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지난 시간에 이어 애널리스트 보고서 읽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목표주가’라는 항목이 돈을 버는 데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자료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목표 가’를 보고서의 ‘최종 결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무의미하다면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존재 가치가 없다는 뜻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보고서를 읽고, 애널리스트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다지 대단한 모습은 아니지만요.)
그럼 애널리스트 보고서에서 우리가 봐야 할 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리서치의 근거 자료와 논리
애널리스트들은 기본적으로 똑똑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주가를 예측하는 능력과는 별개로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거의 없으니까요) 열심히 노력한 분석 자료는 저의 아이디어를 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업종이나 기업을 처음 보았을 때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읽는 일은 유용합니다. 그분들도 당연히 저처럼 이 기업/산업을 처음 접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연구를 하고,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걸 보고서에 담았을 겁니다. 저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분들이 현시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료와 미래 예측의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니 당연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자료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몰랐던 새로운 내용이나 개념들, 궁금한 사항을 하나씩 검색해가면서 나만의 지식을 늘려가는 과정은 모든 투자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내가 어디에서 리서치를 시작해야 할지 알려주는 출발점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거죠.
특히나 가끔씩 나오는 ‘인 뎁스(in-depth)’ 리서치 자료는 소중합니다. 보통 애널리스트들이 한 해에 두 번 이상 담당 업종을 깊이 분석해서 수십 장 분량의 보고서를 내는데요. 이런 ‘인 뎁스’ 보고서를 낼 때는 거의 몇 달간 고생합니다. 찾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를 망라합니다. 한 섹터를 공부할 때 인 뎁스 보고서를 두세 개 찾아서 시간을 들여 주욱 읽기만 하더라도 큰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앞 시간에 말씀드렸다시피 애널리스트도 직장인이고, 모든 직장인은 본인의 업무에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가 있죠. 애널리스트의 KPI는 다양한데, 발간한 보고서의 총 페이지 수가 KPI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굳이 KPI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이번에 100장짜리 보고서를 썼다”라는 건 그 자체로 꽤 뿌듯한 일이죠.
다시 말해 분량을 늘리는 쪽으로 편향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논리를 정리하면서 무의미한 자료나 세부 논리를 쳐내야 할 때도 있는데, 사람 마음이 그러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자료도 찾고 글도 써놨으니 그냥 이대로 발간하는 게 직무 특성상 유리하거든요.
그리고 때때로 아예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들 때도 있습니다. 썼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발간을 안 하면 일을 안 한 게 되니, 그대로 발간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쓸 내용이 없음에도 ‘이번 달까지 센터장님께서 인 뎁스 하나씩 쓰라고 하셨어요’라는 이유로 보고서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모든 보고서가 애널리스트 본인의 ‘혼을 담아’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거죠. 분량이 많다는 건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는 뜻이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들 시간이 없고 바쁘잖아요. 그러니 이번에 무슨무슨 보고서를 읽어봐야지 했다가 내용이 이해가 안 되고 끝까지 읽을 시간이 없으면, 그냥 잊어버리시면 됩니다. 모든 보고서를 끝까지 읽어야지, 혹은 나중에 봐야지 하고 쌓아두다가는 끝이 없습니다. 정 버리기 싫으면 파일이나 스캔본으로 어딘가에 저장해두면 됩니다. 저는 수천 개의 보고서를 저장해뒀지만 그중 실제로 나중에 다시 꺼내서 읽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보고서가 나오거든요.
한편, 그렇게 저장해두는 행위가 전혀 의미 없는 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서 이 업종의 역사가 궁금할 때, 과거에 주가가 엄청 올랐을 때나 엄청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도대체 이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당시의 정황을 설명해주는 현재의 보고서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생생한 건 당시 발간된 보고서죠. 저는 지금도 가끔 2008년 금융위기 때, 혹은 2010년 유럽 재정위기, 2016년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2019년 미·중 분쟁,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의 보고서를 다시 읽어보곤 합니다.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