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나의 멘토, 찰리 멍거를 기리며
‘현인들의 현자’ 찰리 멍거(Charles Thomas Munger)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만 100세 생일(2024년 1월 1일)을 한 달여 앞두고 2023년 11월 28일 별세했습니다. 그의 말과 글을 오래 연구하면서 책까지 펴낸 김재현 머니투데이 이코노미스트가 인생 멘토로 삼아온 찰리 멍거를 추모합니다. ― 버핏클럽
2023년 11월 29일 오전 7시 5분. 집을 나서는데 아침 달이 유난히 밝고 커 보인다. 카카오톡 알림이 와 있길래 열어보니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99세의 나이로 영면했다는 뉴스가 뜬다. 잠깐 현기증이 나면서 ‘올 것이 왔구나. 가짜 뉴스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오랫동안 워런 버핏의 단짝으로만 알던 故 찰리 멍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존에서 찰리 멍거의 책 《Poor Charlie’s Almanack(가난한 찰리의 연감)》을 구매하고 나서다. 두꺼운 종이에 컬러로 인쇄되고 문체가 생소한 책이 잘 읽히지 않아서 한동안 구석에 놔뒀다가, 2018년 맘을 다잡고 4~5개월간 틈날 때마다 읽으면서 멍거에게 푹 빠졌다.
《Poor Charlie’s Almanack》은 외형적으로 특이했다. 그동안 MBA와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벽돌 책을 사봤지만 이 책(2.5kg)만큼 무거운 책은 없었다. 내용은 더 독특해서 읽을수록 찰리 멍거라는 사람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내 생각을 가장 많이 바꿔놓은 책이다.
《Poor Charlie’s Almanack》을 읽으면서, 20년 뒤 아들에게 책을 단 한 권만 추천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씨앗이 되어 찰리 멍거와 이 책에 관한 칼럼을 썼고, 때마침 번역가 이건 선생도 오래전부터 멍거에 대한 책을 구상해온 것을 알게 되어서 2022년 말 《찰리 멍거 바이블》을 함께 펴내게 되었다.
《찰리 멍거 바이블》 서문에 쓴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다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은 20세기에 태어난 투자자 중 가장 훌륭한 투자자다. 버핏이 1965년 쓰러져가는 방직업체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해서 멍거와 함께 오늘날 시가총액 7,850억 달러의 거대 제국으로 키운 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이야기다.
《찰리 멍거 바이블》 원고를 마무리하던 작년 하반기에도,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은 멍거와 버핏 중 한 분이라도 없어진다면 그제야 우리는 얼마나 아쉬워할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불쑥 와버렸다. 올해 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데일리저널 주주총회, 5월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는 멍거를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기회가 없어졌다. 가슴이 먹먹하다.
버핏은 멍거와 자신이 많은 돈을 벌었지만 둘이 정말로 원한 건 ‘독립성(independence)’이었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멍거는 버핏보다도 독립성을 중요시했다. 1995년 출간된 로저 로웬스타인의 《버핏》에는 멍거가 부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 들어 있다.
“Not because I wanted Ferraris, I wanted independence.”
즉, 페라리를 원해서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살기를 원해서 부자가 되고 싶어 했다. 내가 마음속에서 멍거를 멘토로 삼았던 이유도 이 문장에 포함되어 있다.
내년 5월 초에는 멍거가 오랫동안 살던 로스앤젤레스를 거쳐서 그의 고향인 오마하에 갈 생각이다. 두 도시 중 한 곳에 있을 찰리 멍거의 무덤 앞에 꽃 한 송이 올려놓고 당신이 나누어준 지혜와 가르침에 감사한다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