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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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K-Beauty를 이야기했으니 이제 K-Food가 순서겠군요. 이걸로 K시리즈는 마무리할까 합니다.

K-POP을 비롯한 K-콘텐츠가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K-POP은 현재 이익 모멘텀이 꺾인 상태이며, 근본적으로 산업화·대형화·주주가치 창출이 가능하냐는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섹터입니다. 따라서 K-POP 자체보다는 K-POP이 올려준 K-‘브랜드’의 수혜를 입는 업종에 투자하는 것이 좀 더 가능성 높은 방안일 수 있고, 그 대표 주자로 K-뷰티, 즉 화장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주가도 그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문제는 같은 시기에 K-브랜드 인지도 상승의 효과를 보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업종의 주가가 함께 급등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K-Food, 즉 음식료입니다. 한국의 인지도가 높아졌으니 한국 여행도 많이 가고 한국 물건도 많이 사고… 한국 음식도 많이 먹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수출 데이터가 마구마구 늘어나고 있습니다. 음식료는 전통적인 내수 업종이었고, ‘수출’이라는 키워드가 약간만 스쳐도 프리미엄이 급등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그 ‘수출 프리미엄’이 붙으며 열광하는 때라고 볼 수도 있겠… 습니다.

그럴까요?

미각은 매우 보수적이다

미각은 매우 보수적인 감각입니다. 이 말은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요. 시각은 우리가 인지하는 정보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그 안에는 긍정적인 감각과 부정적인 감각이 모두 혼재되어 있습니다. 통각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회피하고자 하는 부정적인 감각입니다. ‘미각이 보수적이다’라는 말은, 어떤 ‘새로운’ 맛을 ‘맛있다’라고 판단하는 데 매우 신중하며, ‘새로운’ 맛은 ‘웬만하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시각은 영상 정보입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고, 주변에 누가 있고, 어떤 먹이가 있으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먹이를 얻든 집으로 돌아가든) 어떤 경로를 택해야 하는지 등등 수없이 많은 판단을 하는 데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인간은 시각이 매우 발달한 동물입니다.

청각도 시각과 마찬가지로 내 주변 상태를 알려주고, 시각으로 알 수 없는 정보, 엄폐물이나 벽 뒤에 가려진 곳이나 먼 곳의 상태를 알려줍니다.

촉각은 피부에 닿는 물질의 정보를 알려줍니다. 인간의 시각은 눈에서 전방으로만 향하고 있기 때문에, 막상 내 육체에 가장 근접한 영역의 정보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촉각은 온몸의 피부를 활용하여 정보를 취득하고, 특히 등 뒤의 정보도 제공합니다.

후각 또한 육체에 근접한 영역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후각을 통해 시각이나 청각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영역의 정보를 인지할 수 있고, 그 범위는 촉각보다 넓습니다. 인간은 후각이 퇴화되었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데, 시각이 발달했을 뿐, 후각 수용체가 그다지 많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시각에서 얻는 정보량이 상대적으로 매우 많을 뿐입니다.

미각은 오감 중 가장 협소한 영역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입으로 들어오는 물질에 대한 정보입니다. 이 물질이 나에게 유익한 물질인지, 해로운 물질인지, 해당 물질을 현재 내 육체가 충분히 저장하고 있는지 등을 알려줍니다. 일반적으로 혀에 있는 수용체가 결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라고 하기에는 더 생각해볼 여지가 무척 많습니다.

먹는 행위는 얼핏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살면서 공부도 해야 하고, 사냥도 해야 하고, 연애와 육아도 해야 합니다. 그걸 잘하기 위해서 주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신체도 단련해야 합니다. 하루 일과 중에서 먹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우리 육체로 무언가가 유입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꾸준히 말입니다. 신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을 제때 획득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어찌 보면 위의 모든 감각, 시각·청각·촉각·후각이 하고자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유익한 먹이를 획득하고, 잘못된 먹이를 거부하고, 내가 먹이가 되는 일을 회피하는, 즉 음식과 관련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관용어가 여러 상황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밥은 먹고 다니냐?”가 흔히 하는 안부 인사 표현인 걸 생각해보면, 음식을 섭취하는 일은 우리 삶의 본질에 가까운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논점을 살짝 벗어나서 재밌는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소화기관의 안쪽, 즉 위벽과 소장·대장의 벽, 입 안은 기하학적으로 신체의 ‘외부’입니다. 신체는 기하학적으로 아주 단순하게 묘사하자면 ‘가운데가 비어 있는 기다란 원통’입니다. 외부의 물질이 이 원통의 앞부분으로 들어와서 원통을 쭉 지나가는 도중에 원통의 내벽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물질을 흡수하고는 잔여물을 뒷부분으로 내보냅니다. 이게 소위 말하는 ‘섭취-소화-배설’입니다.

우리가 흔히 ‘식사를 한다’고 묘사하는 음식 섭취 행위는 신체에 필요한 물질 확보 과정의 작은 일부분(원통의 앞부분 일부)일 뿐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섭취할지를 결정하는 행위는 생존에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그 물질의 판별을 혀라는 하나의 기관에 달린 감각 수용체에 전적으로 맡겨두는 일은 매우 위험할 것입니다.

즉 ‘맛을 본다’는 행위는 혀의 미각 수용체 자극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각 수용체가 전체 ‘맛’에 기여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매우 작습니다. 우선 후각, 즉 ‘향’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데워 먹는 음식이 갓 먹을 때 맛있는 이유 중 하나는 열이 있어야 냄새 분자가 잘 확산되어 향을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각도 아주 많이 기여합니다. (어떤 음식이든 파란색을 칠하면 식욕이 뚝 떨어집니다. ‘파란색 음식’이라고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식감’이라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바삭하거나 매끈하거나 끈적이거나 기름진 상태에 따라 같은 음식이라도 맛이 매우 다르게 느껴집니다. (매운맛이 통각, 즉 촉각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먹을 때의 소리도 중요하고요. 먹는 시점의 내 컨디션, 문화, 선입견, 경험 등도 맛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장의 시냅스마저도 대장으로 내려온 음식에 대해서 무언가를 판단하고 신호를 보냅니다.

쉽게 말해 온몸의 모든 감각기관이 다 동원되어 ‘지금 입으로 들어오는 물질이 나에게 유익한지 해로운지’를 판별합니다. 그 판별 과정을 ‘맛을 느낀다’고 표현합니다. (소위 ‘블라인드 테스트’로 특정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가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실험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맛이란 원래 시각을 비롯한 여러 감각의 조합이니까요.)

‘맛있다’는 건 현재 내 신체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물질을 섭취했다는 뜻입니다. (군대에서 초코파이가 유독 맛있게 느껴지는 경험을 해보셨다면 바로 이해할 겁니다.) ‘맛없다’는 건 그 물질이 나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그 ‘맛없다’라는 판단을 우리는 매우 자주, 쉽게 한다는 겁니다. 잘 먹던 음식이라도 당장 배가 부르면 맛이 없게 느껴집니다. 좋아하던 음식이라도 매일 먹으면 질리죠. 해당 음식에 포함된 물질이 신체에 많이 쌓여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거야 배가 고파지거나 다른 음식을 좀 먹다 보면 금세 다시 그 음식을 찾게 되니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음식’을 시도할 때입니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섭취하는 일은 사실 엄청나게 위험한 일입니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우리야 뭘 먹어도 되는지 부모로부터, 주변으로부터 배웠으니까 의식적으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데요. 문명이 이룩되기 전에는 무언가를 잘못 먹고 죽는 일이 일상이었을 것입니다. 에너지원 확보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고, 문명 시대 이전에는 에너지원이 워낙 부족했으니, 누군가는 위험을 짊어지고 자의든 타의든 이것저것 먹어보았을 것이고, 죽었을 것입니다. 아무거나 막 먹는 형질이 우세했다면 인류는 이미 멸종했겠죠. 우리가 지금껏 살아남은 것은 해로워 보이는 것, 익숙하지 않은 것은 웬만하면 회피하는 성질이 우세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습성은 지금이라고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나마 문명이 발전했기 때문에 여행을 다니고 ‘로컬 푸드’를 시도해보는 게 어색하지 않습니다만, 사실 많은 사람은 여행지에 가서도 익숙한 음식을 먹습니다. ‘미국 가서 김치 찾는다’는 어느 정도 옛 현상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된 이유는 사실 한국에서 각종 외국 음식들을 먹어서 이미 한식이 아닌 음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지요.

어떤 문화가 유입될 때, 맛은 가장 나중에 정착합니다. 도자기, 미술품, 의복, 노래 등은 흥미 위주로 한 번씩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나랑 안 맞아도 해로울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음식은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매우 보수적인 게 정상입니다. 일본의 물건은 1970년대에 이미 미국을 장악했지만, 미국인들이 스시를 일상적으로 먹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입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맛을 본다’는 행위는 혀의 미각뿐 아니라 온몸의 감각과 문화적 경험, 기후(온습도), 해당 시점의 컨디션 등 매우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판단은 매우 보수적이라,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대해서 ‘맛있다’라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나라 음식을 한 번 먹어보고 예의상 “맛있네요”라고 해줄 수는 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그 음식을 반복적으로 찾기는 어렵습니다.

사업 측면에서 보자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간 음식료 산업을 보면 해외 진출이 약점이 되어왔지요.

한편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한번 익숙해지고 나면 그 지속성이 생각보다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정 음식에 익숙해졌다는 건 해당 음식에서 이러이러한 물질을 섭취하겠다는 ‘배분 정책’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입니다. 주기적으로 다시 찾게 되죠. “아, 이거 한동안 안 먹었는데 오랜만에 땡긴다.” 이런 느낌 다들 잘 아시지 않습니까.

K-콘텐츠라는 스토리와 연관지어서 보자면, K-콘텐츠로 K-브랜드의 위상이 올라간 건 음식료에도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일단 시도는 해보게 마련이니까요. 매우 유리한 환경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새로운 맛에 익숙해지느냐, 즉 주기적으로 재구매하게 되느냐까지 가는 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