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15] 애널리스트 보고서 읽기 ②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지난 시간에 이어 애널리스트 보고서 읽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목표주가’라는 항목이 돈을 버는 데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자료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목표 가’를 보고서의 ‘최종 결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무의미하다면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존재 가치가 없다는 뜻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보고서를 읽고, 애널리스트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다지 대단한 모습은 아니지만요.)
그럼 애널리스트 보고서에서 우리가 봐야 할 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리서치의 근거 자료와 논리
애널리스트들은 기본적으로 똑똑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주가를 예측하는 능력과는 별개로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거의 없으니까요) 열심히 노력한 분석 자료는 저의 아이디어를 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업종이나 기업을 처음 보았을 때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읽는 일은 유용합니다. 그분들도 당연히 저처럼 이 기업/산업을 처음 접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연구를 하고,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걸 보고서에 담았을 겁니다. 저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분들이 현시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료와 미래 예측의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니 당연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자료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몰랐던 새로운 내용이나 개념들, 궁금한 사항을 하나씩 검색해가면서 나만의 지식을 늘려가는 과정은 모든 투자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내가 어디에서 리서치를 시작해야 할지 알려주는 출발점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거죠.
특히나 가끔씩 나오는 ‘인 뎁스(in-depth)’ 리서치 자료는 소중합니다. 보통 애널리스트들이 한 해에 두 번 이상 담당 업종을 깊이 분석해서 수십 장 분량의 보고서를 내는데요. 이런 ‘인 뎁스’ 보고서를 낼 때는 거의 몇 달간 고생합니다. 찾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를 망라합니다. 한 섹터를 공부할 때 인 뎁스 보고서를 두세 개 찾아서 시간을 들여 주욱 읽기만 하더라도 큰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앞 시간에 말씀드렸다시피 애널리스트도 직장인이고, 모든 직장인은 본인의 업무에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가 있죠. 애널리스트의 KPI는 다양한데, 발간한 보고서의 총 페이지 수가 KPI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굳이 KPI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이번에 100장짜리 보고서를 썼다”라는 건 그 자체로 꽤 뿌듯한 일이죠.
다시 말해 분량을 늘리는 쪽으로 편향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논리를 정리하면서 무의미한 자료나 세부 논리를 쳐내야 할 때도 있는데, 사람 마음이 그러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자료도 찾고 글도 써놨으니 그냥 이대로 발간하는 게 직무 특성상 유리하거든요.
그리고 때때로 아예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들 때도 있습니다. 썼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발간을 안 하면 일을 안 한 게 되니, 그대로 발간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쓸 내용이 없음에도 ‘이번 달까지 센터장님께서 인 뎁스 하나씩 쓰라고 하셨어요’라는 이유로 보고서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모든 보고서가 애널리스트 본인의 ‘혼을 담아’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거죠. 분량이 많다는 건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는 뜻이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들 시간이 없고 바쁘잖아요. 그러니 이번에 무슨무슨 보고서를 읽어봐야지 했다가 내용이 이해가 안 되고 끝까지 읽을 시간이 없으면, 그냥 잊어버리시면 됩니다. 모든 보고서를 끝까지 읽어야지, 혹은 나중에 봐야지 하고 쌓아두다가는 끝이 없습니다. 정 버리기 싫으면 파일이나 스캔본으로 어딘가에 저장해두면 됩니다. 저는 수천 개의 보고서를 저장해뒀지만 그중 실제로 나중에 다시 꺼내서 읽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보고서가 나오거든요.
한편, 그렇게 저장해두는 행위가 전혀 의미 없는 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서 이 업종의 역사가 궁금할 때, 과거에 주가가 엄청 올랐을 때나 엄청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도대체 이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당시의 정황을 설명해주는 현재의 보고서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생생한 건 당시 발간된 보고서죠. 저는 지금도 가끔 2008년 금융위기 때, 혹은 2010년 유럽 재정위기, 2016년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2019년 미·중 분쟁,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의 보고서를 다시 읽어보곤 합니다. 재밌어요.
데이터 먼저, 줄글은 다음에
보고서를 볼 때 가끔 이런 연습을 해보면 재밌습니다. 읽는 시간도 단축할 수 있고요.
보고서는 보통 한 페이지에 줄글과 데이터가 번갈아가며 등장합니다. 글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소위 ‘마바라’가 되는 거고, 데이터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가 되죠.
근데 우리는 여기서 후자의 질문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를 스스로 구성하는 능력을 익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한 여러 데이터가 필요한데, 그 데이터는 애널리스트분들이 이미 구해놓았죠. 그러면 오히려 그 데이터만 보고 나만의 아이디어를 구성해볼 수 있습니다.
즉 보고서의 줄글은 다 무시하고 그림이나 표로 나와 있는 항목을 먼저 보고, 이 데이터들이 의미하는 바를 머릿속으로 고민해보고, 그다음에 줄글을 읽어보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데요. 일단 내가 데이터를 해석하는 훈련이 되고요. ‘내가 짚어내지 못했는데 보고서 작성자는 이런 생각을 해냈구나’ 하는 공부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떻게 이 데이터에서 이런 결론이 나오지?’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데이터가 궁금하면 스스로 리서치를 해볼 수도 있고요. 해당 데이터의 출처로 찾아가서 여러 다른 데이터를 찾아볼 수도 있죠.
이러면 자료를 빨리 읽을 수도 있고, 읽은 내용이 머리에 더 오래 남기도 하고, 다른 보고서를 읽을 때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가 보기에는 이게 더 중요한데 막상 줄글에서는 언급하지 않네?’ 하는 것들이 생깁니다.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
한 업종이나 기업을 볼 때 한 명이 쓴 한 개의 보고서만 읽고 끝날 리는 없죠. 현시점에서 다양한 사람이 쓴 다양한 보고서를 읽어보고, 또 과거 여러 시점에서의 보고서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요 개념들과 디테일들을 나만의 리서치로 파악해나가다 보면, 내 머릿속에 현재 돌아가는 일들이 대략 그려집니다.
그럼 다시 이 보고서로 돌아와서, 이제는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들이 보입니다. 가끔, 혹은 상당히 자주, 무언가 눈앞에 있는 것보다는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들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다른 어떤 보고서에서는 이 기업에 대해서 OOO이라는 리스크를 언급했는데 이 보고서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왜일까? 같은 애널리스트가 지난 분기 보고서에는 내년에 ㅇㅇㅇ이라는 좋은 이벤트를 기대한다고 썼는데 이번 분기 자료에는 그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왜일까?
등등, 이제 내 스스로 이 업종, 이 기업에서 어떤 소식을 기대할 만한지 상상해낼 수 있다면, 여기서부터 역으로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보다’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리스크를 우려하다가 해소되었으면 거의 대부분 보고서가 언급합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기대하다가 사라졌으면, 실망감을 보고서에서 언급하기도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쓱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은 보고서 그 자체일 수 있습니다. A 애널리스트가 B 기업에 대해서 지난 2년간 매 분기 ‘프리뷰(실적 발표 전 추정치를 제시하는 자료)’ 보고서를 냈는데 이번 분기에는 나올 때가 되었는데 나오고 있지 않다… 라든가, 어떤 중요한 공시나 뉴스가 떴는데 직전까지는 열심히 업데이트를 해주다가 이제는 해주지 않는다… 그럼 상당히 고민해봐야 합니다.
물론 바빠서, 다른 더 중요한 업무들이 있어서 보고서를 못 썼을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해당 애널리스트가 최근에 어떤 리포트를 발간했는지 쉽게 검색됩니다. 보통 시총이 클수록 (대형 기관 투자자들의 매매 대상이 될 확률이 높으니) 중요한 기업이라서 우선순위가 높습니다. 시총이 작은 자잘한 회사라면 큰 회사 먼저 업데이트하느라 우선순위가 밀릴 수 있죠. 근데 그렇게 시총이 작은 회사가 아닌데도 발간되지 않았다, 혹은 해당 애널리스트가 다른 스몰캡은 다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이 회사만 업데이트하지 않는다, 라면 꽤 의구심을 품어야 합니다. 회사에 무언가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안 쓰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주가가 야금야금 흘러내리고 있다? 심지어 수급 주체를 찍어봤더니 연기금이나 투자신탁(자산운용사)이 순매도 상태이다? 음음음. 여러 상상을 해볼 수 있죠. 거기다 만약에 다른 애널리스트 몇 명이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추정치가 하향되고 있다? 이러면 매우 위험한 신호입니다.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실적 추정치
목표주가는 무의미하지만, 실적 추정치는 중요합니다. 앞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애널리스트가 루틴하게 하는 업무의 핵심 중 하나는 기업의 실적 모델링입니다. 회사와 미팅을 하면서도 모델링에 넣을 세부적인 수치가 잘못되지 않도록 각종 질문을 던집니다.
‘목표주가’라는 건 단순하게는 ‘이익 추정치’에 ‘타겟 멀티플(target multiple)’을 곱한 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익 추정치’까지는 애널리스트의 본심이 많이 반영되고, ‘목표주가’는 여러 ‘어른의 사정’으로 답이 정해져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사이를 메꿔주는 게 ‘타겟 멀티플’이 되는 거죠. 그래서 목표주가를 볼 때도, 이익 추정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건 회사의 펀더멘털 상황을 애널리스트가 본심을 담아 반영하는 거라고 볼 수 있고, 타겟 멀티플을 바꿔서 목표주가를 바꾸는 건 여러 외부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익 추정치와 주가 사이에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이익 추정치가 올라가는 주식을 따라 사고 내려가는 주식을 따라 팔아도 유의미한 초과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다모다란의 투자 전략 바이블》 13장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 회사 상황만 체크하고 싶다면, 최근 발간된 보고서들을 열어서 ‘추정치 변동 사항’만 봐도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편 애널리스트 모델링에서 종종 간과되는 부분은 재무상태표와 현금흐름표입니다. 보통 이익 추정은 ‘카테고리별 매출 추정 → 이익률 추정 → 기타 영업외비용 및 세금 → 순이익’ 순서로 진행되는데요. 여기서 재무상태표나 현금흐름표의 항목은 보통 그렇게 크게 기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업 분석의 초보에서 중수 레벨로 올라가려면 손익계산서 못지않게 재무상태표와 현금흐름표도 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저도 잘 못 봅니다.) 재무상태표와 현금흐름표의 주요 항목은 손익계산서를 선행하기도 하고, 가끔씩 등장하는 영업외비용이나, 심지어 분식회계 리스크까지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이야기는 《거인의 어깨 2》에 상세히 적어놓았는데요. 몇 가지만 간단히 언급하자면, 재고자산과 매출채권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지면 무언가 회사에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고, 무형자산이 많으면 예상 밖의 ‘일회성 비용’(저는 ‘다회성 비용’이라고 생각하지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어디까지나 ‘간단한’ 언급이기 때문에, 사안별로 상세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정상적인 애널리스트 모델링이라면 재무상태표-손익계산서-현금흐름표-자본변동표의 각 항목들이 1원 단위까지 딱딱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추정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분석가의 주관적인 판단을 반영하기 때문에, 매출액-영업이익-순이익 등 자주 보는 지표가 아닌 항목들은 간과하기 쉽습니다.
자, 지금까지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래서 이 보고서 작성자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뭘까? 본심을 파악하는 방법, 행간을 읽는 방법 등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