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단상] 멍거리즘 vs. 드러켄밀러리즘

시장에 난무하는 소음 속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기본에 집중하고 올바른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투자 단상’은 현직 펀드매니저가 시의적절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투자 대가들이 역경을 이겨낸 방법을 소개하고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기회도 마련하겠습니다.  ― 버핏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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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스는 내게 선택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옳은 선택을 한다면 얼마나 많이 벌고 그른 선택을 한다면 얼마나 적게 잃을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에서 함께 일한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유명한 문구입니다. 드러켄밀러는 30년간 연평균 수익률 30.4%를 올렸고 손실이 난 해가 한 해도 없는 만큼 투자의 구루라 불릴 만합니다. 그의 말은 투자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드러켄밀러는 쿠팡에 오랫동안 투자했고 작년에는 엔비디아에 대한 높은 수익으로 재조명받았습니다. 특히 쿠팡은 주가가 급락한 상황에서 소위 ‘물타기’를 했고 결국 이익을 실현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드러켄밀러는 미디어 노출도 즐기며 자신의 관점을 스스럼없이 언급하는 터라 투자자들은 그의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드러켄밀러의 인터뷰를 보아온 투자자라면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투자 견해가 쉽게 바뀌기 때문입니다. 특히 거시경제와 관련된 견해가 그렇습니다. 물론 거시적 지표들은 여러 변수가 작용하는 성격상 잦은 견해 변화가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켄밀러는 시시각각 견해를 바꾸는 데 전혀 거부감이 없어 보입니다.

반면에 찰리 멍거는 한번 언급한 견해를 쉽게 바꾸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드러켄밀러와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죠. 매번 같은 얘기를 하는 느낌이지만 이상하리만큼 투자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두 투자 대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먼저 차이를 짚기 전에 ‘정답은 없다’는 결론을 전제하고자 합니다. 드러켄밀러가 맞느냐 멍거가 맞느냐를 논하는 것은 실제 투자 환경에서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신의 성향에 최적화된 투자철학을 고수하고 장기간 높은 성과를 내왔기 때문이죠.

드러켄밀러와는 다르게 ‘맞는 것’, 그러니까 현실에서 ‘통하는 것’을 부단히 찾는 행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 멍거리즘의 가장 큰 주제입니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경우를 ‘안전마진’으로 대비하면서 멍거는 어떻게 해야 투자에서 ‘맞는 것’을 찾을 수 있는지 더욱 깊이 들어갑니다.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에 천착하고, 복잡계를 다루는 자신만의 툴인 ‘다학제적 관점’을 취하는 것이죠.

최근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가난한 찰리의 연감》을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관련한 멍거의 견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멍거는 가능한 한 다양한 학문적 기반에 근거한 ‘모형’을 갖추고, 이를 쉽게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멍거리즘의 이런 부분을 처음 접하면 다소 뜬구름을 잡는다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다학제적’, ‘복수 모형’ 등등의 수사 자체에서 현실과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쉽게 말하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너무나 다양하니 한두 개 유형의 지식만으로 투자에 나서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생각지 못한 리스크의 발현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입니다.

투자 대상을 바라볼 때 복합적인 관점을 적용해야 한다는 말을 멍거는 반복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충분히 고민해야 멍거의 전가의 보도인 ‘오판의 심리학’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엉덩이 걷어차기 대회에 나간 외다리 선수와 같은 처지가 된다는 멍거의 비유는 이런 부분을 잘 대변해줍니다.

실제 주변 투자자와 저 자신을 돌아보더라도 투자에 실패하는 경우는 보통 그 기업이나 투자안의 한두 가지 요소에만 ‘꽂혀서’ 많은 비중을 투입할 때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낮은 가격이라면…”

“많이 올랐지만 이렇게 훌륭한 CEO라면…”

“회사가 소액주주들 뒤통수는 많이 치지만 이렇게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면…”

“제품 경쟁력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좋은 업황이라면…”

투자자들이 한두 요소에만 꽂혀 거액을 밀어 넣으면서 흔히 하는 말들입니다. 하지만 멍거는 나머지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다양한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멍거리즘을 깊이 있게 보다 보면 도대체 어떤 기업에 투자하란 말인지 혼란스러워지기도 합니다. 멍거는 소위 ‘육각형’ 스탯(stat)을 갖춘 완벽한 기업을 이야기하는데, 현실에서 그런 기업들은 보통 충분히 높은 가격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멍거는 훌륭한 기업을 ‘적정 가격’에 사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헐값에 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시장은 바보가 아니어서 그런 기회를 쉽게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좋은 기업들을 좋은 가격에 사기 어려운 것이 투자자가 직면하는 가장 큰 딜레마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멍거리즘의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집중투자와 장기 투자로 연결됩니다.

멍거리즘의 까다로운 조건들은 모두 현실에서 가치를 ‘창출’해내는 근원 자체에 집중합니다. 기업이 어떤 요소들을 충족해야 미래에 큰 ‘가치’를 창출할지 가늠하는 것이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그런 요소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풀어냅니다.

그 기업에 대한 시장의 생각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월가에서는 실제 그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는 요소보다는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시장의 관심사에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애널리스트 리포트는 전혀 참고하지 않는다고 멍거는 말합니다. 그는 ‘육각형’ 기업을 발견하고, 미래에 창출할 가치를 크게 반영한 가격이 아니라면 과감히 큰 비중으로 들어가서 그냥 ‘깔고 앉아 있는 것’이 부를 쌓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멍거리즘은 드러켄밀러리즘과는 투자의 결이 많이 다릅니다.

드러켄밀러는 먼저 사고 나중에 리서치를 할 정도로, 다양한 면을 고려하기보다 한두 가지 면을 빠르게 판단해서 결론에 이르는 편입니다. 멍거와는 대척점에 있다는 느낌마저 주죠. 빠르게 승률을 고려해서 베팅에 들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맞는가 틀린가가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서 수익과 손실이 얼마나 큰가이니까요. 소위 ‘손익비’가 유리하게 나오면, 잘 알지 못하더라도 크게 베팅하는 것이죠. 여러 지식 모형을 활용해서 투자 결과를 좀 더 정밀하게 숙고한 후 행동에 나서는 멍거와는 차이가 확연합니다.

드러켄밀러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투자자’보다는 ‘트레이더’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자신의 포지션을 바꾸는 데 거부감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거시경제적 상황을 예측해서 헤지 포지션을 쉽게 가져가고, 또 어느샌가 쉽게 풀어버리기도 합니다.

두 투자 구루의 철학을 복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드러켄밀러에게 공감한다면 자신의 견해를 손쉽게 뒤집을 능력이 중요합니다. 말로 내뱉고 과감하게 행동했더라도 이내 반대로 행동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보통 인간은 일관성을 고수하려는 심리적 경향이 있기 때문에, 드러켄밀러와 같은 투자가 모두에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멍거에게 공감한다면 하나의 투자 대상을 충분히 숙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다양한 지식의 모형을 최대한 적용해서 미래를 정확히 판단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행동을 쉽게 해서는 안 되며, 한번 판단을 내리면 행동한 후 길게 고수하는 능력도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투자 성향은 드러켄밀러에 가까운데 실제 투자는 멍거리즘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투자했다가 생각하지 못한 리스크가 발현되어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되는데도 일관성 편향을 이기지 못하고 초지일관으로 장기 투자하는 것이죠. 소위 ‘비자발적 장기 투자’에 빠지는 케이스입니다.

반대로 성향이 멍거 쪽인데 투자는 드러켄밀러처럼 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충분히 숙고해서 투자했으나 길게 깔고 앉아 있지 못하고 수시로 포지션을 바꾸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장기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투자 아이디어임에도 조금의 수익에 만족하고 조정이 오면 바로 포지션을 청산해버리고 맙니다. 팔고 나니 주가가 두 배 세 배 오르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성공적인 투자는 언제나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합니다. 투자자 개개인의 성향, 기질, 환경은 제각각입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투자철학을 찾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런 만병통치약식의 투자철학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멍거리즘과 드러켄밀러리즘의 비교와 대비는 자신의 길을 직접 찾아 나서는 투자자에게 좋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최근 2~3개월은 다양한 변수가 변주하며 투자 세계가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모든 분이 나름의 철학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투자를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버핏클럽의 모든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