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장 주식 중에서 워런 버핏이 말한 채권형 주식은 몇이나 될까? 사업 안정성, 수익성, 배당수익률 등을 기준으로 선별한 결과 코스피 약 800개와 코스닥 약 1,300개를 합한 총 2,100여 개 종목 가운데 230여 개가 남았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이들 종목으로 유니버스를 구성한 다음 신용등급, 주가와 가치의 괴리 등을 고려해 등급을 나누고 등급별로 목표 기대수익률을 설정했다. 서준식 부사장은 이 투자법을 적용해 삼성전자를 매수한 의사 결정 과정도 공유한다.


필자의 책 《채권쟁이 서준식의 다시 쓰는 주식 투자 교과서》(이후 《주식 투자 교과서》)가 투자자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 2018년 12월 출간 이후 5개월 만에 2만 부가 판매되었고, 많은 분들이 블로그에 리뷰를 올렸으며, 강연회에서는 참석자들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다음 개정판을 낸다면 이런저런 내용을 많이 보강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발간하고 약 한 달 뒤 ‘스노우볼인컴펀드’를 출시했다. 최초로 채권형 주식의 개념을 적용한 채권 혼합형 펀드다. 펀드의 35% 정도를 채권형 주식에, 나머지는 채권에 투자한다. 최초의 펀드인 만큼 운용하는 룰과 프로세스를 디자인해야 했다. 더 복잡한 프로세스, 더 구체적인 세부 운영 원칙이 필요했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은 독자분들이 많이 궁금해하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이런 두 갈래의 궁리를 이 글에 담았다. 그동안 받은 질문에 답변하면서 미처 얘기하지 못했던 채권형 주식 투자법을 더 상세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질문 1. 워런 버핏은 자신의 주식 가치 평가법을 공개하지 않았다. 저자는 버핏의 이야기들을 참조해 ‘채권형 주식 평가 방식’을 추정했다는데, 어떤 이야기를 가장 많이 참고했는가?

오랫동안 몇몇 저서를 통해 버핏의 ‘채권형 주식’이 아마 이런 것이고 이런 방식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버핏이 투자에 사용하는 ‘공식(our formula)’을 밝히지 않으니 그동안의 이야기를 종합해 추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음 세 어구를 가장 중요한 단서로 삼았다.

“채권을 살 때는 미래의 수익을 정확히 예상할 수 있다. 만약 9% 이자율의 10년 만기 채권에 투자한다면 10년간의 이자표에 9%에 해당하는 금액이 분명히 인쇄되어 있는 셈이다. 주식을 사도 역시 이자표가 붙어 있는 무언가를 사들이는 셈이다. 단 한 가지 문제는 이 이자표에는 이자율이 인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금액을 인쇄해 넣는 것이 내 일이다.”

필자는 채권형 주식이 단순히 배당을 많이 주는 안정된 주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말을 단서로 “채권이 미래의 수익(현금흐름)을 지금 가격과 비교해 5%짜리 채권, 6%짜리 채권 등으로 평가하듯이 10%짜리 주식, 15%짜리 주식 등 수익률로 평가할 수 있는 주식이 바로 채권형 주식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자본수익률(ROE)이 가장 중요하다.”

이 말에서 이자표에 어떤 수치를 넣어야 하는지 힌트를 얻었다. 어느 주식의 미래 ROE를 예측하는 일은 곧 이자표에 금액을 인쇄해 넣는 일과 같은 일이고 ROE와 이자의 공통점은 복리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 10년 동안 평균 10% ROE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면 이는 10%의 이자표를 가진 채권과 유사하게 10% 복리 효과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지불하는 것은 가격이고, 얻는 것은 가치다.”

이 말은 채권형 주식의 기대수익률을 계산하는 열쇠가 되었다. 채권은 가격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10년 뒤 이자와 원금을 합해 20,000원을 지급하는 복리 채권의 가격이 현재 10,000원일 때 연복리 수익률은 약 7.2%로 계산된다. 그런데 만약 이 채권의 가격이 5,000원으로 떨어진다면 수익률은 어떻게 변할까? 10년 뒤 20,000원이 지급되는 복리 채권을 5,000원에 매입한다면 투자자는 약 15%의 연복리 수익률을 얻을 것이다.

채권이 가격과 미래의 원리금(원금+이자)의 관계로 수익률을 산정하는 것이라면, 가격과 미래의 가치(ROE 추정치로 계산된)의 관계로 수익률을 산정하는 것이 ‘채권형 주식 기대수익률 산정 방식’의 개요다. 10년 뒤 순자산가치가 20,000원으로 추정되는 주식의 주가가 10,000원일 때 기대수익률은 약 7.2%지만 주가가 5,000원으로 하락한다면 기대수익률은 약 15%로 상승할 것이다.

이때 채권은 미래 이자가 확정되어 있어서 가격 변동만이 수익률에 영향을 끼치는 반면, 채권형 주식은 미래 ROE 예측치, 즉 미래의 수익이 수시로 바뀌어 기대수익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주식 투자자는 기업의 상황이 장기 수익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크게 바뀌지 않았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기대수익률을 재산정해야 한다.

분기마다 공시되는 재무 자료에서 기업의 순자산가치가 바뀌는 부분도 놓치지 않고 계산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의 순자산가치는 의외로 빠르게 바뀔 수 있다. 시간이 지나 순자산가치가 증가하는데도 주가가 정체된다면 기대수익률이 상승하는 것이다.

질문 2. 저자 추정 방식과 버핏의 방식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채권형 주식을 몇 년짜리 채권으로 생각하고 계산하느냐는 것이다. 버핏은 10년 국채 수익률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이야기한 적이 많고 실제 10년 미국 국채가 전 세계 투자자들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필자도 10년짜리 채권으로 가정하고 계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버핏은 주식을 100년짜리 채권, 또는 영원히 만기가 돌아오지 않는 영구채로 비유한 일도 많았다. 때문에 몇 년짜리 채권으로 가정하는지에 대한 확신은 크지 않다. 필자도 채권형 주식은 만기가 없는 영구채와 유사하다는 말에 100% 동의한다. 그러나 기대수익률을 계산할 때는 10년짜리 채권으로 가정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10년 뒤의 기업 가치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100년 뒤 가치는 막연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확실한 원칙을 만들어 실천하는 일이다. 채권형 주식을 30년 채권, 100년 채권 또는 영구채로 가정하고 계산하는 방식도 크게 나쁘지 않다. 다만 이 경우, 순자산가치가 낮아서 기대수익률이 높아지는 ‘벤저민 그레이엄형 채권형 주식’은 가치를 적절하게 산정하기가 어렵다는 약점이 있었다. 10년은 충분히 길다는 점, 우리나라 주식시장에는 벤저민 그레이엄형 채권형 주식이 많다는 점(좋은 기업들이 이익 배당 대신 사내 유보를 해서 이 유형이 많아진 듯하다), 계량적으로 명확하다는 점 등의 이유로 필자는 채권형 주식을 10년 채권으로 가정하는 방식을 권유한다.

질문 3. 우리나라에 채권형 주식으로 볼 수 있는 주식은 몇 개나 될까? 경기에 민감하고 설비 투자가 많은 업종이면 무조건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는가?

우리나라에 채권형 주식이 몇 개나 될지 궁금했다. 하지만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2,100여 개 종목을 모두 검토해봐야 알 수 있기에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마침 펀드를 출시하며 이 모든 종목을 점검해야 할 상황이 생겨 대략적이나마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채권형 주식은 미래 가치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해 기대수익률을 계산할 수 있는, 가치 평가가 가능한 주식임을 명심하자. 스노우볼인컴펀드에서는 다음 과정을 거쳐 채권형 주식 유니버스(투자 가능군)를 구성했다.

  1. 평소 강조하는 것처럼 경기에 민감하거나 설비 투자나 연구개발비 투자가 많은 종목들은 아무리 탐나는 종목들이라도 눈 딱 감고 제외했다. 주의할 것은 단순히 업종 분류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경기에 민감하거나 설비 투자가 많이 필요한 업종 중에서도 채권형 주식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철강과 화학처럼 설비 투자가 많아야 하는 업종이라도 기업이 이미 성숙해서 추가 설비 투자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면 채권형 주식에 포함할 수 있다. 경기민감주인 건설 업종에 속하지만 오랜 기간 놀라울 정도로 꾸준한 ROE를 보여서 깊게 분석한 종목도 꽤 있었다. 예를 들어 세보엠이씨와 우진아이엔에스는 건설 업종으로 분류되지만 정밀하게 검토해보니 자본재 성격이 강했다. 두 종목 모두 12년 이상 ROE가 7%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어서, 이 종목들이 어떤 업종으로 분류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2. 과거 10년간 한 번이라도 적자를 보았거나 과거 6년간 ROE가 한 번이라도 3% 미만이 된 기업은 제외했다. 가치투자에는 화려한 미래보다는 믿을 수 있는 과거가 중요하다. 과거를 믿을 수 있는 기업에도 투자할 종목이 많은데, 굳이 과거가 잘못된 기업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 다만 한 번 정도 불가피한 일이 있었던 종목 중에서 운용역이나 분석역이 특별히 요청할 경우, 그런 일이 또 일어날지 협의회에서 심도 있게 분석한 후 구제하는 패자부활전(?) 같은 프로세스를 갖추었다.
  3. 인컴펀드(수익의 상당 부분을 투자자산의 배당이나 이자로 얻으려는 펀드)의 목적을 위해, 최근 6년간 평균 배당수익률이 예금 금리 수준인 2% 이하이면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미래 ROE 추정치가 등급의 매수 가능 기대수익률(12~14%)을 초과할 경우 배당수익률이 다소 낮아도 유니버스에 포함했다. 높은 ROE 수준을 유지하며 스스로 높은 복리 효과를 생성하는 주식은 배당을 주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ROE가 일정 수준 이하인 주식은 배당을 통한 재투자로 복리 효과를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참고로 인컴펀드인 해당 펀드의 주식 부문 평균 배당수익률은 4% 수준을 목표로 한다.

1~3의 과정으로 선별한 종목들을 시가총액, 신용등급, 주가와 가치의 괴리, 과거 ROE 수치의 안정성 등을 고려해서 S, A, B의 세 등급으로 나눈 후 등급마다 목표 기대수익률을 달리했다. 그리고 S등급은 12% 이상이면 매수 가능, A등급은 13% 이상이면 매수 가능, B등급은 14% 이상이면 매수 가능하다는 기준을 두었다. 등급마다 매수 가능 기대수익률이 다른 것은 채권의 신용등급별 금리 수준이 다른 것과 같은 논리다. 예컨대 AAA등급 채권의 금리 수준이 3%라면 BBB등급의 금리 수준은 6% 이상인 것처럼 등급이 낮을수록 수익률이 더 높아야 한다. 선정한 채권형 주식 대부분이 B등급으로 분류되기에 기대수익률이 14% 이상이어야 매수 가능하다. 아직까지 12%이면 매수 가능한 S등급 주식은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두 종목에 불과하고, 13%면 매수 가능한 A등급 종목들은 신한지주와 KB금융 등 10개 이내에 불과하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채권형 주식으로 선별한 종목은 230여 개다. 나머지 주식들은 가치를 측정하기 어려운 비트코인과 같아서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상관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선별된 종목들에만 집중하다가 매수 가능 기대수익률에 도달한 종목들을 매입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