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삶에 대한 찰리 멍거의 지혜는 ‘멍거리즘(Mungerisms)’이라고 불린다. 버핏은 “멍거리즘은 내게 크나큰 즐거움의 원천이 되었다”면서 “그는 내가 나만의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라고 말했다.《Poor Charlie’s Almanack(가난한 찰리의 연감)》을 통해 우리도 버핏처럼 멍거리즘을 접하고 배울 수 있다. 이 책 548페이지 곳곳에는 보석 같은 투자와 삶의 지혜가 박혀 있다. 이 책으로 우리는 멍거가 주식 투자에 활용해 성공한 ‘4단계 프로세스’를 터득할 수 있고, 그가 투자에 활용하는 체크리스트를 익힐 수 있다.


워런 버핏은 전 세계 투자자들의 우상이다. 모두가 그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 버핏이 항상 의견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인 찰리 멍거다.

멍거는 이력이 독특하다. 17세 때 미시간대학 수학과에 입학했다가 19세에 공군에 입대하면서 학업을 중단하게 됐다. 공군에서 기상 예측을 담당했고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서 기상 전문가 교육을 받았다. 종전 후 제대한 그는 대학을 마치지 않은 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했다. 하버드 로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했을 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버핏과 멍거의 인연이 재미있다. 둘은 고향이 같다. 멍거는 1924년, 버핏보다 6년 먼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그는 버핏의 집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자랐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59년이었다. 그해 멍거의 부친이 타계했고, 멍거는 집안을 정리하기 위해 고향에 왔다. 지인이 저녁 식사에 두 사람을 초대했다. 앞서 버핏은 의사인 지인이 여러 번 자신을 멍거와 혼동하자 멍거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다.

멍거는 1978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이 됐다.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핏과 멍거는 파트너로서 버크셔 해서웨이를 키워나갔다. 버핏이 멍거라는 훌륭한 조력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금처럼 시가총액 5,100억 달러가 넘는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버핏이 공식석상에서 멍거를 자주 비즈니스 파트너로 치켜세우는 이유다.

버핏에 관한 책은 많지만, 버핏이 직접 쓴 책은 없다. 멍거는 《Poor Charlie’s Almanack(가난한 찰리의 연감)》(한국 미출간)이라는 책을 2005년 출판했다. 멍거가 존경해 마지않는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Poor Richard’s Almanack)》을 오마주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 자신이 20년 동안 한 강연과 대화를 수록했다.

재산이 약 2조 원에 달하는 억만장자가 쓴 책치고는 제목이 역설적이다. 내용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다. 그러면서 보석 같은 투자와 삶의 지혜가 곳곳에 들어 있다. 양장본에 548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 아마존 독자 중 83%가 5점 만점을 줬다. 평균 평점은 4.7, 100점 만점에 94점이다.

아쉽게 우리나라에는 번역 출간되지 않았는데, 국내 출판사들이 번역 의사를 타진했으나 멍거가 거절했다고 한다. 중국어로만 번역되었고 다른 국가에서는 번역되지 않았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멍거는 버핏에게 답변할 기회를 넘기면서 항상 “나는 추가할 내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할 말이 많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은 멍거가 투자자들,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다. 그 안에는 100년 가까이 살아온 현자의 지혜가 넘친다.

승률 vs. 수익률 - 경마와 주식 투자의 공통점

이 책에서 멍거는 경마와 주식 투자의 성공 비결이 똑같다고 말한다. 주식 투자가 도박으로도 인식되는 경마와 똑같다고?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알고 보면 멍거가 맞다. 대다수 국가에서 경마는 1867년 조세프 올레가 창안한 패리 뮤추얼(pari mutuel, 영어로는 mutual betting)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이긴 말에 베팅한 전체 금액 중 비용과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배당률에 따라 나누어주는 방식이다.

패리 뮤추얼은 말 그대로 상호(mutual) 간의 내기(betting)다. 다른 사람들의 베팅에 따라 배당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승 확률이 높으면 배당률이 낮고 우승 확률이 낮으면 배당률이 높다. 가끔씩 경마에서 100배가 넘는 고배당이 나오는데, 이 대박을 잡은 사람은 100분의 1 확률에 베팅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경마에서 정부가 세금, 운영비 등으로 27%를 떼기 때문에 137분의 1 확률을 맞혀야 100배를 벌 수 있다.

멍거는 주식시장이 경마의 패리 뮤추얼 방식만큼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인기 있는 주식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 주식에 베팅한 사람이 반드시 수익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례로 미국 철도 주식과 IBM을 들어서 자세히 설명했다. 철도 주식은 경쟁 기업과 강성 노조로 인해서 PBR이 0.33배에 불과하지만, IBM 주식은 전성기에 PBR이 6배에 달했다. 패리 뮤추얼 방식이다. 누구나 IBM의 사업 전망이 철도보다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들이 IBM에 베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을 고려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과연 PBR이 6배나 되는 IBM을 매수하면 그보다 PBR이 낮은 철도 주식을 매수하는 것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까? 글쎄다.

경마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경마에서 역대 최강마였던 ‘당대불패’는 전성기 시절 단승식(1등을 맞히는 방식) 배당률이 약 1배 수준까지 떨어졌다. 2012년 9월 9일 개최된 제6회 오너스컵 대상 경주에서 당대불패는 1등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날 당대불패에게 1,000원을 건 사람은 1,200원밖에 받지 못했다. 누구나 이 말이 1등으로 들어오리라고 예상해서 배당률이 1.2배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처럼 좋은 기업을 매수하거나 좋은 말에 건다고 해서 시장수익률을 초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 패리 뮤추얼 베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멍거는 지금까지 패리 뮤추얼 시스템에서 돈을 번 사람들의 특징으로 한 가지를 꼽았다.

“돈을 번 사람들은 자주 베팅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식시장이나 경마를 유심히 관찰하지만, ‘가격이 잘못 매겨진 베팅’ 기회를 발견할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멍거는 ‘투자는 패리 뮤추얼 시스템에 맞서 베팅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버핏과 자신은 경마로 치면 승률이 50%지만 배당률은 3배인 투자 기회를 찾는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투자란 ‘가격이 잘못 매겨진 도박’을 찾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한다.

가치투자에 대한 정의도 독특하다. 멍거는 투자자들이 베팅 가격이 잘못 매겨졌는지를 알 수 있을 만큼 많이 알아야 하며 그게 바로 ‘가치투자’라고 말한다.

멍거의 주식 투자 성공 ‘4단계 프로세스’

멍거는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만 집중한다. 이것이 그가 주식 투자에 성공한 ‘4단계 프로세스’의 첫 단계다. 둘째 단계로 대상 기업을 정성적·정량적으로 분석하고 경영진을 평가한다. 이어 경쟁우위와 지속 가능성 등을 따져본다. 마지막 단계로는 기업의 내재가치를 평가한다. 현재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충분히 낮지 않다면 매수하지 않는다.

1단계: 잘 아는 분야에만 집중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자로에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멍거는 투자에서 ‘능력범위’를 강조하면서 공자의 이 말을 자주 인용한다. 즉, 자신이 잘 아는 분야와 잘 모르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알고 잘 아는 분야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투자를 위한 세 개의 바구니를 가지고 있는데, 예스(Yes), 노(No)와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 없는 경우(too tough to understand)를 위한 바구니다.”

그는 능력범위 안에 머물기 위해 투자 범위를 간단하고 이해 가능한 투자 대상으로 한정한다. 어떠한 시장 환경에서도 지속 가능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배적인 사업 프랜차이즈를 가진 기업을 찾으려고 한다. 이 기준을 통과하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투자자가 선호하는 제약과 IT 업종은 그에게는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 없는 경우를 위한 바구니로 직행한다. 금융회사가 적극 홍보하는 투자나 기업공개상장(IPO)은 노(No) 바구니로 간다.

2단계: 정성적·정량적 분석, 경영진 평가

1단계 평가 과정을 통과한 기업만 멍거의 사고 모델로 걸러진다. 적자생존의 다위니즘에 바탕한 평가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멍거가 고려하는 요인은 현재 및 미래의 규제 환경, 노동 환경, 공급자, 소비자 관계, 기술 변화로 인한 잠재적 영향, 경쟁력과 취약점, 가격결정력, 확장성, 환경 이슈와 숨겨진 위험 등 끝이 없다.

현금흐름과 재고, 운전자본, 고정자산 및 과대평가되기 쉬운 영업권 등 무형자산도 자신의 방식대로 다시 계산한다. 가장 중요한 평가 대상은 기업 경영진이다. 능력이 있는가, 신뢰할 수 있는가, 주인의식이 있는가를 바탕으로 경영진을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