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오랜만에 ‘최소한의 산업 공부’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주제는 방위산업, 줄여서 방산입니다. 방산에는 상당히 중요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관련 주식의 가격도 많이 올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방산은 다수의 투자자에게는 생소한 산업이고, 방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어본 적조차 없습니다. 그렇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방산 기업들은 변화하는 국제 정세로부터 좋은 기회를 포착해오고 있습니다. 방위산업의 특징을 고려해볼 때 수출 증가는 단순한 이익 증가뿐 아니라 상당한 프리미엄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방위산업의 특징
보험 성격의 수요
무기의 구매자는 국가입니다. 국가의 국방예산에서 무기 발주가 나옵니다. 국방비는 전쟁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책정됩니다. 얼마만큼의 국방비 지출이 적정한지 책정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우선 개별 무기의 성능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기의 성능이란 파괴력, 살상력, 방어력, 내구성, 기동성, 지속성, 보급 용이성 등 상당히 다양한 요소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적’을 파괴하고 ‘적군을 살상’하는 일을 가치로 환산해야 하는데, 도저히 쉽지 않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산업에서 가치를 산정하는 일이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만 방산업은 가격도 불확실합니다. 당장 무기를 사 오는 가격은 눈에 보이지만, 실제로 무기 체계를 운용하다 보면 수많은 부대비용이 들어갑니다. 무기를 운용하는 인력을 교육하는 비용, 각종 소모품 비용, 고장과 파괴에 대비한 부품 재고 비용 등 많은 비용이 듭니다. 무기란 전반적인 무기 체계 내에서 운용되어야 하므로 기존 무기 체계와 호환되지 않으면 이러한 각종 비용들은 또 더욱 늘어납니다. 심지어 무기는 개발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수요자들의 구매 의사결정이 먼저 있고 나서 개발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전체 수요를 가정해서 비용을 산정하고 역으로 가격을 책정하는데, 개발 도중에 수요자가 구매를 취소해버리면 단위비용이 증가하면서 가격을 다시 산정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개별 무기의 경우에도 이렇게 가성비를 논하기가 매우 어려운데요. 전체 지출 예산으로 보면 그 적정성을 평가하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기본적으로 방위비는 보험 성격의 예산입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서 방위력을 갖추는 거죠. 그런데 적절한 방위력을 갖추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역설적으로 그만큼의 방위비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연 50조 원을 지출했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실 40조 원만 지출했어도 되는 거 아냐?’라는 비판을 받는 거죠.
그러다가도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버리면? 그리고 심지어 전쟁에서 져버리면? 그동안 얼마를 지출했든 간에 충분하지 않았다고 후회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험료를 대할 때의 기분이 이와 비슷하지 않나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보험료를 내면서, 보험금을 받을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보험료가 아깝다고 느끼지만, 보험금을 받을 일이 발생하고 나면 차라리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죠.
여기서 또 더 복잡한 관계가 생깁니다. 우리가 보험을 많이 든다고 해서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아지진 않죠. 보험을 가입하는 행위와 보험이 보장하는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독립적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보험 사기를 치고자 한다면 보험 가입 행위와 사건 발생 가능성 사이에 상관관계가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보험을 들었으니까 좀 더 부주의하게 지내다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겠습니다. 보험 가입 행위와 보장 사건 발생 확률이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볼 수 없는 거죠.
국방비에서는 이런 관계가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아무리 보험 성격의 비용이라 한들, 무기 지출이 완전히 방어만을 위한 지출이라고 주변국에서 믿어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영국이 독일과의 동맹을 거절하게 한 1907년 ‘크로 메모’는 군비 증강의 역설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해당 문서에서 작성자 에어 크로는 ‘무력을 가진 자의 의도보다는 그러한 무력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타국이 우리를 침략할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우리를 침략할 힘을 가졌다는 사실에 집중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와 관계가 소원한, 그래서 우리를 침공할 여지가 있는 나라에서 군비를 늘리고 있으면 우리도 함께 늘리는 게 합당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판단이 맞다면, 누군가 군비를 늘렸을 때 주변국들이 다 같이 군비 증강 태세에 돌입하고, 그러면 그 주변 나라들이 또 군비를 증강하는 악순환이 쉽게 발생합니다. 양의 피드백(Positive feedback)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한히 군비를 늘릴 수만은 없는 게, 무기는 생산적인 일에 재투입되는 물건이 아닌지라 무기 생산에 나라의 자원이 지나치게 배분되면 결국 나라의 전반적인 생산력, 즉 국력이 망가집니다.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채로 군비만 늘리다 보면, 군비에 지나치게 투자한 나라의 국력이 오히려 쇠퇴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따라서 단기적인 방위력 증강과 장기적인 생산력 훼손 사이에서 예산 지출 정도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각 나라의 의사결정 체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왕정국가나 독재국가라면 소수의 누군가가 결정할 테고, 민주국가라면 의회의 결정을 따르겠죠. 왕정이나 독재국가라 하더라도 여론을 살피는 일이 많습니다. (오히려 더 많이 신경 쓸지도 모릅니다.) 국력 약화는 전 국민이 피부로 느끼게 마련이거든요. 그 정도 상황까지 가버리면 정권이 뒤집힐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정리하자면 방위산업의 수요는 국가가 결정하고, 적정 규모를 책정하기 어렵고, 주변국의 지출 추이와 여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출이 어렵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도구입니다. 수입은 다른 나라에서 만든 물건을 들여오는 일입니다. ‘무기 수입’이라는 단어는 본질적으로 어폐가 있습니다. 우리의 전쟁 수행 능력을 타국이 만든 물건에 의지한다는 뜻이 되니까요.
어느 정도 제조업 생산 기반을 갖춘 국가라면 자국 방위를 위한 제조 시설을 자국 내에 두기를 원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동맹과 신뢰로 맺어져 있다 하더라도 세상 일은 어찌 될지 모르고, 목숨보다 소중한 건 세상에 몇 없습니다.
지난번 화장품 산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화장품 ODM이 발달한 나라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캐나다 등이 있음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이미 일반적인 공산품 제조에서 아시아에 주도권을 거의 뺏겼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요 생산 기지로 남아 있음은 그 산업의 독특한 특색을 시사하지 않을까 말씀드렸습니다.
방위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기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독일,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입니다. 미국, 중국, 독일이야 워낙 제조 강국이라 그렇다 치고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은 조금 특이하지 않나요? 앞서 언급한 화장품 ODM 강국들과 꽤 겹쳐 보입니다. (수입국은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입니다.)
아무리 신흥 제조 강국이 치고 올라온다 하더라도, 그 나라에서 생산하는 무기를 수입하려면 상당히 많은 허들이 필요합니다.
앞서 무기의 가격이 의외로 계산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는 해당 무기를 도입하더라도 실제 운용에서 다양한 고려 사항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무기를 실제 전쟁에 투입하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인력을 훈련해야 하고, 소모품 보급 체계도 마련해야 하고, 파괴·손상된 무기를 대체하기 위해 계속 새 무기를 보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잘 준비해두었다 하더라도, 실제 전쟁에서 기대한 만큼 이 무기가 잘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따라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격언이 가장 잘 작동하는 분야가 방산 분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우아한 표현으로는 ‘레퍼런스’ 혹은 ‘전쟁 수행 경험’이라고 부르죠. 실제 전쟁에서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적을 타격하는 일을 수행한 적이 있는 무기는 다른 무기보다 훨씬 신뢰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 무기 체계와 호환이 가능한 체계, 예를 들어 동일한 스펙의 탄약을 사용한다든가 작동하는 인터페이스가 유사하다든가 하면 작전 수행이 용이해지기 때문에 무기 도입에서 고민거리가 유의미하게 줄어듭니다. 거꾸로 말해 생소한 무기 체계일수록 신규로 도입 계약을 따내기가 (다른 산업에 비해) 매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기존에 무기를 잘 팔아서 ‘레퍼런스’와 ‘레거시’를 잘 구축해놓은 국가들이 향후에도 무기를 계속계속 잘 팔 수 있고, 그 결과 과거에 전쟁을 많이 했고 무기를 많이 팔았던 나라들이 여전히 무기 수출국 리스트 상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습니다.
개발비가 많이 들고 기간이 오래 걸린다
무기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파괴하는 도구입니다. 효과적으로 목표물을 파괴하고(물리적으로든 화학적으로든), 파괴로부터 지켜야 할 대상을 잘 방어하는 게 무기의 기본 덕목입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무기의 개발 과정은 어떠할까요? 파괴의 반복입니다. 전자제품의 낙하 테스트와 방수 테스트는 모두 제품을 파괴하는 테스트이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자동차의 충돌 테스트 1회 비용은 1억 원이 훌쩍 넘습니다. 전자제품과 자동차는 고유의 용도가 있고 낙하·방수·충돌은 안전을 위한 테스트입니다. 그러나 무기는 파괴와 그로부터의 방어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개발의 많은 과정이 파괴입니다. 보통의 민간용 제품이라면 큰맘 먹고 한 번씩 하는 파괴 테스트가 무기 개발에서는 일상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보험 성격의 지출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가능한 최신의 기술을 써야 합니다. 적국의 무기보다 약간 뒤처지는 성능의 무기를 도입했다가는 치명적인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10:9의 무기 성능이 실제 전쟁에서 10:1의 결과를 낳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 외에도 개발비가 높은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가혹한 환경에서도 작동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품질 기준이 엄격합니다. 민간 제품보다는 소량 생산합니다. (총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휴대폰만큼 많이 팔리지 않고, 전차 자주포가 아무리 많이 팔려도 자동차만큼 많이 팔리진 않죠.) 보안 요구 사항도 높아서 프로젝트 관리비와 개발 인력 비용이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