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워런 버핏, 따라 하지 못할 부분과 따라 할 수 있는 부분
흔히 워런 버핏의 투자 방법은 일반 투자자가 따라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는 《워런 버핏 바이블 완결판》(워런 버핏 원저, 이건 편역)의 해설에서 "분명 복제 가능한 영역이 있다"고 밝혔다. 이 책은 버핏과 멍거의 오리지널 말과 글에 한국 투자자의 눈높이에 맞춘 해설을 더해, 버핏의 원칙을 실전에 접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총 13개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의 핵심인 '1장 주식 투자'에 대한 홍 대표의 해설 원고를 소개한다. ― 버핏클럽
버크셔 해서웨이는 주식회사다. 버크셔 해서웨이 연차보고서와 주주총회는 주주에게 하는 경영진의 ‘업무 보고’ 행위다. 이러한 ‘업무 보고’에서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철학이나 원칙을 찾아낸다는 건 어찌 보면 기이한 일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주식회사와 주주 간의 관계에서 오고 가는 대화이니 그 자체로 주식이란 무엇이며 훌륭한 경영진이 주주에게 지녀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교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버크셔 해서웨이는 바로 그 교본을 60년간 만들어왔다.
워런 버핏은 보험업, 인수합병, 자본 배분 등 여러 분야에 천재적 통찰을 발휘했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주식 투자’를 중심으로 수렴한다. 《워런 버핏 바이블 완결판》의 1장 ‘주식 투자’는 버크셔 해서웨이 연차보고서와 주주총회 질의 중 주식 투자와 직접 연관되는 내용만 추려낸 장이다. 사실상 이 장의 내용만 소화하더라도 주식 투자를 바라보는 기초 체력은 잡혔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앞으로의 투자 인생에서 무슨 일을 겪더라도 ‘기본기가 없는’ 다른 투자자보다 풍부한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장이기에, 기대를 높이기보다는 기대를 낮추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든 당신은 본문을 읽을 테니까!)
나는 흔히 워런 버핏을 소개하면서 ‘집에서 따라 하지 마세요’라는 부제를 단다. 버핏은 논란의 여지 없이 현시대 최고의 투자자다. 투자 행위를 통해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으며, 그가 경영한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국 비기술 기업 최초로 1조 달러 시가총액을 돌파했다.
수많은 투자자가 버핏을 연구하며, 그의 투자 원칙을 따른다고 스스로 인식한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그가 실제 구사한 투자 기법은 단순히 ‘스타일’을 넘어서, 근본적으로 다른 투자자가 따라 할 수 없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그가 경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자산운용사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보험업 기반의 지주회사’다. 보험업에서는 ‘플로트’라고 부르는 유동성이 창출된다. 보험 고객은 보험료를 미리 납부하고, 나중에 보험금을 받아 간다. 그 사이에는 상당한 기간이 존재한다. 확률 계산을 소홀히 하지 않고 고객이 충분히 많다면, 보험사는 거의 확정적으로 대규모의 자금을 장기간 운용할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 높은 확률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다면, 이 구조는 운용자에게 이론적으로는 무제한의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물론 자본 규제 때문에 실제로 무제한이 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가 일반적인 투자자가 사용할 수 없는 형태의 레버리지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의 투자 스타일이 장기 투자에 특화된 것은 이렇게 ‘타인 자본을 장기 운용하는’ 구조와 연관이 있다. 초창기 벤저민 그레이엄의 스타일을 추종하던 때에는 투자 기간이 짧을수록 유리한 스타일의 투자를 했다. 특정 투자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가치에 한계가 있었고, 그 회수 기간이 짧을수록 연환산 수익률이 높아지는 구조였다.
이를 잘못 이해하면 ‘버핏은 장기 투자자니까 장기 투자가 모든 투자의 기본이다. 어떤 주식이든 장기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식의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진다. ‘버핏은 장기간 타인 자본을 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이 자금을 성공적으로 운용하기 위하여 장기 투자에 특화된 투자 기법을 고안해냈다’가 올바른 해석이다.
또한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주회사로서 자회사들의 잉여현금을 과세 없이 모회사로 이전시켜서 투자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버핏은 기업을 볼 때 ‘추가 자본 투입 없이 추가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매우 중요시했다. 씨즈캔디, 버펄로뉴스, 커비, 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 보르샤임(Borsheim’s) 등은 그러한 기준에 부합하여 1980년대 ‘버크셔 제국’을 형성한 기틀이 되었다.
버핏 연구자들은 이러한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높은 투하자본이익률(ROIC), 현금 창출 능력, 낮은 자본적 지출(CAPEX), 증분 ROE 등의 지표를 ‘버핏 스타일’로 규정했다. 물론 이는 기업의 퀄리티를 측정하는 쓸 만한 지표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버핏을 설명할 수도 없음은 물론이며 이러한 속성을 가진 회사에 투자한다 하여 버핏에 준하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경영자들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자본의 사용에 관해서는 중앙 집중을 선호한다. 깐깐한 버핏은 달러 한 장이라도 소홀히 쓰는 것을 꺼린다. 그가 피투자회사 경영자들에게 위임하는 것은 크고 작은 경영상의 의사결정이며, 경영에 필요하지 않은 잉여현금은 모조리 회수하여 그룹 전체 관점에서 배분한다.
소위 ‘머니 머신’이라 불리는 ‘현금 창출 기계’들을 계속 사들이고, 거기서 창출되는 잉여현금을 모아서 새로운 ‘머니 머신’을 사들이는 게 수십 년간 버핏이 해온 일이다. 일반적인 투자자나 펀드매니저는 회사로부터 주주환원을 유도할 통제력도 강하지 않고, 버크셔만큼의 세금 혜택도 받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버핏도 계속 변했다는 사실이다. 초창기 벤저민 그레이엄을 추종하며 기업이 가진 유형의 자산, 당장 현금화 가능한 자산에 집중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비즈니스의 강력함과 경영진의 역량, 신뢰성에 주목했다. 포트폴리오의 기업들은 초창기 보험업에서 ‘경량’ 소비재 기업으로, 이후에는 대규모 자본 투입이 필요한 인프라 기업으로 변해갔다. 기술 기업에 투자하지 않기로 유명한 버핏이지만, 아마존에 투자하지 않은 이유를 ‘내가 어리석어서’라고 밝힌 바 있다.
버핏을 연구하는 투자자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 버핏은 언제나 본인이 실수할 수 있다고 여기며, 실제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중요한 건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이며, 그가 최고의 투자자 자리를 지켜온 데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러한 태도가 원천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버핏 혹은 버크셔의 ‘한때의 포트폴리오’, ‘한때의 스타일’, ‘한때의 원칙’에 천착하며 ‘버핏의 방법을 안다’고 자신하는 일은 버핏의 가장 중요한 원칙에 위배된다.
버핏이 수많은 실수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가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은 원칙이 있다. 주식이 작동하는 근본 원리, 다른 자산 대비 주식이 가진 특이한 장점, 그 장점을 활용하기 위한 투자자의 태도, 능력범위의 중요성, 그리고 복리의 마술에 대한 믿음 등이다. 그 핵심 내용들을 집약해놓은 장이 바로 1장이다.
앞서 ‘집에서 따라 하지 마세요’라고 너무 무게를 잡은 것 같다. 평범한 사람과 버핏 사이에는 어찌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비상장기업의 전체를 인수할 때나 상장주식의 일부를 매입할 때나, 기업을 평가하고 고르는 기준은 똑같이 적용합니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의 투자 원칙에는 분명 ‘복제 가능한’ 영역이 있다. 논리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 원칙을 활용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많다.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한 명의 투자자로서, 이 책의 첫 장을 소개하게 되어 한없는 영광이다.
자, 이제 여정을 시작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