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의 주주서한 분석 2020] 팬데믹에서 거둔 ‘절반의 성과’
워런 버핏의 팬데믹 대응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서한과 주총 Q&A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버핏은 항공주를 전량 매도하는 등 방어에 들어갔고, 과거와 달리 저가 우량주를 대거 매수하지 않았다. 필자는 지난해 3분기에 버핏이 보여준 행보는 아쉬움을 남긴다고 분석한다. 버핏은 당시 통신사와 석유 기업, 제약주를 매수했다. 그때 특유의 유연함을 발휘해 항공주와 금융주도 사들였다면 어땠을까? 아울러 필자는 철도회사 BNSF와 에너지회사 BHE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 등을 제시한다.
2020년 한 해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가 벌어들인 순이익은 425억 달러였다. 자회사들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219억 달러, 실현 자본이득이 49억 달러, 미실현 자본이득 증가로 인한 이익 267억 달러, 자회사 및 관계회사 상각 손실이 110억 달러였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분석할 때 주주로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하는 부분이 영업이익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240억 달러 수준에서 219억 달러로 감소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침체 영향으로 판단된다. 워런 버핏은 2020년에 규모가 큰 기업을 추가로 인수하지 못한 이유도 크다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기업들의 유보이익이 증가했고 자사주를 약 5% 매입했기 때문에 주당 내재가치가 증가한 것으로 평가한다.
버핏은 투자 기업들의 유보이익이 증가한 부분을 주목한다. 유보된 이익은 사업에 대한 재투자나 주주환원의 재원으로 활용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주 가치를 높여 투자자에게 자본이득으로 돌아온다. 때문에 지배력을 확보한 기업들뿐만 아니라 일부 지분만 보유한 기업들도 지속적으로 유보이익이 증가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상각 손실 110억 달러는 2016년에 인수한 비행기 부품 제조사 프리시전 캐스트파츠(Precision Castparts Corp: PCC)에서 발생했다. 버핏은 PCC의 정상적인 수익력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탓했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업계 전체적인 불황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2016년에 인수하면서 팬데믹에 의한 불확실성까지 감안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버핏은 PCC 상각 손실을 자신이 기업을 제대로 보지 못한 이유로 돌리고 주주총회에서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정확히 “미래 평균 이익에 대한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복합 기업에 대한 시장의 우려
버크셔가 여러 제조사와 금융사들의 복합 기업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을 시장에서는 그동안 우려해왔다. 복합 기업들이 보통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버크셔 또한 그럴 것이라고 넘겨짚는 투자자도 있다. 버핏 사후 다양한 분야의 자회사들이 제대로 경영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있었다. 심지어 여러 헤지펀드는 기업 분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더 증대할 수 있다는 의견을 꾸준히 제기했다. 그러나 매번 버핏은 버크셔가 복합 기업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의 장점을 어필해왔다.
보통 복합 기업들은 규모를 키우기 위해 기업 인수에 집중한다. 시장은 대부분 효율적이어서 좋은 기업들은 비싸게 마련이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고려하면 높은 가격을 치러야 한다. 버핏은 경영진이 자사의 주가를 높이는 데 주력해 비싸게 만든 후 주식을 발행해서 높은 가격의 기업들을 인수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버크셔는 자본 배분에서 기업 인수만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가격을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인수하려는 기업의 가격이 비싸다면 굳이 인수하지 않고, 훌륭하게 경영되는 기업의 일부 지분을 주식시장을 통해 매수한다. 기업 인수나 상장주식 투자라는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기업’과 함께하는 데 집중한다. 때문에 복합 기업의 형태로 있더라도 승자의 저주 같은 덫에 걸리지 않을 수 있으니 안심하라고 주주들을 달랜다.
버크셔의 4대 보물
버크셔를 구성하는 4대 핵심 자산은 ‘보험업’, 철도회사 ‘BNSF’, 일부 지분을 보유한 ‘애플’, 에너지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Berkshire Hathaway Energy: BHE)’다. 보험업은 그 자체로 버크셔 영업이익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플로트(float)를 창출해 다른 사업들로 확장할 수 있게 해준다. BNSF는 물동량 기준 미국 최대 철도회사다.
버핏은 BNSF의 규모에 필적하는 애플 지분 5.4%를 통해 자사주의 마법을 소개한다. 버핏은 2016년 말부터 애플 주식을 매수해서 2018년 7월 초 10억 주(주식 분할 반영) 정도 보유했다. 2018년 중반 매수를 완료했을 때, 버크셔가 회사 계정으로 보유한 애플 지분은 5.2%였고 취득 원가는 360억 달러였다. 이후 연평균 7억 7,500만 달러 상당의 배당을 정기적으로 받았고, 2020년에는 일부 지분을 매도해서 110억 달러를 회수했다. 일부 매도했는데도 현재 버크셔의 애플 지분율은 5.4%로 오히려 약간 늘었다. 그동안 애플이 끊임없이 자사주를 매입 소각해 유통 주식 수를 대폭 줄여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버크셔도 자사주를 매입했기 때문에 버크셔 주주들이 보유한 애플 지분은 2018년 7월보다 무려 10%가 증가했다.
버핏은 자사주 매입을 탁월한 기업의 투자자 지분을 지속적으로 높여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방법으로 소개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가격에 매입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애플의 자사주 매입 가격 수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장기 주주들과 동업자 정신
일정한 비율로 버크셔 주식을 담아야 하는 인덱스펀드부터, 약간의 차익이라도 얻기 위해 액티브하게 움직이는 기관투자가와 개인 투자자들, 투자조합 시절부터 함께해 온 초장기적인 개인 주주들까지 버핏은 다양한 유형의 버크셔 주주들을 언급한다. 동업자 원칙을 천명하는 버핏에게 가장 중요한 주주는 당연히 초창기부터 함께한 장기 주주들이다. 이미 이런 훌륭한 주주들을 확보한 덕분에, 버크셔는 새로운 주주들을 위해 월스트리트의 비위를 맞출 이유가 없다.
필립 피셔는 1958년 저서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에서 상장회사 경영을 음식점 경영에 비유했다. 어떤 종류의 음식으로도 손님을 유치할 수 있지만, 제공하는 음식을 변덕스럽게 바꿔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잠재 고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실제로 이들이 받는 서비스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크셔는 지난 56년 동안 장기 주주들에게 동일한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것은 주주들을 ‘동업자’로 대하는 것이다. 일부 주주는 꾸준히 교체되겠지만 이런 원칙은 향후에도 지켜질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자본적 지출 규모가 큰 기업도 훌륭한 투자 대상
버핏은 시즈캔디 인수 이후, 사업을 영위하는 데 투자해야 하는 자산의 규모가 작은 사업을 선호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이후 이례적으로 자본적 지출의 규모가 큰 철도회사 BNSF와 에너지회사 BHE를 인수했다. 편견을 버리면 이런 기업들도 훌륭한 투자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BNSF를 인수하고 만 1년이 지난 2011년, 두 거대 기업(BNSF, BHE)의 순이익 합계는 42억 달러였다. 2020년 팬데믹으로 고전하는 기업이 많았는데도 두 거대 기업의 순이익 합계는 83억 달러에 달했다. 본업이 꾸준히 성장했고 연관 기업들을 인수해온 결과였다. BNSF와 BHE는 향후 수십 년 동안 거액의 자본적 지출이 필요하지만, 버핏은 추가 투자에 대한 적정 수익률을 기대하고 있다.
BNSF는 미국 안에서 운송되는 화물의 전체 규모(톤마일) 중 약 15%를 담당한다. 운송량 면에서 압도적인 1위 기업이다. 버크셔는 BNSF를 인수한 2010년 이후 유형자산에 총 410억 달러를 투자했다. 같은 기간 발생한 감가상각비를 200억 달러 초과한 규모다. BNSF는 이런 상황에서도 버크셔에 상당한 배당을 지급해서 모두 418억 달러였다. 사업과 유지 보수에 필요한 자금을 모두 지출하고 남은 현금이 매년 약 20억 달러를 초과할 때에만 배당을 지급하는 보수적인 정책 덕분에 BNSF는 버크셔의 보증 없이 저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BNSF의 CEO인 칼 아이스와 케이티 파머는 심각한 경기침체에 대응하면서도 비용을 탁월하게 관리했다. 화물 운송량이 7% 감소했으나 두 사람은 BNSF의 이익률을 오히려 2.9%p 끌어올렸다.
BHE는 배당을 지급하지 않는데, 이는 전력산업의 관행상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 전력산업은 향후 신재생에너지로의 거대한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에 설치되는 신재생에너지 사업 때문에 송전선 설비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투자를 감당할 만큼 재무 상태가 건전한 기업이나 정부 기관은 거의 없다. BHE는 송전선 설비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이후 유의미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 경제, 사법 제도를 믿고 투자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버핏은 밝혔다. 이런 투자들을 통해 BHE는 갈수록 더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선도 기업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런 부분이 규제 당국에 어필되어 더욱 강력한 경제적 해자로 작용함은 물론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버크셔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부분은 상장주식 투자 부문이 아닐까 싶다. 가장 큰 변화는 항공주를 전량 매도한 부분이다. 2019년 말 기준 25억 달러에 달하던 사우스웨스트항공 9.0% 지분, 41억 달러 규모의 델타항공 11.0%, 19억 달러 상당의 유나이티드항공 8.7% 주식을 모두 매도했다. 총 85억 달러 규모로 2019년 말 상장주식 투자 규모 2,480억 달러의 3.4% 수준이다. 또한 금융주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185억 달러 규모의 웰스파고 8.4% 지분과 83억 달러의 JP모간 1.9%, 28억 달러의 골드만삭스 3.5%를 비워내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 지분을 확대했다. 버크셔 4대 보물인 애플 지분은 11.8% 덜어냈다. 통신 기업 버라이즌 86억 달러, 셰브런 40억 달러, 이토추상사 18억 달러, 제약사 머크와 애브비 주식을 신규로 편입했다.
2020년 말 현재 시장 평가액이 가장 큰 보통주 15종목
매수 가격 기준으로 버크셔의 상장주식 투자 규모는 2019년 말 1,103억 달러에서 1,086억 달러로 소폭 줄었으나, 주가가 상승해 시장 가격 기준으로는 2,480억 달러에서 2,811억 달러로 증가했다.
2020년 2분기 13F 공시에 항공주가 없으니, 항공주들은 팬데믹으로 인한 3월의 폭락장에서 전량 매도한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2019년 4분기부터 비중을 줄였고, JP모간은 2020년 2~3분기에 비워냈다. 웰스파고는 2020년 하반기에 전량 매도했다.
신규 기업들은 대부분 2020년 하반기에 편입되었다. 버라이즌과 제약주들은 2020년 3분기 13F 공시에 새로 등장했고 셰브런과 이토추상사도 3분기에 신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