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1977년에 주식 매입 기준으로 ‘장기 전망 양호, 매력적인 가격’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어찌 보면 지극히 간단한 듯하지만 실전에서 활용하기엔 너무 어려운 기준이다. 이런 측면에서 헤지펀드 AQR 캐피털에서 작성한 논문 ‘버핏의 알파’가 눈길을 끈다. 이 논문은 버핏의 종목 선정 기준을 계량화했다. 간단히 말해서 수익성이 높고, 주요 수익성 지표들이 개선되고, 재무 구조가 탄탄하고, 배당 성향이 높고, 주식·채권을 추가 발행하지 않는 기업을 ‘우량주’로 정의했다.


워런 버핏! “오마하의 현인”, “사상 최고의 투자자”로 불리는 사나이. 그는 수많은 연차보고서를 통해 자신의 투자철학을 전파했고, 그의 투자를 설명한 책도 수두룩하다. 나도 대학생 시절 버핏의 연차보고서와 인터뷰를 공부하며 밤을 불태웠다. 당연한 것 아닌가? 기왕 연구하려면 최고의 전문가를 연구해야지! 물론 내 공부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어떻게 나도 버핏처럼 훌륭한 주식들을 사서 높은 수익을 내고 부자가 될 수 있을까?

1977년 버크셔 해서웨이 연차보고서에 버핏은 아래 4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주식을 산다고 밝혔다.

1. 버크셔 경영진(버핏과 멍거)이 이해할 수 있는 사업을 하는 기업의 주식
2. 장기적 전망이 양호한 기업의 주식
3.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기업의 주식
4. 매우 매력적인 가격에 팔리는 주식

나는 15년 전에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와, 주식 투자, 이렇게 간단한가? 저 4개 조건을 만족하는 주식을 사면 그처럼 복리 20~30%를 벌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런데 저 ‘간단한’ 버핏의 공식에 맞는 주식을 사기 위해 연구하다가 난관에 부딪쳤다. 몇 개만 털어놓는다.

  • 난 코흘리개 대학생이라 이해할 수 있는 기업이 하나도 없네.
  • 저 산업은 전망이 양호하겠지? 아닌가? 그럴 거 같기도 하고. 혼란스럽네.
  • 저 CEO, 지난달 신문에서 ‘잘나가는 젊은 경제인’ 상 받았으니 정직하고 유능하겠지? 어, 그런데 횡령으로 감옥 가네.

결론적으로 나는 버핏의 4가지 조건에 맞는 주식을 발굴하는 방법을 찾는 데 실패했다. 4번 조건에서 ‘매력적인 가격’이란 PER과 PBR이 낮은 것이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버핏의 비밀을 밝히지 못해 크게 실망한 나는 무능을 인정하고 몇몇 수치와 지표만 보고 투자하는 계량투자로 전환했다. ‘이런 지표가 좋은 주식이 수익이 좋더라’ 유의 논문은 매우 많았고, 논문에 나온 내용을 내가 직접 검증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논문에서 나온 것과 똑같이 투자해서 실제로 마술처럼 돈이 벌릴 때는 더 좋았다. 그러니 굳이 버핏의 비밀을 찾기 위해 밤을 불태울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게 계량투자의 길에 들어섰고 버핏은 어린 시절의 추억에 머물게 되었다.

버핏의 종목을 따라 사면 안 되나?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상장회사여서 주기적으로 주식 포트폴리오를 SEC 공시로 공개한다. 얼핏 이런 생각이 든다. 그냥 버핏이 매수하는 주식을 따라 사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하면 중간은 갈 수 있겠지만 중간보다 뚜렷이 높은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버크셔는 너무 비대해졌다. 2018년 연차보고서를 보니 보유한 상장 주식만 1,728억 달러이고 현금도 1,12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규모가 이 정도로 커지면 투자할 수 있는 주식이 매우 제한된다. 투자 가능 자금이 3,000억 달러에 가까우니 몇십억 달러 이상 투자할 수 없다면 고려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2019년 5월 중순 현재 시가총액 세계 100위 기업의 시가총액은 940억 달러, 200위 기업은 겨우(?) 526억 달러다. 즉 버핏이 정상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에서 100~200개 정도밖에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세상 주식 종목 4만여 개 중 99.5% 이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다리 두 개와 팔 하나를 잃고 한 팔로만 싸우는 장수가 연상되었다. 버핏의 투자 실력이 워낙 뛰어나니 저렇게 불리한 싸움을 하는데도 버크셔 주식은 최근 10년간 복리 12.2%라는 높은 수익을 냈다. 그러나 굳이 이 세상 주식 99.5%에 투자할 수 없는 투자자의 주식을 따라 살 필요가 있는가? 버핏의 투자 전략을 배운다면 그 전략을 중형주, 소형주에 적용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