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된 100만 원짜리 투자서 Margin of Safety
이 책은 여러모로 전설적이다. 값이 무려 100만 원이다. 절판되었다.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 내용이 깊고 묵직한 데다 강렬하다. 이 책은 안전마진 및 가치투자의 철학과 트레이딩 기법 등을 전한다. 아울러 투자자들의 실패는 투자업계가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고객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고발한다.
한 권이 무려 100만 원인 투자서가 있다. 2019년 4월 현재 아마존에서 중고는 최저 865달러에, 새 책은 최저 1,399.99달러에 거래된다. 세스 클라만이 쓴 《Margin of Safety(안전마진)》(한국 미출간)가 바로 그 책이다. 1991년에 출판됐고 249쪽 분량이다.
굳이 분석하면, 이 책의 가치가 치솟은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하나는 저자가 책을 절판시켰다는 것이다. 갖지 못하는 물건일수록 더욱 갖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일까. 아마존의 거래 가격에는 그런 갈망의 크기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책 내용의 가치다. 이 책에는 안전마진 및 가치투자의 철학과 트레이딩 기법 등이 담겨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인터넷 검색으로 원서 PDF 파일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원서 PDF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것이 불법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다운로드를 추천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원서를 절판시킨 마당에 한국어 번역 출간을 동의할 리 없다. 개인적으로 번역 및 제본해서 보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여기서는 아쉽지만 핵심 주제라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것으로 한국 투자자들의 갈증을 달래볼까 한다. 저작권 시비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니 의혹을 살 만한 직접 인용은 가급적 삼가고 나름대로 잘 녹여내고 쉬운 말로 바꿔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충실하고자 한다. 이 점 독자들께 미리 양해를 구한다.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우선 이 책을 개괄해보면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투자자들이 왜 투자에 실패하는지를 분석한다. 투자자 스스로가 투기에 휩싸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투자업계, 특히 기관투자가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객을 이용한다고 고발한다. 심지어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불량 채권을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팔아먹는다고 지적한다. 2부에서는 투자철학에 대해서 깊이 있게 논의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투자하려는 것인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안전마진’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가치투자라는 방식이 생겨난 과정과 내재가치 평가 방법을 다룬다. 3부에서는 실제 투자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투자 대안을 소개한다. 실제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방법과 그에 따른 트레이딩 기법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개인 투자자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실패하는 것은 투기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편의점에서 고등어 통조림을 구입했다고 치자. 통조림을 개봉했더니 내용물이 상했다면 어쩌겠는가? 아마도 구입한 편의점에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말하고 환불을 받거나 교환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편의점 사장이 이렇게 말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 통조림은 그냥 판매용이랍니다. 판매용 통조림을 먹는 사람이 잘못이죠.”
주식은 실제 사업의 지분이다. 그런데 매매용 종이 쪼가리로만 인식한다면 투기에 불과한 것이다. 기업의 펀더멘털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시장이나 주가를 예측해서 수익을 내려고 한다면 당신은 투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혹시 ‘비싸게 사줄 더 바보’를 찾는 중이라면 당신이야말로 ‘가장 바보’임에 틀림없다. 미술품이나 골동품 등 수집품이 투자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그 자체로 이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거론되는 암호화폐도 투자 대상으로 보기 힘들다.
최근에 발생한 헌법재판관 후보의 이슈에서 보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식에 투자해서 얻은 수익을 불로소득이라고 여기고 색안경을 쓰고 본다. 주식 투자가 그럴 바에는 짧고 굵게 한 방을 노린다. 이런 대박을 좇는 ‘돼지’들은 탐욕을 이기지 못해 투기를 벌이곤 한다. 이렇게 물불 가리지 않고 벌이는 투기의 결말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실패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투자자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투기 덕분에 진정한 투자자들에게 투자수익의 기회가 발생한다는 점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을 봉으로 여긴다
투자업계는 고객을 대신해 투자수익을 내야 하는 사명감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고객의 ‘대리인’이다. ‘주인’인 고객은 투자업계에서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꺼이 각종 수수료와 보수를 지불한다. 하지만 이는 단단한 착각일 뿐이다. 그들이 고객을 상대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자신들이 돈을 버는 것이다. 고객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든 말든 아무 관심도 없다. 고객의 이익에 앞서 자신의 이익부터 챙긴다. 고객을 오로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이렇게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 것을 대리인 문제라고 한다.
주식시장은 투자업계가 고객의 돈을 빼먹기에 최적의 장소다. 그래서 고객들이 건전한 투자 마인드를 가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일확천금을 잡아 벼락부자가 된 사례를 알려주며 헛된 꿈을 꾸게 만들고 탐욕에 눈이 멀어 투기에 전념하기를 부추긴다. 고평가된 가격으로 증권을 발행하기 쉽도록 시장에 거품이 발생하기를 원한다. 고객이 돈을 벌든 잃든 관심도 애정도 없다. 틈만 나면 자신들이 받는 수수료와 보수를 높이는 그럴듯한 핑계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복잡한 이유를 들이대며 돈을 요구한다면 고객을 봉으로 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돈이 된다면 쓰레기도 팔아댄다
‘정크(junk)’란 문자 그대로 쓰레기라는 의미다. 정크본드란 직역하면 ‘쓰레기 같은 채권’으로서 부도가 임박한 기업이 발행한, 신용등급이 매우 낮은 채권을 말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리고 고객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투자회사라면 도저히 판매해서는 안 되는 증권이다. 그런데도 이 정크본드를 묶어서 펀드를 만들면 포트폴리오 효과에 의해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이렇게 쓰레기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은 판매 수수료가 워낙 두둑하기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이론적으로 그럴듯한 데다가 수익률도 높다는 투자회사의 말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많다.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정크본드에 투자하면 상당한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정크푸드를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게 당연한 것과 마찬가지다. 쓰레기는 누구나 버리려고 하고, 쓰레기를 받겠다는 곳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쓰레기를 버리는 데도 돈을 낸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볼 때도 쓰레기 같은 금융상품을 사는 것은 미친 짓이다. 오히려 돈을 주고 쓰레기를 사는 것이니 말이다.
사실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기업 중에서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매수를 추천할 만한 보석 같은 우량 기업이 얼마나 될까? 정의상 보석이란 귀한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산운용사가 그렇게 많고 그들이 운용하는 펀드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은 그중 일부는 분명히 쓰레기를 섞어서 팔고 있다는 방증이다. 쓰레기 판매도 불사하는 그들이 고객 편일 리가 있을까.
쓰레기 금융상품 판매가 경쟁적으로 점점 더 대규모로 이루어지다가는 경제를 망칠 수도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이 위험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불량 등급인 서브프라임 부동산 대출 채권을 잘게 쪼개 만든 금융상품을 무분별하게 판매한 행태가 만연했고, 이는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다.
힘껏 밟으면 빨리 갈 수는 있다
독특하게 운용해서 스타가 되려다가 실패해서 해고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기꺼이 지려는 펀드매니저가 얼마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남들과 비슷하게 운용하면서 가늘고 길게 살아남고 싶을 것이다. 펀드매니저들은 수시로 성과를 평가받기 때문에, 단기 수익률을 높여서 자신의 안위를 지킬 수만 있다면 고객이 감당해야 할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펀드의 주식 비중을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하려 하지 않고 최대한 100%에 근접하게 유지한다. 왜냐하면 이미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는 결정 자체가 고객이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으면 펀드매니저가 운용을 잘한 것으로 홍보하고, 결과가 나쁘면 고객이 그렇게 결정한 탓으로 돌릴 수 있다. 빨리 달리길 원하는 고객이 있는 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으면 그만이다. 그러다 사고가 난다고 해도 펀드매니저는 책임질 생각이 조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