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교육은 많은데 금융리터러시 교육은 드물다. 포장은 금융리터러시 교육인데 내용은 투자 교육인 경우가 많다. 금융리터러시란 무엇인가? 답을 찾는 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금융교육네트워크(INFE)에서 실시하는 설문조사가 도움이 된다. OECD/INFE는 금융 지식 외에 행동과 태도에 대해서도 측정한다. 한국의 금융리터러시 수준은 어떤가? 청년층은 행동이 부족하고 노년층은 지식이 부족하다.


“금융리터러시 교육과 투자 교육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금융리터러시 교육에서는 도대체 어떤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가?”

CFA한국협회에서 금융리터러시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거창한 직함 아래 자원봉사를 하게 된 이후 생겨난 의문이자 과제였다. 그 전에는 협회 교육위원회에서 CFA 회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CFA한국협회 박천웅 회장이 “당신이 적임자이니 (교육위원회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사회공헌 차원에서 금융리터러시를 가르쳐보시오”라고 권고(?)했다. 내 고민의 행군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투자 교육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유튜브, 금융회사 방송,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어디에 가도 ‘투자’ 콘텐츠가 넘쳐난다. ‘묻지 마 투자’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결과다. ‘묻지 마’ 수준을 벗어나기 위해 교육을 받기로 결심한 투자자들의 의지는 높이 사야 한다.

내가 주의하는 지점은 주식 투자 등 투자 교육을 금융리터러시 교육인 것처럼 하는 사례가 많다는 현실이다. 이를테면 포장지는 금융리터러시인데 내용은 투자다. 그 결과 금융리터러시 교육에서 정작 금융리터러시를 찾아보기 어렵다.

금융리터러시 교육에서 투자를 가르치는 것은, 기본적인 개인 위생만 알려줘도 충분한 상황에서 어려운 의학 공부를 시키는 격이다. 과장하면 또래보다 월등히 뛰어난 초등학생에게 “자, 커서 의사가 되어야지. 여기 메스 잡아봐” 이런 식이다. 의학 공부를 할 준비가 된 어른이라면, 지금 배우는 기술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기술이니 매우 주의해야 하고 진지해야 한다고 알려줘야 한다.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말이다.

생각보다 많은 문제는 정의를 제대로 내리지 않는 데서 생긴다. 바꿔 말해 정의만 명확하게 해도 많은 문제가 쉽게 풀린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라고 하자.

사람의 흥미를 끌려면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기승전결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절정이 있는 이야기 말이다. ‘투자’에는 그런 스토리가 있다. 급등락하는 시장 배경에 어떤 국제적인 문제가 있고, 국가들이 크고 작은 싸움박질을 하고, 그래서 환율이 뛰었고, 외국인이 팔았고, 그런데 그들이 어느새 야금야금 다시 사 모으고 있고 하는 등 역동성이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세계는 이렇게 저렇게 변할 것이니 여기나 저기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반면에 ‘금융리터러시’는 속지 않고 망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저축과 개인신용 관리 같은 콘텐츠가 꼭 들어간다. 그러니 투자에서 접하는 긴장과 긴박감이 없고 진행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제공하는 리터러시 콘텐츠는 내가 봐도 흥미가 없다. 중2 딸에게 보여줬더니 말없이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 ‘배척받을 용기’를 발휘해 그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금융, 금융리터러시, 그리고 투자 교육

금융 교육은 초급부터 대학 전공까지 배움의 범위가 매우 넓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 교육의 근본적인 역할은 금융 회복력을 키우고 재정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초기 단계는 읽기, 쓰기에 해당하는 금융리터러시를 배우는 것이다. OECD/국제금융교육네트워크(INFE)는 금융리터러시를 ‘건전한 금융 결정을 내리고 궁극적으로 개인의 재정적 행복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인식, 지식, 기술, 태도 및 행동의 조합’으로 정의하고 성공적인 국가 전략의 핵심 요소로 규정했다.

이것을 원색적으로 표현하면 사기당하지 않고 망하지 않는 것이 1차 목적이다. 개인이 파산하면 구제하는 부담을 국가가 지게 된다는 점에서, 교육을 통해 개인의 금융 관리 능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 입장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리터러시 교육은 국가 기관이 담당하고, 성교육처럼 기본적인 시민의식 형성 교육의 한 과목 수준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면 민간의 손을 빌릴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주별로 설립된 CFA협회를 통해 금융리터러시를 교육하는 주도 있다. CFA스리랑카협회는 스리랑카 중앙은행과 협력해 금융리터러시 교육을 활발하게 한다. 스리랑카는 개인의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중요한 이슈여서 개인신용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룬다.

기초를 다진 후 그 위에 무엇을 더할 수 있다면 금융상품과 재무 설계를 이용해 재정적으로 어려움 없이 사는 것이 2차 목적이다.

금융리터러시가 생존을 위한 개인 위생과 응급 처치를 알려주는 것이라면 투자 교육은, 특히 리스크를 많이 져야 하는 투자는 메스를 쥐는 의사를 키우는 수준이다. 정기예금을 제외하고, 리스크를 져야 하는 모든 자산은 투자자산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기예금도 완전무결한 안전자산은 아니다. 금융기관별로 원금과 이자를 합쳐 5,000만 원 이상은 보호가 안 된다. 현금도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이런 것은 금융리터러시 과정에서 알아야 하는 내용이다.

투자 교육으로 넘어가면 먼저 리스크라는 수단을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 투자 수단(금융상품)은 리스크의 크기에 따라서 현금, 채권, 주식, 파생상품, 가상자산 등 무궁무진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리스크 관리 기술에 따라 적절한 투자 수단을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간단하면 참 좋겠지만, 나의 기술과 역량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해도 종종 높은 수익률 욕심에 판단을 그르칠 때가 너무 많다.

투자 역량은 ‘투자 거버넌스’라고 한다. 기업의 거버넌스는 경영할 수 있는 조직의 역량을 말하는데, 시간과 조직적 정합성(감당할 역량이 되는지)의 함수다. 전문적인 기관투자가조차 조직의 거버넌스를 파악하지 못해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리터러시는 배운 대로 행동하면 인생에 무조건 도움이 되지만, 투자는 배운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 교육의 핵심은 리스크를 다루는 기술인데, 이 리스크를 다루는 기술이 어렵다. 심지어 리터러시도 떼지 않은 상태에서 고난도의 투자로 바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까딱 잘못하면 돈 잃고 인생이 꼬인다.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메스를 잘못 다루면 내 손을 벤다.

지식은 기본! 행동과 태도까지 갖춰야 ‘리터러시’다

금융 교육은 금융리터러시를 배우는 것에서 출발한다. ‘리터러시’라는 말 그대로 금융을 읽고 쓰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전 국민이 읽고 쓸 줄 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수준을 무시하기 쉽지만, OECD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생각보다 상당하다. ’지식’만 생각하면 쉬울지 몰라도 금융리터러시는 지식은 기본이고 행동과 태도까지 아우르기 때문이다.

OECD/INFE는 2년마다 OECD 회원국과 일부 국가를 대상으로 금융리터러시 수준을 측정한다. 이 설문에서는 금융 지식뿐만 아니라 금융 행동, 금융 태도를 포함해 세 부문을 조사한다. OECD/INFE가 직접 조사하기는 어려우니 각 국가에서 맡아서 수행하는데, 우리나라는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공동으로 주관1한다.

금융 지식은 이자, 복리, 인플레이션의 의미, 분산 투자의 개념, 리스크와 수익의 관계 등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이 정도 지식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행동과 태도다.

금융 행동은 건전한 금융·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행동 양식이다. 가계예산 관리, 신중한 구매, 평소 재무 상황 점검, 가계수지 적자 해소 등이다. 실제로 예산을 관리하고 평소 재무 상황을 점검하는가? 가계수지 적자를 해소할 줄 안다면 왜 신용불량자가 생기는가?

금융 태도는 돈에 대한 가치관과 선호 정도로, 현재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의식 구조를 측정한다. 나는 이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식은 가르치면 되고, 행동은 보상-처벌로 훈련시킬 수 있다(물론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치관 형성은 인격에 해당하는 수준의 이슈라서 누가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고, 이미 스무 살이 넘었다면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는 없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금융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림 1] OECD/INFE의 금융리터러시 측정 방법과 금융 교육 결과

출처: OECD, 2020/06/25 (Launch of the OECD/INFE 2020 International Survey of Adult Financial Liter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