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저서와 인터뷰 등에서 밝혔듯이 ‘가치투자’는 내 인생의 구원자다. 절망스러웠던 개인 투자 실패의 악몽에서 벗어나 꾸준한 부의 축적을 이루게 하고, 오랫동안 펀드매니저로 성공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가치투자를 전파하며 보람을 얻었고, 또 덕분에 이렇게 〈버핏클럽〉 창간호에 기고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은 이미 가치투자를 깨달은 사람들에겐 너무 당연하고 식상한 얘기일 수 있지만, 가치투자를 처음 접하거나 아직 제대로 가치투자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에겐 다소 생소하고 의아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가치투자에 관심이 있거나 막 공부를 시작한 이들을 제대로 된 가치투자의 길로 안내할 짧은 글을 고민하다 다음과 같이 서술해본다.
성공 투자의 요건은 경제 이론이 아니다
성공적인 투자자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천재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계량경제학의 창시자 어빙 피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런 숄즈와 로버트 머튼이 투자 실패로 거의 패가망신했다는 사실을 보면 정밀한 수학이나 경제 이론이 투자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필자는 예전부터 ‘사람의 마음은 돈을 잃게 되어 있다’라는 문장으로, 지적 능력이 너무 뛰어나거나 그렇다고 과신하는 이들의 투자 성공률이 오히려 낮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 워런 버핏 역시 “성공 투자를 위해 미적분이 필수였다면 나는 아직도 신문 배달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강조했다.
필자가 새로운 펀드매니저를 영입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그 사람의 기질이다. 기질은 성향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가치투자란 미리 만들어놓은 준칙을 꿋꿋이 잘 지켜나가는 데 승패가 좌우된다.
가치투자의 정량적·정성적 준칙
여기서 잠시 가치투자의 준칙을 생각해보자. 가치투자자의 준칙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가치를 측정해 가격과 비교한 후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량적인 규칙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투자 원칙 또는 신념이다. ‘주가수익배수(PER)가 8 이하이면서 주가순자산배수(PBR)가 0.7 이하인 주식만 매수’, ‘미래가치할인법으로 기대수익률이 15% 이상인 주식 매수’와 같은 준칙은 전자에 해당한다. ‘내가 이해하는 것에만 투자한다(워런 버핏)’, ‘정보를 얻는다는 말은 나에게 파산한다는 말과 같다(앙드레 코스톨라니)’와 같은 준칙은 후자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정량적·정성적 준칙 없이 가치투자를 한다는 얘기는 거짓말이라고 보아도 좋다.
시장의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고 쓰디쓴 두려움을 이겨내면서 투자의 준칙을 굳건히 실천하기 위해서는 군중심리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투자자의 기질이 중요하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아니요”라고 하는 청개구리 기질을 얘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도 그 의사결정이 자신이 정한 준칙과 다르다면 “아니요” 하며 준칙대로 실천하는 용기를 얘기하는 것이다.
2006년 시중의 자금이 몽땅 주식 펀드와 중국 펀드로 흘러 들어가던 과열기에 준칙에 따라 주식을 매도할 수 있고, 2008년 파워 블로거 미네르바의 주장처럼 주가가 코스피 500 수준으로 침몰하리라는 공포가 시장을 뒤덮었을 때 준칙에 따라 주식을 매수하는 능력은 전적으로 투자자의 학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기질에 달려 있다. 불과 수년 전 그리스가 도산 위기에 빠졌을 때도 “금융위기? 국가 모라토리엄 위기? 거기에 대한 답은 하나다.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소란 떠는 것”이라고 한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경구나 “이탈리아에 금융위기가 왔다고 해서 당신이 하고 있는 옥수수농장 일을 그만둘 것인가?”라고 반문한 워런 버핏의 교훈을 되뇌며 시장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기질을 가진 투자자는 분명 당시 속출했던 저평가 주식을 다량 매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질은 바뀐다, 케인스의 경우
그런데 이 기질은 원래 타고나서 아예 바꿀 수 없는 것일까? 기질을 바꾼다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가치투자 전도사를 자처하며 강연 등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투자 기질을 바꾸려고 노력하다 많은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특히 이미 스스로 전문가이자 지적 수준이 높다고 확신하는 이들일수록 투자 기질이 잘 바뀌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학습과 고민을 통해 투자 기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존경해 마지않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필자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사회 초년생 시절 모멘텀투자를 일삼다 큰 실패를 맛본 이후 어떤 계기를 통해 가치투자자로 성향이 바뀌어 이후 성공 투자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주위의 펀드매니저들과 투자자들이 학습과 경험을 통해 기질이 바뀌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가치투자와 행태경제학 서적이 시중에 많이 나오니 좋은 기질을 익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