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에이션, 백전백승보다 백전불태의 태도로


기업의 가치를 구하는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채권의 가치를 구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미래의 현금흐름을 각각 할인해 더하면 된다. 그러나 현금흐름이 정확히 표시되어 있는 채권과 달리 기업이 미래에 창출할 현금흐름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를 고려할 때 밸류에이션은 기업의 내재가치를 정확히 구하려는 수단이라고 보기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식하는 것이 더 낫다. 밸류에이션은 매수하기에 얼마나 안전한 가격인지, 틀렸을 때 손실을 볼 위험은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이 과정을 통해 틀려도 조금밖에 잃지 않고, 맞으면 크게 벌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에만 투자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애매모호한 대상에는 투자하면 안 된다. 자신이 잘 알고 있고 주가가 낮고 사업의 질도 좋은 기업을 선별해 투자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 투자하되, 점진적으로 능력의 범위를 넓혀나가야 한다. 또한 관심 있는 기업은 확신이 생길 정도로 집요하게 분석해야 한다. 집요한 분석을 통해 확신이 생기고, 확신이 생겨야 인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3년 안에 확실히 실적과 가치를 증대시킬 요인이 있는 기업을 찾아야 한다.

채권의 가치

채권에는 이자가 얼마인지, 원리금을 언제 돌려받을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채권의 가치는 비교적 정확하게 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에게서 3년간 100억 원을 빌린다고 생각해보자. 1년마다 이자로 2%를 지급하고 3년이 되는 날 원금을 갚는다면 이 채권에서 나오는 현금흐름은 다음과 같다.

2억 원(1년 차 이자) + 2억 원(2년 차 이자) + 2억 원(3년 차 이자) + 100억 원(원금) = 106억 원

이 채권을 매수했던 투자자가 돈이 필요해 매도하려고 보니 시장 이자율이 연 4%로 올라서 연 4%로 할인해야 한다면 이 채권의 가치는 다음과 같이 변한다.

2억 원/(1+4%) + 2억 원/(1+4%)2 + 2억 원/(1+4%)3 + 100억 원/(1+4%)3 = 94.4억 원

복리로 4% 수익을 거두고 싶은 사람은 이 채권을 94.4억 원에 사야만 원리금을 모두 받았을 때 106억 원이 되기 때문에 이 가격에 거래가 성립된다.

94.4억 원 × (1+4%)3 = 106억 원

기업의 가치

기업의 가치도 이론적으로는 채권의 가치를 구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기업이 미래에 창출할 모든 현금흐름을 더해서 구한다. 이때 미래의 현금흐름은 적당한 할인율로 할인해 현재 가치로 바꾸어야 한다.

기업의 내재가치는 기업이 미래에 창출할 모든 현금흐름을 정확하게 안다고 할 때 구할 수 있는 수치다. 투자자가 할 일은 주식이 채권처럼 생각되도록 기업의 이자율을 주식 증서에 적어주는 것이다.1 하지만 받게 되는 금액이 증서에 정확히 적혀 있는 채권과 달리, 기업의 현금흐름은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사업은 수많은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금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해도 할인율을 얼마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래서 많은 투자자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주가수익배수(PER)를 사용한다. 올해 또는 내년의 주당순이익(EPS)과 주가의 비율을 나타내는 방법인 PER은 직관적이고 적용하기 쉽다.

적정 주가 = EPS × 적정 PER
적정 시가총액 = 순이익 × 적정 PER

하지만 PER은 현재의 주당순이익과 주가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에 불과해서 그 자체로는 기업 가치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적정 PER을 적용하기 전에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과 할인율이 기업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적정 PER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몇 배의 PER을 정할 것인가

올해 순이익이 100억 원인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성장하지 않고 매년 100억 원의 이익을 내고 매년 100억 원씩 배당으로 나눠준다. 할인율 10%를 적용하면 이 기업의 가치는 표 1과 같이 구할 수 있다.

기업 가치를 구하기 위해서는 주주이익을 사용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PER과의 관계만을 보기 위해 편의상 순이익을 사용했다. 주주이익은 아래와 같이 구한다.

주주이익 = 순이익 + 현금 유출이 없는 비용(감가상각비 등) – 자본적 지출 평균값(이익을 유지하거나 증가시키기 위해 지출하는 투자 비용) – 운전자본의 증가

순이익이 늘지도 줄지도 않고 꾸준히 유지되는 기업은 적정 가치를 PER 10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위의 방법으로도 PER 10배가 나온다. 만약 이 기업을 사서 100% 시세 차익을 얻으려는 투자자가 있다면 PER 5배인 시가총액 500억 원에 매수해야 한다.

이번에는 올해 순이익이 100억 원이고 향후 7년간 매년 15%씩 성장하는 기업을 생각해보자. 8년째부터는 성장이 멈추고 유지되며, 적용하는 할인율은 10%라고 하자. 이 기업의 가치는 표 2와 같이 구할 수 있다.

적정 가치는 2205억 원이고 올해 순이익 기준으로는 PER 22배다. 100% 시세 차익을 얻으려면 PER 11배인 시가총액 1102억 원에 매수해야 한다.

다른 조건은 동일하고 향후 7년간 매년 20%씩 성장하는 기업은 어떨까? 이 기업의 가치는 표 3과 같이 구할 수 있다.

이 기업의 가치는 2845억 원이 되고 올해 순이익 기준 PER은 28.4배다. 100% 시세 차익을 얻으려면 PER 14배인 시가총액 1422억 원에 매수해야 한다.

성장하는 기간이 더 짧거나 할인율이 더 높다면 적정 시가총액은 더 낮아진다. 반대로 성장하는 기간이 더 길거나 할인율이 더 낮다면 적정 시가총액은 더 높아진다.

할인율의 문제

지금까지의 논의에서는 할인율을 10% 적용했는데 5%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표 3에서 다른 조건은 동일하게 두고 할인율만 5%로 바꾸면 표 4와 같다.

기업의 가치는 2845억 원에서 6330억 원으로 약 122% 증가했다. 표 1의 성장 없는 기업에 적용하는 할인율을 5%로 낮추면 기업 가치는 1000억 원에서 2000억 원으로 100% 증가한다. 시장의 할인율이 낮아지면 고성장이 기대되는 기업의 가치가 더 상승한다.

그렇다면 할인율은 얼마를 적용하는 것이 적당할까? 시장에서는 ‘무위험 이자율+인플레이션율’을 적용한다. 지난 10년간 무위험 이자율인 국채 10년물 금리와 인플레이션율이 낮게 유지되다 보니 시장에서 적용하는 할인율이 장기간 낮은 상태다. 미국 주식시장이 오랜 기간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은 기업들의 실적이 증가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 할인율이 낮아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수적인 투자자는 시장의 할인율이 내려간다고 해서 기업 가치를 구할 때 자신이 적용하는 할인율을 같이 내리면 안 된다. 기업 가치를 계산할 때 사용하는 할인율은 가까운 미래 1~2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먼 미래에도 적용된다. 지금은 무위험 이자율과 인플레이션율이 낮지만 이후 오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보수적인 투자자는 무위험 이자율+인플레이션율과 투자자 자신이 적용하는 할인율 하한 중 높은 값을 할인율로 사용해야 한다.2

엑셀을 활용해 앞에서 살펴본 방법으로 현금흐름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면서 적정 가치와 PER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연습해보고, 실제로 기업의 과거 재무 데이터를 적용해 구한 가치와 시장에서 거래됐던 시가총액을 비교해본다면 적정 PER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밸류에이션의 어려움

앞에서는 성장이 PER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몇 년간 성장률이 일정하다고 가정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성장 외에도 다양한 요인이 기업의 현금흐름과 내재가치에 영향을 준다.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변할 수 있고, 원자재나 원가 변동에 따라 수익성이 변할 수 있다. 경쟁자의 행동에 따라 공급이 늘거나 줄어들 수 있고, 예기치 못한 경제 변화로 수요가 변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규제가 등장하면서 기존 생태계를 밑바닥부터 변화시킬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업의 내재가치는 우리가 기업의 미래를 모두 안다고 가정했을 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는 불확실하다. 우리는 기껏해야 내재가치가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 추적해나갈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방법

첫째, 투자자는 능력의 범위 안에 머물러야 한다. 능력의 범위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고, 모르는 것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사고와 태도를 뜻한다. 투자자마다 지식과 경험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능력의 범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무엇이 수익성과 가치에 영향을 주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변수들이 변할 때 수익성과 가치가 어떻게, 얼마나 변할지 알고 있어야 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산업 하나하나, 기업 하나하나를 완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시행착오를 거쳐 경험을 쌓으면서 능력의 범위를 자연스럽게 넓힐 수 있다.

둘째, 치기 쉽고 좋은 공을 노려야 한다. 투자하다 보면 다양한 기회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때 애매모호한 대상은 배트를 휘두르지 말고 흘려보내야 한다. 기업의 방향성이 불확실하고 앞날이 예측되지 않는데도 단순히 몇 가지 지표상으로 싸 보인다고 해서 투자하면 안 된다. 이런 기업은 투자해봐야 비중을 높일 수 없고 조금 오르면 팔아버리게 된다. 주가가 빠지기 시작하면 판단하기도 힘들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잘 알고 한눈에도 싸 보이고 사업의 질도 좋은 기업들에서 큰 수익이 나왔다. 애매한 공이 오면 조바심 내지 않고 흘려보내도 머지않아 좋은 투자 기회가 온다. 경험이 부족한 투자자는 좋지 않은 기업들에 물려서, 막상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의미 있게 투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보수적인 기준으로 투자해야 한다. 밸류에이션은 기업의 내재가치를 정확하게 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다. 목표 가격을 산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도 아니다. 기업의 가치가 매수하기에 얼마나 안전한지, 틀렸을 때 손실을 볼 위험은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하는 절차다.3 따라서 긍정적 시나리오, 중립적 시나리오, 부정적 시나리오에서의 가치를 각각 구한 다음, 각자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주관적인 확률을 부여해 가치를 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내가 틀리면 조금밖에 잃지 않고 맞으면 크게 벌 수 있는 상태일 때 투자한다. 훌륭한 장수는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이기려는 장수가 아니라, 백 번 싸워도 백 번 모두 위태로운 상태에 빠지지 않으려는 장수다. 투자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넷째, 적어도 내가 투자하는 기간에 기업 가치가 상승할 만한 요인이 있어야 한다. 투자 아이디어가 확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3년 정도를 생각했을 때 확실히 실적과 가치를 증가시킬 만한 요인이 있는 기업을 찾아 매수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역발상 투자는 투자하기 전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 중에서 기회를 찾으라는 의미이지, 투자한 후에도 어려움이 지속될 기업에 투자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순히 지표만 싼 기업은 ‘싼 게 비지떡’일 가능성이 높다. 남들은 싼 비지떡으로 볼지 몰라도, 나는 싸지만 고급 음식이라고 알아볼 만한 요인,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도 고급 음식으로 인식하게 될 요인이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보유하면서 즐길 수 있는 명품을 수집하는 마음으로 투자할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

다섯째, 투자하는 기업을 제대로 알기 위해 집요해져야 한다. 주식 투자에 가장 중요한 심리적 요소는 인내심이고 그 인내심은 기업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그리고 기업에 대한 확신은 집요한 분석에서 나온다. 집요한 분석이야말로 성공 투자로 이끄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기업의 최근 실적을 가지고 먼 미래의 현금흐름까지 포함하는 내재가치를 판단한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틀리기 쉽다. 하지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투자자에게 미래는 불확실성 속에서 좋은 기회를 보여준다.

내재가치는 고정된 가치가 아니며 기업을 바라보는 투자자의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또 특정한 하나의 수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범위로 존재한다. 미래는 불확실하며,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내재가치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기업을 바라볼 때 여러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서 생각해야 하며, 부정적 시나리오에서도 잃지 않을 가격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백전백승보다는 백전불태의 자세로 기업의 가치를 추적해나간다면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주식시장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아 성공한 투자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