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단상] 주주가치 천당과 지옥 가른 자본배분 사례
시장에 난무하는 소음 속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기본에 집중하고 올바른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투자 단상’은 현직 펀드매니저가 시의적절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투자 대가들이 역경을 이겨낸 방법을 소개하고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기회도 마련하겠습니다. ― 버핏클럽
온라인 유통업체 이베이는 2009년 12억 달러에 인수한 G마켓 지분의 80%를, 2021년에 옥션까지 포함해서 약 30억 달러(3.4조 원)를 받고 한국의 대형 할인점 기업에 매각했습니다. 인수 12년 만에 원금의 2.5배에 매각해 내부수익률(IRR)은 약 7.9%입니다. 아주 성공한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머지 지분 20%는 2024년 12월 사모펀드에 약 3.2억 달러에 매각했습니다. 2021년 80% 지분을 인수한 국내 기업이 우선매수권을 포기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2021년 이후 두 기업의 주가입니다. 이베이는 이후 2024년까지 100억 달러 이상을 자사주 매입·소각에 썼습니다. 배당에도 10억 달러 이상을 배분합니다. 현 시가총액의 30%가 넘는 규모입니다.

2021년 80달러에 달했던 주가는 2022년 금리 인상기를 거치면서 반토막이 났지만 2024년부터 회복해 최근 전고점에 이르는 모습입니다. 이 시기의 실적을 보면 영업 외적인 부분에서만 변화가 있었을 뿐, 본업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즉 반토막이 났던 주가가 전고점까지 회복하는 데는 시가총액 30% 이상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효율적인 사업을 매각하고, 그 대금과 본업에서 창출된 현금흐름을 자사주 매입·소각에 털어 넣으면서 주주들의 부를 지켜준 셈입니다. 이베이는 이에 힘입어 2025년 들어서도 주주환원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모습입니다.
반면에 2021년 G마켓과 옥션을 인수한 국내 기업의 주가는 어떨까요?

공교롭게도 2021년 18만 원을 호가했던 주가는 현재 9만 원 이하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의 주가 상승이 장기 투자자들에게는 위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장기 주가 하락의 원인을 G마켓 인수로만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른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당시 시가총액 5조 원 수준에서 3.4조 원 기업의 인수는 적은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기업의 명운이 걸렸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인데요. 안타깝게도 이후 G마켓의 실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2024년에는 기존 영업손실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두 기업 모두 본업의 업황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베이는 포토카드나 피규어 등 수집가들 관련 사업을 확장하면서 다른 플랫폼과의 차별화를 꾀하기도 했지만 실적에 유의미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두 기업의 주가를 가른 것은 자본배분 능력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결국 G마켓을 인수한 국내 기업 주주들의 부는 이베이로 이전되었습니다. 이는 이베이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결과입니다. 이베이는 거기에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더해 주주들에게 환원했습니다.
우리나라 상법이 전체 주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진작 개정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랬다면 대주주의 규모 확장 열정만을 위한 무리한 인수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막대한 유휴 현금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최소한 주주의 부가 유출되는 잘못된 의사결정을 재고하도록 경종을 울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최근 언론에 따르면 늦어도 7월 중순에는 상법 개정이 이뤄져서 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쪼록 개정된 상법하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에 매진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