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화장품 주식이 뜨겁습니다.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산업입니다. 흥미롭게도 투자자들의 시각은 크게 갈립니다. 좋아하는 쪽에서는 장기 트렌드의 초입이라고 합니다. 싫어하는 쪽에서는 단지 트렌드일 뿐인데 주가가 너무 과하게 상승했다고 합니다. 단기간 실적이 좋기는 하겠지만, 주가가 급등한 덕에 조금만 노이즈가 생겨도 주가가 급락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중국향 화장품 수출의 사례를 보라고 합니다.
둘 모두의 초점은 수출 데이터 등 아주 단기간의 실적으로 모입니다. 실제로는 노이즈가 많은 데이터임에도 불구하고, 매월 발표되는 수출 데이터로 인하여 주가가 급등락합니다. 남보다 더 빨리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하여 실제 화장품 매대를 찾아다니고, 올리브영과 아마존, 징둥닷컴의 순위를 업데이트합니다.
좀 더 편안한 투자 방법은 없을까요? 좋은 건 알겠는데 이렇게 힘들게 매일매일 정보를 수집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걸까요?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편안한 방법은 존재합니다. 주가에는 때때로 굵직한 장기 추세가 형성될 때가 있습니다. 주가의 장기 추세는 기업의 장기 이익 추세, 그 추세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 인식이 프리미엄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앞서 ‘프리미엄의 조건’ 3부작에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제 화장품 산업에서 실제로 이러한 ‘프리미엄의 조건’을 어떻게 접목할지 살펴보겠습니다.
당장의 수출액 변동이나 티몰 화장품 순위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회사가 알아서 열심히 잘 팔겠지요. 물론 그러한 데이터를 무시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큰 그림에 따라 포지션을 구축해놓고, 그 그림에 맞는 단기 데이터가 계속 업데이트되는지를 확인하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단기 데이터가 잘 나왔다고 주식을 사고 안 나왔다고 주식을 파는 게 아니라요. 포지션=큰 그림, 단기 데이터=큰 그림이 깨졌는지 검증하는 자료입니다.
큰 질문은 이런 것들이 있겠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아름다움을 느끼는가? K-뷰티 트렌드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K-뷰티의 경쟁력으로 꼽히는 ‘가성비’는 화장품 구매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그게 다인가? 가성비라는 경쟁력이 꺾일 가능성은? 밸류체인에서 누가 더 큰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는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화장품 산업의 프리미엄/디스카운트 요소
화장품은 왜 쓸까요?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서죠. ‘미에 대한 욕망’은 고대부터 이어진 욕망입니다. 동물과 식물도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투자를 함에 있어서, 인간이 백만 년 전부터 해온 일은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미에 대한 욕망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속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큰 프리미엄을 줄 수 있습니다.
화장품은 소모품입니다. 한 번 쓰고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히 계속 구매해줘야 합니다. 자동차, 가구 같은 내구재가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더라도 프리미엄을 받기 어려운 현상과 대비됩니다. 같은 미용 카테고리로 묶이는 미용 기기에서 소모품 비중을 투자자들이 그렇게나 중시하는 것과도 결이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자본효율성이 높습니다. 이제 화장품을 제조하는 데는 생산설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ODM/OEM 회사가 다 해줍니다. 생산을 의뢰하면 패키징까지 예쁘게 되어서 나옵니다. 유통도 유통회사에 맡기면 됩니다. 화장품 ‘브랜드’ 회사가 할 일은 단지 고객이 좋아할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일 뿐입니다. 화장품은 가격에서 원재료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고객이 바라는 바를 어떻게 공략하여 어떤 이미지를 전달하느냐의 싸움이며, 이 싸움에 성공할 경우 막대한 마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막대한 마진’을 남기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조금 전 문단의 서두에서 ‘근본적으로’라는 단서를 달았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실제로는 여러 가지 제약 사항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화장품은 경쟁이 매우 치열한 산업이며, 소비자의 기호도 상당히 빠르게 변합니다. 의류 트렌드가 바뀌듯 화장법도 바뀝니다. 기초 분야에서도 그때그때 유행하는 성분이 바뀝니다.
브랜드를 구축하기는 어렵지만, 어렵게 구축한 브랜드가 깨지기는 쉽습니다. 피부에 직접 바르는 제품이기 때문에 품질에 매우 민감하여, 품질 이슈가 한 번이라도 생기면 브랜드 신뢰도에 치명적입니다. 가격에도 민감하여 가격 책정을 잘못할 경우 ‘싼’ 브랜드로 전락하여 다시는 예전 가격을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응하지 못하여 ‘낡은’ 브랜드가 되기도 합니다. 장기적으로 ‘락인’ 효과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올리브영에 가서는 어제까지 내가 썼던 브랜드에 눈길을 주겠지만, 굳이 그 제품을 쓰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화장품은 경기민감소비재입니다. 경기가 둔화되거나 침체되면 대표적으로 타격을 입는 산업 중 하나가 화장품입니다. 먹고살기 힘들 때는 생존에 중요한 일 이외에는 소비를 줄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외모가 생존에 직결되는 사회라면 다른 맥락이 펼쳐지기는 합니다만.)
화장품은 제조업입니다. 비록 외주 생산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유형의 무언가를 가져다 파는 산업입니다. 제조원가가 0에 수렴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생산을 해줘야 하니까, 내가 만들고 싶은 비슷한 제품의 수요가 몰려서 생산업자들의 캐파를 초과할 경우에는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제품이 나올 때쯤이면 트렌드가 바뀌어 있을 수 있습니다.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Q 한계가 의외로 명확한 산업입니다.
럭셔리 프리미엄, 즉 P 상승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브랜드의 화장품을 썼는지는 딱 봐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전문가라면 알 수 있겠지만 일반인들의 시각에서는 전반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뿐이지, 세부적인 화장품 목록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가방, 자동차, 집과는 다릅니다. 무슨 가방을 들고 나왔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어떤 동네에 거주하는지는 굳이 내가 밝히지 않아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눈에 띕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럭셔리인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이러한 ‘과시 효과’가 상당히 크게 기여합니다. 화장품도 물론 럭셔리가 가능하지만, 명시적으로 브랜드가 눈에 띄는 럭셔리 제품 카테고리에 대비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방과 자동차, 집은 수천만 원, 수십억 원, 수백억 원을 받을 수 있지만 화장품은 글쎄요. (로레알은 매우 훌륭한 회사지만, 로레알의 ROE가 에르메스의 ROE를 뛰어넘기는 어렵습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미에 대한 욕망, 소모품이라는 점은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프리미엄 요인이 됩니다. 빠른 트렌드 변화(약한 락인 효과), 경기민감소비재(단기 변동성), 제조업(Q 확장과 C 감소의 한계), 치열한 경쟁(낮은 진입장벽)이라는 측면은 프리미엄에 제약을 거는 요소 혹은 디스카운트 요소가 됩니다. 럭셔리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면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겠지만 매우 어려우며, 성공했다 하더라도 다른 럭셔리 제품 대비 P 확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K-뷰티, 단순히 가성비인가?
화장품(주식)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해 살펴보았으니 이제 K-뷰티, 한국의 화장품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현재 한국의 화장품이 전 세계에서 잘 팔리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화장품 수입 국가에서 (수백 년) 전통의 강자 프랑스를 제치고 1위를 했습니다. 심지어 유럽에서도, 심지어 중동에서도 한국 화장품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요. (문제가 되는 건 중국입니다만 이후에 따로 언급하겠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현재 고금리로 다들 돈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 화장품은 가성비가 좋기 때문에 지금 많이 쓸 뿐이다. 미국 대표 유통체인 ‘얼타’에서 사업이 어렵다고 하지 않냐. 한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한류가 얼마나 갈 것 같냐. 과거 사례에서 한류는 길어야 3년이었다. 작년부터 K-뷰티가 잘되었으니 올해는 2년 차이고 이제 길어야 1년 남았다.
아 네 뭐. 그럴싸한 논리입니다. 사실 미래를 누가 어찌 예측하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좀 더 판단을 잘할 수 있는 일은 현재까지 인류가 밝혀낸 사실을 좀 더 깊게 들이파거나, 시야를 좀 더 넓혀서 다른 측면을 바라보는 일 정도겠지요.
‘아름다움’은 어떻게 느끼는 걸까요?
과학적으로 밝혀낸 보편적인 미의 기준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좌우대칭이라든가, 골반과 허리의 특정한 비율이라든가, 얼굴에서 정수리-눈-코-입-턱 끝 사이의 거리 비 등등 연구 결과로 밝혀진 몇 가지 지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튼튼한 근육과 유연성 등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건강, 면역, 번식, 먹이 확보 성공 가능성 등을 지칭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요소는 백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어떤 측면에서 ‘아름답다’라고 느낄지는 맥락에 따라 달라집니다. 애초에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 그 사물의 모든 요소들을 균질하게 종합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중요시하는 요소를 선택적으로 뽑아내서(압축하여) 기존에 ‘학습된’ ‘좋은’ 기준에 들어맞는지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데? 라는 말씀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 두뇌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감상하는 일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해석’이자 ‘재창조’ 과정입니다. 각자의 경험, 지식, 맥락에 따라서 바라보고 싶은 바를 선택적으로 뽑아내어 평가합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에릭 캔델의 《통찰의 시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유명 서양 배우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화제가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 한국 여성의 외모가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움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바라볼 때는 날카로운 눈과 광대뼈 등을 특징적으로 봅니다. 거기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는 거죠.
반대로 생각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조부모 세대가 서양 백인들을 ‘코쟁이’라고 불렀던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들을 볼 때 유독 큰 코가 도드라졌고, 그 점을 인종을 구분 짓는 대표적인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지금은 ‘오똑한 콧날’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어 있죠.
서론이 길었네요. 다시 K-뷰티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서 K-POP 이야기를 하면서 코로나의 큰 수혜를 본 산업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사람들은 집 안에서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감상했습니다. 그러면서 K-POP, K-드라마, K-영화의 재미에 빠져든 사람이 전 세계에 수억 명은 되었고요. 여기서 한국 콘텐츠, 혹은 한국인이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요소가 은근히 그 소비자들에게도 스며듭니다.
기존에 생각하던 동양인, 한국인의 아름다움은 찢어진 눈, 튀어나온 광대 등 우리 입장에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요소였는데요. 이제는 뽀얀 피부, (의외로) 큰 눈, 갸름한 턱선, (의외로) 오똑한 콧날 등을 아름다움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여기서 그들이 생각하는 기존의 서구적인 아름다움과 한국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 융합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식 화장법이 유행하고, 일본인 중국인도 한국식으로 화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카일리 제너가 대표적인 사례지요. 그렇다면 “저렇게 화장하기 위해서는 뭘 써야 하지? 저 사람들(한국인들)은 무슨 화장품을 쓰는 거야?”라고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다음에 가성비가 등장하는 거죠. 관심을 가지긴 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면, 혹은 가격이 싼데 퀄리티가 형편없다면, 단순히 잠깐의 관심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혹은 대체재가 많아도 트렌드가 빠르게 끝나겠지요.
다소 ‘국뽕’ 가득한 사고일 수 있지만, 문화 콘텐츠라는 게 그 정도의 힘이 있습니다. ‘아름다움’ ‘즐거움’ ‘맛있음’ ‘멋있음’, 심지어 ‘옳고 그름’의 기준까지 학습시켜버리는 게 문화 콘텐츠입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가세합니다. 누구나 언급하듯이 유튜브/인스타 등의 소셜 미디어입니다.
유명 배우나 업계 전문가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각종 화장품을 비교 테스트하고 제품을 홍보합니다. 그리고 그걸 소비하는 나 자신도 각종 제품을 비교해보고 그 내용을 나의 채널에서 타인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단방향에서 양방향/다방향으로 비교검증 과정이 손쉽게 전달된다는 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유통망이 변화한 것에 못지않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다양한 제품을 마구마구 써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이자 소득을 얻는 수단이 된 지금, 가성비는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가격이 적당히 싸야 이것저것 사서 비교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성비를 추구하는 건 단지 금리가 오르고 돈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소비/유통/홍보 채널의 구조적인 변화에 기인합니다.
정리하자면 K-뷰티의 흥행 요인은 일단은 K-콘텐츠가 흥행하여 그 후방 효과를 얻기 때문입니다. 문화 콘텐츠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바꿔버리는 힘이 있기 때문에, K-뷰티는 생각보다 지속성이 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소비 행태의 구조적인 변화도 결부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