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자본시장의 힘으로 해결하라
‘국가가 조세, 자발적 기부, 복권 발행, 국채 발행 등을 재원으로 ‘수탁자 자본주의(fiduciary capitalism)’에 입각해 ‘초대형 기금(유니버설 펀드)’을 설립하고 국내 기업을 포함한 전 세계 우량 배당주에 투자해 그 과실을 전 국민이 균등하게 나누자. 모든 국민은 기금 배당권을 가지며 중학교를 졸업한 배당권자에게는 기금이 투자한 기업 주주총회의 의결권이 무작위로 배정된다.’ 이는 이한상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가 제안하는 ‘성장배당 플랜’의 개요다. 기본소득·기본자산 방안은 매년 세금을 재분배하는 반면 성장배당 플랜은 사회적 공유 자산을 축적해 매년 그 성과를 나눈다. 성장배당 플랜은 또 국민의 기업 의사결정 참여와 장기적 관점의 ESG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현재 논의 진행 중인 전 국민 기본소득제의 정책적 대안으로 가칭 ‘대한민국 성장배당 플랜’을 제안한다. 기본소득은 다양한 형태로 제시되지만 공통점은 국가가 조세 등 재원을 통해 전 국민에게 충분한 현금을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내가 제시하는 대한민국 성장배당 플랜은 국가가 조세, 자발적 기부, 복권 발행, 국채 발행 등을 재원으로 ‘수탁자 자본주의(fiduciary capitalism)’에 입각해 ‘초대형 기금(유니버설 펀드, universal fund)’을 설립하고 국내 기업을 포함한 전 세계의 우량 배당주에 투자해 그 과실을 전 국민이 균등하게 나누는 제도다.
모든 국민은 출생 및 국적 취득 시 이 기금의 무조건적 배당권을 가지며, 사망 혹은 국적 이탈 시 배당권을 잃는다. 배당권은 양도, 매매, 저당의 대상이 아니며 상속할 수 없다. 대한민국 성장배당 플랜은 기업을 사회의 공공선을 달성하는 도구로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관점에서, 전 국민의 경제적 이익을 기업 의사결정 ‘관여(engagement)’를 통해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성과와 연동한다. 구체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배당권자는 해마다 무작위로 배정되는 하나 이상의 기업에서 주주총회 의결권을 행사할 자격을 얻는다. 기금은 의사결정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경쟁하는 세 개 이상의 의결권 자문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동시에 공교육 교과 과정에 자본주의, 시장경제, 기업 활동 및 금융 교육을 포함해 국민인 주주들이 불확실성하의 의사결정 능력을 향상하도록 돕는다.
기금은 주식 매매에 따른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영구히 지속된다. 특정 주식의 기금 편입과 퇴출은 오직 전 국민의 ESG 요구 수준에 따라 초장기 투자자 관점에서 결정된다. 이 제도를 통해 국민의 복지 및 공공 부문의 민간 규제가 기업의 성장과 금융시장의 원활한 작동과 연동되도록 제도를 진화시킬 정치적 유인을 국민에게 제공한다. 이 기금은 자본주의 안의 작은 공산주의 시스템이다. 전 국민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자본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이 플랜은 사회의 가장 유능한 자들이 재능에 대한 보상을 마음껏 누리는 자유시장경제 중심의 자본주의를 추구한다. 동시에 모든 국민이 자본의 주인이 되어 그러한 생산성 향상의 결과인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는 사회적 가치를 달성할 것이다. 이 제도는 새로운 세상을 열기에는 작은 시도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작은 희망의 씨앗으로 K-자본주의의 시발이 될 것이다.
기본소득 논쟁과 문제의식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자 간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 정책이 논쟁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9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앤드류 양 후보가 기계화, 자동화로 일자리가 파괴되고 임금이 감소하는 것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전 국민에게 자유배당으로 월 1,000달러 정도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 노동통계국의 통계를 인용해, 오히려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5년 이래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며 이는 기본소득 지급 주장의 전제인 기계화 및 생산성 증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형적인 민주당 진보파인 크루그먼 교수는 재원으로 논의되는 연간 3조 달러가 있다면 그것을 시급한 사회안전망 강화와 복지에 써야 하며, 임금 감소와 불평등은 약화된 노조의 협상권 강화로 대응해야 하고, 기본소득은 중도좌파의 현실 도피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0년 정부의 재난특별지원금 지급 이후, 유력 여야 주자들이 기본소득, 안심소득, 공정소득 등의 이름으로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제도에 관해 논쟁 중이다. 복지주의자·진보주의자인 제주대학교 이상이 교수는 올해 5월 《기본소득 비판: 왜 기본소득을 반대하는가?》를 펴내고 기본소득을 비판한다. 제안된 여러 기본소득이 필수 속성(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 개별성, 현금성, 충분성)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충분성의 관점에서 재원 부족으로 용돈 정도를 지급하는 데도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어 그는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원리와 다르게 작동하기에 ‘30만 원이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사각지대의 해법이 아니고,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도 없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대책이 될 수 없고, 경제의 활성화와 선순환에 장기적으로 방해가 되며, 재정적으로 실현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연세대학교 양재진 교수와 경상대학교 김공회 교수 등 좌우를 불문하고 복지강화론자들의 공통적 기본소득 비판은 대동소이하다.
경영학자로서 나는 시장경제에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본주의와 기업이 역사적 진보와 물질적 풍요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크루그먼 교수와 이상이 교수 등의 기본소득 비판에 수긍하면서도, 기본소득이 정치적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게 되기까지의 사회적 불만과 불안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우선 불만에 공감한다. 반세기 이상 전 세계 시장경제의 통합,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이 이루어졌다. 이와 동시에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기가 어렵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명확한 추세의 임금·소득·자산 양극화와 불평등이 진행된 것을 인정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를 사태로 금융 시스템이 본연의 기능보다는 위험을 사회(시스템)에 부담하고 극단적인 개인적 보상을 추구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업 활동이 산업화를 견인하며 물질적 풍요와 국민경제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와 거버넌스, 환경과 사회, 특히 노동자에 대한 책임 측면에서 비판받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불안에 공감한다.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가지는 기술 특이점이 오는 시점을 2029년으로 특정한 구글 기술이사 레이 커즈와일의 예측은 성급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25년까지 인공지능과 기계화로 8500만 개 직업이 사라지지만 또 같은 이유로 9700만 개 직업이 생긴다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래를 낙관적으로 예측하는 딜로이트 컨설팅의 인사전략 파트너 제프 슈워츠마저 작년에 펴낸 《Work Disrupted》를 통해 코로나 사태로 기계화와 인공지능의 산업 현장 침투가 가속화되었고, 기계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노동이 공존하더라도 일정 부분의 노동 유연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예측했다. 즉 미래의 일자리는 정말 불안할 것이다.
이 불만과 불안의 근원적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운과 재능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본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저임금 계약노동자로 소모되다가 가야 하는 인생이란 얼마나 처량한가.’ 혹자는 이러한 태도를 패배주의자적 시각, 루저 마인드라고 가볍게 폄하할 수도 있겠다. 공정한 기회만 주어지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물질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자는 능력이 없거나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현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불안(Status Anxiety)》에서 모든 것이 운명이고 결정되어 있던 체념적인 중세의 삶이 현대인들보다 오히려 더 평온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이 시대 한국의 진보주의적 시각의 불안과 불만은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의 2021년 6월 26일 〈경향신문〉 칼럼 ‘공정보다 평등이 중요하다’에 잘 요약되어 있다.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달리기 시합은 더더욱 아니다. 힘껏 달려볼 의사와 능력이 있는 20~30퍼센트의 사람들에게는 ‘공정’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산업사회라는 현상을 최초로 발견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창시했던 19세기 초 앙리 생시몽의 말대로, ‘가장 숫자가 많고 가장 불리한 위치에 처한’ 사람들은 아예 그 달리기 시합장에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들 다수가 꿈꾸는 삶은 그렇게 극적인 드라마나 시합과 같은 것이 아니다. 특출한 능력이나 의지를 타고 나서 꿈을 불태우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빈둥거리지 않고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 이웃들과 조촐하게 삶을 즐기고, 태어난 한 인생 그럭저럭 큰 탈 없이 무사히 살다 가는 것 정도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생태계는 다양하다. 포식자인 사자와 호랑이, 용도 있지만, 얼룩말과 토끼, 그리고 가재, 붕어, 개구리도 있다. 사자와 호랑이, 용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월성과 금융과 기업의 놀라운 힘을 추동하더라도, 얼룩말과 토끼, 가재, 붕어, 개구리도 무탈한 삶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주장은 충분한 잠재적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는 2021년 대한민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금융 제도와 기업의 힘을 거세하고 약화하는 방향으로 재분배를 중심으로 한 하향 평준화의 내리막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할 것인가다. 작고한 삼성 이건희 회장은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는데, 왜 주위에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천재는 많아도 나에게는 눈깔사탕 하나도 생기지 않는가? 이 갈증 섞인 불만에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과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기업과 금융의 힘을 선하게 다스려 이러한 불안과 불만과 화해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이 글의 문제의식이다.
기본소득의 대안들: 기본자산제의 진화
기본소득의 대안은 실로 넓고 다양하다. 오랜 역사적 방황 후* 유럽식 복지국가 강화, 미국식 사회안전망 구축이 현실에 적용되고 있는 표준 대안이다. 물론 최근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and Ideology)》를 통해 재점화한, 오랜 기본소득의 대항마 기본자산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제안과 유사한 아이디어는 이미 존 로머 등 시장사회주의자들의 현실 유토피아 프로젝트, 앤 앨스톳과 브루스 애커먼의 사회적 지분 소유, 데이비드 니싼과 줄리앙 르 그랑의 보편적 지분 급여 등의 형태로 논의되어왔다. 이 외에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에서 기원하는 제도주의적 커먼스(commons)론,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적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가 주창한 사회적 공통자본(농수축산물 및 자연, 에너지, 교육, 의료, 금융 및 제도로서의 도시 공간) 강화론, 존 롤스, 아마르티아 센의 정치적 자유주의 전통을 따른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 강화론 등이 대안적 사고의 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토머스 페인, 토머스 스펜스에서 시작해 조제프 샤를리에와 푸리에주의를 지나 헨리 조지의 토지가치세, 데니스 밀너와 메이블 밀너의 국가 상여금 계획, 영국의 사회적 신용, 국민 배당금, 그리고 전후 복지국가 플랜의 기초인 〈베버리지 보고서〉와 대항하던 경제학자 제임스 미드의 사회 배당금, 밀턴 프리드먼의 부의 소득세, 제임스 토빈의 공제 소득세, 존 갤브레이스의 보편적 기본수당 등이 이 긴 여정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을 위해 최근 기본소득의 대항마로 정치적 부름을 받고 있는 기본자산제에 초점을 맞추고, 특히 최근 정치권과 일부 투자자들이 논의하고 있는 자본시장 투자 관점을 자세히 살펴보자.
기본자산은 고대 그리스의 클레로스(κλήρος, 분배지), 성경 개정개역의 분깃(κληρονομία, 클레로스), 《맹자》에 등장하는 고대 아시아의 정전제(井田制)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들 제도는 일정한 토지를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나누어 경작하게 하되, 세습을 금지하고 일정 기간 후 다시 원상태에서 재배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대의 여러 기본자산 제도도 이와 유사하게 특정 액수의 목돈을 국민들에게 특정 시점에 제공하되, 사용처에 제한을 두거나 채무 변제 의무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토마 피케티는 자산 및 상속세의 누진율을 강화해 국내총생산(GDP)의 5%를 조달하고 이를 25세가 되는 모든 프랑스 국민에게, 프랑스 국민 평균 자산의 60%에 해당하는 12만 유로를 최소 자산으로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서강대학교 김종철 교수는 2000년 출간한 《기본소득은 틀렸다, 대안은 기본자산제다》를 통해 4억 원이 넘는 상속 재산 전부를 국가가 과세해 마련한 재원(사회적 상속)을 통해 전 국민에게 1억 원씩 기본자산액으로 배분하되, 국민이 이 금액을 사회적 협동조합 참여 등 생산적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채무 변제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한신대학교 이일영 교수는 2020년 〈동향과 전망〉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는 뉴딜 차원에서 기본자산을 생산적 활용에 필요한 공유 자산으로 재정의하고, 청년들에게 주거, 교육, 토지(농지) 등을 실물 또는 서비스 형태로 제공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학자들의 주장은 현실 정치에서 구체적으로 힘을 받고 있다. 정의당은 2020년 기존의 상속, 증여세에 기존 정부 사업 중 청년사업 예산을 더하고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부유세 신설을 통해 만 20세 청년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하되, 용도를 주거, 창업, 취업 준비, 학자금으로 제한하는 ‘청년기초자산제’를 제안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가세했다. 2021년 서울시장 후보 박영선은 19~29세 청년 누구나 최대 5000만 원을 무이자로 대출하고, 30세부터 10년간 원금만 상환하는 ‘청년출발자산’을 제안했다. 대통령 예비후보 김두관은 정부가 신생아마다 3000만 원을 공공기관에 신탁해 20세가 되는 해에 6000만 원을 지급하는 ‘국민기본자산제’를 주장하고 있다. 정세균 예비후보도 ‘미래씨앗통장’이라는 이름으로 신생아에게 20년 적립형 통장을 마련해 사회 초년생에게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청년들에게 목돈을 지급해 자립 기반을 제공하겠다는 위의 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본시장을 이용해 공격적으로 원금을 키워 복지 재원으로 사용하겠다는 공약도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해외의 자산 운용 전문가를 고용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한국투자공사, 각종 기금과 정부의 외환 보유고를 통합한 초대형 국부펀드를 조성하고 국민의 청약저축과 퇴직연금을 이 펀드의 ‘국민행복적립계좌’ 가입으로 전환 참여시켜, 싱가포르의 테마섹을 벤치마크로 연 7% 수익률을 시현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국민들이 월 50만 원 적립식으로 30년 납입하면 퇴직할 때 ‘국민자산 5억 성공시대’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이다.
최근에는 시끌벅적한 기본소득 논의에 투자자들도 반응하고 있다. 자본시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공격적으로 복지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들이다. 유튜브 채널 ‘할 수 있다! 알고투자’를 운영하는 퀀트 투자 전문가 강환국은 2021년 6월 8일 자 방송을 통해 투자자판 기본자산안을 제안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2020년 저출산 타개 예산은 40조 원인데 신생아는 27만 2000명에 불과해 1억 4700만 원씩 분배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만약 신생아 1인당 1억 원을 배정하고 성년의 국민들이 교육을 통해 10개 정도의 자산 배분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한 후 50년 동안 강제 투자하고 연금을 수령하는 방식을 만들면,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수익률을 중간값 5%로 가정할 때 50년 후 연금액 11억 4700만 원(연금 월 287만 원), 60년 후 18억 7000만 원(연금 월 467만 원)을 수령할 수 있어 복지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유사하게 전업 투자자로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김규식 변호사는 2021년 7월 31일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신생아 기본주식 제도’를 제안했다. 연간 상속세 6조 원을 재원으로 신생아에게 2000만 원 상당의 KOSPI200과 S&P500 주식을 지급한다. 국민은 20세 이후 이 펀드를 주택 구입, 대학 학비, 의료비 등을 위한 대출금의 담보로 제공 가능하고, 배당을 수령할 권리를 가지되, 별도의 선택이 없는 경우 배당을 재투자해 55세에 인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방식이다. 10% 복리를 가정하면 부부 합산 금액이 80억 원이 넘을 것이라는 추산을 덧붙인다. 그는 이 제도를 통해 전 국민이 기업의 주인이 되어 부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위험 부담의 보상임을 자각하게 하고, 문명 발전과 경제 성장을 이끄는 공동체의 생산성 향상에 전 국민의 경제적 유인을 합치시키자는 주장을 전개한다.
이러한 여러 기본자산제를 평가해보자. 기본소득 연구에 매진해온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이건민 박사는 2020년 〈시대〉 기고문을 통해 일시금 지급형/사용처 제한/기본자산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우선 전 국민에게 지급되어야 하는 보편성을 위반한다. ‘받지 못하고 지나가는 세대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정치적으로 지지받지 못하는 옵션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충분성 측면에서 모자란다는 지적이다. 정의당의 3000만 원 지급안은 연 실질이자율을 2.5%로 가정하면 월 90,896원에 불과하므로 결과적으로 자산 재분배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설사 지급 금액이 크게 늘어도 이를 활용해 부를 일구는 능력은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환경에 의해 제약된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로 철학적인 측면이다. 기본자산은 부모 찬스를 대신하는 사회 찬스, 즉 보충적 기능이 중요하게 선전되는데 이는 호시절에는 의미가 없는 공허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용처 제한에 따른 ‘거시자유와 탕진 가능성 사이의 딜레마’다. 기본자산을 기반으로 마음껏 삶을 일구라는 취지에 비추어 투기적 행위와 같은 위험 감수 행위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장점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토마 피케티, 김종철, 정의당, 박영선, 김두관, 정세균의 기본자산 아이디어는 이러한 비판에 전부 혹은 일부 노출되어 있다.
다음으로 펀드 자본주의를 이용하자는 박용진, 강환국, 김규식의 아이디어를 평가해보자. 이들 아이디어는 앞서 언급된 기본자산과는 차별되는 뚜렷한 장점이 있다. 우선 효율성이다. 채권이 아닌 지분 증권 등 자본시장의 힘을 빌려 높은 복리로 금액을 빠르게 늘릴 수 있다. 다음은 충분성이다. 개인별 투자 능력의 차이를 극복하는 간접 투자, 강제 투자 방식을 통해 충분한 금액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생각할 수 있는 약점 내지 보완점도 존재한다.
언급된 5%, 7%, 10%의 수익률은 추측에 불과하다. 공격적 펀드매니저(박용진), 검증된 사계절 동적 자산배분(강환국), 우량 인덱스(김규식) 모두 기본적으로 우상향하는 시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국같이 기업 지배구조와 거버넌스가 취약한 주식시장에서 주된 자금을 운용하는 경우, 미국같이 기대한 만큼의 수익률을 올리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펀드들은 개인별 계좌로 운용되기 때문에 좋은 시점에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시점에 태어난 사람 사이에 무시할 수 없는 수익률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수익률에 중점을 두고 운용하는 펀드의 철학상 ESG 원리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성공적인 펀드인 영국성공회펀드를 보자. 교회 기금의 특성상 엄격한 투자 대상 원칙과 운용 제약이 있어, 소위 죄악 산업(sin industries)인 무기, 포르노그래피, 담배, 도박, 고금리 대출, 배아 복제, 석탄을 원료로 한 석유 추출 또는 오일샌드, 주류 등에 투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2013년 영국성공회는 50억 파운드(약 8조 원)의 연금 기금 중 미국계 벤처캐피털인 액셀파트너스에 할당한 금액이 우회투자를 통해 영국 최대 고리대부 업체인 웡가(Wonga)에 투자된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 자본시장을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는 분명히 기본자산 아이디어를 한발 진전시키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조금 더 발전시켜 국민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기업의 ESG 성장에 연동하고 국민이 기업 의사결정에 관여할 기회를 제공하며 전 국민이 위험과 보상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은 없을까? 이제 내가 제안하는 대한민국 성장배당 플랜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