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17]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주식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한국 주식은 외국인이라는 수급 주체가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서 등락이 심합니다. 물론 기업의 가치란 외부 수급과 독립적으로 존재하여, 누가 주식을 들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좋은 주식이라면 장기간에 걸쳐서 주주에게 그만한 가치를 돌려주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특수한 상황 덕에, 외국인이 선호하는 주식은 가치의 저평가가 빠르게 해소되거나 외려 프리미엄을 받는 등 주가 측면에서 긍정적인 흐름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더 나아가 기업 가치 자체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국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주식의 유형을 파악해둔다면, 선호하지 않는 주식보다 좀 더 많은 비중을 실어서 더 큰 수익 기회를 노릴 수도 있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외국인이 사는 경우
우선 탑다운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사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 즉 1) 위험자산 선호 2) 중국 프락시(proxy) 3) 반도체 업황입니다.
1) 위험자산 선호
한국 주식을 사는 외국인 투자자는 정의상 글로벌 투자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리저널(아시아 지역 투자) 투자자는 되어야 하죠. 글로벌 투자자는 에쿼티(주식) 위주의 투자자, 자산배분 투자자, 롱숏 헤지펀드 등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사모펀드(PEF)도 있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런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여러 자산군 대비 ‘한국’ ‘주식’의 매력도를 먼저 판단하여 ‘한국’ ‘주식’ 비중을 정한 다음(탑다운 비중 조절) 그 안에서 어떤 주식을 살지를 정합니다(스탁 피킹).
한국은 글로벌에서 신흥국으로 간주되고, 주식은 채권보다 위험자산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므로 외국인이 ‘한국’ ‘주식’ 비중을 늘리기 위해서는 글로벌 자산배분에서 위험 선호 현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위험 선호라 함은, 선진국보다 신흥국 주식을 선호하고, 채권보다 주식을 선호하는, 즉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더 큰 위험을 추구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자산배분의 기본적인 의사결정은 위기 상황에는 안전한 채권과 안전한 선진국 주식 비중을 늘리고, 위험이 지나가면 주식, 그중에서도 신흥국 주식을 늘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게 좋은 의사결정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그런 움직임이 있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혹은 그 이전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일 때, 혹은 2020년 코로나가 터진 직후, 2022년 코로나가 정리되고 금리를 인상할 때 등은 선진국 주식을 삽니다. 반대로 1990년대 냉전 종료 이후 자유시장이 확산될 때, 2000년대 중반 중국과의 무역이 흥하고 신흥국이 빠르게 성장할 때는 신흥국 주식을 삽니다.
2024년의 경우, 금리를 인하하면서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신흥국 주식을 사야겠지만,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미국 기업들이 가장 안정적인 실적과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오히려 미국 주식을 더 선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미국이 보호무역을 강하게 외치면서, 자유무역의 수혜를 보는 신흥국을 더 이상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중국 프락시
1972년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이후 중국은 수십 년간 엄청난 고속 성장을 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장에 열광하는 건 투자자의 본성입니다. 중국의 기업이 성장세가 강하니 중국 주식을 사고 싶어 하는 투자자가 많았지만, 중국은 자본시장이 제한적으로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주식 투자로 이익을 거두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좋은 대안이 한국 주식이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 익스포저가 크면서 시장도 중국보다는 훨씬 개방되어있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가 접근하기에 (중국보다는) 좋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성장할 때, 2000년대 중반 혹은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는 한국 주식의 외국인 유입이 상당했습니다.
후강퉁 선강퉁 등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해외의 개인 투자자가 상하이와 선전 거래소 주식을 직접 살 수 있게 되었지만 한도가 많지는 않아서 여전히 한국 주식이 중국 주식의 대안이었습니다.
이런 콘셉트로 한국 주식을 살 때는 중국에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회사-휴대폰, 휴대폰 부품, 자동차, 자동차 부품 등- 혹은 중국에 무언가를 파는 회사- 음식료, 화장품, 의류 등-를 선호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식들은 대체로 시가총액이 작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돈의 단위가 크기 때문에, 그리고 세부적으로 기업 탐방을 다니기 어렵기 때문에 굵직한 콘셉트로 주식을 매매합니다. 그래서 위의 목록에 해당하는 주식 중에서도 시가총액이 1조 원 이상이어야 관심 목록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가끔씩 외국인이 스몰캡을 사기도 하는데, 홍콩/싱가포르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이 매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편 중국과 경쟁하는 산업은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업종이 화학과 철강입니다. 조선과 해운도 해당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개발하면서 전략적으로 몇몇 업종을 찍어서 보조금을 줘가면서 산업을 진작합니다. 산업 전체가 커지는 와중이라면 중국의 프락시로서 한국 주식을 살 수 있겠지만, 산업 성장이 정체되거나 공급 과잉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는 산업 내 경쟁 기업 전체가 피해를 봅니다. 이런 주식들에 외국인 지분율이 의외로 꽤 높은 걸 볼 수 있는데, 그들도 물린 거죠….
최근 몇 년간 ‘중국 프락시’라는 콘셉트는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이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외치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중국 주식 신뢰가 떨어지고 중국 투자 자체가 약해졌습니다. 그러니 중국 주식을 사고 싶어도 못 살 때 한국 주식을 대안으로서 매수하는 메커니즘도 작동하지 않는 거죠. 또한 미국 주도로 중국을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지난 정권들에서 진행되었고, 이번 정권에서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리라고 겁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 이런 콘셉트를 반대로 응용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미국이 중국을 밸류체인에서 배제하고자 한다면, 중국과의 경쟁으로 피해를 입은 주변 기업들이 오히려 수혜를 볼 수 있고, 한국 기업들 중에 이런 기업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이 자국 중심주의로 강하게 나서면서 주변국의 반발을 산다면, 미국을 제외한 별도의 밸류체인이 형성될 수도 있고, 거기에 중국이 속하든 아니든 한국 기업이 수혜를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낙관적인 기대이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3) 반도체 업황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은 누가 뭐래도 반도체입니다. 반도체 업황이 좋다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미국의 마이크론 혹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샀어야 했죠.
그렇습니다. 샀어야 ‘했죠.’ 과거형입니다. 앞서의 1)과 2)도 현재는 꽤 변화가 있는데 이번 3)이야말로 가장 극심하게 변화를 겪는 중입니다.
한국의 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로직반도체(한국에서만 ‘비메모리반도체’라고 부르는…)인 인텔, AMD, IP 업체인 ARM이나 브로드컴, ADI 등 여러 선택지가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메모리반도체의 사이즈가 워낙 크고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훌륭했기 때문에 반도체 업사이클에서 한국 기업을 배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현재는 엔비디아라는 극강의 강자가 미국에 있고, 반도체 생산에서는 TSMC라는 최강자가 대만에 있습니다. 전방에는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 주체가 안 되는 ‘빅테크’들이 미국에 포진해 있고요. 과거에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서버의 바로 뒷단에 디램이 들어갔습니다. 메모리가 최종 소비재 대비 ‘1차 벤더’였죠. 지금은 넷플릭스, 오픈AI, 어도비 등이 최종 소비재라 치면 그 뒤에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클라우드 서비스가 있고, 그 뒤에 엔비디아, 그 뒤에 TSMC, 그 뒤에 하이닉스의 HBM이 있습니다. 최종 소비재로부터 ‘4차 벤더’ 정도가 되는 거죠.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성장성 높은 전방산업과 관련된 회사를 사고자 할 때, 굳이 뒷단의 뒷단의 뒷단인 메모리반도체까지 시선을 옮기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심지어 난공불락인 것처럼 여겨지던 디램에서 중국이 나름대로 입지를 넓혀오고 있습니다. 실제 중국산 디램이 쓸 만한지, 수익성이 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긴 합니다만, 우선 관심이 있어야 그 논란을 검토라도 해보는 거죠. 어차피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데 경쟁력 훼손 논란이 있으면 아예 관심을 거두는 선택이 현명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전통적으로 한국 주식을 사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현재는 그 세 가지 이유가 다 그다지 유효하지 않습니다. 7월 연준 금리 인하와 함께 경기침체 우려로 전 세계 주식이 다 빠졌다가 9월 이후 한국만 반등하지 못한 모습을 어느 정도 설명해줍니다.
물론 이유를 찾자면 훨씬 더 많이 있겠고, 그중 과도한 우려가 있었다면 우려가 해소되면서 주가는 반등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은 주가를 전망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므로 이 점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위의 변화-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가고, 중국을 밸류체인에서 배제하고자 하고, 한국의 메모리반도체가 밸류체인의 뒷단으로 밀려난 상황-는 상당히 구조적인 변화이고, 꽤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영영 사지 않을까요?
사실 한국인의 한국 주식 선호가 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프랑스의 투자자라면 자국 주식으로 주식 포트폴리오 대부분을 채우지 않겠지요. 대표적으로 영국의 워런 버핏이라 불리는 테리 스미스의 ‘펀드스미스’ 포트폴리오는 70% 이상이 미국 주식입니다. 한국의 투자자도 기본적으로 글로벌한 관점에서 자산을 고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주식은 특별한 선호가 있을 때 이례적으로 고르는 자산인 거죠.
바로 이런 관점에서 힌트가 있습니다. S&P500, 나스닥 ETF,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주식들을 다 사고도 한국에서 사고 싶은 어떤 주식이 있다면, 어떤 주식일까요?
물론 각 투자자가 잘 아는, 퀄리티 있고 성장성 높고 가격도 싼 주식은 당연히 그 대상이 되겠습니다만, 여기서는 한국 주식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콘셉트 측면에서’ 매력을 느낄 주식의 유형을 이야기합니다.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주식
어떤 유망한 트렌드가 있는데 관련 기업을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전 세계 사람들이 피부 미용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한국의 미용 기기가 가장 가성비가 좋고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면요?
전 세계 사람들이 주머니 사정은 안 좋아졌는데 성능 좋은 화장품은 사고 싶고, 그런데 그 화장품을 한국에서 가장 잘 만든다면요? (얼마 전에는 어떤 프랑스인이 ‘한국이 화장품 종주국이야’라고 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전 세계는 군비 증강 추세인데 캐파를 증설한 기업이 한국밖에 없다면요?
K-POP의 인기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돋보이는데, 이런 연예기획사 모델은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죠. 트럼프 대통령(당선인)은 무역장벽을 외치면서도 “한국의 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한국은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산업을 전개하고 있고, 그 산업들이 점점 고도화되어서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처럼 값싸게 찍어내는 일은 이미 예전에 중국으로 넘겨줬고, 이제는 그 중국마저도 저가 제품 생산은 베트남, 인도, 멕시코로 넘기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과거처럼 ‘사람을 갈아넣는’ 산업에서 진화하여(차마 탈피했다고는 못 하겠네요. 여전히 갈아넣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열정과 성실함뿐만 아니라 창의성, 다양성이 접목된, 그리고 신뢰성이 필요한 산업에서 꽤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선진국 제조업’으로 남아 있던 분야들을 하나씩 잠식하는 중입니다.
선진국의 값비싼 인력들은 제조업으로 가지 않고, 그들이 만드는 제품은 과거로부터 브랜드 인지도를 물려받은 럭셔리·프리미엄 제품 혹은 브랜드 인지도로 승부하는 제품이 남아 있고, 그 외 진성으로 제품력과 가성비로 승부해야 하는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여전히 남아 있고, 이미 잘하고 있습니다. (이전 칼럼 ‘프리미엄의 조건’ 시리즈 참고.)
퀄리티 주식
아무리 콘셉트에 맞더라도 퀄리티가 받쳐주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매수를 꺼립니다. ‘이제는 한국 바이오의 시대다’라고 우리가 아무리 외친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장 풍부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빅파마를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바이오를 선택하기에는 손이 쉽게 나가지 않죠.
그러나 반대로, 성장성이 대단하지 않더라도 퀄리티, 즉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전체 주주’를 위해서 그 역량을 쏟고 있음이 확인된다면 외국인 투자자의 손은 쉽게 나갑니다.
앞서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주식’이 한국인이 대체로 좋아하면서 외국인도 좋아할 수 있는 콘셉트라면, 이 ‘퀄리티 주식’은 한국인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지만 외국인은 너무나 신경 쓰는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올해의 은행 주식들이 대표적입니다. 사실 ‘밸류업’이라는 콘셉트를 갖다 붙일 필요도 없이, 은행은 이미 과거부터 주주환원 요구가 거셌습니다. 어차피 은행은 북(장부) 기반 대출 비즈니스인데, 은행이 고성장을 한다는 건 그만큼 사회의 레버리지가 늘어난다는 뜻이므로 좋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은행은 ‘성장, 성장’을 외치면서 쓸데없이 대출자산을 키우다가 부실이 터져서 상각하고 한동안 웅크리다가 또 와장창 레버리지를 늘리기를 반복해왔습니다. 지나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 무한 경쟁을 하면서 주주환원은 적고, 돈을 좀 벌라치면 정부의 압박으로 어디엔가 토해내기를 반복했습니다.
2010년대 중반 조선, 해운, 건설업의 부진으로 은행들은 대규모로 상각한 후 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쌓았고, 이후 감독기관의 보수적인 회계처리 압박에 힘입어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건전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사회적으로 주주환원 압박에 거세지고 은행들은 순차적으로 이런 요구에 호응했습니다.
과거 보수적인 충당금 설정으로 이익 여력이 높아진 와중에 사회의 주주환원 요구가 있었고 정부도 이를 용인하면서 ‘대(大) 주주환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간의 은행업은 외국인 입장에서 성장은 막혀 있고 주주환원도 적고 장부는 믿을 수 없고 돈을 벌어봤자 정부에 상납해야 하는 그런 업종이었습니다만, 최근 몇 년 사이의 은행업은 ‘환골탈태’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데는 ‘대주주가 누구냐’가 한몫했습니다. 은행의 대주주는 외국인 투자자 혹은 국민연금입니다. 외국인 투자자야 당연히 자본이득을 원할 테고, 국민연금 또한 우리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보유 자산의 자본효율성에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한국의 고질적 병폐인 ‘특정 대주주의 사익 편취’가 작동할 여지가 은행에서는 훨씬 적은 것입니다.
은행이야 올해 가장 수익률이 좋았던 섹터 중 하나이니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터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도 성장성이 아닌 주주환원으로 꽤 오랜 기간 주가가 추세적으로 상승한 사례가 나왔으니, 이제 다른 업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습니다.
그간 한국에서는 성장이 아니면 주식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성장이 정체되었을 때는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회사 내에 쓸데없이 쌓아두거나 어딘가 알게 모르게 빠져나가니, 그보다는 ‘성장이라는 달콤한 환상’에 젖는 것만이 주가 상승의 (거의) 유일한 촉매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 걸음 정도는 바뀌었습니다. 특정 대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기업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 때 사회적으로 반발이 거세고, 당국도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업이 선제적으로, 탄탄한 사업 안정성을 기반으로 주주환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면 큰 폭의 주가 상승을 누릴 수 있겠죠.
워런 버핏이 좋아하는 주식은 기본적으로 현금 잠식 없이 가치를 계속 늘려나갈 수 있는 기업의 것입니다. 한국에는 그럴 수 있는 비즈니스를 갖춘 기업이 애초에 별로 없었고, 그런 단계에 도달한 기업들도 그렇게 할 의지가 없었습니다. 80년쯤 전 미국 증시가 겪었던 변화를 한국이 조금씩 겪는 중이고, 이제사 ‘워런 버핏식 투자’가 한국에서 약간이나마 가능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