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주식에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경영진의 훌륭함’이라고 자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 말이 의외로 상당한 오해를 사는 듯하여, 오늘은 “훌륭한 경영진에게 투자한다는 건 도대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특정 인물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경영진’이라 함은 기업에서 상당한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집단’이니, 자연스럽게 ‘경영진에 대한 믿음’이라는 구절은 ‘각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어떻게 믿나요?”라는 질문도 종종 받습니다. 저는 똑같이 이렇게 되묻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믿죠?”
주변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사람도 쉽게 믿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 내가 일면식도 없는 기업의 경영을 맡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죠? 학벌? 가문? 인맥? 커리어? 인터뷰? 관상? 사주? 성격? MBTI?
경영진에 대한 믿음을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치환하면 이런 알 수 없는 의문들로 빠지게 됩니다. 경영진에 대한 믿음은 ‘특정 인간들에 대한 믿음의 집합’이 아닙니다. ‘특정 인간들의 집합에 대한 믿음’입니다.
2. 훌륭한 경영진이란 질 좋은 경영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경영진은 기업의 장기적 방향과 일상 업무 모두에 대해서 강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입니다. 그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하느냐가 바로 경영진의 행동이고, 그 결과가 경영 성과입니다.
경영진의 퀄리티를 본다 함은 그 경영진이 해온 경영의 퀄리티를 본다는 뜻이고, 경영진을 믿는다 함은 그 경영진이 앞으로도 퀄리티 있게 경영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기업의 경영 성과, 기업이 해온 경영의 질을 본다는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했을 뿐입니다.
3. 질 좋은 경영이란 무엇인가?
그럼 다시 이런 물음이 생기겠죠. 늘 하듯이 산업 분석하고 경쟁사 분석하고 이익률 분석하고 원가 분석하고 등등등 해서 좋은 지표가 나오면 질 좋은 경영을 하는 것이냐고요.
여기서 다시 사람에 비유해봅시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비유입니다. 사람의 집단(경영진)을 사람이라는 하나의 유기체에 비유한 것일 뿐입니다.)
어떤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지금 1억을 주면 평생 버는 돈의 10%를 나눠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합시다. 이 거래의 수지타산을 어떤 근거로 따질까요? 이 친구의 학벌과 학점, 가문이 어떤지, 관심사는 무엇인지, 어디에서 인턴을 했는지, 이번에 취업한 곳이 얼마나 잘나가는지 등등을 따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정말로 평생에 걸쳐서 버는 돈의 10%를 주는 계약이라면 아마도 이런 걸 더 따지지 않을까요? 힘든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왔는지, 일이 잘 안 되었을 때 남 탓을 했는지 자기 탓을 했는지, 실패에서 배우려고 하고 더 나은 모습이 되려고 노력했는지, 그러는 과정에서도 주변 사람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는지, 뱉은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는지 등등. 스스로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열정적으로 삶에 임하며,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어야 장기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높게 점칠 수 있을뿐더러, 더욱 중요하게는 성공했을 때 그 몫의 일부를 나에게 약속대로 돌려줄 거라고 믿을 수 있지 않을까요?
퀄리티를 본다는 것은 당장 다음 분기 실적이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고자 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물론 들어가는 인풋은 대동소이할 겁니다. 산업의 동향을 파악하고 분기 실적에서 어디가 잘되었고 어디가 못되었는지 파악은 하겠죠.
달라지는 건 얻고자 하는 의사결정 항목입니다. 일상적인 원가 관리 노력, 직원의 동기 부여, 신제품 개발 의지, 정직하고 알아보기 쉬운 재무제표 작성 등은 기업이 지나온 길을 살펴봄으로써 충분히 파악 가능하고, 이를 통해 미래에도 나에게서 가져간 돈을 생산성 높게 활용할 것인지의 가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4. 자본의 한계효용
원점에서 다시 고민해봅시다. 주식에 투자하는 과정은 경영진에게 돈을 맡기고 회수하는 과정입니다. 나에게서 가져간 돈으로 무얼 하죠, 이들은? 딱 두 가지입니다. 자본재에 투자하거나 인력에 투자하거나입니다. 과거의 어떤 자본이 투입된 재화, 공장 설비나 컴퓨터 등 생산 도구, 무형의 자산들, 공간을 사용할 권리 등을 폭넓게 자본재라고 합시다. 기업은 자본재를 구입하고, 그 자본재를 사용할 사람을 고용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자본재와 인력에 돈을 투입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향후에 추가로 비슷한, 혹은 더 나은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서 투입해야 하는 자본이 얼마인가’입니다. 이번에 3천만 원을 들여서 자동차를 한 대 생산했다면, 그다음에 같은 자동차를 생산할 때는 2,900만 원, 2,800만 원 하는 식으로 추가로 투입되는 자본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같은 물건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자본이 더 줄어드는 걸까요? 과거에 해놓은 투자분에서 향후의 생산에 도움이 되는 요소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회계상으로는 감가상각이 끝난 설비에서 계속 무언가를 생산할 때 이런 현상을 관측할 수 있고요. 경제학적으로는 학습곡선이라고 부릅니다. 좀 더 일상의 말랑말랑한 용어로는 ‘노하우’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경험하고 학습합니다. 그를 통해 나중에는 비슷한 일을 더 적은 노력을 투입하고도 해낼 수 있습니다. 기업에서도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문제는 그 ‘노하우’라는 게 반드시 기업에 귀속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어떤 아이돌이 새 앨범을 냈습니다. 어떤 채널에 홍보하는 게 가장 효과가 좋을지, 그 채널의 담당자로 누구를 컨택해야 하는지는 일차적으로 마케팅 담당 직원이 알고 있겠지요. 이 사람이 일을 제대로 못 하면 기업은 비용만 잡아먹고 매출은 부진한 성과가 납니다. 이 사람이 일을 잘하면 저비용으로 고매출을 올릴 수 있겠지요. 여기까지는 당장의 ‘실적’입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자신의 노하우를 사내에 공유하지 않고 혼자만 알고 있다가 퇴사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한 사람의 퇴사로 인해 기업의 실적이 망가지겠죠. 혹은 그 퇴사를 빌미로 과도한 성과보수를 요구해서 기업이 끌려다닌다면 역시나 기업 실적이 나빠지겠죠. 근데 만약 이러한 노하우가 팀 전체 혹은 기업 전체에 공유되고, 한두 사람이 퇴사하더라도 성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기업 실적은 좀 더 지속가능성이 있겠죠. 이게 ‘퀄리티’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직원을 착취해서 직원이 가진 모든 자산을 기업에 귀속시키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훌륭한 성과’를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느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훌륭한 직원에게 동기 부여를 하는 게 매우 중요하고, 동기 부여와 비용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는 미묘한 일이 경영진이 할 중요한 업무 중 하나입니다.
이제 경영진이 등장했네요.
힘이란 건 시간이 지날수록 희석되게 마련입니다. 누군가 당장 독보적으로 강력한 힘을 지녔더라도, 강한 힘은 그 자체로 흐트러져서 사라지려는 속성을 가집니다. 생명체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생명체입니다. 닫힌 계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지만, 열린 계에서는 국소적으로 엔트로피가 역행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모습이고, 기업이라는 조직이 기업을 계속 유지해가는 모습입니다.
당장 어느 한 해 기업이 좋은 제품을 잘 팔아서 ROE나 이익성장률이 높게 나올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이 기업에 투입된 자본은 한계효용이 높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자본의 한계효용은 장기적으로(그렇게 긴 기간도 아닙니다. 2~3년이면 바로 드러납니다.) 평균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강한 압력에 직면합니다. 흐트러지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힘을 어떻게든 가둬서 기업을 유지하는 게 경영진이 해야 할 일이고, 그걸 잘하는 게 질 좋은 경영입니다.
직원을 단 한 명이라도 고용해서 급여를 줘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급여를 주고, 복리후생 체계를 갖추고, 성과보수 체계를 갖추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북돋고, 싸우는 직원들을 중재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직원을 과감하게 쳐내고, 업무 분장을 조율하고, 새로 온 직원을 교육하고, 퇴사하는 직원이 잘 나가도록 대응하고. 이게 경영진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죠. 좋은 사람이 일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 그게 잘되는 기업에 투입되는 자본은 한계효용이 높고 향후에도 높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5. 그런 기업은 어떻게 성과를 돌려주는가?
경영의 퀄리티, 자본의 한계효용 등이 가지는 사전적 정의에서 이 질문의 답은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장기간에 걸쳐 기업의 가치를 복리로 성장시킵니다.
가치평가를 해본 분은 ‘영구가치’라는 개념을 아실 겁니다. 향후 3~5년 정도의 실적을 열심히 추정하고, 그 이후 기간은 잘 모르겠으니 ‘영구성장률’과 ‘할인율’을 써서 대충 계산해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