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 전략은 역설적이다. 이해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왜 실행이 어려운가. 시장을 이기는 강한 정신력과 끈질긴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나약한 멘털의 소유자나 가치투자에 입문하는 초보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가치투자의 큰 열매와 당장의 달콤함을 모두 취하는 방법은 없을까? 필자 박성현 씨가 궁리 끝에 찾은 묘법은 ‘7분할 계정 관리법’이다. 일곱 계정 중 첫째만 워런 버핏처럼 운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고수에게는 귀찮고 불필요한 일이겠지만.
“10년간 보유할 생각이 없다면 단 10분도 보유하지 말라.”
가치투자자라면 성경 구절처럼 외우고 있을 워런 버핏의 이 말은 그가 가치투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나타낸다.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서 장기간 보유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가치투자의 기본 개념은 어찌 보면 간단하고 손쉽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주식 투자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버핏의 말이, ‘살을 빼려면 덜 먹어야 한다’처럼 당연하지만 실제로 지키기는 매우 어려움을 잘 알 것이다. ‘국영수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했더니 전교 1등이 되었다’는 우등생의 영양가 없는 공부 비법처럼 언감생심, 사촌이 산 땅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급기야 어떤 사람들은 가치투자는 투자 자금이 넘쳐나는 부자들이나 가능한 방법이라 치부하며, 버핏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버핏은 수많은 가치투자자들의 스승이다. 나 역시 그를 존경하고, 그의 투자철학과 투자 방식을 배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가치투자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앞에서 얘기했듯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는 큰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한 투자 자금과 부족한 정신력, 무엇보다 부족하다 못해 바닥을 드러낸 인내심으로는 ‘10년간의 장기 투자’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투자 대가의 투자 방법이고 그것이 결국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따를 수 없는 아이러니함은 ‘호형호제하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늘 가슴 한편을 답답하게 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치투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 ‘10년을 기다렸는데 결국 좋은 회사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버리면 어떡하느냐’는 걱정, 그리고 ‘장기 투자는 무슨, 그때그때 수익을 내야 한다’는 욕심이 뒤죽박죽되어 머릿속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인내로 점철될 것이 불 보듯 뻔한 가치투자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달콤하고 짜릿한 단기 수익을 좇느냐.
그러던 차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왜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같은, 어떤 것을 선택해도 정답이 될 수 없는, ‘바다에 뿌려지는 비’처럼, ‘안개 속의 구름’처럼 의미 없는 일이었다.
다섯 살밖에 안 된 아들 녀석은 이런 고민스러운 질문에 늘 시크하게 대답했다.
“둘 다 좋아!”
가치투자는 분명 투자자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훌륭한 투자 방법이다. 하지만 주식 투자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한국의 주식시장’, ‘한국의 기업’이라는 특수 환경 속에서 가치투자만 고집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래가 불확실한 가운데 잘못된 투자 결정을 고수하다 장기간 투자 끝에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은 가치투자자에게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기도 하다.
나는 인내의 끝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가치투자의 열매와,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 인간 본연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지금 당장의 달콤함을 모두 취해보기로 했다.
자아 분열로 가치투자를 극복하다
나는 ‘자아 분열증 환자’다. 하지만 이 병은 다행히도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고 투자할 때만 발병한다. 투자를 할 때면 자아가 무려 일곱으로 나뉘는 것이다.
첫째 투자 자아는 워런 버핏을 추종하는 전통적인 가치투자자다. “올바른 투자철학만 있으면 쓸데없는 일에 애태울 필요가 없다”는 그의 말을 신봉하며, 조울증 환자인 미스터 마켓의 유혹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인내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가치투자를 하는 것은 첫째 투자 자아로 끝이다. 둘째와 셋째부터 일곱째 투자 자아까지는, 인내심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 미스터 마켓이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몸을 내맡긴다. 어떤 놈은 단 1%의 수익에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보유 주식을 한 방에 팔아치운다. 그런 식으로 투자하다가는 ‘결국 적게 얻고 크게 잃을 것’이라는 첫째 투자 자아의 조언 따위는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다. 팔고 나서 하늘 끝 우주까지 날아가 버리는 주가에 아쉬워하는 일도 있지만, 그런 큰 수익은 첫째 투자 자아의 인내의 몫으로 시원하게 양보한다.
또 어떤 놈은 기막힌 마켓 타이밍의 고수다. 어찌나 운이 좋은지, ‘사고 나면 오르고, 팔고 나면 내리는’ 신기에 가까운 마켓 타이밍 매매로 엄청난 수익을 챙긴다.
이게 바로 그 복리의 마법이라는 거야!
연 1%의 복리 이자로 원금을 두 배로 불리려면 무려 7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켓 타이밍의 고수라면 시간 따위는 복리의 마법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수익률이 단 1%라도 72번 사고팔면 원금의 두 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2% 수익률로는 34번이면 충분하다.
다행히도 둘째에서 일곱째 투자 자아들은 주식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잘 알고 있다. 버핏을 따르는 첫째 투자 자아가 선택한 가치주에만 투자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 버핏을 따르는 셈이다. 적어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철저하게 지킨다.
투자 자아 일곱은 성격이 다르고 투자 스타일도 다르지만 한 사람처럼 손발이 척척 맞는다. 원래 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첫째 투자 자아는 가치투자와 장기 투자를 통해 ‘자산 증식’이라는 중차대한 과업을 수행하고, 성격 급하고 욕망에 충실한 나머지 여섯 투자 자아들은 ‘현금흐름 창출’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미션을 수행한다. 알고는 있지만 하기는 어렵다는 가치투자를 이들은 서로 도와가며 보란 듯이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