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규 대표 “성장 가중치 더 높이고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한국 2세대 가치투자의 대표 주자로 불리는 이건규 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 이 대표의 투자 전략은 전통적인 가치투자에 비해 탄력적이라고 평가된다. 우선 그는 성장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싣는다. 그래서 전통적인 가치투자에서 그리 선호되지 않는 정보기술(IT)·바이오 업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또한 ‘가치투자는 장기 투자’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종목을 매매할 때도 적지 않다. 그에게서 투자 전략과 함께 향후 시장의 흐름과 기회, 개인 투자자의 종목 선정과 자산 운용법, 펀드 선택 방법 등을 들어보았다.
인플레이션발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몇 달째 큰 폭으로 하락하던 2022년 7월,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이건규 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를 만났다. 한국 2세대 가치투자의 대표 주자로 불리는 그의 투자 전략은 전통적인 가치투자에 비해 탄력적이라고 평가된다. 그는 투자 종목을 고를 때 성장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싣기 때문에, 전통적인 가치투자자라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정보기술(IT)·바이오 업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또한 ‘가치투자는 장기 투자’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종목을 매매할 때도 적지 않다.
이 대표는 “2010년 이후 성장성 대비 저평가 기업이 재평가받는 시대가 되었다”며 “가치투자도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과거보다 이익 성장에 대한 가중치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주식 투자의 장점에는 잘되고 있는 사업체의 동업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반대로 사업 전망이 어두워 보일 때 빠르게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도 포함돼 있다”며 “장기 투자를 지향하지만 장기 투자가 절대적인 가치투자의 원칙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2022년 하반기의 시장 흐름은 어떻게 예상하나요.
“글로벌 경제에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정적인 변수들이 희석되고 일부 변수들에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면서 시장이 점진적으로 안정을 찾아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이 시장에 가장 큰 부담 요인이었는데 인플레이션은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부담이 완화될 전망이며, 금리 인상은 시장에 충분히 노출된 악재여서 추가적인 악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부분은 아직 없어도 하반기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감소하는 방향이 나타난다면 주식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부정하는 상황이지만 하반기 휴전 가능성이 열려 있고 미국의 대 중국 관세 인하, 중동의 원유 증산,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의 원유 수출 재개 가능성 등, 현재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변수들이 일부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한다면 증시에 의외의 반등 흐름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물가 상승이 기업들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물류비와 원재료 가격 상승은 기업들의 실적을 짓누르는 가장 큰 변수였어요. 다만 해상 운임이 2021년 말에 하락 추세에 접어들면서 원가 부담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철강을 비롯해 구리, 니켈, 알루미늄 등의 가격도 5월 이후 급격하게 조정 들어갔고요. 밀, 팜유, 대두, 옥수수 등 식자재 가격 역시 6월 이후 크게 하락하고 있지요.
원재료 가격 변동이 기업의 원가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3~6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에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완화되는 모습은 4분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전망이지만, 기업 대부분이 상반기에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는 점에서 원가 부담은 2분기를 정점으로 점진적으로 둔화될 것 같아요.
또한 우리나라 기업에는 수출 기업이 많다 보니 단기적으로는 환율 약세가 원가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아직 2분기 실적이 나오지 않았지만 원화 약세로 인해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우려했던 것보다 양호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기업들의 원가 부담은 2분기를 정점으로 3분기, 4분기로 갈수록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계단식 실적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충분히 긍정적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합니다.”
몇 달간 주가가 많이 빠졌는데 개인 투자자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요.
“현재는 시장을 떠나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인내해야 하는 시기로 판단합니다. 주식을 팔아야 하는 것은 향후 업황을 긍정적으로 볼 기업이 없거나,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고 판단되는 시기죠. 하지만 지금은 불확실성이 선반영되면서 충분히 매력적인 가격의 기업이 많은 시기로 보입니다.
바닥에서 주식을 주워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무릎은 지났다고 판단할 때 주식 비중을 늘려야 하죠. 시장에 불확실성이 많아 보일 때에는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심리적인 장벽을 넘어서야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기는 모든 게 안정된 상황이 아니라 많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때니까요.”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특히 긍정적으로 보는 업종이 있나요?
“시장의 불안감이 컸던 만큼 낙폭이 컸던 주식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현재 코스피시장의 PBR은 0.9배 정도여서 경기 침체기의 저점 수준으로 주가가 하락한 상황입니다. 금융위기가 찾아오지만 않는다면 경기 침체 우려는 현재 주가에 어느 정도 선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도체, 2차전지 소재, 금융, 화학 업종은 양호한 실적에 비해 낙폭이 컸던 만큼, 시장이 안정화 추세에 들어설 경우 반등 여력이 충분할 듯합니다.
중국 코로나 봉쇄 조치, 러시아 전쟁 등으로 수출에 문제가 발생했던 기업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주식은 안 좋았던 것이 좋아지는 국면에서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일부 기업들에서 매출이 둔화되었던 중국 또는 러시아향 수출 물량이 급격하게 회복되는 모습이며 특히 음식료, 임플란트, 의류 등의 업종에서 목격됩니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지형의 변화에 따른 수혜가 가능한 원전, 플랜트, 선박 투자 관련 주식들에 관심 있습니다. 원전은 유럽, 미국, 한국 등이 투자를 재개하면서 수혜가 예상되어 원유, 가스전 투자와 함께 플랜트 투자가 활성화될 전망이고, 러시아 수출 제한으로 LNG 선박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요. 이러한 투자 확대는 글로벌 경제와 무관하게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 보유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는 2003년 한국 가치투자의 산실로 불리는 VIP자산운용(구 VIP투자자문)의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여기에서 16년간 일하며 가치투자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과 관점을 만들어나갔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는 최고투자책임자(CIO)로서 회사의 투자 성과를 책임졌다. 2003년부터 그가 창업을 위해 회사를 떠난 2018년까지, VIP자산운용의 운용자산은 100억 원에서 2조 원으로 200배가량 늘어났다.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의 특성을 체험한 시기였다.
르네상스자산운용은 그가 2019년 2월에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팀장 출신인 정규봉 대표와 함께 설립한 자산운용사다. 80억 원으로 시작한 운용자산은 3년 만에 3,400억 원을 넘어섰다. 2019년 10월 설정 이후 2022년 4월까지 82% 수익률을 거둔 대표 펀드 ‘다빈치 1호’를 비롯해 회사의 여러 펀드가 좋은 성과를 기록한 덕분이다. 2020~2021년에는 HMM(옛 현대상선)과 DB하이텍 등의 경기 민감주에 한발 앞서 투자해 2배 이상의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가치투자 전략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대표님은 전통적인 가치투자 스타일의 범주에서 조금은 벗어난다는 평가를 받는데, 가치투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먼저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가치투자와 가치주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정의부터 말씀드릴게요. 가치투자를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서요.
워런 버핏이 한 말을 인용해볼게요. 버핏이야말로 가치투자를 상징하는 인물이고, 이 인터뷰가 나가는 이 책의 이름도 ‘버핏클럽’이니까요. 버핏은 1992년 버크셔 해서웨이 연차보고서에서 “주가수익배수(PER) 6배짜리 주식이 12배가 되는 것도 가치투자이고, PER 12배짜리가 18배, 24배가 되는 것도 가치투자입니다”라고 말했어요. 버핏의 동업자인 찰리 멍거도 “지능적인 투자는 모두 가치투자입니다”라고 이야기했죠.
과거에는 기업의 펀더멘털을 보지 않고 차트만 보고 투자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때는 가치투자라는 용어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투자자 대부분이 기업 가치를 보고 투자하고, 너무 고평가되어서 주가 상승 여력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곳에 투자하는 바보는 없습니다. 단지 투자자들 사이에 어떤 기업의 적정 PER이 12배냐 24배냐 하는 의견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가치투자와 대비되는 투자 전략은 무엇인가요? 성장주 투자라고 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가치투자와 대비되는 개념이 성장주 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저는 가치투자와 대비되는 개념은 모멘텀 투자라고 생각해요. ‘주가가 상승 추세에 있으니까’, ‘차트를 보니 매집 세력이 있는 거 같으니까’, ‘어떤 후보가 당선되면 이 기업 주가가 크게 오를 거라고 하니까’ 이런 이유들로 주식을 사는 경우를 모멘텀 투자라고 할 수 있죠.
이런 투자들에는 모두 펀더멘털이 빠져 있어요. 기관투자가가 이런 모멘텀 투자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기관투자가 대부분은 가치투자를 한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이건규 대표 약력
연세대학교 환경공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2003~2018년 VIP자산운용
2010~2018년 VIP자산운용 CIO
2019년~ 르네상스자산운용 CEO
기업 펀더멘털 분석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모든 투자가 가치투자라면, 가치주와 성장주를 구분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나요.
“다시 버핏이 했던 말을 들려드릴게요. 가치주가 어떤 주식이냐는 질문에 버핏은 “가치주와 성장주의 차이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관건은 그 기업에서 나오는 가치를 얼마로 판단하느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성장은 방정식의 일부일 뿐이며 ‘성장주에 투자해야 해’ 또는 ‘가치주에 투자해야 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투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라고 말했고요. 저도 같은 의견이에요.
사실 주식 투자에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이지, 가치주와 성장주를 구분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한 주식을 둘 중 하나로 분류하기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크게 의미 있는 일도 아니에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를 어떤 사람은 성장주로 분류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가치주로 분류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주와 성장주의 분류가 적용되는 종목들도 여전히 있지 않나요.
“물론 누가 봐도 명백하게 성장주로 보이는 주식들도 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주식이 그렇죠. 성장 잠재력이 높은 대신 밸류에이션도 합당하게 높은 수준입니다. 또 명백하게 가치주로 보이는 주식들도 있어요. 신도리코, 현대홈쇼핑 같은 주식들이 그래요. 보유 현금 대비 시가총액이 낮은 주식도 있고, 수익 가치 대비 주가가 매우 낮은 주식도 있죠. 이런 주식들은 분명히 가치주로 분류될 수 있고요. 그런데 이런 몇몇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 주식들은 대부분 성장주로도 가치주로도 분류가 가능합니다.”
개인 투자자 중에는 가치투자를 한번 선택한 종목을 오랫동안 보유하는 거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개인 투자자 대부분이 가치투자를 장기 투자와 같은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장기 투자가 가치투자의 전제 조건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고요.
주가가 매년 10~15%씩 오르고 기대했던 수준의 업황이 유지된다면 한 주식을 계속해서 보유하는 게 가능하죠. 그런데 업황에 변화가 생기거나 주가가 급격하게 변할 때에는 분명히 매도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에요. 주식 투자의 장점에는 주식 매수를 통해 잘되고 있는 사업의 동업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있지만, 사업 전망이 어두워 보일 때 손쉽게 보유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있으니까요. 저도 장기 투자를 지향하지만 장기 투자가 결코 가치투자의 원칙이나 전제 조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좀 더 말씀드리면 과거에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은 주식도 업황이 개선되면 주가가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2010년 이후 ‘딥 밸류(deep value, 초저평가 영역의 주식에 투자)’를 추구하는 운용사와 개인 투자자가 급격하게 줄면서 이런 주식들에 대한 시장의 재평가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게 사실이에요. ROE가 낮은 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ROE가 더 낮아질 수 있어서 시간이 내 편이 아니게 됩니다. 시장이 더 이상 장부가치에 큰 평가를 주지 않는 만큼, 수익 가치에 중점을 두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요, 자산주이지만 신규 사업을 통해 ROE를 높일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 좋은 투자 기회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인 가치투자 방법론과는 조금 다른 듯한데 이런 관점을 갖게 된 특별한 경험이 있나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차화정 장세’라고 자동차, 화학, 정유 업종 주식들이 확 오른 때가 있었는데 그 시기를 거치면서 투자관이 좀 바뀌었습니다. 이때 개인적으로 반성도 많이 했고요.
그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좋아하거나 인기 있는 주식들을 본능적으로 피한 부분이 좀 있었어요. 당시 가치투자자 상당수는 차화정 주식을 테마주로 치부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때는 중국의 해외 수출이 본격적으로 증가하면서 중간재이던 한국산 정유, 화학 제품의 중국 수출이 크게 늘어난 시기거든요. 국내 정유, 화학 기업들의 수출 실적이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시기였어요. 또 중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국 자동차가 중국에서 굉장히 많이 팔려서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의 수출 실적도 드라마틱하게 개선됐고요. 주가는 테마주 같은 상승세를 보였지만 이익이 가파르게 증가해서, 주가가 올라도 밸류에이션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죠. 주가가 올라도 여전히 쌌어요.
처음엔 ‘인기주니까 사지 말자, 저건 버블이야’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가니까 ‘내가 잘못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닝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했죠. ‘내가 잘못 판단했던 거지, 시장이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하는 반성이 많이 들었어요.
인기 있는 주식이라고 해서 그냥 ‘이건 테마야. 너무 올랐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기업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펀더멘털이 더 좋다면 나도 같이 사는 게 맞다는 것을 배웠어요. 반성을 많이 하게 된 계기죠. 시장에서 인기가 있다고 해서 투자 대상에서 배제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