 세계는 뮤직랩 환경에 비할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계다. 이런 세상에서는 사소한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증폭되어 커다란 결과의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70년 역사의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망하리라고 예측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미래와의 ‘안전거리’ 유지하기
주식시장 역시 수많은 투자자가 미래를 전망하면서 주식을 사고팔며 상호작용하는 복잡계다. 주식시장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렇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투자자의 대답이 바로 안전마진이다. 안전마진은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태도다. 인간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고 미래는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안전마진이라는 가치투자 철학의 핵심이다. 안개 자욱한 도로를 운전할 때 우리는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투자자들은 반드시 안전마진을 확보해야 한다.
안전마진은 1,000원짜리 물건을 500원에 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여기서 1,000원은 물건의 가치를, 500원은 물건의 가격을 나타낸다. 가격은 시장에서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치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마도 많은 투자자들이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많은 투자자들이 기업의 가치를 구하고 나서 자신이 구한 가치가 틀림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개발 중인 신약 후보 물질이 아직 임상2상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바이오 기업의 시가총액이 수천억 원을 넘어 수조 원에 달하기도 한다. 임상2상을 통과한 후보 물질이 3상을 통과할 확률이 50%를 조금 넘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50%의 확률은 동전 던지기나 다름없다.
세상은 비선형,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격차로
당신은 동전 던지기에 소중한 자산을 베팅하겠는가? 기업의 미래 가치 계산에는 여러 가지 가정들이 들어가며, 심지어 우리가 미처 인식조차 못 했던 암묵적인 가정들도 반영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비선형적인 임계 상태의 세상에서는 이런 가정들 중 하나라도 조금만 달라지면 예측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틀려도 괜찮은지’가 안전마진의 핵심
안전마진의 핵심은 ‘내가 얼마나 정확하게 가치를 계산했는가?’가 아니라 ‘내가 계산한 가치가 틀리더라도 지금 가격이면 충분히 싼가?’다. 즉, ‘틀려도 괜찮은지’가 핵심이다. 수천억 원, 수조 원 가격의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는 ‘틀려도 괜찮은’ 투자가 아니라 ‘틀리면 큰일 나는’ 투자를 하고 있다. 자신은 절대 틀릴 수 없다는 자세로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계산(예측)이 틀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둔 가치투자자들조차도 그 범위를 너무 적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1,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하지만 잘못되어도 700억 원 정도는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하지만 미래는 상상조차 못 했던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700억 원 수준으로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수백억 원 적자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타이어의 원료인 카본블랙을 만들던 OCI는 태양광 모듈의 원재료인 폴리실리콘 제조에 뛰어들어 2008년부터 크게 도약할 수 있었다. 2011년 초 많은 전문가들은 OCI의 미래 실적을 어떻게 예측했을까? 가장 보수적인 추정치를 제시한 전문가가 2011년 1조 원, 2012년 1조 1,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했다. 낙관적인 전문가는 2011년 1조 7,000억 원, 2012년 2조 1,000억 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OCI의 실제 영업이익은 전문가들의 기대치를 가볍게 무시한 채 2011년 9,000억 원, 2012년은 -137억 원의 적자로 돌변했다.
안전마진의 핵심은 정확한 가치 계산이 아니라 보수적인 태도다. 대표적인 성장주 투자자인 필립 피셔가 쓴 책의 제목이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라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