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가치투자자가 기술적 분석을 비판한다. 여기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아무런 펀더멘털 분석 없이 주가의 움직임만 예측하려고 하는 차티스트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러나 가치투자를 더욱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면 기술적 분석을 외면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한다. 즉, 원칙적으로 기본적(펀더멘털) 분석에 근거하되, 간과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기술적 분석을 통해 보완하는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시한다.
기술적 분석(technical analysis)이란 주가의 움직임을 차트로 나타내고 그 움직임을 분석해 앞날을 예측하는 기법을 말한다. 순수한 의미의 기술적 분석은 주가의 움직임에 분석의 초점을 맞출 뿐, 주식의 내재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주로 차트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기술적 분석을 차트 분석, 기술적 분석가를 차티스트라고 한다.
일본식 봉차트 분석에서 비롯된 ‘패턴 분석’이 대표적인 기술적 분석이다. 주가 움직임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물리학의 운동 법칙에서 ‘모멘텀’이라는 용어를 차용한 모멘텀 투자 기법도 기술적 분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주가 움직임의 방향을 예측해 상승 추세를 보이는 종목에 베팅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는 점에서, 기술적 분석의 대표적인 전략으로 추세 추종 기법(trend following)을 꼽을 수 있다. 또 “상승이 예상될 ‘때’ 매수했다가 하락이 예상될 ‘때’ 매도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마켓 타이밍(market timing, 시점 선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켓 타이밍의 더 정확한 의미는 ‘상승이 예상되거나 상승 추세를 타고 있는 종목을 매수했다가 하락하기 직전에 매도하겠다’로 해석할 수 있다.
기술적 분석에 대해서는 투자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잭 슈웨거가 쓴 《타이밍의 마법사들》을 참조하면, 짐 로저스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적 분석으로 부자가 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물론 기술적 분석 정보를 팔아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말이죠.” 반면에 마티 슈워츠는 이렇게 반박했다. “‘기술적 분석으로 부자가 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주장은 솔직히 웃기는 소리죠.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예요. 제가 9년간이나 기본적 분석을 활용했지만, 정작 부자가 된 건 기술적 분석 덕분입니다.”
‘닭 플레이’ 등 기술적 분석에 대한 비판들
투자자 대부분은 한 번쯤은 차트 분석에 심취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워런 버핏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앤드류 킬패트릭이 쓴 《워런 버핏 평전 ① 인물》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버핏은 이미 6~7세 때 주식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8세가 되면서 아버지의 서가에 꽂혀 있던 주식시장과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에 대한 광적인 관심은 그 후로도 이어졌고, 주가의 등락을 차트로 만들곤 했다. 숫자와 돈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푹 빠져들었다. 훗날 버핏은 차트 작성을 비롯한 기업의 펀더멘털 분석과 무관한 작업들을 치킨트랙(chicken track)이라고 부르곤 했다.” 이제 버핏은 ‘닭 플레이’라고 부를 정도로 차트 분석을 혐오하고 있다.
대니얼 피컷과 코리 렌이 공저한 《워런 버핏 라이브》를 참조하면, 1987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요즘 펀드매니저들의 자질을 어떻게 평가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멍거는 이렇게 대답했다. “최악의 실수는 근사한 그래프 때문에 발생합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건전한 상식입니다.” 물론 여기서 ‘그래프’가 반드시 기술적 분석을 두고 한 이야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술적 분석을 의미했을 가능성이 크다.
효율적 시장 가설 학파도 기술적 분석에 비판적이었다. 차트 분석을 통해 투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시장이 비효율적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네이트 실버가 쓴 《신호와 소음》을 참조하면, 효율적 시장 가설 학파의 수장인 유진 파마는 차티스트들을 무자비할 정도로 비판했다. “‘차티스트’라는 용어도 파마가 붙인 것인데, 이들은 과거의 통계만으로 주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회사가 전년도에 이익을 기록했든 손실을 기록했든, 비행기를 팔든 햄버거를 팔든 상관없다. 차티스트의 작업을 좀 더 의례적으로 표현한 용어가 ‘기술적 분석’이다. 우리는 이 불쌍한 차티스트들에게 약간의 연민을 가져야 한다.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책에서 기술적 분석에 대한 비판은 이렇게 이어진다. “주식시장에서의 기술적 트레이딩의 많은 부분이 상대를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이른바 ‘고양이와 쥐 사이의 역학(cat & mouse dynamic)’을 따른다. 하지만 이들이 기반으로 하는 패턴은 얼마든지 붕괴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 패턴은 다른 투자자가 알아차리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돈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으로 끊임없이 옮겨가고, 전체 파이의 크기는 점점 줄어든다. 증권사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거래비용을 끊임없이 떼어가기 때문이다.”
버튼 맬킬은 《랜덤워크 투자수업》에서 기술적 분석을 이용해서 매매 시점을 선택하는 것은 특히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주식시장에는 장기 상승 추세가 있으므로 주식 대신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락장을 피하려고 빈번하게 현금을 대량으로 보유하다 보면 시장이 갑자기 상승하는 기간에 주식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세이번 교수는 30년 동안 주가 상승의 95%가 거래일 중 1%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1%를 우연히 놓쳤다면 주식시장이 주는 푸짐한 장기 수익률은 모조리 사라졌을 것이다.”
데이비드 드레먼은 《데이비드 드레먼의 역발상 투자》에서 자신의 친구인 버태닝 바르탕의 말을 이렇게 소개했다. “기술적 분석가들은 과거가 미래 주가의 서막이라고 핵심 가설을 세운다. 순수한 차티스트는 그래프에 나타나는 곡선과 숫자들을 연구하면 시장의 핵심적인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수도사처럼 헌신적으로 연구한다. 이들은 공장이 폭발하거나 이익이 급격히 늘어나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기술적 분석이 사업의 실체와는 무관하다는 비판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말이다.
험프리 닐은 《역발상의 기술》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소망하는 대로 차트를 해석한다고 비꼬았다. “원하는 결과에 따라 패턴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낙관주의자들은 차트를 낙관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비관주의자들은 차트를 보면서 시장을 하락세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많은 기술적 분석가들은 시장 추세를 전망할 때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개인적 견해에 따라 기술적 움직임을 분석하곤 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소망에 따라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렇게 기술적 분석에 비판적인 분위기는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최준철과 김민국은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에서 이렇게 말한다. “차트는 과거의 가격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투자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적 분석의 문제는 차트를 참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데이터와 차트에서 나타내는 신호를 토대로 미래의 주가를 예측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적 분석도 투자방법의 한 가지 형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모든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시작하면서 기술적 분석이 투자방법의 전부이고, 이것만 터득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적 분석을 강하게 거부하는 국내 투자자도 있다. 박성민은 《백만불짜리 개미경제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술적 분석은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두 변수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려는 유사과학이다. 나는 차트를 보고 투자하는 기술적 분석으로 돈을 번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기술적 분석은 허황된 믿음이다. 현대인들이 인과관계 파악에 가장 능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방끈이 길수록 자기 확신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차트는 흘러간 강물이다. 주식 시장은 기억력이 없다.”
하워드 막스는 《투자에 대한 생각》에서 증권 투자에 이용되는 모든 방법을 크게 두 가지 기본적인 유형으로 나누었다.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는 기본적 분석과 증권 가격의 동향을 분석하는 기술적 분석이다. 증권의 기본적인 내재가치를 분석해서 가격이 가치와 동떨어질 때 매매하거나, 아니면 미래의 증권 가격 동향을 예측하여 매매를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기술적 분석을 믿지 않는다. 오늘날 과거의 주가 패턴에 대한 분석은 기본적 분석을 보충하기 위해 사용되고는 있지만, 가격 동향을 위주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전보다 많이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