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따라 10년, 원금 9배 이상으로
“한국 주식시장은 원칙이 잘 통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종종 들린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에 워런 버핏의 투자 방식을 10년간 적용한 투자자가 있다. ‘사슴펀드’를 공개한 김철광 씨다. 그는 사슴펀드의 성과는 주식 투자가 ‘이익 손실 비율 게임’이며 ‘시차 보상’이라는 철학을 견지한 결과라고 말한다. 2018년 무크지 〈버핏클럽〉1호에 실었던 그의 칼럼을 다시 소개한다. ― 버핏클럽
워런 버핏의 투자 방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경으로 기억한다. 당시 워런 버핏의 며느리로서 워런 버핏의 투자 방법을 12년 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메리 버핏이 쓴 책 《주식투자 이렇게 하라》가 버핏을 공부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였다.
이 책은 버핏의 초기 투자 방식은 1956년 버핏 조합을 구성한 것에서 시작되었다며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즉시 버핏과 같은 조합을 구성해 투자를 시작하라”라고 조언했다. 나는 이 조언대로 버핏 조합과 유사한 투자 모임에 가입해 버핏 따라 하기를 시작했고, 2004~2007년 투자수익률이 매우 좋았다.
우리 집에는 ‘진짜’ 금송아지가 있다!
나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당시 인터넷에는 자칭 고수들이 난무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고수이고 진짜 돈을 벌었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이후 수백억 원대 자산가라고 주장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허위·과장했음이 밝혀졌다. 인터넷이라는 곳은 과장과 허풍이 난무했고, “우리 집에는 금송아지가 있다”는 식의 주장을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 투자자가 ‘재야의 고수’인지 ‘재야의 하수’인지 확인하기란 간단하지 않다. 누구는 계좌만 공개하면 그 계좌의 수익률만으로 고수인지 하수인지를 검증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주식 투자를 10년 이상 한 사람들 중에서 계좌를 단 하나만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만약 계좌 수익률 공개만으로 고수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여러 계좌 중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계좌만 보여주면 된다.
또 같은 증권사 내에서는 종목의 입출고가 자유롭다 보니 고수 인증용 계좌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증권사에 계좌가 5개 있다면 수익이 많이 난 종목들만 하나의 계좌로 모으고 손실 난 종목을 다른 계좌로 출고하는 식이다.
“버핏 방식 투자를 공개 검증받겠다”
그래서 나는 워런 버핏의 방식을 적용해 투자하면 장기적인 성과가 나오는지에 대해 공개 검증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 방식은 이랬다. 내가 보유한 계좌 중 5,000만 원짜리 계좌 하나를 공개하고, 10년간 매 분기 말에 이 계좌의 수익률을 캡처해 내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인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에 올리는 것이었다.
나는 투자 계좌를 공개하기 전에 주위 고수들에게 취지를 이야기하면서, 혹시 앞으로 발생하게 될 문제점이나 위험성, 법적 규제 등이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주위 고수들이 당시 해준 조언은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지적한 위험 요소는 “자신의 이름을 건 펀드를 공개했다가 수익률이 빈약하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공개할 계좌의 누적 수익률이 낮다면 그것이 꼬리표가 되어서 다시는 고수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텐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느냐”라는 말이었다.
사슴처럼 투자한다, ‘사슴펀드’ 출범
그러나 나는 워런 버핏의 투자 방식을 공개하기로 했다. 펀드는 10년 전인 2008년 1월 1일 출범했다.
계좌를 공개한 데는 다른 취지도 있었다. 그 취지는 공개 계좌의 이름 ‘사슴펀드’에 담았다. 사슴은 먹이를 발견하면 무리를 불러모은다고 한다. 먹기에 적합한 먹이인지 함께 논의한 뒤, 그렇다는 결론이 나면 함께 먹는다는 것이다. 나 혼자서 왕창 먹고 그 결과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슴처럼 함께 투자하기에 적합한 종목을 찾고 같이 먹자고 만든 것이었다.
10년간 계좌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어떤 분들은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사슴펀드에 왜 추가적인 자본 증가가 없는지 궁금해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5,000만 원은 너무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금액이라서, 일반적인 초·중급 가치투자자들이 쉽게 운영할 수 있는 규모라는 점이다. 이 정도 규모의 자금으로 10년간 워런 버핏의 방식을 적용한 가치투자를 하면 이 정도 수익이 나올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