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더 인사이트 1] 당신의 투자는 왜 재미없을까?
투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된 지식을 찾아 익히고 배우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게다가 투자 지식을 쌓았다고 해서, 곧장 투자 성과 향상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 금융시장이 작동하는 원리, 즉 '금융 기초 체력'을 다져야 합니다. 이 칼럼에서는 월스트리트에서 채권·알고리즘 거래와 수조 원 채권 트레이딩을 담당했던 이용준 필자가 실제 금융시장은 어떻게 작동하고, 지금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그로 인해 다가올 변화의 트렌드는 무엇일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버핏클럽
이따금 투자와 금융에 관해 콘텐츠 제작이나 출판 제안, 혹은 발표 세션 참여 요청을 받아 사람들 앞에 설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해당 프로그램의 기획 논의에 참여해보면, 다소 자극적이리만치 투자를 재미있는 무언가로 포장해주길 원하는 제안자 측의 바람을 엿볼 수 있다. 대체로 이런 주제를 다뤄주길 바란다.
'지금 사면 되는가?'
'시장에서 개인이 따라 하기 쉬운 투자 비법은 무엇일까?'
'지금 가격이 과열되어 있나?'
'투자 전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번 핵심 주제에 따라 질문이 조금씩 바뀌곤 하지만 질문의 양상은 늘 비슷하다. 금융시장과 각종 금융 자산에 대한 진단을 내리고, 이후에 벌어질 일을 예측할 것. 혹은 예측할 방법을 알려줄 것. 개인 투자자에게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고, 자산 증식의 꿈을 가진 채 고뇌하던 이들이 무릎을 탁 칠 만한 혜성 같은 인사이트.
그런 통찰을 제공해달라는 담당자의 눈빛을 받을 때마다 나는 고민에 빠진다.
'좋은 투자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요?'
감사한 기회를 제안받아 재미있는 콘텐츠를 꾸리는 데 일조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재미없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어서 민망하다.

투자자는 영웅의 여정을 걷지 않는다
금융시장은 초야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입신양명을 꿈꿀 수 있는 강호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월가 트레이딩룸에서 깊이 새겼다. 시장 참여자가 무언가 열심히 행한다고 투자의 결과가 반드시 좋아지는 장소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열심히 하지 않아야 결과가 개선될 수도 있는, 그런 역설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금융시장의 본질이나, 자산의 가격이 형성되는 본질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판타지를 좇는 투자자들은 금융시장의 “자양분”이 될 뿐이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투자를 행하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개인 투자자가 빈번한 거래를 해야 이득을 보는 이들은 금융시장을 자극적인 공간으로 포장하고, 콘텐츠를 팔아 부와 명성을 쌓고자 하는 이들은 '투자 성공담'으로 둔갑한 판타지를 끊임없이 생산해낸다.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홈트레이딩시스템에 괜히 '영웅문'이란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
안타깝게도, 투자는 필연적으로 지루하고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투자의 목적은 미래에 더 많은 구매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즐겁고 짜릿한 순간은 투자를 성공적으로 끝마쳐 내가 가지지 못했을 구매력을 얻을 때나 등장하는 것이지, 투자를 행하는 과정 자체에서 짜릿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왜일까? 투자는 불확실성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시간이 지나며 내가 감수했던 위험이 해소됨에 따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할인가는 '걱정'에 대한 보상
'혹시 이 회사가 망하진 않을까?'
'혹시 내일 전쟁이 터지진 않을까?'
'혹시 규제 지침이 바뀌어 내 투자 대상에 악영향을 주진 않을까?'
투자 규모와 행하는 전략의 성질을 막론하고, 시장 참여자들이라면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저마다의 걱정을 갖고 있다. 위에 나열된 것과 같이 규모가 크거나 작고, 실현 확률이 높거나 낮은 여러 걱정들이 한데 모여 녹아 만들어진 게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의 가격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렇게 형성된 가격이야말로 각종 걱정이 없을 때 자산이 가질 공정가치에 비해 더 낮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확실한 것을 선호하고 불확실한 결과를 멀리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을 갖는 건 현재를 살아 나가는 데 굉장히 합리적인 태도다. 그래서 현재의 구매력은 정확히 같은 단위의 미래 구매력보다 무조건 더 가치가 높다. 이 원리는 자산의 가격 형성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따라서 미래에 원금 지급이 약속된 100달러 가치의 채권은 현재의 100달러보다 더 저렴하게 거래되는 것이 당연하고, 배당과 기업 성장을 통해 가치가 증대되리라 기대되는 주식 또한 그러한 기대값의 총합보다 현재 주가가 더 낮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당장 지금 100만 원을 받거나, 정확히 같은 금액을 일주일 뒤 90%의 확률로 받는, 양자택일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후자를 선택할 사람은 없다.
(물론 거시적 관점에서 통화량의 증가에 따라 법화 가치 하락이란 개념이 섞여 들어가면 사고가 다소 복잡해질 수 있고, 이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지만, '불확실성과 위험'이라는 개념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이는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시간과 성공적인 투자의 함수
절대 잊어서는 안 될 한 가지 중요한 핵심은 투자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감수해야 할 불확실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서는 항상 극단적인 예시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수월하다. 하루 안에 전쟁이 날 확률은 극히 낮더라도, 100년이라는 기간 내에 전쟁이 날 확률은 당연하게도 하루 동안 전쟁이 발발할 확률보다는 높다. 따라서 투자의 시간 축을 늘리면 늘릴수록 투자자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 또한 늘어난다.
더 많은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에 따른 보상 기대값 또한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큰 보상을 주는 투자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투자는 현재 내가 가진 구매력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을 지고, 미래에 그 보상을 받아내는 행동이니까 말이다. 오랜 기간 불확실성을 마음 졸이며 해소되길 기다리는 일은 필연적으로 불안하고 불편하고 지루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투자는 본질적으로 지루하고, 투자가 더 성공적일수록 더 고통스럽고 지난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무용담인 '단기간 몇 건의 성공적인 결정을 연달아 내려 큰돈을 버는 투자 무용담'이란 아래 세 분류 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 존재하지 않는 일을 지어낸 판타지에 불과한 케이스 (그리고 그런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거의 항상 불순한 의도가 있다.)
- 과도한 리스크를 졌는데도, 운이 매우 좋아 결과가 잘 풀린 케이스. 하지만, 이 경우 대상자는 과도한 리스크를 졌다는 사실을 미처 알고 있지 못한 채 자신의 성공만 이야기하곤 한다 (금융시장 내에선 위험 없는 보상은 없다. 결국 위험 대비 수익률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 그저 자서전, 혹은 무용담 격의 스토리텔링을 위한 드라마가 들어간 이야기
물론 투자라는 여정이 그리고 금융이라는 분야가 주는 고유한 재미는 분명히 존재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배우고, 자본이 더 많은 인재와 투자, 리소스를 끌어당기는 논리를 관찰하며, 새로운 기술에 대한 세상의 기대감이 얽혀 실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등을 지켜보고 그 안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내는 과정은 즐거움의 연속이다.
하지만 투자의 결과 자체에서 나오는 '즉각적인 짜릿함'이란 존재할 수 없다. 큰 보상을 노리는 투자란, 그에 비례한 시간이 강제되는 함수니까. 심지어 오랜 기간,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들춰봤음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결과를 내는 바보 같은 투자 결정도 많다.
그래서 단지 기나긴 시간에 자본을 흘려보낸답시고 허송세월만 지내는 것 또한 정답이 아니다.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학습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엉덩이를 붙이고 무언가를 깊게 탐구한다는 건 항상 쉽지 않은 일이다. 투자라는 행동이 강제하는 시간도 긴데, '잘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도 길고 그에 필요한 노력 또한 크다.
그래서 투자 여정에서는 배움의 즐거움이라든지 오랜 기간에 걸친 자산 축적을 관찰하는 만족감 이외에, 인스턴트적인 즐거움은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런 반직관적인 진실을 배운 곳이 치열한 트레이딩룸과 그 안의 사람들이라는 게 참 역설적이다.
제목으로 돌아가서 다시 질문을 살펴보자.
"당신의 투자는 왜 재미없을까?"
성공적인 투자의 원가는 지루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