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의 대안적 롤모델, 루안커니프

워런 버핏이 자신의 투자조합을 해산하면서 투자자들에게 추천한 친구가 있다. 자신처럼 벤저민 그레이엄의 제자였던 빌 루안이었다. 그가 주도해 설립한 회사가 바로 루안커니프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는 2004년 루안커니프를 알게 되었다. 이후 지난 15년 동안 이 회사 애널리스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자극을 받았다. 경쟁우위 개념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고, 경영진의 자본 배분 능력에 눈을 떴으며, 인터넷 기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 대표는 “나의 50%는 버핏이고, 50%는 루안커니프”라고 말한다.


“당신들이 태평양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그곳이라고?”
“그렇다. 서경배 사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경영자라고 생각한다.”

2004년 서울 시내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뉴욕의 루안커니프앤골드파브(Ruane Cunniff & Goldfarb, 이하 루안커니프)에서 온 애널리스트 기리시 바쿠(Girish Bhakoo)와 내가 처음 만나 나눈 대화의 일부다. 내가 워런 버핏에 이어 두 번째 스승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15년간 이어진 이들과의 교류는 가치투자를 보는 나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버핏의 ‘적통’으로 1970년 출범

1969년 버핏은 경이로운 운용 성과를 올린 버핏 투자조합을 해산하기로 결정한다. 버핏 투자조합은 1956년 결성 이래 13년 동안 연평균 3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투자조합 해산을 앞두고 그는 투자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가 되는 것, 둘째는 자신의 믿을 만한 친구에게 펀드 설립을 독려할 테니 그쪽에 맡기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버핏과 더불어 벤저민 그레이엄의 제자인 빌 루안(Bill Ruane)이었고, 그가 친구인 릭 커니프(Rick Cunniff)를 끌어들여 그해 설립한 회사가 바로 루안커니프다.

루안커니프는 1970년에 버핏의 고객들을 기반으로 세쿼이아 펀드(Sequoia Fund)를 출범한다. 이 펀드는 2019년 3월 말 기준으로 49년간 48,332%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연평균 수익률은 14%다. 버핏의 기록에는 못 미치지만 탁월한 성적임은 분명하다(버크셔 해서웨이는 장부가 기준인 반면 세쿼이아 펀드는 말 그대로 펀드 수익률이다).

태생부터 버핏의 적통인 세쿼이아 펀드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이 펀드가 언제 버크셔 해서웨이에 투자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이 펀드를 지켜본 이후로 버크셔 해서웨이는 늘 포트폴리오에서 비중 1위 아니면 2위였다. 버핏의 마법으로 창출된 그 어마어마한 장기 수익률을 다 향유했다는 의미다. 심지어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때마다 루안커니프의 애널리스트인 조너선 브랜트(Jonathan Brandt)를 단상에 앉히고 자신에게 질문하게 한다. 버핏은 루안커니프가 자기 회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운용사라 생각하는 것이다.

세쿼이아 펀드가 버핏에게서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다. 세쿼이아 펀드가 버핏을 돕기도 했다. 버핏이 그토록 자랑하는 캐피털 시티(CEO 톰 버피) 투자 건도 빌 루안이 소개한 것이다. 또한 2015년 버크셔 해서웨이가 인수한 프리시전 캐스트파츠도 그전부터 세쿼이아 펀드 포트폴리오에 편입되어 있었다.

탁월한 기업에 집중 투자한다

루안커니프의 스타일은 버핏의 초기가 아니라 찰리 멍거의 영향을 받은 후기 가치투자 철학에 가깝다. 홈페이지(Sequoiafund.com)를 방문해보면 자사의 투자철학과 방법론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훌륭한 기업에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하고 투자 대상이 매력도를 유지하는 한 지속 보유함으로써 시장수익률을 초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익이 복리로 빠르게 증가하는 퀄리티 높은 비즈니스인 데다 퀄리티 높은 경영진이 운영하고 있는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충분히 긴 투자 기간을 상정해야 예측 가능한 요소들을 이용해 투자할 수 있고, 투자 대상이 퀄리티를 갖추고 있어야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외 많은 문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바로 퀄리티(quality)다. 루안커니프는 퀄리티가 높은 기업은 ‘S&P500 평균보다 훨씬 높은 자기자본수익률(ROE)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정의한다. 버핏이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탁월한 기업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 가치투자에서 리스크를 제어하는 방법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하나는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사는 것, 다른 하나는 퀄리티가 높은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루안커니프는 퀄리티가 높으면 지속적인 경쟁우위 덕분에 투자자 입장에서 이해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투자가 안전해진다고 주장한다. 현재 세쿼이아 펀드 포트폴리오의 상위 비중 종목들만 봐도 루안커니프가 퀄리티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모두 압도적인 경쟁우위를 바탕으로 높은 성장세와 ROE를 보이는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장기(long-term)다. 실제로 10년 이상 투자 중인 종목이 상당수이고 작년 회전율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사실상 지주회사이니 초장기 투자가 가능하지만 펀드는 여건상 그럴 수 없다는 세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례라 하기에 충분하다.

세쿼이아 펀드 홈페이지에서 큼지막하게 강조하고 있는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