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과 관련해 “적어도 내가 알기로 그레이엄은 투자 업무를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레이엄은 61세에 은퇴한 다음 20년간 세계 여행을 하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투자자 숙향도 그레이엄과 같은 삶을 꿈꿔왔다. 숙향은 그 전 단계로 그레이엄의 투자법을 실행해서 지난 13년간 연평균 23%의 수익률을 올렸다.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주식 투자만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워런 버핏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최고의 투자서인 《증권분석》을 1934년에 세상에 내놓으면서 주식의 가치를 분석해 투자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1949년에는 일반 투자자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한 책으로 《현명한 투자자》를 출간했다. 그는 자신의 투자법을 저서와 강의, 기고문을 통해 아낌없이 나눠준 진정한 스승이다.

《현명한 투자자》를 읽은 다음부터 나는 그레이엄을 사숙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배운 것보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훨씬 많지만 그동안 그레이엄에게서 배워 실천하고 있는 투자와 삶의 지혜를 정리해본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법, 그리고 숙향의 투자법

그레이엄의 투자법은 기업의 내재가치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가의 차이가 큰 주식, 즉 안전마진이 큰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는 또 기업을 직접 경영한다는 생각으로, 즉 사업한다는 자세로 주식을 매수하라고 했다. 워런 버핏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명한 투자자》 8장과 12장을 읽으라고 했는데, 바로 이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 투자는 사업하듯 하라
2. 시장의 변덕스러운 오르내림에 속지 말라
3. 충분하게 낮은 가격에 사라

단순히 가치에 비해 싼 주식을 매수해서 기다리면 만족스러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그레이엄의 주장이 가능한지 64년 전 미국에서도 꽤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1955년 3월 의회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그레이엄은 의원의 질문에 대해 언뜻 애매해 보이는, 그렇지만 명쾌한 답변을 했다. 그의 답변을 금방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가치투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면 한다.

윌리엄 폴브라이트 상원의원: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합시다. 예를 들어서 30달러의 가치가 있는 주식을 10달러에 살 수 있고 그래서 그걸 샀다고 칩시다. 그런데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주식이 30달러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그 주식의 가치를 현실화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 광고를 합니까, 아니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거죠? 값이 싼 주식이 자기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레이엄: 그게 바로 우리 사업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시장이 그 가치를 깨닫고 그 가격을 따라잡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담배꽁초 투자법 vs. 성장주 투자법

투자를 시작한 이후 한동안 그레이엄 스타일의 투자로 자산가치에 비해 싼 기업에 투자하던 버핏은 필립 피셔와 찰리 멍거의 영향을 받아 성장주 투자자로 바뀐다. 이때 그레이엄의 투자법을 업신여기는 말로 등장한 것이 ‘담배꽁초 투자법’이다. 길바닥에 떨어진 꽁초는 더럽고 불쾌하지만 공짜에 가깝고, 찾아내면 한두 모금은 피울 수 있다. 즉 실적은 부진하지만 자산가치가 높은 담배꽁초 같은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한편 그레이엄이 말년에 일반 투자자에게 인덱스펀드를 권한 것처럼, 성장주 투자는 지나치게 어렵기 때문에 전문 투자자가 아니면 권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레이엄은 그의 저서를 통해 성장주 투자를 할 때 주의할 점과 일반 투자자가 투자하기에 어려운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성장주는 가격이 합리적일 때는 살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PER이 25배나 30배를 훨씬 상회할 때는 승산이 없어진다.”

“현명한 투자자는 성장주가 가장 인기 있을 때가 아니라 성장주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성장주에 관심을 가진다.”

성장주 발굴은 쉽지 않지만 최고의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투자를 위해 반드시 따져봐야 할 3가지 문제가 있다.

1. 성장 기업이란 경기 순환기마다 이익이 증가하는 회사인데, 장기적으로 좋은 실적이 유지된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2. 투자자가 성장주를 식별할 수 있는가?
3. 회사가 성장한다고 확신한다면, 이 성장 요소에 얼마를 지불해야 정당한가?

성장주 투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 2가지 요건을 준수해야만 한다.

1. 성장 요소들을 손쉽게 일반화해서 받아들이지 말고, 조심스럽고도 회의적인 시각으로 철저히 조사한다.
2. 치르는 가격은 신중한 사업가가 유사한 비상장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하려고 기꺼이 지불하는 가격을 넘으면 안 된다.

그레이엄을 얘기하면서 대공황의 경험을 빼놓을 수 없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그레이엄이 운용한 펀드는 70% 이상 손실을 보았고, 1933년 50% 수익을 얻으면서 돌아설 때까지 4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낸다. 이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나의 괴로움은 재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루한 장기전과 함께 시장이 돌아섰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추락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실망, 대공황과 손실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완전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레이엄조차 공황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침체기를 힘겹게 보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막대한 손실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였다.

숙향의 투자법

그레이엄은 유동자산 비율, 배당금 증가 기업 등 구체적인 투자지표를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레이엄의 기본적인 원칙은 잃지 않는 투자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나름의 경험으로 잃지 않는 투자법을 구축해서, 투자 기업을 선정하는 4가지 조건을 졸저에서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레이엄의 투자법보다 내 방법이 더 편해 보이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바로 다음의 4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기업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1. 주가순자산배수(PBR) 1 이하
2. 주가수익배수(PER) 10 이하
3. 배당수익률이 은행 정기예금 금리 이상
4. 순현금 기업

13년 동안의 투자 실적

정확하게 4가지 조건에 들어맞는 기업만으로 포트폴리오를 운용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예외를 두는 정도였기 때문에 원칙에 벗어난 투자는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얻은 지난 13년간의 투자 성과는 꽤 괜찮다.

2006~2018년 평균 수익률은 22.6%로 코스피 상승률 5.5%에 비해 연평균 17.1%포인트 높았다. 알기 쉽게 1억 원을 2005년 말에 투자했다면, 2018년 코스피 기준으로 겨우 1.5억 원이 되지만 내 방법으로는 9.3억 원으로 불어났다. 어마어마한 차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했을 때 수익률이 코스피에 비해 0.4%포인트, 삼성전자와 일부 바이오 주식들만 워낙 강했던 2017년은 12.2%포인트 낮았지만, 늘 시장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었다. 특히 코스피가 17.3% 하락한 2018년, 오히려 10.7% 수익을 냄으로써 가치투자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매매 사례: 중앙에너비스

많은 가치투자의 구루들은 매수하고서 2~4년이 지나면 손익에 관계없이 처분하라고 했다. 특히 그레이엄은 투자한 종목에서 50% 수익이 발생하거나 매수한 지 2~3년이 지나면 주가에 관계없이 매도한다고 했다. 그 정도면 시장에서 평가받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싸다고 매수했으나 상당한 기간 동안 오르지 않는다면 투자자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4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기업이라면, 특히 세 번째 조건으로 배당금을 꾸준히 지급하는 주식이라면 가치가 주가에 반영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마침 가치투자연구소 카페에 매월 공개하는 펀드(친구)의 포트폴리오에 그런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2014년 7월 2일 처음 매수했고 2018년 9월 21일 전량 매도한 중앙에너비스. 4년 2개월 동안 수령한 배당금을 포함해서 67.3%, 연평균 16.8%의 수익률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