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단상] 버핏이 현금 약 500조 원을 쌓아둔 이유

시장에 난무하는 소음 속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기본에 집중하고 올바른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투자 단상’은 현직 펀드매니저가 시의적절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투자 대가들이 역경을 이겨낸 방법을 소개하고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기회도 마련하겠습니다.  ― 버핏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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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강세장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워런 버핏은 버크셔의 주식 보유를 줄이면서 현금 보유 규모를 늘려가고 있어 대비됩니다. 2024년 3분기 말 기준으로 버크셔가 보유한 현금 및 단기 미 국채 규모는 3,200억 달러가 넘습니다. 특히 단기 국채는 2023년 연말 1,290억 달러에서 2,880억 달러로 3분기 만에 두 배가 넘었습니다.

시장과 언론은 역대 최대 규모의 현금 보유를 두고 시장 과열을 논하고 있습니다. 물론 S&P500지수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점도 함께 언급합니다. 버핏은 시장이 과열되었다고 보며, 그 때문에 역대급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논리가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물론 저도 정확한 답은 알지 못합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론인데요. 다만 버핏이 역대급 규모의 현금을 보유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님을 기억한다면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버핏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주식만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 밖에서 기업을 통째로 사는 M&A와 상장주식 투자라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활용합니다. 물론 기업 지분 외에 채권 같은 자산에도 투자합니다.

버크셔의 규모가 작았을 때는 상장주식 투자의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주식 투자로 수익을 내면서 꾸준히 사업들을 인수해왔고, 사업 인수의 규모가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이후입니다.

2024년 3분기 말 기준 상장주식 투자 규모는 2,710억 달러여서 총자산 1조 1,470억 달러의 23.6% 수준입니다. 현금 및 단기 국채 3,200억 달러를 감안하면 나머지 5,560억 달러가 인수한 사업들에 투자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장주식 투자 규모의 2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버크셔의 순자산은 6,310억 달러이고, 현시점(2024년 12월 24일) 시가총액은 9,780억 달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버크셔에 의미 있는 투자라면 적어도 1,000억 달러는 되어야 한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버핏은 사냥할 만한 ‘코끼리’를 찾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습니다.

즉 작금의 역대급 현금 보유는 버핏이 시장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기보다는 버크셔에 의미 있는 규모의 투자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버크셔의 핵심 사업인 재보험사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보험금 지급을 위해 보유해야 할 현금이 같이 늘어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버크셔의 현금은 시장 급락 시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지금껏 여러 이유로 발생해온 시장 패닉 시기에 유유히 거액의 현금을 털어 넣어 ‘역시 버핏’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으니까요. 버핏은 2008년 금융위기 시기의 골드만삭스 투자, 코로나 시기의 쉐브론 등 남들이 시장에서 도망쳐 나올 때 유유히 줍줍에 나선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과 무관하게 거액을 쏟아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버크셔의 최대 상장주식 투자인 애플은 2016년 5월 편입을 시작하고 2017년에 본격적으로 비중을 확대했습니다. 2017년 S&P500지수의 수익률은 21.61%로, 배당을 포함한 장기 연평균 수익률 9%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게다가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을 제외하고 2009년 이후 당시까지 지수는 한 해도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즉 장기 상승장에서 대규모로 투자한 것이죠. 오히려 2018년은 지수가 -4.23%를 기록합니다. 미·중 무역 분쟁이 본격화된 시기였습니다.

올해 지속적으로 시장이 과열되었다고 진단하고 약세장을 예상했던 월가의 전문가들이 최근 반성문을 쓰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S&P500지수의 높은 수익률과 역사적으로 높은 밸류에이션에 근거해 과열로 보았는데요, 자신들의 논리가 틀린 이유로 AI에 의한 생산성 향상을 들고 있습니다.

경기와 시장을 바라보는 기존 근거로는 고평가이지만, 2022년 이후 진행되어온 AI에 의한 생산성 향상을 고려하면 고평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시장 상황에 끼워 맞춘 듯한 변명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AI를 활용해서 이익을 높여가는 빅테크들과 나머지 기업들을 감안하면 단순한 변명만은 아닌 듯합니다.

버핏은 기술기업이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난다고 누차 언급해왔습니다. 애플은 소비재 독점 기업으로 보고 투자했고, 중국의 BYD는 탁월한 경영자 왕촨푸에 대한 투자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즉 현재 시장을 견인하는 AI는 버핏 입장에서는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버핏이 아닌 투자자의 입장은 조금 다릅니다. 버핏이 모르는 영역이라고 해서 나도 눈을 감아버린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특히 자신이 잘 알 역량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다면 말이죠. 단적으로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 틸은 버핏과 같이 ‘독점’적인 기업을 좋아하지만, 틸이 보는 ‘독점’은 ‘기술력’에 의한 독점력입니다. 즉 누군가는 AI에 의한 트렌드에서 기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 지수의 수익률이 평균 수준보다 한참 높고 밸류에이션도 역사적 수준이라는 이유로 고평가를 논하는 것은 이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심지어 버핏이 버크셔에 역대급 현금을 쌓아둔 이유를 댄다 한들 말이죠.

투자자는 어디까지나 개별 기업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합니다. 지수를 사는 투자자가 아니라면 지수에 상관없이 개별 기업에서 기회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올해 미국 시장은 전형적인 강세장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미국 국채 10년물이 4.6%에 육박하는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돈에 대한 중력은 높지만 그만큼 투자자들은 미래 성장성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과열이라고 판단할 수 있고, 누군가는 강세장 추세가 지속되리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2013년에 S&P500지수는 32.15%의 강세장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2014년에도 13.52% 수익을 내면서 과열 우려를 보기 좋게 날려버렸습니다. 이런 사례는 역사적으로 수도 없이 많습니다. 즉 내년의 시장은 올해의 결과만으로 평가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국장 코스피의 올해 성적은 처참하기까지 합니다. 바닥에 대한 기대를 끊임없이 깨버리면서 하락 추세를 보였습니다. 저 역시 국장에 대한 애정이 있고 역대급 저평가 구간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논의한 것과 마찬가지로 올해의 결과가 내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찰리 멍거는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우산을 들고 있는 기업을 고르는 것이 투자자가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물론 큰 수익을 내려면 결국 비는 그치고 해가 뜬다는 기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비가 오고 거친 날씨에도 튼튼하게 버텨낼 수 있는 기업을 고른다면 장기적인 투자가 가능하고, 향후 해가 뜨는 날에 웃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버핏이 역대급 현금을 쌓아둔들, 시장의 밸류에이션이나 수익률이 높다 한들, 투자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능력범위 내에서 열심히 기회를 찾아다니는 투자자가 결국 결실을 거둘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투자를 기원합니다.

※ 버핏클럽의 모든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