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시장 예측의 대가’?

가치투자는 기본적으로 시장 전체의 흐름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워런 버핏은 마켓 타이밍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의 시장 상황 판단은 여러 차례 적중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답은 주식의 가치와 가격의 괴리에서 찾을 수 있다. 버핏은 가치 창출력이 뛰어난 주식이 좋은 가격에 대거 진입하면 주식을 매수한다. 그 상황은 시장이 저점일 때가 많다. 반대 상황은 시장이 과열된 시기가 많다. 또한 버핏의 발언과 행보를 보면 거시 흐름을 주시하고 활용함을 알 수 있다.


“마켓 타이밍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당신은 시장의 타이밍을 재는 건 불가능하다고 늘 이야기했지요. 그러나 당신의 이력을 보면 시장의 핵심적인 국면을 엄청나게 잘 맞혔습니다. 1969년, 1970년에는 시장에서 빠져나왔고, 1972년과 1974년 시장이 매우 쌀 때 다시 진입했습니다. 1987년, 1999년, 2000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장이 하락세인 현재는 엄청난 현금을 끌어안고 있고요. 시장의 큰 흐름을 어떻게 그렇게 잘 맞히나요?”

이번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의 여러 질문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질문이었다. 나도 마침 여기에 대해서 글을 쓰려던 참이었는데, 누군가 내 생각과 거의 동일한 질문을 해주었다.

왜 자기들은 잘 맞히는 건데?

가치 기반의 투자자들은 거시경제 환경이나 시장 전체의 흐름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질문에서 언급했듯이 워런 버핏은 마켓 타이밍이 불가능하다고 늘 이야기한다. “장세 변화를 예측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두 번 중 열 번 정도 틀린다”고 농담하기도 했다.1 피터 린치 또한 “경제를 분석하는 데 1년에 13분을 쓴다면 그중 10분은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2

그러나 버핏의 행적을 보면 전체 시장의 큰 국면에 대해서 엄청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버핏은 1956년부터 투자조합을 운영하면서 아주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1967년 주주서한에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좋은 수익률을 올리기 어려워졌다면서 기대수익률을 낮추라고 요청했다(막상 그래놓고 1968년에 58.8%라는 엄청난 수익률을 냈다).

2년 후인 1969년, 버핏은 더는 운용을 지속할 수 없다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1960년대는 성장주 광풍이 불던 시기였고, 그 여파로 1970년대의 투자자들은 악몽 같은 시기를 보내야 했다. S&P500 지수는 10년간 제자리걸음이었고, ‘멋쟁이 50(nifty fifty)’ 종목은 ‘더러운 50(filthy fifty)’ 종목으로 불렸다. ‘가치투자’를 지향하던 투자자라 해서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찰리 멍거의 펀드는 수익률이 반토막 났고, 빌 루안의 세콰이아 펀드도 자산의 70% 이상이 날아갔다. 버크셔 해서웨이도 1973~74년에 걸쳐 주가가 반토막이 나는 시련을 겪었지만, 당시 버핏은 펀드매니저로서는 은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객’의 항의에 시달릴 일은 없었고, 버크셔의 잉여현금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는 게 주안점이었다.

그러던 버핏이 1974년 11월에 이례적으로 타이밍을 언급했다. 그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성욕이 가득한 남자가 하렘에 와 있는 기분”이라며 “지금이 바로 투자를 시작할 때”라고 선언했다.

1999년은 (비록 1년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버핏의 명성을 더욱 드높인 한 해였다. 1999년 하반기, 버핏은 무려 네 차례에 걸쳐 시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7월의 ‘선 밸리’ 연설은 이후 두고두고 회자되지만, 막상 당시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 시기 버핏은 IT 버블에 따라붙지 않아 저조한 성과를 내면서 ‘한물간 투자자’로 조롱당하고 있었다. (익숙하지 아니한가?) 이듬해인 2000년 주주총회 참석자는 약 1만 명으로, 전년의 1만 5,000명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그리고 거품이 터졌다. ‘한물간 투자자’는 다시 ‘현인’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주가가 고점을 찍고 한참 빠진 2001년 7월, 또 한 번의 연설에서 “2년 전보다 기대수익률이 약간 올라갔지만 아직은 매력적인 시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주가지수는 2002년이 되어서야 바닥을 찍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어떠했나? 2008년 10월, 금융위기의 중심에서 버핏은 “미국을 사십시오, 저는 그러고 있습니다”라는 기고문으로 또 한 번 마켓 타이밍의 대가임을 보여주었다. 비록 자신은 “6개월이나 성급했다”고 자책했지만.

바텀업, 즉 개별 기업에 집중해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마켓 타이밍에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준 사례는 이 외에도 다양하다. 버핏의 스승인 필립 피셔는 1929년 대공황 직전에 “지난 25년 사이에 본 적 없는 엄청난 하락이 6개월 이내에 시작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썼다.3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직전에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1920년대 후반과 같은 경고 신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바텀업 투자의 대가 피터 린치는 1992년에 코카콜라 주식을 지목하며 “대기업 주식들은 휴식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코카콜라 주가는 이후 1년 반 동안 횡보했다.4

존 템플턴은 ‘가치투자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글로벌 투자 행적을 보면 최강의 탑다운 투자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때 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아서 ‘1달러 미만의 모든 주식’을 싸그리 매수한 사건은 유명하다. 1954년 출범한 템플턴 그로스 펀드는 일찌감치 해외 투자를 시작했는데, 아무도 일본을 쳐다보지 않던 1950~1960년대에 일본에 선제적으로 진입했고, 일본 주식 투자가 유행이던 1970년에 빠져나왔다. 아무도 주식을 사지 않던 1970년대(버핏이 ‘성욕이 가득한 남자’를 언급하던 그 시기)에는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와 호주 주식을 샀고, 1980년대에는 미국 비중을 60%로 올렸다. 1998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한국에 선제적으로 투자했고, 2003년에는 중국에도 진입했다(버크셔도 이 시기에 페트로차이나를 매수했다).

템플턴은 다우지수가 812이던 1983년 12월 8일 TV에 출연해 ‘8년 후 3,000’을 예상했고, 8년 15일이 지난 1991년 12월 23일 다우지수는 3,000선을 찍었다.5 버핏은 1999년 연설에서 ‘향후 17년간 연평균 수익률 6%’를 예상했고, 2016년까지 17년간 S&P500 토탈 리턴 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5.8%였다.

도대체 왜, 장세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도 본인들은 그렇게 잘하는 건가?

바텀업 투자자의 장세 판단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사안은, ‘쳐다보지 않는 것’과 ‘보면서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거시경제 지표를 보고 → 투자하기에 유리한 시점인지를 파악하고 → 유리하다면 어떤 업종이 유망한지를 파악하고 → 유망 업종 내에서 가장 좋은 종목을 고르자.

이런 식의 사고 체계를 탑다운 투자라 부른다. 가치 기반의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고를 거부하고, 기업이 가진 본연의 가치에 집중해 가격이 가치보다 쌀 때 매수하겠다고 한다. 이들은 거시경제에 신경 쓰는 행위가 ‘철학에 어긋난다’며 ‘불경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버핏은 주주총회 Q&A나 가벼운 인터뷰에서는 “마켓 타이밍은 불가능합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가 ‘각 잡고’ 한 연설 전문을 읽어본다면 그가 매크로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주주서한에서도 인플레이션과 금리 관련 발언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버핏은 당시 재무장관 헨리 폴슨에게 전화를 걸어서, 은행 구제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던 그에게 채권 매입보다는 자본 확충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6 거시경제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발언인가?

대가들은 거시경제의 흐름을 지켜본다. 단지 대응하지 않을 뿐이다. 좋은 투자 의사결정은 어떤 경우에도 단지 한두 가지 지표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치 기반 투자자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기업이 주주에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창출해주는가, 그에 비해서 가격이 정당한 수준인가’를 묻는다. 영업이익률이나 부채비율 같은 몇 가지 지표만으로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당연히 금리나 물가상승률 같은 단편적인 지표도 단독으로는 주식을 살지 말지 결정하는 요인이 되지 않는다. 거시경제 요인은 다른 대부분의 요인과 마찬가지로 기업이 가진 해자와 경쟁력, 경영진의 의지 등을 검증하는 요소가 된다. 성장이 가치의 한 요소인 것처럼 말이다.7

다시 말해 거시경제 지표는 그것만으로 투자 의사결정에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그렇다 해서 전혀 쳐다보지 않고 무시해도 되는 요소는 아니다. ‘시장의 타이밍을 예측할 수 없다’와 ‘거시경제는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는 동일한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가들은 거시경제에서 무엇을 보고 의사결정에 어떻게 활용하는가? 우리는 버핏과 여러 대가들의 발언에서 몇 가지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사고 싶은 주식의 발견 빈도

버핏은 1967년 10월 버핏투자조합 주주서한에서 앞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질 것 같은 이유를 다음과 설명했다. 1) 양적 분석을 통해 확실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2) 단기 수익률에 대한 관심이 막대해지면서 시장의 과잉 반응 패턴이 증가해 자신이 가진 분석 기법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3) 반면에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너무 커졌다.8

그는 시장의 타이밍을 맞히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가진 원칙으로는 이제 더 이상 좋은 주식을 발견하기 어렵고, 여기에는 시장의 구조적인 요인이 기여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피터 린치도 이와 유사한 발언을 했는데, 1992년 1월 배런스 테이블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최근의 급등으로 흥분한 상태이지만 자신은 “고평가된 시장에서는 살 만한 주식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가치 기반의 투자자들이 고민하는 지점은 언제나 ‘내가 살 주식이 있는가’이다. 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사고 싶은 주식’과 ‘사지 않아야 할 주식’의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은 당연히 가격과 가치의 관계다. 가치란 기업과 투자자의 관계에서 투자자가 기업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몫을 의미한다. 가격이란 그 몫을 받기 위해서 지불해야 할 돈이다.

가치는 기업이 생존 기간 동안 벌어들일 모든 돈을 적정 수치로 할인한 값이다. 기업이 ‘외부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평생 벌어들일 돈’을 좌우하므로, 거시경제는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단지 물가, 금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등의 단기적인 변화가 기업이 ‘평생 벌어들일 돈’에 직접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뿐이다.

한편 가격은 전반적인 시장 열기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그렇다면?

‘살 주식’이라는 절대적 기준을 가진 투자자의 입장에서 좋은 주식을 발견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평소에 사고 싶어도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사기 어렵던 주식들이 갑자기 무더기로 좋은 가격에 진입했다면 이는 시장의 열기가 빠졌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투자자는 그냥 마음에 드는 가격에 있는 주식을 발견해 샀을 뿐인데, 시장이 반등하고 나면 ‘시장 저점에서 용감하게 추가 매수를 한 사람’이 된다.

반대로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살 주식’이 보이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다. 내가 잘못된 원칙을 가지고 있거나, 세상이 잘못되었거나. 어느 경우든 주식을 사면 안 된다. 가격과 가치를 바라보는 기준에 따라서 ‘살 주식이 없어서’ 주식을 안 샀을 뿐인데, 이후에 시장이 하락하고 나면 ‘시장 고점에서 현금을 확보해둔 사람’이 된다.

결국 타이밍을 맞혔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여기서 포인트는 ‘좋은 주식이 갑자기 많이 등장한 이유’ 혹은 ‘좋은 주식이 씨가 마른 이유’를 어디에서 찾느냐다. 시장 상황을 전혀 들여다보고 있지 않다면 이 질문에 좋은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1967년 주주서한에서 버핏은 ‘단기 성과 측정에 치중하는 시장의 행태’로 인해 자신이 활용하는 ‘양적 지표를 이용한 투자 기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만약 버핏이 이러한 시장의 행태를 관찰하고 있지 않았다면, 막연히 기존 방식만 고수하면서 만족스럽지 못한 수익을 내든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아내서 잘못된 대응을 했을 수 있다.

투자자의 전반적인 기대수익률 수준

버핏은 1999년 연설에서 “투자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이라며 “그들이 투자에 뛰어드는 것은 금리에 반응해서가 아니라 주식을 사지 않는 게 실수처럼 느껴진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라고 했다.9 (이 또한 익숙하지 않은가.)

주식이 장기적으로 투자자에게 벌어다준 수익률은 연 7~10% 수준이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이 정도를 기준으로 놓고 생각해야 한다. 버핏이 연설하던 시기에 경험이 가장 적은 투자자들의 향후 10년 기대수익률은 22.6%였다고 한다.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최근의 경험이 세상의 전부라고 느낀다.

전반적인 기대수익률 수준이 높아졌다 함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최근에 강세장이 지속되었다. 2) 강세장을 따라서 별생각 없이 들어온 투자자가 많아졌다. 3) 경험이 짧은 사람들은 단기 변동성을 감내할 여력이 부족하다. 4) 따라서 시장이 급락할 경우 우왕좌왕하며 함께 주식을 팔 확률이 높다.

즉, 단기 강세장으로 인해 전반적인 주가 수준이 높아져 있으며, 소신 있게 투자하는 사람보다는 부화뇌동하는 투자자가 많기 때문에, 하락이 하락을 부추기면서 고평가된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라는 뜻이다.
최근에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투자자들의 기대수익률 수준은 어떠했을까? 2021년 1월 토스증권의 조사 결과 연간 20% 이상이 31%, 10~19% 수준이 23%, 목표 수익률을 따로 두고 있지 않은 경우가 25%였다.10 이들의 기대수익률은 2022년 약세장을 맞이해서 어떻게 바뀌었을까?

금리와 기업 이익

기업의 가치는 기업이 생존 기간 동안 벌어들일 전체 이익을 현재가로 할인한 값이다. 할인율을 결정하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강력한 요소는 무위험 이자율이다. 무위험 이자율은 장기 국채 금리를 사용한다. 따라서 장기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기업의 가치는 다 같이 하향 조정된다. “금리는 마치 중력이 사과를 끌어당기듯 자산들의 가격을 끌어당깁니다.”11

우리는 현재 높은 인플레이션 수준과 금리 인상을 맞이하고 있다. 고물가는 기업의 비용 상승 요인이 되며, 고금리는 이자 상승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킨다. 고물가 고금리는 2021년부터 예견된 상황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무시했다.

펀더멘털이 악화될 것이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이를 거부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게 바로 시장이 고평가되었다는 신호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각 개인의 가치평가 능력이 얼마나 우수한지와 별개로, 기존 관점을 뒤엎는 현상이 관측됨에도 그 사실을 거부하려 한다면 나쁜 징조다.

특정 스타일이나 자산군에 대한 과도한 추종·불신

명백한 사실을 왜 거부하려 하는가? 사람은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최근의 금리 인상이 2019년 금리 인하 이후 3년간 풀린 유동성을 되돌리는 상황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꽤 있는 듯하다. 틀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린 유동성이 충분히 회수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팬데믹을 맞이했고, 유동성이 더 풀렸다. 3년간 풀린 유동성이 아니라 13년간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는 중이다. 우리는 13년간 저금리 저물가 고유동성 상태를 겪었다. 13년은 한 인간이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착각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2008년부터 2021년 사이에는 다양한 하락장이 있었다. 2010년대의 유럽 재정위기, 2016년 미국 대선, 2018년 유동성 축소, 2020년 팬데믹까지. 그 모든 장에서 승리자는 ‘하락에 용기 있게 베팅하고 버틴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고 기술 혁신이 모든 걸 뛰어넘을 수 있다는 주장, 기업의 성장이 지속되는 한 주가의 한계는 없다는 주장이 강하게 지지받았다. 13년간 ‘검증’된 ‘성공 투자법’은 진리가 되었다.

물론 길게 보면 돈 잘 버는 기업의 주가가 오르는 건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특정 스타일’이 ‘구조적으로 늘 이기는 스타일’이라는 믿음이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편견이 강화되면 이 편견이 뒤집힐 때 장세가 세게 바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저 ‘성공 투자법’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금리 인상을 맞이해서 무슨 주장을 펼쳤던가. 장기 금리 인상은 경기가 좋다는 뜻이다. 경기가 좋으면 가치평가 공식의 분자값(현금흐름)이 올라간다. 분자값 상승이 분모값(할인율) 상승을 상쇄한다. 그리고 금리가 인상되어 경쟁사가 힘들어지면 분자값은 더 상승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면 다시 금리 인하 국면이 되어 할인율이 줄어들 수 있다.

아주 틀린 논리는 아니다. 문제는 그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세세한 논리가 아니었다. ‘주가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고 누군가가 그럴싸한 이론을 바탕으로 이야기해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1977년 미국에서는 ‘주식은 쓰레기’라며 채권과 원자재를 신성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때 버핏은 주식을 사라고 외쳤고, 템플턴은 일본 주식을 팔고 미국 주식을 샀다. 최근 증시에서는 ‘현금은 쓰레기다’라는 말이 상식으로 꼽히지 않았던가. 반면에 인공지능과 메타버스는 어떠한가? 물론 훌륭한 기술들은 우리 삶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을 바꿔놓은 화려한 비즈니스가 투자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경우는 너무도 많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