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버핏의 대응은 이전 위기 때와 얼핏 달라 보인다. 주가 저점에서 항공주를 모두 비워냈고 금융주를 일부 매도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추가 지분 투자와 주식 매수는 없었다. 팬데믹 이후의 경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걸 유추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애플 주식은 단 한 주도 매도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는 세후 814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세부적으로는 영업이익 240억 달러, 실현한 자본이익 37억 달러, 보유 유가증권 미실현 이익 537억 달러로 나뉜다. 보험, 제조 및 소매, 유틸리티 등의 사업 자회사들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전년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미실현 이익이 증시 강세 덕분에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8년부터 미국 회계기준에서 손익계산서에도 보유 유가증권의 시가 평가를 의무화하면서 사업 자회사들의 실적과는 상관없이 순이익의 변동성이 커졌다.

버핏은 보유 유가증권들의 내재가치가 2019년에도 증가했다고 보지만 시장의 평가에 따른 순이익을 중요하게 보지는 않는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사업 자회사들의 실적인 영업이익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보이익은 향후 성장의 근본 동력

버핏은 기업의 유보이익을 중요하게 본다. 유보된 이익은 사업에 재투자되거나 다른 사업을 인수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에 향후 성장의 근본 동력이 된다. 그 결과 기업 가치가 증가하고 주가는 이를 반영해 상승한다.

주식의 수익률은 기업이 성장하는 만큼 장기적으로 복리로 우상향하게 된다. 1924년 당시 무명의 경제학자이자 재무상담사였던 에드거 로렌스 스미스는 《Common Stocks as Long-Term Investment(주식 장기 투자)》(한국 미출간)라는 얇은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물가 상황에 따라 주식과 채권의 수익률 추세가 상반된다고 설명하려 했지만, 연구 결과 주식의 수익률이 더 높은 것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다음과 같이 서평을 남겼고, 버핏은 이를 통해 유보이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요컨대 스미스가 제시한 아마도 가장 중요하고 참신한 개념은 다음과 같다. 훌륭하게 경영되는 제조회사들은 이익을 모두 주주들에게 분배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실적이 좋은 해에는 이익의 일부를 유보해서 사업에 재투자한다. 따라서 건전한 제조회사에는 ‘복리 이자 요소’가 있어서 유리하다. 건전한 제조회사의 실제 자산가치는 장기적으로 복리로 증가한다. 주주들에게 배당을 지급하고서도 말이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유보이익 활용에는 순서가 있다. 먼저 자회사들의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확장하는 데 투자한다. 지난 10년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 그룹의 감가상각비 합계는 650억 달러에 달했지만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 규모는 1,210억 달러였다. 즉, 기본적인 운영 외에 기존 사업의 성장을 위해 560억 달러를 투자한 셈이다.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외의 자금은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로 보내진다. 이는 버핏의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다른 기업들을 인수하는 데 쓰여서 그룹 전체의 지속적인 성장에 기여한다. 세 가지 기준은 잘 알려진 대로 유형자본이익률이 높고, 유능하고 정직한 경영자가 경영하며, 합리적인 가격에 인수하는 것이다.

이런 기업을 발견하면 지분을 100% 인수하고자 하지만, 규모가 충분히 커서 버크셔 해서웨이에 의미가 있는 대기업을 인수할 기회는 흔하지 않다. 그 대신 변동성이 큰 주식시장에서 규모가 큰 기업들의 비지배 지분을 매수할 기회가 더 많다고 언급한다. 자본배분이 합리적인 기업이라면 지배권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기업을 100% 인수하는 것보다 훌륭한 기업의 비지배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버핏은 말해왔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이익 기반이 사업 자회사들의 영업이익과 상장 주식의 투자 이익으로 구성되는 이유다.

버핏은 여유 자금을 운용하는 방안으로 기업 인수와 상장 주식 투자를 병행한다. 좋은 기업을 100% 인수함으로써 창출되는 현금흐름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러나 때때로 주식시장이 주는 좋은 매수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자금 운용의 효율을 높인다.

피지배 기업(버크셔 보유 지분이 50%를 초과하는 회사)들의 이익은 회계상 연결로 인식되기 때문에 유보이익이 전액 장부에 계상된다. 그러나 비지배 지분을 보유하는 기업들은 배당이익만 회계적으로 인식된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 버핏은 이 기업들의 지분율에 해당하는 유보이익 규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 투자 규모가 가장 큰 10개 기업에 대해 ‘배당이익’과 ‘유보이익 중 버크셔의 몫’을 열거해서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배려했다.

버핏은 이들 주식으로 향후 실현하는 이익이 ‘유보이익 중 버크셔의 몫’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그 이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주식시장의 침체 탓에 주기적으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시장의 활황으로 대규모 이익이 발생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전자는 2018년, 후자는 2019년을 예로 들었다.

투자 규모가 가장 큰 10개 기업의 ‘배당이익’과 ‘유보이익 중 버크셔의 몫’ 비교

투자 규모가 가장 큰 10개 기업의 ‘배당이익’과 ‘유보이익 중 버크셔의 몫’ 비교

투자자들은 이러한 유보이익에 대한 버핏의 견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이익을 ‘유보’한다는 말은 재투자를 통해 ‘성장’할 사업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보이익을 통해 향후 성장 규모와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버핏은 지배권을 가진 기업에는 성장에 필요한 부분 외의 이익을 배분함으로써 버크셔 전체의 ‘성장’을 이뤄낸다. 그러나 그런 선택권이 없는 일반 투자자들로서는 자본배분에 대한 경영진의 판단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지속적인 사업 기회가 있어서 적절한 투자를 통해 성장을 이뤄내는지, 사업 기회가 없다면 과감히 주주환원을 통해 주주가 다른 투자 기회를 찾게 해주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장기 투자를 전제한다면, 버핏의 지적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자본배분 능력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비보험 자회사 실적 ‘보통’… 버크셔 2019년 주가 11%만 상승

버크셔 해서웨이의 비보험 그룹을 이끄는 쌍두마차인 철도회사 BNSF와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BHE)의 2019년 이익 합계는 83억 달러였다. 2018년 대비 6% 증가한 수치다. 다음으로 이익을 많이 낸 회사 5곳(클레이턴 홈즈, IMC, 루브리졸, 마몬, 프리시전 캐스트파츠)의 이익 합계는 48억 달러로, 2018년과 거의 같다. 그다음 5곳(버크셔 해서웨이 오토모티브, 존즈 맨빌, 넷젯, 쇼, TTI)의 이익은 2018년 17억 달러에서 2019년 19억 달러로 증가했다. 나머지 자회사들 수십 곳은 2018년 28억 달러에서 2019년 27억 달러로 감소했다. 비보험 자회사 전체의 이익 합계는 2018년 172억 달러에서 2019년 177억 달러로 3% 증가했다. 기업 인수나 매각이 미친 영향은 거의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사실 2019년 비보험 자회사들의 실적은 화려하지 않았다. 이는 2019년 S&P500지수가 한 해 동안 31% 상승한 데 비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는 11% 오르는 데 그친 이유 중 하나라고 판단된다.

손해보험 근래 17년 중 16년 보험영업이익 기록

손해보험업은 1967년 860만 달러에 ‘내셔널 인뎀너티’와 자매회사인 ‘내셔널 화재해상’을 인수한 이후 버크셔 해서웨이의 사업 확장을 견인한 엔진이었다. 현재 내셔널 인뎀너티는 순자산 기준으로 세계 최대 손해보험사로 발돋움했다.

버핏은 보험료를 먼저 받고 나중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매료되었다. 인수하는 보험을 적절히 구성함으로써 받아둔 보험료가 한 번에 나가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이런 구조는 자금을 차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데, 받아둔 보험료를 나중에 지급할 때까지 다른 자산에 투자해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험업에서 차입금과 같은 효과를 내는 자금을 플로트(float)라고 부른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보험업에서 창출한 플로트는 1970년 3,900만 달러에서 2019년 1,294억 달러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기본적으로 플로트를 늘리려면 보험을 인수하면서 받는 보험료 규모를 키워야 한다. 양질의 플로트를 위해서는 나중에 돌려주는 보험금 규모가 먼저 받아두는 보험료 규모보다 작아야 한다. 업황이 좋지 못해 보험금이 보험료를 초과하더라도, 버핏은 그 차이를 10년 만기 국채 이자율보다 낮게 관리하려고 노력해왔다. 아무리 큰 규모의 보험료를 받더라도 시중 차입 금리보다 높은 비용을 치른다면, 차라리 이용하지 않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때문에 버핏은 보험을 신중하게 인수하되, 불리한 계약은 과감히 인수하지 않는 철학을 고수해왔다. 유리하면서 규모가 큰 물건은 과감히 인수하는 것은 물론이다. 버핏이 투자에 임하는 모습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다.

이런 철학이 반영되어 버크셔 해서웨이 손해보험사들은 최근 17년 중 2017년에만 세전 손실 32억 달러를 기록했을 뿐, 16년 동안 보험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받아둔 보험료보다 지급한 보험금이 작기 때문에, 오히려 이자를 받으면서 차입금을 활용한 셈이다. 지난 17년 동안 벌어들인 세전 이익 합계는 275억 달러였고 그중 2018년 이익은 4억 달러였다.

이런 기준을 고수하면서 플로트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온 데에는 보험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아지트 자인의 공이 컸다고 밝혔다. 자인은 보험 인수에 앞서 리스크와 기회를 판별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큰 리스크 없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보험 사업을 키워왔다.

아지트 자인은 2012년 말 윌크스배리 소재의 가드 보험그룹을 순자산가치 수준인 2억 2,100만 달러에 인수했다. CEO 시 포구엘이 버크셔 해서웨이에서 스타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2019년 가드의 수입 보험료는 19억 달러로, 2012년 이후 379% 증가했고, 보험영업이익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1967년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오마하에서 거대 보험사가 등장했고, 이번에는 윌크스배리에서 스타가 탄생할 듯하다며 기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