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클럽 웹진 창간을 축하하며: ‘부정적 피드백’ 역할 응원한다

‘버핏클럽’은 척박한 한국의 투자 생태계에서 보석 같은 필자들을 발굴해 그들의 아이디어를 전파해왔다. 분명 상업 매체이면서도 수익성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행보 덕에 뜻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이제 ‘버핏클럽’은 과거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뉴미디어 ‘버핏클럽 웹진’으로 변신했다.

우리는 오류를 품고 산다. 인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하며,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여기는 최선의 의사결정을 한다.

의사결정의 기본 프로세스 중 하나는 타인의 의사결정을 참고하는 일이다. 내가 취득한 제한적인 정보로는 짧은 시간에 필요한 모든 연산을 수행할 수 없으니, 이미 그 작업을 수행한 자, 혹은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취득했을지 모르는 자의 의사결정을 참고하는 것이 일견 합리적인 방안이다. 타인의 의사결정을 참고해 자신의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과정을 ‘피드백’이라고 한다. 자본시장에서의 의사결정 또한 피드백 과정이 매우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긍정적 피드백 vs. 부정적 피드백

피드백에는 ‘긍정적 피드백(positive feedback)’과 ‘부정적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 있다. 긍정적 피드백이란 타인의 의사결정과 같은 방향으로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부정적 피드백은 그 반대다. 비유하자면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가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 음식점을 보았을 때 ‘아, 맛집인가 보다’라면서 나도 그 줄에 동참하면 긍정적 피드백, ‘저런 집은 홍보에만 힘을 쏟아서 실제 맛은 없을 거야’라면서 다른 집을 찾아가면 부정적 피드백이다.

일반적인 긍정·부정 뉘앙스와는 반대로 자본시장에서는 긍정적 피드백이 여러 폐해를 야기하며 부정적 피드백이 이를 막아준다. 실생활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술자리에서 흥청망청할 때 나도 동참하는 것이 인간관계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지나치게 달아올랐을 때는 누군가 맨정신으로 “적당히 해라”라고 부정적 피드백을 주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주는 것도 부정적 피드백이다. 다시 말하지만 타인의 의사결정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부정적 피드백이다.)

자본시장에서 긍정적 피드백은 거품과 침체를 야기한다. 가격이 상승하고 누군가 그 이유를 그럴싸하게 설명해주면 다수가 따라붙는다. 덕분에 가격이 또다시 상승하고 앞서의 ‘설명’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게 더 많은 사람이 상승 대열에 동참하고 거품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가격이 하락하고 또 누군가가 그럴싸하게 종말론을 외치면 다수가 빠져나간다. 가격이 또다시 하락하고 종말론을 외친 자는 영웅이 되고 새로운 하락을 부른다. 그렇게 침체가 오고 금융기관이 돈줄을 조이면 신용이 경색되고 시스템 리스크가 불거진다.

시장에서는 늘 긍정적 피드백과 부정적 피드백이 반복된다. 부정적 피드백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시장이 안정적이다. 모두가 맨정신으로 독자적인 사고를 한다. 문제가 없다. 긍정적 피드백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누군가 나서주어야 한다. 시장의 자정 작용에 맡기려다가는 모두 같이 죽어버릴 수 있다. 과거의 자유시장이 뼈아픈 고통을 감내하며 얻은 교훈이다.

미디어의 속성

미디어는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듯하다. 당장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 영상을 보면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세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연준의 금리 인상 따위가 미래의 혁신을 꺾을 수 없다는 섬네일이 지배적이었다.

어쩔 수 없다. 매체는 돈을 벌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이 바닥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의 보상이 얼마나 큰지를 쉽게 안다.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매체가 다루고, 대중은 그 이야기에 환호하고, 매체는 다시 그 이야기를 반복한다. 전형적인 긍정적 피드백이다. 참으로 긍정적이다.

건강한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부정적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기성 매체는 힘을 잃었고 뉴미디어는 긍정적 피드백을 더 부채질한다. 자산 규모 2,000억 달러가 넘는 은행을 사흘 만에 파산시킬 수 있는 것이 뉴미디어의 힘이다.

누군가는 부정적 피드백을 제공해야 하고, 현 금융 시스템에서는 중앙은행이 행정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잘하고 있으나, 하나의 기관에 기대기에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시장에서의 자생적인 해법은 정녕 없는가?

가치투자자는 시장에 부정적 피드백을 제공한다. 독립적 사고를 강조하며, 천성적으로 남들이 다 좋다고 하면 거부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다 싫다고 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두근거림이 시작된다. 가치가 고정된 값이냐 범위냐 하는 관점의 차이에 따른 변주는 있을지언정, 가격이 올라갈수록 무언가 마땅치 않고 가격이 내려갈수록 평온함과 흥분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가치투자자다. 이런 이들이 많아질수록 시장에는 자생적으로 부정적 피드백이 작동한다.

가치투자의 생존과 번영에는 많은 장해물이 있다. 기실 가치투자란 ‘투자 대상 자산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현재 한국에 알려진 (사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가치투자는 (글렌 아널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악하고 왜곡된’ 특정 스타일, 몇몇 가치평가 지표만을 기준으로 종목을 선정하는 기법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천박한 이해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로 인해 가치투자는 ‘고루하고’ ‘낡은’ ‘기법’으로 조롱받기 일쑤이며, 가치투자를 지향한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이런 함정에 빠져 불신의 늪으로 스스로 들어가기도 한다.

가치투자 생태계의 ‘거대한 전환’

사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투자란 돈을 벌고자 하는 행위일 뿐이니까. ‘철학’이 무엇이든 돈을 벌면 생존하고 잃으면 퇴출될 뿐이다. 사변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워런 버핏’이라는 강력한 거장의 존재로 인해 언제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인정하기 싫지만 직시해야 하는 현실은, 그가 머지않은 시기에 그 자리를 떠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심정적으로 애석한 것은 차치하고, 이는 또한 현실적인 문제를 낳는다.

가치투자 생태계는 1934년 《증권 분석》 출간 이래, 언제나 ‘살아 있는 선지자’와 동시대를 걸어왔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있었고, 그레이엄의 후예들이 있었고, 그중 가장 빛나는 워런 버핏이 새로운 선지자가 되었다. 버핏이 떠나면 이 생태계는 최초로 ‘살아 있는 선지자’가 없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선지자가 사라진 이후 생태계가 분열하는 것은 종교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투자는 과학인가, 종교인가? 투자가 과학이라면 가설 설정과 검증, 피어리뷰(peer review)라는 형태로 특정인의 생존에 관계없이 투자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선지자 사후 해석의 정론을 두고 수많은 논쟁이 발생한다. 투자는 과학이기를 바라지만, 복잡한 피드백 구조가 작동하는 자본시장에서 아직 인간이 만든 가설 검증 기법으로는 투자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가치투자는 본디 지난하고 힘든 길이다. 천재적인 지성과 대단한 정보를 요하지 않는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깊은 고민과 단기간(혹은 꽤 오랜 기간) 시장에서 소외되는 상황을 견뎌낼 심리 상태를 요한다는 것은 단점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생태계는 어쩌면 몇몇 선지자의 강력한 무게감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산업은 두말할 것 없이 빠른 성장을 보였으며, 수많은 위기를 겪고도 새로운 영역으로 진화하는 ‘안티프래질’한 성과를 내어왔다. 반면 한국의 자본시장은 해외의 제도와 상품을 수입하기에 급급했으며, 이런 상품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체화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가치투자란 특정 스타일의 투자 기법이 아니다. 투자라는 행위가 도대체 무엇이고, 제한적인 능력을 지닌 인간이 이 행위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가장 유력한 대답이 가치투자다. 이 생태계는 이제 곧 아주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며, 두터운 자본시장 철학을 갖추지 못한 한국에서 이는 큰 위기가 될 수도 있다.

버핏클럽,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

투자가 도대체 무엇인지,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우리만의 대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 독립적인 사고를 하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각자의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즉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제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이곳이 ‘버핏클럽’이기 때문입니다.”

재작년 무크지 ‘버핏클럽’에서 주관한 ‘우량투자서 선정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던,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자산운용사 대표님이 회의 중 했던 발언이다. 이 말은 내게 꽤 오래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좋은 투자 서적을 선정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고, 각자가 도움받았던 좋은 책을 잘 선정하면 될 것이 아닌가? 매체의 정체성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버핏클럽’은 척박한 한국의 투자 생태계에서 보석 같은 필자들을 발굴해 그들의 아이디어를 전파해왔다. 분명 상업 매체이면서도 수익성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행보 덕에 뜻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이제 ‘버핏클럽’은 과거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뉴미디어 ‘버핏클럽 웹진’으로 변신했다.

이 바닥이 늘 그렇듯 “침착하세요. 호들갑 떨지 말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세요”라고 하는 매체는 인기가 없다. 그 인기 없고 재미없는 길을 계속 걸어가고자 하는 ‘버핏클럽’에 경의를 표한다. 부디 좀 더 많은 사람이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버핏클럽 웹진’이 그런 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버핏클럽의 모든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