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은 가치투자를 더욱 빛나게 한다
블랙 스완 코로나19 시대에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는 ‘톱다운’과 ‘바텀업’ 방식을 비교한다. 톱다운 방식은 코로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고 그에 따라 투자한다. 바텀업 방식은 관심 기업이 코로나 사태에서 살아남고 이후 수익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전망한다. 《현명한 투자자》를 쓴 벤저민 그레이엄의 뛰어난 제자인 버핏은 후자를 택했다. 바텀업 방식이 가치투자다. 한편 《블랙 스완》을 쓴 나심 탈레브는 충격을 기다리며 충격이 올 때 큰돈을 벌 수 있는 안티프래질한 바벨 전략을 추구한다.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투자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보았을 질문이다. 어떤 사람은 10년 후, 20년 후에 100배가 될 주식을 골라내 오랫동안 묻어두는 것이 최고의 투자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현재 시장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시장의 중심주를 찾아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세상일은 알 수 없기에 안전마진이 큰 투자처를 찾아 분산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게 정답일까? 사실상 정답이 없는 질문일지 모른다. 사람마다 투자 방식이 다르고, 어떤 투자 방식을 취하든 돈을 번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질문의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두 권의 책으로부터 큰 도움을 얻었다. 바로 나심 탈레브의 《블랙 스완》과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다.
1,001일째 칠면조의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칠면조 한 마리가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칠면조는 주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주인이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그렇게 1,000일이 지났다. 그리고 1,001일째, 추수감사절을 앞둔 어느 날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칠면조에게 닥친다.1 《블랙 스완》과 《현명한 투자자》는 모두 1,001일째 칠면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탈레브과 그레이엄의 인생 경험이 그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탈레브와 그레이엄은 부유했던 집안이 순식간에 쇠락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또 두 사람은 각각 예상치 못했던 전쟁과 대공황이 터지고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상황을 겪었다.
탈레브는 1960년 할아버지가 내무장관이던 레바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탈레브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레바논의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내전 초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이 전쟁이 “불과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2 하지만 그 전쟁은 무려 15년 동안 이어졌고 탈레브의 집안은 내전 기간 모든 재산을 잃었다. 다행히 탈레브는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월가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10월, 뉴욕 증시가 하루 만에 22%나 폭락하는 블랙 먼데이를 겪게 된다.
이 경험들로 탈레브는 세상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음을 깨닫고 블랙 스완에 기반한 삶의 철학과 바벨 전략(barbell strategy) 투자 방식을 구상한다. 바벨 전략은 수익률은 낮지만 매우 안전한 자산과, 위험도는 높지만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2007년 출간된 《블랙 스완》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최악의 파국이 월가를 덮치자 탈레브는 ‘월가의 현자’로 떠올랐고 《블랙 스완》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레이엄은 1894년 런던의 풍족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이후 뉴욕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열 살 때 아버지가 죽고 사업이 쇠락하면서 가족은 점차 가난해졌다. 그레이엄은 다행히 장학금을 받고 컬럼비아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고 차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의 교수 제안을 뿌리치고 월가의 금융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주식 투자를 카지노의 도박처럼 여기던 시절, 그는 기업의 내재가치를 계산해 투자하는 가치투자 분야를 개척했고 직접 투자회사를 차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29년 대공황이 터졌다. 1929년 10월 주식시장이 폭락했고 그레이엄은 20% 손실로 그해를 마감했다. 1929년 말 시장은 어느 정도 반등한 상태였고 그레이엄과 주변 사람 대부분은 ‘이제 최악은 끝났다’고 믿었다.3 하지만 이어지는 3년 동안 더 큰 폭락과 고통이 찾아왔다. 1930년 그레이엄의 펀드는 50.5%의 손실을 입었고, 1931년에는 16% 손실, 1932년은 3% 손실로 이 기간 누적 손실은 70%였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살아남았다. 난파선같이 침몰한 시장에서 헐값에 주식을 사들여 1935년에 대공황 시기의 손실을 모두 만회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1934년 《증권분석》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회고록에서 그레이엄은 “1934년까지 엄청난 고통을 치르며 얻어낸 지혜를 그 책에 쏟아부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만약 더 일찍 책을 냈더라면 큰 실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4 《증권분석》은 컬럼비아대학의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분량이 방대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일반 투자자도 건전한 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해 1949년 《현명한 투자자》를 출간했다.
《블랙 스완》은 예측 불가능한 극단에 대한 고민의 산물
《블랙 스완》과 《현명한 투자자》는 1,001일째에도 살아남은 칠면조들의 성찰의 결과다. 두 책에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 담겨 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에 기반할 때 굳건한 투자철학이 정립되고, 굳건한 투자철학에서 지속 가능한 투자 방법이 나올 수 있다.
《블랙 스완》은 1,001일째 칠면조에게 일어났던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극단의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극단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능력으로 위장한 행운에 속기 쉽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산업이 항공업이다. 항공사들은 2020년 1분기에만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적자를 냈다. 2분기는 상황이 더 암울하다. 언제 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2~3년 전 상황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모든 항공사들이 매년 몇 대씩 항공기를 늘렸고 여행 수요는 끝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항공사들은 매년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이익을 냈다. 당시 항공사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전적으로 경영진의 현명한 판단과 뛰어난 능력 덕분이었을까?
극단의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해주는 사례들만 찾는 확증 편향 오류에 취약하며, 모든 사건에 반드시 ‘이유’를 붙여야 한다는 강박감에 우연히 발생한 사건들에서도 과도하게 패턴을 찾고 이야기를 지어낸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곧바로 나올 것이라 기대하며 세상의 비선형성(non-linearity)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현실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헛똑똑이들이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후견지명과 사후 왜곡을 통해 자신이 세상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블랙 스완》은 우리 인간의 인식론적 오만을 경고하며, 인식의 한계와 이 세상의 예측 불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극단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을 담은 책이다.
《현명한 투자자》는 상황 악화에 대비하는 ‘안전마진’ 제시
《현명한 투자자》는 투자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책의 핵심 개념은 ‘안전마진’과 ‘미스터 마켓’이다. 그레이엄은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것으로 1장을 시작한다. 그는 시장 변동을 예측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를 투기라고 말했다. 미래 주가 예측은 불가능하며, 투자자들이 아무리 시장을 예측하려 노력해도 가격 변동을 이용해서 성공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14장에서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식으로 ‘예측하는 방법’과 ‘보호하는 방법’을 대비한다. 예측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기업의 미래 실적을 정확하게 예측하려 노력하며, 특히 높은 이익 성장률이 장기간 유지될지 확인하려 한다. 만일 장기 전망이 상당히 유리하다고 확신하면, 십중팔구 현재 주가 수준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주식을 매수할 것이다. 반면 보호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분석 시점의 주가에 항상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은 주가보다 내재가치가 높아서 안전마진이 충분한지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안전마진이 충분하면 장래에 상황이 악화되어도 손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엄은 항상 보호하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안전마진의 기능은 우리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양호한 투자 실적을 거두는 데 투자자의 높은 통찰력이나 선견지명은 크게 필요하지 않다. 안전마진이라는 개념에는 이 세상이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곳이라는 깨달음이 담겨 있다.
8장에서는 ‘미스터 마켓’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매일 우리를 찾아와 자신이 생각하는 주가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주가는 회사의 실적과 전망에 비추어 타당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가 흥분하거나 공포심에 휩싸일 때면 종종 어이없는 수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합리적일 때도 있지만 가끔은 탐욕과 공포를 오가는 존재, 미스터 마켓의 정체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그레이엄이 제시한 안전마진과 미스터 마켓에는 세상의 예측 불가능성과 탐욕과 공포를 오가는 인간 본성이 담겨 있다.
《블랙 스완》과 《현명한 투자자》가 보여주는 세상은 복잡하고 미래 예측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감정에 쉽게 휩쓸리는 비이성적인 존재이고 비합리적이며 여러 가지 편견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다. 세상과 인간의 특성이 이러할 때 어떻게 살아가고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두 책에 담겨 있다. 두 책은 모두 예측이 필요 없는 투자, 예측이 틀리더라도 크게 손해 보지 않는 투자 방법을 추구한다. 하지만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은 많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