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닝 서프라이즈 가치주 발굴법
가치투자자들이 받는 가장 큰 오해가 있다. 성장에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는 편견이다. 가치투자자들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기를 꺼리는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성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가수익배수(PER)는 주식 투자를 한다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주가는 PER이 오르거나 주당순이익(EPS)이 증가하면 상승한다. PER과 기업 이익이 별개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기업 이익이 증가하리라는 기대가 높을수록 PER은 높게 형성된다. 결국 주식 투자의 핵심은 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기업을 찾는 것이다.
다만 가치투자자들은 기업 이익 증가 가시성이 높을 뿐 아니라 PER이 낮은 주식을 최고로 꼽는다. 왜냐하면 EPS 증가뿐 아니라 EPS 증가 기대로 PER까지 상승하면서 주가 상승 폭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투자자들이 저PER 주식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여기서 ‘그런 주식이 정말 있어?’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EPS 증가 가시성이 높지만 PER이 낮은 주식은 시장 참여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업종이나 종목에서 발견된다. 일부 기업은 비즈니스의 결함이나 지배구조 등의 문제로 PER이 낮다. 그런 문제 없이 EPS가 증가하는 기업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결국 PER이 높아진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중소형주에서 나타난다. 대형주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들이 수시로 점검하고 지켜보기 때문에 시장 가격이 왜곡될 확률이 낮지만, 중소형주는 대형 기관들이 접근하기 어려워 가격 왜곡이 자주 발생한다.
지난 18년간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느낀,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버는 방법은 ‘잘되고 있는 기업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발견해서 투자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주식 투자는 시장 기대치와의 싸움
가끔 ‘기업 이익이 잘 나왔는데 주가가 왜 떨어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와 같은 일을 자주 겪다 보니 주식시장에는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라는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A 기업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하리라고 기대되고 실제로 40% 증가했다는 뉴스가 나온다면 주가는 어떻게 반응할까? 더 좋아지리라는 기대가 크지 않다면, 주가가 선반영되어 올랐기 때문에 밋밋하게 흐르거나 단기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영업이익이 30% 증가했다면 주가는 어떻게 될까? 매우 훌륭한 실적이지만 주식시장 참여자들은 40% 증가를 기대했기 때문에 하락할 확률이 매우 높다. 반대로 영업이익이 50% 증가했다면 주가는 강한 상승 흐름을 보일 수 있다. 이와 같이 동일한 영업이익을 두고도 향후 이익에 대한 기대에 따라 시장은 다르게 반응한다. 주식시장이 어려운 것은 영업이익이 30%, 40%, 50% 증가할지 예측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시장의 기대에 따라 주가가 매번 다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닝 서프라이즈와 어닝 쇼크가 실제로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2010년부터 2019년 1분기까지 이익이 발표되는 분기와 1년간의 주가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제조사 중 컨센서스가 존재하는 기업들만 대상으로 했다. 4분기 실적은 일회성 이익과 비용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고 늦게 발표되어 투자자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제외했다.
어닝 서프라이즈 vs 어닝 쇼크 종목 수익률
분석 결과 어닝 서프라이즈 종목은 어닝 쇼크 종목에 비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다. 절대 수치도 중요하지만 기대치 달성 여부의 차이가 매우 크다. 어닝 강도에 따른 수익률을 비교하면 차이가 더 뚜렷해진다.
어닝 서프라이즈가 강할수록 수익률이 높고, 어닝 쇼크가 강할수록 손실 폭이 확대되었다. 이익의 증감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기대치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가치투자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이 어닝 모멘텀에 주는 점수가 커진 만큼, 어닝 모멘텀이 없는 싼 주식을 사서 기다리는 전략만 고수하기보다는 어닝 모멘텀이 있고 적절한 가격에 거래되는 종목에도 분산 투자해, 시장의 움직임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포트폴리오의 밸런스를 맞추어나가야 한다.
어닝 강도별 어닝 서프라이즈 종목 수익률(2010~2019)
어닝 강도별 어닝 쇼크 종목 수익률(2010~2019)
PER과 주가 변동의 관계
다시 한번 PER 공식을 떠올려 보면 주가는 EPS 조정으로 움직일 뿐 아니라, EPS 증가에 대한 기대치 변화로 PER까지 재조정되면서 주가 변동 폭이 확대되어 나타난다. 또한 실적이 악화되더라도 시장의 기대보다 양호한 수준이 나올 경우 주가는 상승할 수 있고, 실적이 개선되더라도 시장의 기대보다 낮은 수준이 나올 경우 주가는 하락할 수 있다.
PER의 높고 낮음에 따라 시장의 기대치가 높고 낮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PER이 높으면 현재의 이익 대비 높은 수준에 주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가 높다고, 반대의 경우 성장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PER(시장의 기대치) 수준에 따라 어닝 서프라이즈와 어닝 쇼크로 인한 주가 변동 폭이 달라질까? 해답을 찾기 위해 PER 기준으로 분류한 후 어닝 서프라이즈와 어닝 쇼크가 발생했을 때의 주가 반응 수준을 살펴보았다.
PER별 어닝 서프라이즈 종목 수익률(2000~2019)
PER별 어닝 쇼크 종목 수익률(2000~2019)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PER은 어닝 강도만큼 강력한 상관성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몇 가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어닝 서프라이즈에서는 단기적으로 저PER 주식이 고PER 주식에 비해 주가 상승률이 큰 경향을 나타냈다. 어닝을 과소평가해 낮았던 PER이 조정된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는 고PER 주식이 더 비싸지는(PER이 커지는) 모습이었다. 시장에서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이 잘 보이지 않으니 수요가 몰리면서 주가를 끌어 올린 것으로 보인다. 더존비즈온, 네이버, 카카오, 셀트리온, 엔씨소프트 같은 성장주가 대표적이다.
어닝 쇼크는 고PER주에 좀 더 명확하게 영향을 미쳤다. PER이 높다는 것은 기업 이익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반영되었다는 의미인데, 어닝 쇼크가 발생하면 그 실망감으로 주가가 더 크게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저PER주들은 어닝 기대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주가 하락률도 상대적으로 작았다.
앞의 결과와 종합해 판단하면, PER이 높고 낮음을 떠나 어닝 서프라이즈의 강도가 강할수록 주가 상승 폭이 컸다. 어닝 쇼크에서는 고PER 주식의 주가 하락이 상대적으로 커서 투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식우위 vs 정보우위
그렇다면 어닝 서프라이즈, 어닝 쇼크가 발생할 것을 예측할 방법이 있을까?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정보우위 혹은 지식우위를 가져가는 것이다.
우위를 점하는 유리한 정보에는 단기적 실적과 관련된 정보뿐 아니라 미래의 이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벤트도 포함된다. 정보우위는 IT와 바이오 업종에서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A 기업이 삼성전자에 중요 부품을 납품하기로 잠정 합의했다든지, 부품에 문제가 생겨 납품에 차질이 생겼다든지 등의 정보는 향후 기업 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보로서의 가치가 크다. 다만 사실 여부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바이오 업종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제약회사와의 계약이 임박했다든지, 라이선스 계약을 앞두고 있다든지 등의 소문이 떠도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주가가 이미 많이 올랐다면 뒤늦게 알았을 확률이 높아 투자할 경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다음은 지식우위를 가져가는 방법이 있다. 산업 혹은 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추정치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다. 예측이 매우 어려운 업종도 있지만, 업종 대부분은 계속 지켜보고 공부하다 보면 정확하지는 않아도 전혀 엉뚱한 결론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는 업종이나 기업이 있다면 내가 정보우위를 가질 확률을 높여갈 수 있다.
정보우위를 얻으려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시장의 정보를 이끄는 이너 서클에 들어가야 하고, 합법과 불법 사이의 선을 넘지 않도록 줄타기를 해야 한다. 정보에 접근하는 데는 운도 필요하다. 노력한다고 해서 꼭 얻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반면 지식우위는 노력에 따라 누구나 접근 가능하며 합법적이고 성취감이 있다. 선택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정보우위를 가져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지식우위를 가져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주식시장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싶다.
종목 발굴의 대안은 턴어라운드주 투자
2010년 이후 글로벌 경제 성장률의 하락과 함께 국내 기업들의 이익 성장 체력이 낮아지면서 성장하는 업종과 기업을 찾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내수 시장 규모가 작아 신규 비즈니스를 기대하기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 따라 성장을 찾아 해외 투자에 나선 투자자들도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국내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먼저 찾아내기가 어려울 뿐 성장하는 기업은 시장에 항상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성장하는 기업을 찾기 어렵다면 한 가지 대안이 있다. 거창하지 않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이익이 깨져 있는 기업을 꾸준히 모니터링해 이익 회복 구간으로 진입하는 시점을 찾는 것이다. 시장에서 버려지고 잊힌 기업일수록 이익이 돌아서는 변곡점에 시장의 관심이 급격하게 쏠리면서 짧은 기간에 큰 수익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턴어라운드 주식은 남들보다 발 빠르게 성장을 발견하거나 정보에 목맬 필요도 없다. 어떤 시장 상황에서든 항상 존재하니, 꾸준히 업종과 기업을 모니터링하는 인내심만 있으면 된다.
투자 스타일별 투자 패턴
일반적으로 낮은 PER의 가치주들은 지수 하락 시 하방경직성을 보이지만 취약성이 드러나는 구간이 있다. 시장 폭락이 발생하는 시기다. 초기 하락 구간에서는 하락을 방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어느 순간을 지나 투매 양상으로 바뀔 경우 수급 공백이 발생하면서 주가는 더 크게 주저앉는다. 가치투자자들이 가장 무기력해지는 구간이다.
가치투자자의 투자 패턴
게다가 저평가라고 생각해서 보유한 기업이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할 경우 꾸준히 물타기를 할 확률이 높은데, 주식 비중을 99% 채운 후에도 폭락이 멈추지 않아서 가치투자자 대부분이 하락을 온몸으로 맞게 된다. 최악의 경우는 이때 주식을 파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가치투자자는 많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저점을 찍고 반등하는 구간에서 높은 주식 비중으로 반등 폭을 누릴 수 있다.
반면 모멘텀 투자자들은 시장이 하락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할 경우 주식을 팔고 나온다. 이후 주가가 떨어지면 숏 포지션 등으로 일부 돈을 벌기도 하고, 하락장이 지속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주식을 최소한으로 가져간다. 문제는 시장이 바닥을 찍고 반등하기 시작해도 주가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바람에 반등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이다. 모멘텀 투자자가 바닥에 주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
모멘텀 투자자의 투자 패턴
어떤 투자 스타일이 절대적으로 좋고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 스타일마다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먼저 가치투자자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폭락장을 피할 수 없었더라도 반등 구간에서 손실 폭을 만회해야 한다. 하락은 다 맞고 반등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면 고통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반등 시기에 먼저 오를 만한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한다.
모멘텀 투자자는 최저점에 주식을 살 수 있다는 환상은 버리는 것이 좋다. 너무 싸다 싶으면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좋다. 하락 구간에서는 좋게 볼 만한 포인트가 잘 잡히지 않는다. 주식의 바닥은 비관론이 극에 달했을 때 형성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별 주식이 너무 싼 수준까지 하락했다면 분할 매수로 접근해야 반등 구간을 누릴 수 있다.
변동성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이번 주가 폭락으로 거액의 자산을 모두 잃는 사례가 종종 보인다. 이유는 단 하나다. 레버리지를 활용했기 때문에 반대 매매로 주식을 모두 잃은 것이다. 투자 감각이 있기 때문에 거액 자산을 모았지만, 그 자신감이 오히려 해가 되었다.
프로 투자자들도 이러한 실수를 하니 초보 투자자라면 레버리지를 피하는 것이 좋다. 레버리지를 쓴 상태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대되고, 내가 생각한 것이 맞더라도 중간에 상환 요청이 들어올 경우 강제로 포지션이 청산되면서 손을 쓸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하락장의 최고 승자는 누구일까? 단기적으로는 주식 투자를 하지 않다가 이번에 새로 진입한 투자자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주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투자자라면 험난한 주식시장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이번 하락장의 진정한 승자는 자신이 정한 원칙에 따라 자산을 배분하고 폭락을 활용해 분할 매수하면서 주식 비중을 늘린 사람이다.
주식에 투자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장기 레이스로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 자신의 투자 성향과 위험 감내 수준을 감안해 자산을 배분하고 운용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주식 투자는 단기적으로 이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자산을 잃지 않고 늘려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 〈버핏클럽 3호〉(2020년 6월 발행)에 실린 이건규(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 님의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