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단상] '꽃놀이패' 든 버핏, 잘되면 대박 안돼도 중박
시장에 난무하는 소음 속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기본에 집중하고 올바른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투자 단상’은 현직 펀드매니저가 시의적절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투자 대가들이 역경을 이겨낸 방법을 소개하고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기회도 마련하겠습니다. ― 버핏클럽
최근 버크셔 해서웨이 워런 버핏 회장의 2024년 주주서한이 공개되었습니다. 투자 실수에 대한 반복적 언급이라든지 인수 기업 포리스트 리버와 관련된 일화, 향후 후계자인 그레그 에이블에 대한 언급 등이 있었습니다.
투자자로서 일본 상사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언급한 부분이 특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워런 버핏은 2019년 이익의 4~5배 수준에 거래되면서 배당수익률도 높았던 일본 상사 기업 5곳에 투자를 단행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미 사업적으로 전성기가 한참 전에 끝났다고 본 종합상사에 대한 투자여서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자원 개발 분야에 집중된 사업 구조 탓에 석탄과 석유 등 천연자원에 대한 투자라거나, 당시 바닥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한 일본 시장에 대한 긍정적 베팅이라는 등 여러 분석이 난무했습니다. 낮은 PER에 매수해서 전형적인 가치투자라고 평가받기도 했고, 혹자는 성장성 없는 기업을 단지 PER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매수했기 때문에 가치함정에 빠질 거라고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말이 많았던 일본 상사들에 대한 코멘트였기에 더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미 찰리 멍거가 생전에 일본 투자의 아이디어를 언급한 바 있으니 새롭지는 않았죠.
핵심은 낮은 이율의 엔화 채권을 발행해서 그보다 높은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기업들에 투자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자원의 가격에 따라 업황이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부분의 리스크는 이미 낮은 PER에 반영되어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산업 자체의 성숙도 때문에 추가 경쟁 가능성도 낮은 상황에서 높은 배당수익률이 보장된다면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투자라고 본 거죠. 버크셔 자회사들과 사업적 협력을 꾀할 기회는 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원가성 자금인 플로트를 끌어 와서 ROE가 높은 기업에 투자하는 버크셔 보험사업의 구조와 유사합니다.
향후 인플레이션으로 자원 가격이 오른다면 주가에 반영될 테니 그 자체로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버핏 투자의 핵심 - 꽃놀이패
이러나 저러나 유리할 수밖에 없는 소위 ‘꽃놀이패’형 투자인 셈이죠. 이 상사들에 대한 투자에서 발생하는 연간 배당금은 8억 1,200만 달러이며, 이에 따른 이자 비용은 1억 3,500만 달러라고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물론 투자했던 원금 138억 달러는 253억 달러가 되었습니다.
버핏 투자의 핵심은 이처럼 ‘꽃놀이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투자 아이디어가 복합적인 것이죠. 아직까지 투자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나지는 않았지만 최근까지도 계속 지분을 늘려온 옥시덴탈 페트롤리움 또한 이러한 논리에 정확히 맞아 들어갑니다.
시장에서 버핏의 옥시덴탈 지분 확대를 두고 트럼프에 대한 기대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옥시덴탈 투자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사업 구조를 보면 옥시덴탈만큼 미국 내 퍼미안분지 비중이 높은 석유 기업이 없으며, 옥시덴탈의 매출처 또한 미국 내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퍼미안분지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원유 추출 비용이 상당히 낮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옥시덴탈은 어떤 유가 상황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저비용 구조가 만들어져 있죠. 게다가 미국 내 매출 비중이 크기 때문에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입니다.
이런 기업이 향후 추가 투자보다 주주 환원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으니 ‘꽃놀이패’의 조건에 부합합니다. 즉 향후 유가의 방향과 관계없이 안정적인 이익의 가시성이 높고, 혹시라도 유가가 강세를 보여준다면 주가가 이를 반영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시장에서는 이런 버핏의 투자를 두고 한 면만 부각해서 논리를 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버핏의 꽃놀이패 투자는 ‘정확한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멍거리즘과도 약간 결을 달리합니다.
오히려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의 ‘안전마진’ 개념이 정성적으로 강하게 깔려 있는 느낌이 드는데요. 스승은 구체적인 수치로 안전마진을 계산하려 노력했다면, 버핏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어떤 경우에도 이익을 볼 수 있는 정성적인 구조를 확보하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물론 이런 버핏의 꽃놀이패 투자가 꼭 대박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옥시덴탈만 하더라도 아직 그 결과가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유사하게 베팅한 석유 기업 코노코필립스 투자는 큰 손실로 귀결된 바 있습니다. 사업 전망이 어두운 신문사 여러 곳을 한번에 낮은 이익배수로 인수하기도 했으나 역시 손실을 보고 매각했습니다.
다만 버핏의 투자는 시장에서 조명하는 어느 한 면만 바라본 투자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상사들에 대한 투자를 두고 당시 여러 전문가는 일본 시장에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죠. 그러나 버핏은 저평가된 일본의 ‘상사’ 기업들에 투자한 것일 뿐, ‘일본’ 자체에 대한 투자라고 보기에는 비중 면에서 무리가 있었습니다.
잘되면 대박, 안돼도 중박
버핏은 투자에서 ‘리스크’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꽃놀이패’는 바둑에서 어떤 경우에도 유리한 패를 말합니다. 다만 그 유리함의 정도가 다를 뿐이죠. 그러니까 잘못될 가능성인 리스크는 거의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버핏의 투자는 이처럼 뜯어보면 애초에 리스크가 아주 낮은 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손자병법에서 이겨놓고 싸운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현재의 버핏은 여기에 미래의 ‘정확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멍거리즘이 결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유리한데 가장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은 투자를 골라낸다는 것이죠. 이건 그야말로 ‘잘 아는’ 분야, 다시 말하면 ‘미래를 잘 알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로 한정해야 가능합니다.
일본 상사 기업들은 결국 자원 개발업이 위주였습니다. 석유산업을 깊이 이해하는 버핏에게는 가장 유리한 상황을 계산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옥시덴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버핏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소비재 독점’ 기업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능력범위’에서 골라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단순히 꽃놀이패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최고의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은 투자 아이디어를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탁월한 리스크 계산을 통해 장기간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온 버핏은 버핏 파트너십 시절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다가, 멍거를 만나고 진화하게 됩니다. 소수의 기업들로 투자 영역을 한정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멍거처럼 끊임없이 배워나가는 투자자가 됩니다.
훌륭한 투자자는 이처럼 복합적인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장은 우리에게서 직관적이고 단순한 반응을 끌어내려고 단편적인 지식을 끊임없이 쏟아내지만, 훌륭한 투자자는 이 속에서 깊이 있는 사고를 통해 리스크를 발라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버핏처럼 오랜 기간 이기는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2024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은 버핏의 마지막 친필 서한이 될 것 같아 다소 서글픈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94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깊은 지혜를 나눠주는 버핏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데 감사할 뿐입니다.
여러분의 성공적인 투자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