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도 손쉽게, 그레이엄의 계량투자

벤저민 그레이엄은 자신의 투자 이론을 대중에게 가르치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가 대중에게 교육한 투자 전략은 ‘완전한 계량화’에 맞춰졌다. 그는 “정량적 요소들은 정성적 요소보다 분석하기 훨씬 쉽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레이엄의 여러 투자 전략을 과거 기간에 대해 시뮬레이션해보면 수익률이 높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NCAV 전략을 한국에 적용한 결과 실질 수익률이 20%로 추정되어, 같은 기간 코스피의 7.4%를 크게 웃돌았다.


나는 15년에 걸쳐 투자 서적 수백 권과 그 이상의 논문을 읽었고, 셀 수 없이 많은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그중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이 가장 신기한 존재라고 확신한다.

그레이엄 전에는 이렇다 할 만한 투자 이론이 없었고, 유명한 투자 서적이라고는 제시 리버모어라는 트레이더의 삶과 투자철학을 소개한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 해밀턴이 쓴 《다우이론》 정도뿐이었다. 게다가 이들 책은 모멘텀, 추세 및 차트 투자를 다뤘다. 그레이엄이 등장하기 전에는 펀더멘털 투자 이론을 서술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레이엄은 ‘완벽한 무’였던 이 분야에 《증권분석》과 《현명한 투자자》라는 불멸의 서적을 통해 가치투자라는 투자 이론을 홀로 설립했다. 인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례다.

《증권분석》과 《현명한 투자자》는 워런 버핏의 ‘인생 책’이다. 버핏은 이 두 권을 각각 네 번 이상 읽었다고 말했다. ’천하의 버핏이 네 번 읽었다는데’라는 생각에 나는 두 책을 거의 10년에 걸쳐서 다섯 번씩 읽었다.

매번 감회가 새로웠지만, 가장 놀라운 점은 그레이엄이 “싸게 사고 비싸게 팔아라” 등 추상적으로 제안한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실무적으로 투자를 설명하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투자 방법까지 제안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반박하거나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는 내용이 거의 없었다. 두 책은 수십 년이 지난 21세기에도 투자 교과서로 전혀 손색이 없다.

책에 소개된 투자 전략으로 아직도 주식시장에서 초과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 두 책은 완벽에 가깝다고 극찬하고 싶은 투자 서적이다. 석기 시대 사람이 달을 바라보다가 영감을 받아서 로켓을 만들고 달에 다녀오는 데 성공했으며, 우리가 여전히 그의 이론을 써서 로켓을 만든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나는 그레이엄의 업적이 거의 그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쉽고 객관적이고 - 계량투자의 장점

흔히 그레이엄이 정량적, 버핏이 정성적 투자를 창시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레이엄은 《증권분석》에서 기업의 정성적 평가를 매우 중요시하고, 버핏이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진, 산업 분석, 예측 가능성 등을 평가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나는 그레이엄이 가치투자에 대한 거의 모든 이론을 만들었고, 그가 대학 수업에서 유일하게 A+를 준 우수 학생인 버핏이 그레이엄의 이론을 가장 잘 실천했다고 평가한다.

그레이엄과 버핏은 투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판이했다. 버핏은 사업가 및 투자자 기질을 발휘해 자산을 끊임없이 축적함으로써 세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의 회장이 된 반면, 그레이엄은 돈에 큰 관심이 없었다. 대신 자신의 투자 이론을 통해 대중을 계몽하는 일에 더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대중에게 투자, 특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투자 전략을 가르치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그레이엄은 해답을 ‘투자 전략의 완전한 계량화’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간단히 말하면 정량적 요소들은 정성적 요소보다 분석하기 훨씬 쉽다. 분석해야 하는 정량적 요소의 수가 적은 장점이 있고, 관련 데이터를 얻기도 쉽고,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리기에도 적합하다. 또한 재무제표 데이터 안에 정성적인 요소의 상당 부분이 녹아 있어서, 정성적 요소를 상세하게 연구해도 분석가에게 중요한 새로운 정보를 주지 않을 경우가 많다.”

이런 발상의 전환을 통해 그레이엄은 정량적 요소만 고려해 투자하는 ‘계량투자’를 창시한 것이다.

계량투자의 큰 장점은 무엇인가?

첫째, 매수, 매도, 보유 기간, 종목 수 등 투자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계량화·객관화해서 투자 전략을 수학 공식처럼 만듦으로써 초보 투자자도 따라 할 수 있다.

둘째, 투자 방법이 객관적이어서 “이 전략으로 과거에 투자했으면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내고,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최악의 순간에 어느 정도 잃고, 이를 극복하고 다시 수익을 내는 데 어느 정도 걸렸는가” 등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이렇게 과거에 대해 시뮬레이션하는 것을 ‘백테스트(backtest)’라고 한다.

셋째, 인간의 심리가 투자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주식 투자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계량투자 전략은 투자 판단을 간소화하고 인간 심리의 역할을 최소화한다. 그냥 따라 하기만 하면 심리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21세기에도 활용 가능한 그레이엄의 투자 전략

그럼 이제부터 그레이엄이 남긴, 투자자들이 구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 몇 가지를 분석해보겠다.

저평가 우량주 전략

그레이엄의 투자 전략 중 가장 유명한 전략은 《현명한 투자자》 14장에 나오는 ‘방어적 투자자를 위한 주식 투자 전략’이 아닌가 싶다.

그레이엄은 구체적으로 ‘저평가 우량주’를 선별하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공개한다.

• 중대형주에만 투자: 매출액이 1억 달러 이상 기업에만 투자
-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매출액이 7억 달러(약 7,500억 원) 이상의 기업에만 투자
• 탄탄한 재무제표: 유동 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 2 이상, 장기부채가 운전자본(유동자산-유동부채) 미만
• 최근 10년간 흑자 지속
• 최근 20년간 배당 지속
• 최근 10년간 주당순이익이 최소 33% 증가
• PER 15 이하
• PBR 1.5 이하
- PBR × PER 22.5 이하일 경우 PER 15 이상, PBR 1.5 이상일 수 있음

실제로 이 전략으로 미국에서 투자했으면 어느 정도의 수익을 벌 수 있었는지 백테스트를 한 사람들도 있다. 2014년 발표한 ‘투자가 복잡해지면 수익이 오르나? 1963-2013년 AAII 가치투자 전략들’이라는 논문에서 그레이, 보겔, 수(Gray, Vogel, Xu)는 그레이엄의 전략을 백테스트했다. 분석 결과 1963~2013년 50년간 꾸준히 실행했다면 14.7%의 복리수익을 벌 수 있었다. 1950년대부터 널리 알려진 전략으로 계속 초과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구간별로 보면 1963~1980년 12.7%, 1980~1996년 15.7%, 1997~2013년 15.8%로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높아졌다. 베스트셀러 《현명한 투자자》를 통해 알려진 지 60년이 넘었는데도 전략의 초과수익은 전혀 줄지 않았다.

그레이엄의 마지막 선물

저평가 우량주 전략은 수익이 높지만 개인 투자자는 이 전략에 적합한 주식을 찾아내기가 힘들 수 있다. 그걸 알았는지 그레이엄은 타계하기 직전인 1976년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15% 정도, 다우존스 지수보다 2배 정도를 벌 수 있는 전략이 있다”며 큰 선물을 남겼다.

그레이엄의 마지막 선물은 다음과 같은 전략이다.

1. PER 10 이하
2. 부채 비율 50% 이하
3. 매수 후 주가가 50% 상승하면 매도, 상승하지 못하면 매수 2년 후 매도

더 이상 간단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장난 같은 투자 전략으로 설마 정말 복리 15%를 벌 수 있었을까? ‘저평가 우량주 전략’을 백테스트한 웨슬리 그레이(Wesley Gray) 박사는 이 전략도 백테스트했고, 토비아스 칼라일과 공동 저술한 《Quantitative Value(계량 가치투자)》라는 책에 1976~2011년 백테스트 내용을 공개했다. 결과는 상당히 놀라웠다. 그레이엄 전략에 맞는 주식에 투자했다면 15%가 아니라 17.8%를 벌 수 있었다. 같은 기간 S&P500의 수익률 11.1%를 크게 능가하는 수준이다.

나도 이 결과가 믿어지지 않아서 한국 시장에서 백테스트하고 졸저 《할 수 있다! 퀀트 투자》에 공개했는데, 2002~2016년 복리수익률이 놀랍게도 약 15%였다. 그레이엄이 추측한 기대수익과 거의 일치했고, 같은 기간의 코스피 수익률 6.3%를 크게 능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