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투자, 지속가능성에 투자하는 가장 쉬운 방법
기업의 지속가능성 요소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의 알파벳 이니셜을 따서 ESG로 요약된다. 2016년 하버드대학에서 나온 연구에 따르면 중대한 ESG 이슈 관리를 잘한 그룹의 주가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투자자의 몫은 기업이나 투자 대상의 ESG를 평가해 투자에 반영하는 것이다. 정승혜 모닝스타코리아 상무는 개인 투자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ESG 투자 방법으로 패시브 상품인 ETF나 인덱스펀드를 활용하는 것을 권한다.
개인 투자자에게 환경·사회·거버넌스(ESG) 투자 전략을 설명하는 원고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편하게 수락했지만, 원고를 준비하다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 ESG 투자는 국민연금과 몇몇 운용사를 제외하고는 기관투자가들조차 처음 접하는 터라, 투자 방법은 고사하고 용어와 투자 범위마저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기관투자가도 이런 상황인데 개인 투자자에게 ESG 투자 전략을 설명하는 것이 내 능력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고를 여러 번 고쳐 쓰고, 몇 시간 동안 쓴 것을 통째로 날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개인 투자자가 궁금해할 만한 것들, 그리고 조금은 어렵지만 개인 투자자라도 투자자로서 꼭 알아야 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이 결론에 도달하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고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ESG 투자가 무엇이며 ESG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성과는 좋은지 나쁜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투자 판단 기준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18세기 방적기 혁명과 21세기 자라 매장의 헌옷 박스
여름 세일이 시작됐다. 패션 유튜버들은 저마다 제조직매형의류(SPA) 브랜드에서 세일 기간에 살 만한 패션 아이템들을 소개하느라 경쟁이 치열하다. 가장 인기가 많은 브랜드인 자라와 H&M의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신상품과 세일상품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이 ‘지속가능성’ 섹션이다. 이들 브랜드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에 헌옷 박스를 비치했다. 헌옷 박스만으로 얼마나 환경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속가능성을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물이라고 생각한다.
18세기에 시작된 방적기 개량 혁명에 따라 의류업계가 대량생산으로 비용을 크게 줄인 덕분에 누구나 큰돈 들이지 않고도 세련되고 질 좋은 옷을 실컷 입을 수 있게 됐다. 옷으로 신분과 빈부를 가늠하기가 전보다 어려워졌으니 사회적으로 평등(?)을 실현하게 된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량생산이 실현한 평등의 다른 편에는 지구가 감당하기 벅찬 쓰레기가 쌓이게 된 것도 현실이다.
‘패스트 패션’ 현상을 업은 패션산업이 전 세계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2018년 〈그린포스트코리아〉에 기사로 실렸다. 패션산업이 항공기와 선박을 합한 것보다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기사는 프랑스 환경 매체 〈노트르플라넷〉을 인용해, 유럽 폐기물 감축 주간을 계기로 프랑스자연환경연합이 환경에 섬유산업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의류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특히 값싼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 투자하면 안 되는가? 기업이 선하다는 명분으로만 투자할 수는 없는데, 명분을 빼고 투자 대상 기업의 ESG는 무슨 수로 평가할 수 있는가?
ESG와 지속가능성, 둘은 어떤 관계인가?
투자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용어를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자주 느낀다. 사회책임투자, (사회는 떼어버린 그냥) 책임투자, 지속가능성, ESG 등은 이름만 다른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다른가? 문제는 이름만 여러 가지가 아니라 이름에 따라 다루는 범위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탄소중립까지 끼어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시험을 목전에 둔 학생이 공부할 의지는 있으나 무슨 과목인지, 시험 범위가 어디인지 모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사회책임투자는 투자할 때 수익률과 리스크만 고려하는 전통적인 투자와 달리 사회를 좀 더 좋아지게 하는 다양한 측면을 투자 프로세스에 반영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돈에 대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윤리적 전통에 그 원형이 나타난다(김창수, 사회책임투자,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즉,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신념, 또는 사회적 가치를 투자에 반영하는 것으로, 투자 성과는 좋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대신 투자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종교적 가치에 따라 술이나 담배 제조사에 투자를 금지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을 투자에 충분히 반영하는 역할만 했을 뿐, 신념만으로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지속가능성 투자는 투자 대상이 지속가능해야 투자도 지속가능하고 성과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선순환적인 개념이다. 지속가능성은 지구와 인류의 지속성을 뜻하고, 기업이 그것을 많이 감당하라는 것이고, 투자자는 그런 기업을 지지해 지속가능성을 같이 이뤄가자는 뜻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정부와 공공이 큰 틀을 만들고 규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속가능성 투자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7년 ‘유엔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 위원회’에서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정의했다. 당시 위원회의 위원장이던 노르웨이 수상 브룬트란트의 이름을 딴 ‘브룬트란트 보고서’로도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사회책임투자와 지속가능성 투자가 혼용되는데 지속가능성 투자를 더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나는 편의상 지속가능성을 지구와 인류(이하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으로 구분한다.
지구의 지속가능성 요소는 2015년 유엔의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에 녹아 있고, 기업의 지속가능성 요소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의 알파벳 이니셜을 따서 ESG로 요약된다. 투자자의 몫은 기업이나 투자 대상의 ESG를 평가해 투자에 반영하는 것이다. ESG 관리를 통해 지속가능성 노력을 잘하는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기업의 지속가능성, 더 나아가 지구와의 지속가능성에 힘을 싣는 것이다.
주식을 통해 기업에 투자하는 활동을 생각해보자. 지금까지는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기업의 가치를 토대로 했다면, 앞으로는 기업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투자 기준이 된다.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은 지속가능성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은 기업이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이슈에 얼마나 노출돼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완전히 분리돼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에서 기업이 담당하는 역할이 워낙 중요하고 정부의 역할보다 더 큰 경우도 많아,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공공 부문을 제외하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합치면 거의 지구의 지속가능성이 될 것이다. 여기에 투자와 금융이 어떻게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지속가능성 효과가 더 커질 수도 있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지속가능성 투자의 성과가 더 좋은가?
투자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수익률이다. 과거 20여 년간 ESG와 주가 수익률 등 기업의 재무 성과를 연구한 논문은 2,000편이 넘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중 약 70%는 긍정적인 상관관계를, 약 30%는 중립 또는 부정적인 상관관계를 보고했다. 긍정적인 결론을 낸 논문이 훨씬 많지만 부정 결과도 30%는 된다. 왜 상반된 결과가 혼재하는 것일까?
이런 가운데 주목할 만한 논문이 2016년 하버드대학에서 나왔다. 이전에 발표된 논문들은 ESG 이슈와 재무 성과를 연구했을 뿐, ESG 이슈를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논문은 ESG 이슈를 중대한 것과 중대하지 않은 것으로 나누고 이슈별로 기업의 성과가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그룹을 4개로 나누어 기업의 주가 수익률을 측정했다(그림 1 참조). 그랬더니 중대한 ESG 이슈 관리를 잘한 A 그룹의 주가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즉, 이슈의 중대성과 기업의 관리 수준에 따라 주가 수익률이 달랐다. 여기에서 얻은 결론은 “중대한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성과가 우수한 기업은 저조한 기업을 크게 능가한다. 이것은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투자가 주주가치 제고라는 것을 시사한다”이다.
[그림 1] 중대한 & 중대하지 않은 ESG 이슈에 대한 성과별 주식 초과수익률(%)
투자자는 두 가지를 기억하자. 첫째, ESG 이슈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기업별로 중대한 ESG 이슈가 무엇인지 규명하고, 그것을 잘 관리해 효율적으로 경영하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둘째, 중대하든 덜 중대하든 ESG 이슈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수익률에서 손해 보지 않는다.
이번에는 실제로 ESG 전략으로 운용된 펀드의 성과를 살펴보자. 국내에 설정된 공모펀드 중에서 ESG 펀드들이 리스크조정수익률인 스타등급을 얼마나 받았는지 살펴보았다(그림 2 참조). 회색은 공모펀드 전체의 분포이고, 녹색은 ESG 펀드의 분포다. ESG 펀드는 별의 개수가 많은 왼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이는 스타등급을 높게 받은 펀드가 일반 펀드에 비해 ESG 펀드에 조금 더 많다는 뜻이다. 물론 스타등급 2개나 1개를 받은, 성과가 안 좋은 ESG 펀드도 있다. 그러나 그 비중이 일반 펀드보다 낮다. 이 결과는 고무적이다. 왜냐하면 ESG 펀드의 성과가 점점 더 좋은 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5년 전쯤에는 이 그래프가 스타등급 2개와 1개 쪽으로 조금 더 치우쳐 있었다.
[그림 2] 한국 공모펀드 중 ESG 펀드의 스타등급 분포도(%)
ESG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 투자 대상인 기업의 목표와 가치가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주식 투자 방법에서도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기본 가정이다. 이것을 영속성이라고 한다. 채권 투자에서는 청산가치를 따지지만, 주식 투자에서는 기업의 영속성을 가정하고 가치 평가를 한다. ESG 투자가 새로운 개념이다 보니 주식 투자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지만, 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은 주식 투자에서 가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해야 배당도 꾸준히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업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조건이 바뀌고 있다. 투자 관점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기업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학교에 다닌 사람들은 기업의 목적이 이윤 추구라고 배웠다. 이는 1970~1980년대에 경제학의 주류를 형성한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마이클 포터가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을 주장하면서 기업 활동과 목표에 대한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다. 즉, 기업이 망하지 않고 지속가능하려면 이윤 추구를 넘어서 공유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3가지 핵심 요소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ESG의 요소별로 예를 들면 환경은 주로 탄소 배출과 쓰레기, 토지 사용에 대한 것이고, 사회는 젠더 평등, 노동자 인권 등에 대한 이슈다. 기업 거버넌스는 이사회 구조, 대주주뿐만 아니라 소액주주의 소유권 및 권리, 이사회의 구성, 재무 보고 등이 포함된다.
ESG 투자가 기반으로 하는 기업 가치의 핵심은 기업이 환경의 좋은 관리자이며 일하기 좋은 곳, 안정하고 유용한 상품의 생산자가 되어야 하고, 청렴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는 믿음에 있다. 이 믿음을 낳은 아이디어는 투자자가 기업이 지속가능한 속성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장려하고, 기업이 환경과 사회 문제의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 있으며, 투자자와 기업은 결국 전체 금융 시스템과 글로벌 경제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틈새 활동이었던 사회책임투자와는 달리 ESG 투자는 개인 투자자를 포함한 모든 계층의 투자자에게 널리 퍼지고 있다. 기업이 환경 및 사회적 과제를 관리하는 정도와 거버넌스 관행에 대한 평가가 모든 투자 분석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