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자 이채원이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으로 돌아왔다. 라이프자산운용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행동주의’를 가미해 한 단계 진화시킨 형태의 가치투자 펀드를 운용할 계획이다. 이 의장은 이를 통해 “가치투자가 한국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금리와 성장주·가치주 밸류에이션의 관계를 비롯해 개인 투자자들이 향후 관심을 둘 종목 등에 대한 견해도 들려줬다.


한국 가치투자의 큰 별이 돌아왔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돌연 운용업계를 떠났던 그는 사모펀드 의장 자격으로 현업에 복귀했다. 은퇴를 말리며 ‘가치투자 복수혈전’을 요청하는 업계 후배들의 성원도 한몫을 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이 의장이 남두우 다름자산운용 대표, 강대권 전 유경PSG자산운용 CIO(최고운용책임자)와 함께 세운 회사다. 라이프자산운용은 행동주의 ESG를 강조한다.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가서 ESG를 개선함으로써 기업 가치를 제고할 의향이 있는지 타진하고 그렇다고 할 경우 투자하는, 관여 방식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1세대 가치투자자로서 한국에서 가치투자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를 7월 23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30년 넘게 몸담았던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떠났습니다.

“3~4년 전부터 운용에서 손을 떼고 대표로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용하는 펀드 수익률이 좋지 않으니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상황이 좀 좋아지면 모양새 좋게 운용에서 손을 떼고, 대표로서 관리에 전념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려고 했는데 성과가 좋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졌죠. 직접 운용하는 2~3개의 펀드 수익도 좋지 않아 고객 불만이 커졌고, 회사도 답답함을 느꼈고, 저도 못 견디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과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수장인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후배들이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너무 지쳐 있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두게 됐습니다.”

회사명의 ‘LIFE’는 ‘Longterm Investment For Everyone’의 줄임말이다.

사모펀드로 옮긴 것은 뜻밖입니다.

“처음에는 1년 정도 쉬고 그룹(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복귀할 생각이었습니다. 지난해 말 자리에서 물러난 후 쉬는 동안 최준철, 김민국 대표를 비롯한 후배들이 찾아와서 은퇴하면 안 된다며 ‘가치투자 복수혈전’을 해달라고 강력히 얘기를 했습니다. 저 역시 행동주의에 대한 생각이 있었고요. 다만 금융계열사면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행동주의 투자를 하려면 그룹보다는 직접 회사를 차려 독립 운용사에서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라이프자산운용을 설립한 데는 이 의장의 역할이 컸다. 그가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그만둔 후 대표로 제의를 받은 곳이 10군데에 달했다. 금융기관이 아닌 일반 기업들의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의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투자금융그룹에서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이 의장은 설명했다. 1988년 입사해 32년간 한 기업에서만 일하며 대표까지 맡았던 그에게 다른 회사를 선택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제자 중 한 명인 강 대표가 이 의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강 대표는 지난해 유경PSG자산운용을 그만둔 후 자산운용사를 설립해 금융감독원에 인가 신청을 한 상태였다. 그는 이 의장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동시에 다름자산운용을 세운 남 대표도 이 의장에게 “함께 일하는 것이 소원”이라고까지 말했다. 남 대표는 이 의장의 대학 후배다. 이 의장은 두 사람을 연결해줘야겠다고 생각해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이 의장까지 세 사람은 가치투자라는 기치하에 함께 뭉치기로 의기투합했다. 불과 3개월 전 일이다. 마음이 합쳐지니 일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지난 6월 7일부터 이 의장은 라이프자산운용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 있을 때 힘들었던 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조직 관리를 타이트하게 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방목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자유롭게 두고 성과만 보고 평가했습니다. 보상은 성과로 한다는 원칙이었죠. 제가 보기엔 일을 안 하는 것 같아도 집에 가서 할 수도 있고 모르는 거니까요. 성과가 좋고 회사의 철학과 원칙만 지키면 상관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직 관리를 잘못했던 것 같습니다. 대표를 하면서 조직 관리를 하려면 직원들 만나서 회식도 하고 대화도 자주 하고 해야 하거든요. 주식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게 어려웠습니다.”

오너가 아닌 대표의 한계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전문 경영인이긴 했지만 회장님께서는 제가 하는 제안, 요청을 거절한 적이 없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다 채용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제가 요청하면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묻고, 그렇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셨죠. 오너가 아니었기 때문에 못 했던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경영자로서 역할을 잘못한 거죠.”

라이프자산운용에서 대표가 아닌 의장을 맡으신 것도 그 때문인가요.

“첫째는 회장이라는 타이틀이 좀 올드하고 재벌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저희 회사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행동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으로 기업들에 투명한 경영을 요구할 건데 저희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결정을 6명의 이사가 내리는 이사회 체제로 만들었습니다. 누구 하나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제가 의장을 맡은 겁니다.”

강대권 대표, 남두우 대표와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시나요.

“남 대표는 영업력과 네트워크 능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IMF 외환위기 등 여러 위기를 경험한 것도 장점이죠. 개인 투자자로서 투자은행(IB)을 한 것도 대단합니다. 개인 투자자 모아서 전환사채(CB)를 찍고 그랬습니다. 기업 초기 단계인 메자닌 공모주, 코스닥 벤처 등을 담당합니다. 강 대표는 가장 젊고, 패기 있고, 놀라울 정도로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두 사람이 중심을 잡아서 운영하면 저는 뒤에서 지원을 맡을 생각입니다. 리스크(위험)를 관리하고 의견을 조율해주고 하는 역할이요.”

새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포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사실 지난 20년간 누적 수익률은 좋습니다. 다만 마지막 5년이 안 좋아서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했죠. 가치투자가 한국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가치투자의 ‘복수혈전’이랄까요. ESG 행동주의를 가미해 한 단계 진화시킨 형태의 가치투자 펀드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올 들어 가치주가 성장주보다 선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까지 가치주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지난 6년간 가치주는 성장주에 비해 처참할 정도로 성과가 나빴습니다. 미국 데이터를 보면 지난 5년간 성장주가 가치주보다 90% 아웃 퍼폼했습니다. 그러다 올 들어 가치주가 성장주보다 20% 정도 아웃 퍼폼했는데 6년 만의 첫 반전입니다. 한국에서도 올 들어서는 상반기까지 2~3배 오른 종목도 많습니다. 특히 경기 민감 가치주의 압도적 승리였습니다. 소비재보다는 철강, 화학, 시멘트 등 경기 민감주가 많이 올랐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난 30년 넘게 자산운용업계에 있으면서 사이클을 겪었습니다. 과거에도 이렇게 가치주가 성장주보다 못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1999년 닷컴 버블 때, SK텔레콤이 50만 원까지 올랐고 KT도 20만 원까지 상승했습니다. (2021년 7월 26일 장 마감 기준 SK텔레콤과 KT 주가는 각각 30만 8000원, 3만 3600원이다.) 인터넷 혁명, 핸드폰 출시 등 지금보다 엄청난 변화가 있었을 때입니다. 반면 롯데칠성 같은 주식은 10만 원에 산 게 5만 원대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2000년 4월에 가치주 상승 흐름이 시작됐고, 이후 13년간 좋았습니다. 그간 제가 운용했던 펀드를 다 이어보면 수익률이 1400%에 달합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100%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6년간 수익이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만둔 후 한국투자밸류 펀드들의 수익률이 오른 점을 지적하자 “제가 그만두면 폭등할 거라고 예언했었다”며 웃었다. 세상 일이 다 그렇고 가치주 투자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롯데칠성에 투자했던 경험을 풀어놨다. 1999년 롯데칠성 주식을 10만 원에 매수했고, 9만 원, 7만 원으로 가격이 계속 떨어졌지만 확신을 가지고 추가 매수했다. 사상 최대 이익이 예정돼 있고, 주가수익비율(PER)이 1배에 불과할 정도로 저평가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가가 6만 원 아래로까지 떨어지자 1주도 살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천하의 이채원’도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가 바닥이었습니다. 장중 5만 5000원을 찍은 뒤 급등하기 시작해 250만 원까지 쭉 올랐습니다. 아마 그날 제가 매입했다면 하루 더 떨어졌을 겁니다. 고객, 회사, 저까지 못 기다리는 최악의 시기. 늘 거기에서 반전이 시작됩니다.”

아모레퍼시픽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만 8800원에 매입했고, 주가는 1만 원까지 떨어졌다. 그마저 추가 매입을 망설이던 때 주가는 반등하기 시작했고 14년간 400만 원까지 올랐다.

이 의장은 “그만두는 시기가 최악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채원 의장 약력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1996년 동원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
1998년 국내 최초 가치투자 펀드 ‘밸류 이채원 1호’ 운용
2005년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
2006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및 CIO
2018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 및 CIO
2020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
2021년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
* 운용 성과: 2000~2020년 누적 수익률 1,091%(KOSPI 상승률 234% 대비 4.6배 초과수익)

지난 6년간 가치주가 어려움을 겪은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상 유례가 없는 초저금리 시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0.3%까지 떨어졌습니다. 성장주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평가할 때 주로 DCF(현금흐름할인법)를 사용하는데, 이는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 가치로 할인하는 방식입니다. 할인할 때의 기준은 금리인데 높을수록 할인이 많이 돼 불리합니다. 이 때문에 금리가 떨어지면 성장주가 각광을 받습니다.”