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4일 발표된 2017년 주주서한은 어떤 버핏 관련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버핏의 면모와 고민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우선 버핏이 지난해 사상 최고 투자이익을 올린 내역을 보여준다. 또한 애플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진화하는 버핏의 모습도 보여준다. 버핏과 함께 한 단계 도약하고자 하는 투자자에게 소중한 투자 지침서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2017년 한 해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의 순자산은 653억 달러 증가했고, 주당순자산은 23% 늘었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는 19% 상승했다. 버크셔의 순자산 증가율이 뉴욕 주식시장 대표 지수의 수익률을 넘어선 것이다. 버크셔의 실적 신장세는 워런 버핏이 이 회사를 인수한 1965년 이후로 기간을 잡으면 더 두드러진다. 지난 53년간 버크셔의 주당순자산은 19달러에서 21만 1,750달러로 증가했는데, 연평균 성장률은 19%에 이른다. 같은 기간 배당을 포함한 S&P500 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약 10%였다.
653억 달러 중 약 290억 달러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세제 혜택에 따른 특별이익이다. 사업과 투자에서 창출된 이익의 규모는 360억 달러 정도이며, 버크셔의 순자산을 12.7% 증가시켰다. 세제 혜택에 따른 290억 달러의 특별이익을 성과에서 제거하고 360억 달러만으로 S&P500 지수와 비교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세제 혜택도 지수 상승의 한 요인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에, 653억 달러 증가한 비율을 S&P500 지수의 수익률과 비교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한 해 동안의 ‘순자산 증가 규모’는 버크셔가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순자산 증가분은 사업 자회사들의 영업에서 창출되는 이익(사업이익)과, 투자자산에서 창출되는 이익(투자이익)으로 나뉜다. 재무적으로 사업이익은 모두 손익계산서에 반영되고, 투자이익은 실현된 부분만 손익계산서에 반영된다. 실현되지 않은 투자이익은 재무상태표에 반영된다.
투자이익이 사업이익 초과
세제 혜택을 제외한 2017년 성과 360억 달러는 사업이익 144억 달러(순자산 5.1% 증가)와 투자이익 217억 달러(순자산 7.7% 증가)로 구분된다. 사업이익 144억 달러는 최근 5년 내 가장 적은 규모인데, 보험 자회사들의 보험영업이익이 손실로 전환된 이유가 크다. 보험사업과 다르게 철도, 에너지, 제조, 서비스·유통, 기타 금융 자회사들의 실적은 전반적으로 건실한 상황이다. 특히 제조, 서비스·유통 사업 부문이 지속적인 인수·합병(M&A)과 미국 경기 호조로 꾸준한 실적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투자이익이 사업이익을 훌쩍 뛰어넘어 217억 달러에 달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2010년 이후 버크셔의 투자이익은 꾸준히 상승하는 시장 상황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다만 2013년에는 191억 달러의 양호한 투자이익을 올렸다. 버크셔는 지난해 4년 만에 최고 투자이익 기록을 경신하면서 버핏의 투자 실력이 건재함을 입증했다.
버크셔는 올해부터 투자이익 중 미실현 부분도 ‘손익계산서’에 반영되기 때문에 이익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버크셔는 크래프트하인즈 지분을 제외하고도 1,700억 달러가 넘는 주식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분기 100억 달러 이상의 변동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순이익에 반영되는 실현이익이 자회사들의 펀더멘털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미실현 이익 또한 같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새 회계규칙에 따라 향후 발표되는 이익 변동성이 커지면서, 발표 때마다 자극적인 뉴스들이 쏟아질 수 있다. 버핏은 주말 동안 충분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기존과 같이 금요일 장 종료 이후나 토요일 오전에 실적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들을 동업자로 생각하는 버핏은 급격한 주가 변동으로 주주들이 피해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종종 언급한 바 있다.
“가격 비합리” … ‘파일럿플라잉J’ 1개 사만 인수
버핏은 버크셔의 내재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다음 4가지를 든다.
2) 자회사들의 사업 관련 인수(bolt-on acquisition)
3) 자회사들의 매출 및 이익 성장
4) 투자 포트폴리오의 성과 개선
버핏은 대규모 기업 인수에 뛰어들 때, ‘견고한 경쟁우위’, ‘능력 있고 훌륭한 경영진’, ‘투하자본에 대한 만족스러운 이익률’, ‘매력적인 수준의 이익 성장 기회’, ‘합리적인 인수 가격’의 조건을 중요하게 살펴본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2017년 동안 검토한 투자안들은 대부분 ‘합리적인 인수 가격’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2017년 동안 그저 그런 기업들이 역사상 최고 수준의 밸류에이션에 거래된 현실을 지적했다. 글로벌 저금리로 인해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황이 그런 현실의 바탕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는 혈기 왕성한 경영진과 직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데다, 투자은행들은 막대한 수수료에 눈이 어두워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는 자료를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7년 초 크래프트하인즈를 통한 1,430억 달러 규모의 유니레버 M&A가 무산된 바 있다. 또한 텍사스를 기반으로 한 송배전업체 온코(Oncor)를 90억 달러에 인수하려고 했으나, 셈프라에너지(Sempra Energy)가 94.5억 달러를 인수가로 써내면서 실패한 바 있다. 유니레버는 이사회 차원에서 크래프트하인즈와의 기업문화 차이를 이유로 M&A를 거절했으나, 온코 인수 건은 버핏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인수 가격을 충족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로 볼 수 있다.
무리한 차입으로 기업 인수 시장이 가열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버핏은 자기자본만으로 인수 타당성을 검토하는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언급한다. 부채를 이용하면 수익률이 더 좋아지겠지만, 예기치 못한 경기 변동에 따른 리스크로 버크셔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버핏은 부채 자체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자기자본이 위태로워지는 수준의 부채(over-leverage)에 대한 지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저금리 상황에서 버크셔는 수십억 달러 수준의 채권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2017년 말 기준으로 버크셔의 부채는 자회사들의 사업적 목적에 따른 차입금 외에는 미미한 수준으로 보인다.
2017년 버핏은 대규모 기업 인수를 몇 건 추진했지만 실제로 인수한 기업은 트럭 휴게소 체인 1위 기업인 파일럿플라잉J(Pilot Flying J) 하나뿐이었다. 버크셔는 38.6% 지배지분에 대해 27.6억 달러를 지불했고,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80%까지 지분을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파일럿플라잉J는 북미 전역 약 750개의 휴게소에 2만 7,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연매출 200억 달러가 넘고, 순이익은 약 4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38.6% 지분을 27.6억 달러에 인수했으므로 100% 지분에 대해서는 71.5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한 셈인데, 이는 순이익 대비 17.8배 수준이다.
자회사 클레이턴 홈즈는 시장점유율 49%로 확대
버크셔의 자회사 중 조립주택 건설 및 주택담보대출회사 클레이턴 홈즈(Clayton Homes)가 재래식주택 건설회사 두 곳을 인수하면서, 조립주택 시장뿐 아니라 재래식주택 시장에서도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03년 인수 당시 13%에 불과했던 클레이턴 홈즈의 시장점유율은 2017년 기준 49%까지 올라와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시장점유율은 2위 업체와는 3배 정도 차이가 난다.
클레이턴 홈즈는 차주의 신용도를 정확히 판단하고 건전한 대출 관행을 유지했고, 그 덕분에 경쟁사들이 대거 파산한 2008년 금융위기를 잘 헤쳐나올 수 있었다. 오히려 경쟁사들의 빈자리를 꿰차면서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미국 주택 경기가 회복된 2012년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시장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대출의 기본에 충실함으로써 견고한 해자를 쌓아 올린 클레이턴 홈즈는 버핏에게 과거 시즈캔디와 〈버펄로 뉴스〉에 견줄 만한 성공 사례일 것이다.
버핏은 녹스빌이 고향인 클레이턴 홈즈의 CEO 케빈 클레이턴에게서 동향인 파일럿플라잉J의 하슬럼 일가를 소개받았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파일럿플라잉J에 대한 기대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버크셔 자회사들의 기업 인수 이어져
2000년 미드아메리칸 에너지(현재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를 인수하면서 함께 거느리게 된 부동산 중개회사 홈서비스(HomeServices) 또한 경쟁사 3개사를 인수했다. 1위 업체인 리얼로지(Realogy)의 규모에 비하면 아직 작지만 꾸준히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홈서비스도 클레이턴 홈즈처럼 미국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3개 경쟁사를 인수했는데도 클레이턴 홈즈와 다르게 미국 주택 중개 시장에서 점유율이 3%에 불과하다. 버핏은 홈서비스의 향후 성장 여력이 크다고 보고 있으며, 가격만 합리적이라면 계속 중개업소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2001년 인수한 카펫 제조사 쇼인더스트리(Shaw Industries)는 고속 성장 중인 고급 비닐 타일 유통회사 US플로어(U.S. Floors)를 인수했다. 인수를 통해 쇼인더스트리의 매출은 57억 달러로 증가했고, 종업원은 2만 2,000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항공기 부품사 프리시전 캐스트파츠(Precision Castparts)도 내부식성 부품, 배관 계통 등을 제조하는 독일 회사 빌헬름슐츠(Wilhelm Schulz) 유한회사를 인수했다. 이 독일 회사에 대한 이해는 낮지만 프리시전의 CEO 마크 도네건에 대한 신뢰는 견고하기 때문에 버핏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만큼이나 CEO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버핏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합리적인 인수 가격’에서 번번이 고개를 저어야 했던 버핏을 통해, 2017년 시장 상황에 대한 버핏의 판단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글로벌 저금리로 인한 자산가격의 상승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시장 상황이 저평가 상태는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미국 경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보유 현금을 대거 쏟아내던 2008년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버핏 투자의 핵심은 보험업의 ‘플로트’
보험업은 버크셔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1967년 내셔널 인뎀너티(National Indemnity)라는 지역 보험사를 인수하면서 보험업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언급하고 있다. 당시 인수 가격이 860만 달러였는데, 순자산은 670만 달러였다. 보유유가증권 포트폴리오를 원하는 대로 재구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프리미엄 190만 달러에 보험영업이익이 창출되는 보험사를 인수한 셈이 된다. 게다가 이 보험사는 플로트가 1,940만 달러에 달했다.
플로트는 보험사가 보험료를 수취하고 향후 보험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보유하게 되는 자금을 말한다. 이 플로트를 유가증권에 투자함으로써 투자이익을 거두게 되는데, 보험사의 중요한 이익 원천이다. 버핏은 버크셔 초기, 건전하게 경영되는 보험사의 플로트가 강력한 투자 재원이 될 수 있음을 간파했다.
받는 보험료보다 보험금을 적게 지급하면 보험사는 보험영업이익을 거둔다. 보험료를 거수하고 보험금을 지급하기까지의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보유하는 자금을 투자에 활용하면서 이자까지 받는 셈이 된다. 이 개념은 은행에서 차입하는 경우와 비교해 생각할 수 있다. 보통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일정 기간 이후에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기 때문에, 돌려주는 금액(원금+이자)이 빌린 금액(원금)보다 크다. 그러나 버핏의 플로트는 보험료로 돈(원금)을 받는데, 나중에 보험금으로 돌려주는 돈(상환금)이 보험료로 받은 돈(원금)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차이만큼 이자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받은 돈을 투자에 활용하고 나중에 상환할 때 원금보다 적게 돌려주기 때문에, 차입금으로 이자를 받으면서 투자하는 셈이 된다.
이렇게 이자를 받는 플로트를 활용하려면, 보험계약에 대한 정확한 가격 산정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황이 되면, 가격을 낮춰서라도 계약을 체결하려는 경쟁사가 출현하고, 업계 전체적으로 경쟁이 심화된다.
보험료 수익으로 매출은 증대되지만 당장 보험금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실적에 눈이 먼 보험사들은 경쟁적으로 보험료를 인하한다. 이런 가격 경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적정 가격이 아닌 계약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런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시장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강력한 사내 ‘문화’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버핏은 1967년 내셔널 인뎀너티를 인수하면서 CEO 잭 링월트를 통해 이러한 보험사업의 정석을 배울 수 있었다.
롱테일 보험에 집중해 장기적으로 투자
버핏은 사고 발생 후 보험금 정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롱테일’ 보험에 집중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에 플로트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평소 무리하게 차입해서 투자에 활용하는 것을 비판했지만, 정작 버핏 자신은 플로트를 통해 투자에서 ‘레버리지’ 효과를 활용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버핏의 플로트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이자를 받는 차입금인 데다, 순자산의 70%를 넘는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플로트의 순자산에 대한 비율과 버크셔의 성과는 연관성이 높다. 평균 플로트 비율이 30%를 넘었던 1980년대의 성과는 연평균 29%였는데, 같은 기간 S&P500 지수는 연평균 수익률 17.4%를 기록했다. 플로트 비율이 30% 이하였던 1990년대는 S&P500 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이 18.2%로 시장 상황이 더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연평균 24.4%로 떨어졌다. 1997년 재보험사 제너럴 리(General Re)를 인수하면서 버크셔의 플로트 비율은 50%를 넘어섰는데, 이에 힘입어 2000년대 연평균 성과는 8.3%를 기록하게 되었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는 연평균 -0.9%로 정체되어 있었고, 기대에 부풀어 인수한 제너럴 리가 가격이 잘못 책정된 계약들로 인해 수년간 보험영업손실 수십억 달러를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훌륭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2010년대 들어 플로트 비율이 30% 수준으로 떨어지면서(순자산이 꾸준히 증가), 버크셔의 성과는 S&P500 지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버크셔의 순자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재보험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아지트 자인이 탁월한 솜씨로 플로트를 끌어모아도 순자산이 늘어나는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다. 1997년에 인수해서 당시 플로트 규모를 크게 끌어올렸던 제너럴 리의 성과 부진도 버핏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