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은 유독 다르다.” 심혜섭 변호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국의 주식은 《현명한 투자자》가 처음 나온 1949년 당시 미국의 주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때에는 미국도 주주자본주의가 미성숙했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가 갖춰지지 않았다. 심 변호사는 한국의 비지배주주에 대한 법과 제도의 차별 탓에 한국 주식이 만성적 저평가 상태이고 한국에서 가치투자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국 경제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주 관련 법과 제도는 언제 개선될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고사성어
봄바람이 귀 밑을 스친다. 하늘이 파랗다. 내 계좌의 색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김정은이 정말 죽었을까?”
“상복을 입은 할머니가 TV에 보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데요.”
“김정은이 죽으면 누가 북한을 통치하는 거지?”
“글쎄요. 사실상 김일성 집안의 왕조나 마찬가지니 김여정이 1인자가 되지 않을까요?”
“설마, 가부장적이라는 북한에서 나이도 어리고 여성인 김여정이 통치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전파가 한창이던 지난 4월, A형의 회사 근처로 놀러 갔다. 몇 년 만의 만남이다. A형은 주식 투자로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최근 주가가 하락하자 답답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위안도 그리웠다.
한창 주식 이야기를 하다가 김정은 사망설로 관심이 옮겨 갔다. 나와 선배는 북한을 왕조국가, 유교국가라고 칭한다. 북한 스스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당연하다. 말로만 민주주의일 뿐, 본질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화국도 아니다. 인민을 위하는 것 같지도 않으며, 조선반도를 다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봄바람은 북한에서도 봄바람이다. 파란 하늘은 북한에서도 파란 하늘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제도는 다르다. 민주주의는 나라마다 다르다. 주식도 그렇다. 주식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다 같은 주식이 아니다. 한국의 주식은 유독 다르다. 한국의 가치투자자라면 대부분 상당한 자금을 한국 주식에 투자한다. 무엇이 다른지 알아야 한다.
신념과 지혜를 주는 《현명한 투자자》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 이경규
힘들 땐 책으로 위안을 받는다. 가치투자자는 늘 소수다. 가까운 동료 중 이야기를 깊이 있게 공유할 가치투자자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족에게 이야기해봐야 불안감을 줄 뿐이다. 친구들은 지금이라도 주식을 그만두고 성실하게(?) 아파트에 투자하라고 충고한다. 아파트로 돈을 번 자랑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과 대화한다. 생각해보면 가치투자에 식견이 있는 사람 중 다독가가 아닌 사람이 드물다.
“형, 요즘은 어떤 책을 읽으세요?”
“글쎄, 책이야 늘 읽는 거지만, 이렇게 시장의 변동성이 클 때면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에 손이 가네.”
가치투자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남들이 꺼리는 주식, 소외된 주식을 산다. 소외는 쉽게 없어지지 않기에 소외다. 오늘 소외되었다가 다음 날 주목받으면 그건 ‘인싸’지, 소외라고 할 수 없다. 가치투자자가 산 순간부터 오를 것으로 생각하면 욕심이다. 오를 거라는 기대도 버리는 게 좋다. 수년을 기다리는 건 예사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 같다. 기다림이야 가치투자를 할 때 이미 각오한 것이지만 너무 심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가치투자는 반복과 복리가 핵심이다. 수익이 나면 다시 투자하고 기다린다. 이걸 반복하며 복리 효과를 노린다. 하지만 기다림이 너무 오래 지속되니 반복 횟수가 준다. 복리 효과도 반감된다. 덕분에 가치투자에 뛰어든 뒤로 삶도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특히 평균적인 월급을 받으면서 적은 원금을 가지고 틈나는 대로 없는 시간을 짜내 가치투자를 하는 보통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직장은 여전히 다녀야 한다. 집과 차를 쉽게 바꾸기도 어렵다. 가족들과 호화로운 여행을 간다거나 사치스러운 물건을 살 기회도 그다지 늘어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도 고난의 연속이다. 꾸준히 우상향하는 종목은 거의 없다. 반대로 꾸준히 우하향하는 종목은 당연히 있다. 수년 전에 싸다고 평가해서 샀는데 지금은 더 싸다. 그사이 기업이 계속해서 돈을 벌었고 자본총계가 늘었는데도 그렇다. 이 와중에 장은 수시로 폭락한다. 내가 투자한 종목이 유독 폭락하는 건 ‘자연의 법칙’에 가깝다. 예상치 못하게 많은 적자가 나기도 하고, 배당이 없어지기도 하며, 횡령·배임도 발생한다.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 비지배주주에게 불리한 합병, 자산 양수도 등, 분명 상법을 배우려고 가치투자를 한 것이 아닌데 별의별 일이 연속된다.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커진다. 이 와중에 아파트값은 오른다. 같은 부서 동료가 산 아파트나 아내가 사자고 했지만 반대한 단지의 아파트가 더욱 잘 오른다. 사실 동료나 친구, 선후배가 사면 그것이 미국 주식이든, 가상화폐이든, 만병통치약을 만드는 기업이든, 가상화폐도 거래하고 만병통치약도 만드는 기업이든, 아무런 상관 없이 잘 오른다. 절대적인 손해보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 괴롭다.
가치투자는 철저한 이론에 기초한 투자 방법이다. 종교와는 거리가 멀다. 철저하게 논리적·합리적인 선택이 보상받는다. 그럼에도 종종 가치투자자들은 ‘믿는다’고 말한다. 신념을 이야기한다. 애초에 인생은 짧고 가치투자가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기간은 길다. 누구에게도 3년, 4년, 혹은 10년을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소중한 시간이고 인생이다. 그러니 신념이 있어야 의심하거나 박탈감에 빠지거나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는 오래된 책이다. 요즘 시장에 맞지 않는 주제도 많다. 하지만 저자가 겪었던 고통과 어려움을 전달받기에는 충분하다. 신념을 갖게 도와준다.
더욱이 그레이엄이 살던 시대에는 미국 또한 그다지 주주자본주의가 성숙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투기적이었고 주식의 본질을 무시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판례도 법리도 그리 쌓이지 않았다. 주주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명제가 정립된 때도 아니었다.
그레이엄이 한국의 가치투자자를 위해서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현실은 우리의 현실이다. 《현명한 투자자》는 미국 투자자들에게 고전이지만 우리에겐 고전처럼 읽히지 않는다. 현재의 문제에 실용적인 조언을 주는 투자서다. 그래서 그레이엄의 책을 읽으면 주식을 알게 되고 신념도 가지게 되니 행복하다.
한국 시장에서의 주식
“사실 국민연금은 투자자인데 경영에 참여하고 대화를 이어간다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맞지 않는 것 같다.”- 우기홍 대한항공 부사장
A형은 《현명한 투자자》를 또 읽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 형이 학교 다닐 때 《수학의 정석》을 풀고 또 풀던 것이 떠오른다. 홍성대의 책이 그랬듯 이 책 역시 여러 차례 판본을 바꾸어 출간되었다. 버핏의 인생이 바뀐 책이기에 많은 투자자들이 읽으면 좋겠다.
“이 《현명한 투자자》에서 말하는 핵심은 뭘까요?”
“지혜로운 비유와 은유가 가득하지만 무엇보다 주식의 본질을 말하는 부분이 핵심이지. 주식을 기업 소유권의 일부라고 보잖아.”
“그건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요?”
“아니, 아직 우리에게는 당연이 아니라 당위일지도 몰라.”
그레이엄은 이 책에서 “가장 사업처럼 하는 투자가 현명한 투자다”라고 충고했다. 주식은 기업의 일부를 소유하는 유가증권이므로, 스스로 기업을 소유한 것으로 알고 투자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주식은 도무지 소유권의 일부 같지가 않다. 삼성그룹의 주인은 이재용 부회장처럼, 현대자동차그룹의 주인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처럼, SK그룹의 주인은 최태원 회장처럼 느껴진다. 다른 주주들은? 모르겠다. 존재감이 희미하다.
물론 우리가 가진 주식이 소유권의 극히 ‘일부’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 오너들의 지분 역시 ‘일부’인 경우가 많다. 특히 상위 재벌 그룹들은 더욱 그렇다. 적은 지분을 가지고 피라미드 구조 혹은 아직도 해소하지 못한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채 기업집단을 지배한다. 개인 오너를 제외하더라도 상당한 지분을 가진, 심지어 총수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가진 기관투자가들도 있다. 국민연금도 있다. 그러니 적은 지분을 가진 창업자의 자손이 기업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기업은 사람이 있고 자산도 있고 사업도 있다. 노력 없이 관리되고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에 조직이 필요하다. 누군가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운영 원리도 필요하다. 잘 정해야 대리인 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이런 원리는 법과 제도가 정한다. 상법이 가장 기본이다. 이 외에도 자본시장법, 세법, 공정거래법, 형법 등 수많은 법률이 관련된다. 여기에 감독기관, 법집행의 효율성, 사람들의 가치관 등이 모여 우리가 투자하는 주식이라는 제도의 실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요소가 나라마다 다 다르기에 주식의 본질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식이 기업 소유권의 일부인 것처럼 다루어지지 않는다. 주식이 기업 소유권 중 일부라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주식 투자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건 아주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경영 참여는 감히 이사회에 진출해서 회장님과 같이 밥도 먹고 회의도 하자는 식의 참여가 아니다. 비교적 적은 강도의 경영 참여, 즉 주주제안을 하거나, 회계장부를 열람·등사하거나, 주주대표소송을 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주주가 대화를 거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도 있다. 그래서인지 일단 만나주지 않을뿐더러 1년에 한 번 어쩔 수 없이 주주총회장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잘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주주총회에서 주주가 발언할 시간과 기회를 어떻게든 제한하려 한다. 대화를 좀 이어나가려고 하면 누군가가 의사 진행을 빨리 하자고 재촉한다. 이런 누군가는 척 봐도 주주 같지 않은데 주주 자리에 앉아 재촉한다. 답답한 일이다. 수많은 상장사들이 같은 날 주주총회를 하기도 한다. 굳이 먼 지방에서 이른 시간에 주주총회를 하는 기업도 많다. 이제는 전자증권이 도입되어 섀도 보팅(shadow voting)이 법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때가 그립다고 아우성이다.
가치투자의 원리가 작동하는 근거
“결정을 내리는 순간, 회장님은 회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겁니다. 그 과정을 시작하는 순간, 이제 더는 CEO가 아니란 말입니다. 통제력과 주도권이 모두 이사회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회장님은 이사회의 이사진이 모두 회장님 편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렇죠?”
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 브라이언 버로, 존 헤일러, 《문 앞의 야만인들 – RJR내비스코의 몰락》
A형은 우리나라에서 주식이 기업 소유권의 일부라는 명제가 아직은 당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당위(Sollen, Have to)는 존재(Sein, Be)와는 다르다. 왜 꼭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대충 지금처럼 지내면 안 될까?
“왜 주식은 기업 소유권 중 일부여야 할까요?”
“너는 가치투자가 뭐라고 생각해?”
“기업의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쌀 때 사서 내재가치에 도달하면 파는 투자 방법이죠.”
“맞아. 사실 파는 건 꼭 내재가치에 도달했을 때만 하는 건 아닌데, 그 원리가 작동하길 기대하고 사는 건 맞아. 그런데 왜 가치투자자들은 주가가 내재가치에 도달하는 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왜 우리나라엔 오랜 기간 동안 내재가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리도 많을까?”
그레이엄은 현재 1달러의 가치가 있는 기업의 주식이 50센트에 팔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가치투자자는 이런 기업에 투자한다. 1달러의 가치를 지닌 기업이 50센트에 팔리는 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기에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치투자자는 시장이 언젠가는 제 가치를 알아차리고 공정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만약 시장이 계속해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원리적으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가치를 아는 누군가가 나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사람일 수도 있고, 주주행동주의자(shareholder activist)일 수도 있다. 이들은 기업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을 하게 하거나, 사업부를 분할하게 하거나, 영업 중 일부를 양도하게 하거나, 비용을 줄이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기업의 효율성을 저해했던 요인이 해소되면, 주가는 응당 도달해야 했을 내재가치에 도달한다. 자본이 효율적으로 활용되기에 사회적으로도 부가 더욱 증가된다.
오레오 비스킷과 카멜(Camel) 담배로 유명한 RJR내비스코의 주가는 1987년 60달러대 중반이었다. 이때 검은 월요일이 닥쳤다. 주가는 40달러대까지 폭락했다. 경영진은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기도 하지만 주가는 최저가를 경신한다. 주가가 내재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경영진이 잘 안다. RJR내비스코의 CEO인 로스 존슨은 돈을 빌려 RJR내비스코를 인수할 계획을 세운다. 미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되면 독립적인 이사들로 특별위원회를 꾸린다. 여기에 있는 이사들은 주주들이 가장 높은 가격을 받게 해줄 의무를 진다. 주식을 경매에 붙이는 것과 같다. 이사들이 이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골치 아픈 소송에 휘말린다. 때문에 회장인 로스 존슨조차도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하는 순간, 회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어쨌든 존슨은 주당 75달러에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제안한다. 이 소식을 들은 KKR(Kohlberg Kravis Roberts & Co.)의 헨리 크래비스와 몇몇 경쟁자들은 75달러면 존슨이 기업을 거저먹으려 한다고 생각하고 앞다투어 인수전에 뛰어들어 경쟁을 벌인다. 결국 RJR내비스코는 주당 109달러에 KKR에 인수된다.
이 이야기는 《문 앞의 야만인들》이라는 책으로 기록되었고, 출간 당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했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미국인들조차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탐욕이라고 생각했기에 야만인들이라는 볼썽사나운 칭호가 붙었지만, 어쨌든 주식의 내재가치가 실현되는 모습, 경영자조차도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는 모습, 주주들을 위해 더 높은 가격을 받아내려는 이사들의 모습이 여기 담겨 있다. 이 책뿐 아니다. 비슷한 주제의 책과 영화, 드라마가 미국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덕분인지 사람들은 가치투자의 작동 원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우리나라 사람은 어떤가? 한국의 법과 제도가 미국과 다름에도 미국에 적용되는 가치투자 책들을 오독하고 도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 주식들이 안고 있는 주된 위험, 그리고 이 주식들이 싼 이유는 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입니다.” - 워런 버핏, 앨리스 슈뢰더의 《스노볼》에서 재인용
어떤 현상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옛날엔 왕이 있고, 반상의 차별이 있으며, 오랑캐와 왜구가 쳐들어오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내재가치보다 훨씬 싼 주식이 많지만 오랜 기간 동안 내재가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경우를 보면 한숨이 나오죠. 그런 기업들에도 다들 투자자들이 있을 테니까요. 내재가치보다 싸게 투자했고 누구보다 오래 기다렸을 거예요.”
“그런 기업들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과연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일까? 그레이엄과 버핏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고통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이런 때 하는 쉬운 대답이 있어요.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이죠.”
굳이 아주 엄밀히 계산하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의 상장기업들은 매우 싼 가격에 거래된다. 이러한 현상이 너무도 오랜 기간 계속되기에 아예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버핏은 2004년 주식 중개인으로부터 한국 상장기업의 일람을 받고 저평가된 주식이 너무도 많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그는 개인 자금을 한국 주식에 투자했다. 그리고 한국 주식이 크게 저평가된 이유를 북한의 존재에서 찾았다.
지금에야 북미 대화도 다시 소강상태이고 남북 교류도 지지부진하지만, 2년 전 남과 북은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핵 포기를 진지하게 믿었다. 그럼에도 몇몇 대북 테마주들만 올랐을 뿐,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전반적인 재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은 북한 때문이라는 거짓말이 들통 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사실 많은 투자자들은 애초부터 북한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한 원인이 아니라고 짐작해왔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당시, 최근 김정은 위원장 사망설이 돌던 당시에도 우리 시장은 아주 짧은 순간 영향받고 곧바로 회복되었다.
버핏은 현재 한국에 투자하지 않는다. 번역된 상장기업 일람이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설령 번역된 일람이 없더라도 버핏 역시 인터넷을 할 줄 안다. 그런데 왜 요즘은 저평가된 주식이 너무도 많다는 것에 놀라지 않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